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6년 만에 다시 달아오른 한중 협력…4대 그룹 총수 총출동
- 이재명 대통령 방중 계기로 대규모 경제사절단 구성
반도체·배터리·전기차 협력 재개 기대감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한중 경제 협력의 온도가 6년 만에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1월 4~7일)에 맞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우리 경제를 이끄는 4대 그룹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경제사절단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9년 12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방중 이후 6년여 만에 구성됐다. 사절단에는 총 161개 기업이 참여했으며, 기업인을 포함한 방중 인원은 6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규모 경제사절단 방중은 미중 패권 경쟁과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생존 활로’를 찾기 위한 전략적 행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5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고려와 송나라의 활발한 교류를 상징하는 ‘벽란도 정신’을 언급했다. 외교적 긴장 속에서도 경제와 문화의 교류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다.
‘벽란도 정신’ 언급하며 교류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은 “고려와 송나라가 교역과 지식 순환을 통해 자국의 발전과 문화적 성숙을 도모했고, 외교적 긴장과 갈등이 있었던 시기에도 벽란도를 통한 교역과 교류는 중단되지 않았다”며 “오늘날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할 지점도 바로 이 벽란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중은 같은 바다를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항해하는 배와 같은 입장으로, 산업공급망 간 연계로 서로 발전에 도움을 주고 글로벌 경제를 선도해 왔다”며 “이제는 생활용품, 뷰티 식품과 같은 소비재와 영화·음악·게임·스포츠 등 문화콘텐츠 등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인공지능(AI)은 제조 서비스업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는 4대 그룹 총수도 일제히. 참석했다. 포스코·GS·LS·CJ 등 주요 그룹과 SM엔터테인먼트·크래프톤 등 K-콘텐츠를 대표하는 기업들도 대거 이름을 올렸다. 중국 측에서도 무역촉진위원회(CCPIT)를 중심으로 중국석유화공그룹·중국에너지건설그룹 등 국영 기업은 물론 TCL·CATL·텐센트·ZTE 등 글로벌 민간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양국 재계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중 비즈니스 포럼이 열린 것은 2017년 이후 9년 만이다.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인공지능(AI)·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협력, 소비재·식품 진출 확대 협력, K-팝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 콘텐츠 협력 등 총 32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특히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인터내셔널의 업무협약(MOU)은 K-제품이 중국 유통망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새로운 역직구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한중 관계가 전면적으로 복원되는 중요한 전환점에 있다”며 “두 나라 대표 경제인들이 좋은 성장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통해 양국의 경제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경색됐던 한중 경제 협력이 재개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운용 효율화를 위해 지난 2018년 톈진 스마트폰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광둥성 후이저우 스마트폰 공장과 PC 공장인 쑤저우 생산 라인을 철수한바 있다. 현재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낸드 패키징 공장, 다롄에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반도체 생산에 있어 중국은 중요한 거점이다.
4대 그룹, 중국과의 협력 강화 기대
재계에선 이 회장과 최 회장이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삼성과 SK의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반입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취소하는 대신 1년 단위로 반도체 장비 수출 물량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규제 완화에 따라 한국과 중국 기업의 반도체 협력이 진전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방중을 통해 한한령으로 타격이 컸던 현대차의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16년 중국에서 연간 18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봤지만 사드 배치 여파로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2024년 점유율은 0.65%로 주저앉은 상황이다.
현대차는 과거 5개 중국 공장을 운영했지만 중국사업 부진 여파로 베이징 1공장(2021년), 충칭 공장(2024년)을 매각했고 장쑤성 창저우 공장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다만 현대차는 최근 중국 내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현지 전용 전기차 '일렉시오' 출시와 중국 현지 공장을 수출기지로 전환하는 등 이번 방중이 중국사업 재정비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한중 관계 개선에 환영을 표하며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정 회장은 “한중 정상회담으로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 현대차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중국에서 판매량과 생산량이 많이 떨어졌지만, 겸손한 자세로 중국 내에서 생산과 판매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위 업체인 CATL 쩡위췬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LG그룹 역시 중국에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LG에너지솔루션·LG생활건강 등 6개 계열사에서 30여 개의 생산 법인을 운영 중이고 LG CNS도 별도 법인을 두고 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중국과의 협력 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6년 만의 방중은 한국 경제에 있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미중 경쟁 상황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기술 주권’을 지키면서도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실리를 챙긴 행보”라며 “당장의 성과보다는 향후 협력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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