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계좌만 늘고 자금은 ‘제자리’…RIA, ‘대기성 계좌’ 우려도
- [서학개미 유턴하나] ②
출시 직후 계좌 4만개 돌파…초기 ‘관심 유입’은 성공
美주식 보관금액 감소에도 국내 유입은 0.12% 수준
실제 자금 이동 규모 역시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3월 30일 기준 1466억달러로, 1월 말 최고치(1730억달러) 대비 264억달러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해외주식 보관금액도 2374억달러에서 2040억달러로 334억달러 줄어들며 글로벌 투자 자산 규모 자체가 축소된 흐름을 보였다. 이 가운데 RIA 도입 이후 일부 자금 재배치 움직임도 감지된다. 제도 시행일인 3월 23일 당시 1587억달러였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이후 121억달러 줄어들며 정책 시행과 맞물린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실제 국내 유입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주요 증권사를 통해 개설된 RIA 누적 입고금액은 전체 해외주식 보관금액(1466억달러·약 221조원)의 약 0.12% 수준으로, 정책 효과가 본격적인 자금 유턴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주식을 순매수했음에도 전체 자산 규모가 감소한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자금 이탈보다는 글로벌 증시 조정에 따른 평가손실 영향이 더 크게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현재 나타나는 흐름은 ‘자금 유턴’이라기보다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일부 자금이 재배치되는 초기 국면으로 해석된다.
초기 시장 반응 역시 이러한 기대를 반영한다. 주요 증권사를 중심으로 계좌 개설이 빠르게 증가하고, 일정 수준의 자금 유입도 확인되면서 정책이 최소한 투자자들의 관심 유도에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책 실험으로서는 출발이 나쁘지 않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특히 단기 차익 실현이 가능한 투자자나 신규 투자자에게는 세제 혜택이 비교적 직접적인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자금의 ‘부분 유턴’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제도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RIA는 해외 투자로 이미 수익을 실현한 투자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반면 미국 증시 고점에서 진입해 현재 평가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에게는 사실상 활용이 어렵다.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손실 상태에서 매도 후 국내로 이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책 혜택이 특정 투자자군에만 집중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기존 절세계좌와의 충돌 문제도 걸림돌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연금계좌 등 이미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투자자들은 RIA를 추가로 활용하기 어렵거나 요건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이는 국내 투자 경험이 있는 중장기 투자자일수록 오히려 제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RIA가 신규 자금 유입보다는 제한된 범위의 자금 이동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성 계좌’ 증가 가능성도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세제 혜택을 고려해 우선 계좌만 개설해 두고, 투자 시점을 지켜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계좌 수 증가가 곧바로 자금 유입이나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생기면 바로 활용하기 위해 일단 계좌부터 만드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에는 계좌 증가 속도 대비 자금 유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 환경 역시 정책 효과를 제약하는 핵심 변수다. 국내 증시는 여전히 환율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인 반면, 미국 증시는 AI·반도체 등 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장기 투자 매력이 유지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순 세제 혜택만으로 투자 지역을 바꾸기에는 기대 수익률 차이가 크다는 판단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책 신뢰도 역시 변수로 꼽힌다. 세제 혜택은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만큼, 투자자들이 이를 장기 투자 판단의 핵심 요소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도 유사한 세제 정책이 단기적으로 시행되다 축소되거나 변경된 사례가 있는 만큼, 정책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증권사 간 경쟁 심화도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계좌 유치 확대를 위해 수수료 인하나 각종 리워드 제공이 늘어날 경우, 정책 취지가 ‘자금 유턴’이 아닌 ‘계좌 확보 경쟁’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실질 투자 확대보다는 단기 이벤트성 상품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RIA의 실효성이 세제 인센티브보다 국내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에 좌우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정책 초기 단계에서 일부 자금 유입과 투자자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마중물’ 역할은 일정 부분 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해외 투자에 집중됐던 개인 자금 흐름을 국내 시장으로 분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다만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함께 성장 산업 육성을 통한 시장 경쟁력 확보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금 유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외국인 자금 유입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 정비와 시장 신뢰 회복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투자자들은 세제 혜택보다 시장의 성장성과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며 “국내 시장이 투자할 만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자금 유턴은 일시적인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RIA는 출발점일 뿐 결국 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적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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