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새벽배송 금지?…‘위험의 가격’ 제대로 매겨야 [새벽배송 10년]④
- 시장 작동 원리 무시한 규제는 부작용 낳을 뿐
새벽배송 편리함 뒤 숨은 노동의 가치 살펴야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정치권과 노동계가 ‘새벽배송’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노동자의 과로사와 건강권을 이유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배송 금지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2000만 소비자의 편익과 배송 노동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들어 반대한다. 잇따른 노동자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며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의 해법이 특정 시간대의 경제 활동을 법으로 원천 봉쇄하는 ‘금지’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로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의 작동 원리를 무시한 규제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가격 제대로 매겨지고 있나
노동경제학에는 ‘보상적 임금 격차’라는 개념이 있다. 위험하고 불쾌하거나 남들이 기피하는 시간대에 일하는 직무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추가적인 보상(임금 프리미엄)이 제공돼야 노동 시장의 균형이 달성된다는 이론이다. 새벽배송 노동자가 밤을 새워 일하는 이유는 생체리듬의 파괴와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더 높은 소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재 새벽배송 노동 시장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새벽에 일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에 대한 가격(임금)이 제대로 매겨지지 않고 있다는 점일지 모른다. 심야 노동은 발암물질로 규정될 만큼 신체적 위험이 크지만, 현재의 임금 구조가 과연 그 위험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충분한 보상적 임금을 제공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시장 실패다. 따라서 해법은 배송 시간을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위험에 합당한 가격을 지급하도록 유도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노동자에게 완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인 노동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자신이 선택한 고수익 일자리에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지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야간 노동이 심혈관 질환이나 암 발병률을 얼마나 높이는지, 현재의 업무 강도가 장기적으로 건강에 어떤 비용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투명한 정보가 없다면 노동자는 당장의 높은 수입에 현혹돼 자신의 건강을 헐값에 넘기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정부와 기업은 단순히 업무 매뉴얼을 주는 것을 넘어 야간 노동의 건강 위험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노동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교육해야 한다.
둘째는 노동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패키지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고소득을 원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소득이 조금 낮더라도 안전하고 규칙적인 주간 근무를 선호할 수 있고, 누군가는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야간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유연한 노동 시장 환경 조성돼야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은 배송 업무 외에도 하루 평균 2.6시간의 분류 작업과 프레시백 세척 등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노동자가 계약 시 예상했던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실질적인 시간당 임금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노동자가 ‘고위험-고수익’과 ‘저위험-저수익’ 사이에서 자신의 선호에 맞는 근로 조건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제안한 것처럼 야간작업 시간을 제한하되, 그 안에서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전면 금지보다 훨씬 경제학적으로 타당하다.
결국 새벽배송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환경은 법적인 금지가 아니라 경제적인 유인을 통해 달성돼야 한다. 기업은 심야 노동의 위험 비용을 임금에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가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 새벽배송 전면 규제는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시행해야 한다.
이처럼 2026년 우리 노동 시장에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셧다운(시스템의 작동 중지)이 아니다. 위험한 일에는 그에 합당한 충분한 보상이 따르게 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과 소득을 주체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장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노동자의 통계적 생명의 가치를 추정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통계적 생명의 가치는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 시장에서 한 사람의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포기할 수 있는 임금 총액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2017년 화폐가치로 870만달러(약 128억원) 정도로 추정됐다. 귀중한 생명에 가격을 정한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새벽배송 노동 시장이 치명적인 위험에 얼마의 가격을 지급하고 있는지 우선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려는 노력부터 이뤄져야 한다. 새벽배송의 편리함 뒤에 숨겨진 노동의 가치를 제값으로 쳐주는 것, 그것이 죽음의 배송을 막는 가장 확실하고 지속 가능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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