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조원 수주잔고·글로벌 2위 입지에도 시가총액은 경쟁사 대비 현저히 낮아
증권가 "2026년 북미 대형 프로젝트 본격화 시 밸류에이션 재평가 불가피"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글로벌 리테일 테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자가격표시기(ESL) 분야에서 삼성전기 분사 이후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무대를 장악 중인 '솔루엠'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인 실적 성장과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솔루엠의 기업 가치는 여전히 안갯속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글로벌 ESL 시장은 프랑스의 뷰전(VusionGroup), 중국의 한쇼(Hanshow), 한국의 솔루엠이 '3강 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다. 솔루엠은 자체 생산 공장과 독보적인 통신 기술력을 바탕으로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에 안착했다.
수치로 확인되는 솔루엠의 저력은 명확하다. 현재 2.2조원에 달하는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베트남 공장은 월 700만개의 ESL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여기에 멕시코, 인도, 중국까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연간 매출 1조원 중반대를 넘어서는 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주식 시장에서의 평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솔루엠의 시가총액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 점유율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럽 증시에 상장된 뷰전그룹의 경우,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아 높은 멀티플(Valuation Multiple)을 적용받으며 견고한 시가총액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솔루엠은 사상 최대 실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도 주가수익비율(PER) 등 주요 지표에서 경쟁사 대비 절반 이하의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꼽는다. 한국 증시 특유의 낮은 배당 성향,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한 우려, 해외 자본의 접근성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보다 낮은 가격에 주가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솔루엠처럼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수출 기업'조차 국내 상장사라는 이유만으로 동일 업종의 글로벌 피어(Peer) 그룹 대비 저평가받는 것은 자본시장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래에셋증권, DS투자증권, 상상인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솔루엠에 대해 일제히 '매수' 의견을 제시하며 목표주가를 2만2000~2만3000원으로 설정했다.
증권가에서 솔루엠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미 대형 리테일러와 진행 중인 개념검증(PoC) 프로젝트다. 여러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가 2026년 하반기 양산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미 시장은 ESL 도입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에서는 이미 대형 리테일러들의 ESL 도입이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북미는 아직 초기 단계다. 솔루엠이 멕시코 공장을 통한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혜택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북미 주요 리테일러와의 협력에 성공한다면, 이는 회사의 성장 궤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회사는 2026년 매출 목표를 1.7~1.85조원, 영업이익 688억~869억원으로 설정했다. 2025년 3분기 영업이익이 148억원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이는 폭발적인 수익성 개선을 예고하는 것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솔루엠의 저평가가 더욱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현재 주력 사업인 ESL이 안정적인 수익 창출원 역할을 하는 가운데, 차세대 먹거리인 헬스케어와 전기차(EV) 충전기 파워모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솔루엠은 최근 고출력 전기차 충전기용 파워모듈의 글로벌 인증을 마치고 본격적인 공급에 나섰으며, 센서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토탈 솔루션 제공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솔루엠은 4색 ESL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컬러 ESL은 흑백 제품 대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이는 매출 성장과 함께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가져올 핵심 드라이버다.
솔루엠은 최근 거버넌스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25년에는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했다. ISO 인증을 통해 탄소발자국 검증 체계를 구축하는 등 ESG 경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회사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매입을 실시해 194억원 규모의 100만주를 취득했다. 이는 경영진이 자사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 동시에 임원 급여를 동결하며 비용 관리에도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여전히 과거의 전자부품 제조사 틀 안에 갇혀 있다.
결국 솔루엠에 필요한 것은 시장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객관적인 가치 재평가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명확히 전달되어야 하며, 해외 기관 투자자들 역시 솔루엠을 '한국의 부품사'가 아닌 '글로벌 리테일 테크 리더'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SL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리테일 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ESL은 단순히 가격표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재고 관리, 고객 경험 개선, 운영 효율화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장 흐름 속에서 기술력과 생산능력,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솔루엠의 성장 스토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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