ESG
ESG 보상의 함정…형식적 도입은 ‘그린워싱’ 일 뿐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한국이 나아가야 할 ESG 지표 보상 설계 방식
의미 있는 가중치·엄격한 목표 확보해 설계해야
이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ESG 투자가 영업 및 재무 성과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이 자신의 산업에서 중요한 ESG 이슈에 집중할 때 장기 주가 성과가 유의미하게 개선된다. 유니레버가 2010년대 신흥국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높은 매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사적으로 추진됐던 지속가능성 제고 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국내 시가총액 상위 250개 기업 중 ESG 지표를 임원 보수에 반영하는 기업은 겨우 27곳, 10.8%에 불과하다. 일부 선도 기업들이 2019년부터 최고경영자(CEO) 평가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시도가 있지만, 이는 소수의 예외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은 ESG 보상 체계 도입에서 선진국 대비 최소 5~10년은 뒤처져 있다.
선진국의 형식적 도입, 그 실패의 교훈
그렇다면 뒤늦게 출발하는 한국 기업들은 서둘러 선진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까? 흥미롭게도 먼저 출발한 유럽과 북미 기업들의 경험은 정반대의 교훈을 전한다. ‘빠르게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진이 유럽 대형 상장기업 73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ESG 지표를 도입한 기업은 많지만 그 지표가 임원 보수 총액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명확히 규정된 ESG 지표의 평균 가중치는 5%에 불과했고, ESG 지표 달성 여부는 전체 임원 보수 총액 변화의 1%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ESG 보상이 진정한 인센티브가 아닌 ‘그린워싱’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형식적 도입’에 있다. 많은 기업들이 ESG 목표를 설정했지만, 그 목표는 처음부터 쉽게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됐다. 연구에 따르면 ESG 지표의 수나 가중치가 높을수록 오히려 목표 달성률의 변동성이 낮아지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경영진이 항상 거의 100%에 가까운 목표 달성률을 보장받도록 설계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미에서는 ESG 성과급 지급률이 재무 성과급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ESG 목표가 훨씬 느슨하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량적 평가의 남용이다. 많은 기업이 ESG 목표 달성 여부를 이사회나 보상위원회가 연말에 재량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재량적 평가는 측정이 어려운 ESG 성과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그 재량권이 한쪽으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재무 실적이 좋을 때는 재량적 ESG 보상이 추가로 지급되지만, 환경 사고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보상을 삭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임원에게는 ‘추가 혜택’만 있고 ‘책임’은 없는 비대칭적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시행착오는 한국 기업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ESG 보상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가?
韓 기업이 달리 출발해야 하는 지점
늦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기회다.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처음부터 실질적인 ESG 보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의미 있는 가중치’다. 5% 미만의 가중치로는 임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 ESG가 진정한 인센티브로 작동하려면 최소 10~15% 이상, 환경 리스크가 높은 제조업이나 화학·에너지 업종의 경우 20% 이상의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목표의 엄격성이다. ‘지속가능경영 강화’ 같은 모호한 목표는 무용지물이다. ▲탄소 배출량 전년 대비 12% 감축 ▲중대재해 제로 달성 ▲여성 임원 비율 30% 달성처럼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 목표 수준도 재무 목표만큼 도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달성률이 항상 90% 이상이라면,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확정 지급’에 가깝다.
세 번째는 책임의 대칭성이다. 재량적 평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투명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평가 기준과 결과를 공개하고, 무엇보다도 부정적 ESG 사건 발생 시 확실한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환경 사고·중대재해·인권 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이미 지급된 보상을 환수하거나 향후 보상을 삭감하는 메커니즘을 명문화해야 한다. 보상은 양방향이어야 한다.
넷째,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임원의 책임 범위에 맞춰 생산 부문 책임자에게는 탄소 배출과 안전 지표를, 인사 책임자에게는 다양성 지표를, 구매 책임자에게는 공급망 ESG 지표를 연계하는 식이다. 모든 임원에게 동일한 지표를 부여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흐리고 효과를 반감시킨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선진국처럼 형식적으로 ESG 보상을 도입해 10년 뒤 다시 재설계하는 우회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구축하는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ESG 보상은 ‘녹색 페인트칠’이 아닌 ‘경영 엔진의 핵심 부품’이 돼야 한다. 늦게 시작하는 만큼, 더 제대로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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