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무표정한 ‘브라운’이 15년간 건넨 말없는 진심[이코노 인터뷰]
- 강병목 IPX IP 제작 총괄 이사·조경석 IPX 사업부 센터장 인터뷰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오늘날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캐릭터 전성시대’다. 과거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나 완구 시장에 국한됐던 캐릭터 산업은 연령대를 막론하고 라이프스타일과 감정을 대변하는 핵심 콘텐츠로 부상했다. 인스타그램의 4컷 만화(인스타툰)에서 탄생한 개인 크리에이터의 캐릭터가 팬덤을 구축하고 IT 플랫폼,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산업군을 막론하고 독자적인 캐릭터를 내놓지 않는 기업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화려한 등장만큼이나 퇴장도 빠른 것이 캐릭터 IP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수많은 캐릭터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행의 파도 뒤로 사라지는 지금, 탄생 15주년을 맞이한 ‘브라운’(BROWN)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15년 전,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 라인(LINE)의 스티커로 세상에 나온 브라운은 어떻게 국경과 세대를 아울러 글로벌 캐릭터 IP가 됐을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디자인 철학’과 ‘미지의 영역에 꽂은 최초의 깃발’을 발판 삼은 IP 비즈니스 전략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IPX(구 라인프렌즈) 강병목 IP 제작 총괄 이사와 조경석 사업부 센터장을 만나 캐릭터 IP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강병목 이사는 2010년 네이버 재팬 일러스트레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메신저를 통한 감정 소통 방식을 고민했고 이는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 라인(LINE)의 대표 캐릭터 '브라운'을 비롯한 라인프렌즈 오리지널 캐릭터의 초기 이모티콘 스티커 개발로 이어졌다. 2012년부터 라인플러스에 합류해 라인프렌즈 오리지널 캐릭터 개발을 주도했으며 스티커에서 시작한 캐릭터를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사용자의 감정을 직관적인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데 강점을 가진 크리에이터로, 기술 변화 속에서 캐릭터 IP의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조경석 센터장은 종합 광고대행사 웰콤 퍼블리시스 월드와이드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 2014년 라인에 합류하며 캐릭터 IP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라인프렌즈 초기 캐릭터 마케팅 체계를 구축했고, 글로벌 메가 IP 'BT21' 등 대형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현재 브라운을 포함한 라인프렌즈 오리지널 캐릭터부터 글로벌 파트너사 IP까지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감각과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결합해 IP 비즈니스를 다각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팬들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IP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디자인의 역설, 소통이 단절된 순간 ‘관계’를 잇는 언어가 되다
강병목 이사는 “브라운 디자인의 핵심은 침묵과 무표정”이라며 “15년 전 초기 개발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주목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침묵’이었다. 당시 시장에는 과장된 표정과 화려한 효과를 가진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브라운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눈동자의 크기조차 변화가 없는 무표정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디자인적 차별화를 넘어, 탄생 배경인 ‘관계의 회복’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물리적 통신과 일상적 소통이 단절된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마음만큼은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브라운은 슬픔, 불안, 위로를 말 대신 스탬프로 전달하는 메신저가 됐다는 설명이다. 브라운의 무표정은 받는 이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투영하게 만드는 ‘여백’이 돼 주었다. 소통이 끊긴 순간에도 관계를 단단하게 이어준 이 경험은 브라운에 대한 애착과 신뢰의 뿌리가 됐다.
강병목 이사는 “브라운은 말도, 표정도 없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든든함과 동시에 쑥스러울 때면 볼이 빨개지는 다정함을 지녔다”며 “이 무표정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사용자의 감정 투영’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돼 캐릭터가 먼저 웃거나 울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가 브라운의 얼굴에 자신의 기분을 투영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행복할 때는 함께 웃는 것처럼, 내가 우울할 때는 묵묵히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여백의 설계’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브라운과 함께 한 이유
라인프렌즈(LINE FRIENDS) 오리지널 캐릭터 IP는 브라운, 코니, 문, 제임스 4종의 초기 멤버로 시작해 샐리, 에드워드, 초코 등을 추가하며 11종의 탄탄한 캐릭터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들을 글로벌 IP로 키워낸 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귀여움을 넘어 영리한 확장 전략이 전반에 깔려 있었다.
브라운이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북미와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출발점에는 메신저 라인(LINE)의 확산이 있었다. 다만 플랫폼의 성공이 곧 캐릭터 IP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 터, 브라운은 라인이 비교적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중국, 미국 등)에서도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독특한 성공 모델을 보여줬다.
브라운의 확장을 브랜드로 거듭나도록 한 결정적인 동력은 전례 없는 ‘콜라보레이션’이다. 과거 캐릭터 협업이 아동용 완구에 머물렀다면 브라운은 ‘캐릭터와의 접점이 전무했던 프리미엄 브랜드의 영역’을 가장 먼저 두드려 캐릭터 IP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라미(LAMY),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브롬톤(BROMPTON), 아라비아(ARABIA), 미스터 마리아(Mr Maria) 등 제품 철학이 뚜렷한 유럽 디자인 브랜드들과의 만남은 브라운이 ‘콜라보레이션 명가’로 불리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브랜드들은 캐릭터와의 상업적 협업이 거의 없었고, 당시만 해도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브랜드였기에 협업은 1년 이상에 걸친 긴 논의와 설득의 과정을 필요로 했다. 브라운이 지닌 절제된 감성과 무표정한 태도가 미니멀한 유럽 지역 디자인 언어와 맞물렸고, 캐릭터가 라이프스타일·디자인 브랜드와 나란히 설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시장에 처음으로 각인시켰다.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상징, 서체 헬베티카(Helvetica)와의 협업 역시 당시 디자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물성이 없는 서체와 캐릭터 브랜드의 만남이라는 파격적인 접근은 브라운이 연령과 팬덤을 불문하고 디자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전문가 집단에게도 미학적 언어로 소통 가능한 소재임을 증명한 사례가 됐다. 그 결과, 대중들은 "브라운이 어떻게 저걸 해냈지?"라며 긍정적인 반응으로 응했고, 브라운은 ‘콜라보레이션의 아이콘’이자 디자인 미학의 언어로 소통하는 매력적인 IP로 인정받았다.
브라운을 향한 러브콜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에는 미스터마리아와 10년 만에 재협업을 결정했다.
조경석 센터장은 “2015년 첫 협업 이후 유행에 휩쓸려 소비되는 소모품이 아니라, 10년 뒤에도 아이의 머리맡을 지켜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제품.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브라운 IP 비즈니스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캐릭터로서 글로벌 ‘얼굴’이 되다, IP 현지화의 새로운 정의
비즈니스의 확장 측면에서 IPX는 브라운을 메신저 안에 가두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나 명동 등 랜드마크 상권에 선보인 압도적 스케일의 공간 연출은 유통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꿨다.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매장 구성과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 조형물 ‘메가 브라운’은 방문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콘텐츠가 되도록 설계됐다.
이는 SNS를 통한 인증으로 이어졌고, 글로벌 셀러브리티들이 브라운 제품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습이 노출되며 ‘자랑하고 싶은 브랜드’로서의 인식이 확립됐다. 공간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 흐름은 이후 한류 열풍의 중심이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의 방송을 타고 중국과 아시아 전반으로 퍼져 나가며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또한 브라운은 각 국가 및 지역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캐릭터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왔다. 실제로, 중국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와 전통 정원 예원(Yu Garden) 등 역사적 의미가 깃든 장소에 라인프렌즈 캐릭터가 등장, 현지 정부 및 공공 기관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캐릭터가 공공적 가치와 문화적 상징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었다.
2021년 대만에서 약 2달간 열린 펑후불꽃축제에서는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테마로 한 불꽃놀이와 드론쇼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고, 해당 축제는 현장 방문객 수 약 3만 명, 온라인 생중계 방문자 수 약 47만 명이라는 괄목할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3년 2월에는 라인프렌즈 캐릭터와 대만 타이베이시 공식 마스코트인 브라보(熊讚, Bravo)가 만나 대대적인 등불축제 ‘2023 타이베이 등불쇼’와 대만의 주요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 빌딩에 등장하며 현지에서의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다.
조경석 센터장은 “이러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현지 캐릭터조차 시도하지 않은 유일무이한 발자취이기도 하다”며 “이 밖에도 브라운은 매년 8월 8일 생일을 맞아 열리는 ‘브라운 데이(BROWN DAY)’로 전 세계 팬들과 교류하며 팬들이 브라운을 일상 속에서 직접 만나고 경험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견고한 유대감을 형성해 IP의 생명력을 유지 및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라운은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팬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초기 팬들이 성인이 돼 구매력을 갖춘 핵심 소비층이 됐다면, 이제는 MZ세대와 알파 세대의 언어로 접점을 구축하고 있다. 브라운이 특정 세대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와 다시 만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와의 조우, ‘라인프렌즈 미니니’와 ‘LAZY TAIL CLUB’
기존 라인프렌즈 오리지널 캐릭터의 정체성을 귀엽게 변주한 ‘미니니(minini)’ 시리즈는 작고 소중한 것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아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는 미니니는 말랑쫀득한 체형과 장꾸력 넘치는 태도로 M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브니니, 코니니, 샐리니 등으로 친숙함은 취하면서도 ‘귀여운 게 최고야’라는 트렌드를 더해 라인프렌즈 오리지널의 미니니화를 통해 정체성을 재치 있게 변주했다.
올해는 빵 냄새에 이끌려 브라운과 가족이 된 ‘올리버 팡’이 브라운의 탄생 15주년을 기념해 찾아온다. 관계의 가치에 진심을 다하는 브라운과 게으름마저 사랑스러운 친구들(LAZY TAIL CLUB)의 얘기치 않은 만남을 담아내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브라운이라는 중심축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캐릭터가 세대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힐링’과 ‘공감’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전략이다.
다시 ‘관계’로 돌아가다
브라운의 서사는 결국 ‘관계’에서 출발해 ‘관계’로 확장돼 왔다. 기술이 변하고 미디어가 변해도 관계 속에서 ‘따뜻한 연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시간이기도 하다. 가장 힘든 시절 브라운 스티커로 용기를 얻고, 아이의 첫 인형으로 브라운을 선물하는 팬들의 이야기는 브라운이 이제 누군가의 인생에서 소중한 기억의 한 조각이 됐음을 보여준다.
브라운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유니크하며, 시대의 트렌드에 가장 먼저 반응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캐릭터다. 앞으로의 15년 동안 브라운은 AI나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기술의 옷을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인 ‘따뜻한 무표정’은 변치 않을 것이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함께 쌓아온 시대의 관계를 기반으로 변화하는 세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 이것이 브라운이 꿈꾸는 미래이자 IP 경영의 정수다. 2026년, 더욱 인상적인 프로젝트로 글로벌 무대의 새로운 막을 올릴 브라운의 다음 서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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