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쟁터 된 한국…기아가 버티는 이유
- 모델Y 돌풍에도 올해 1~5월 누적 판매 1위
EV3·EV5·PV5 등 '다차종 전략' 주효
가격·금융·서비스망 삼박자…대중화로 수요 흡수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기아가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가 모델Y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키고,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력으로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누적 판매 기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정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EV3·EV5·EV6·EV9에 목적기반차량(PBV)까지 갖춘 폭넓은 '전기차 학익진' 전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촘촘한 모델 라인업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보인 브랜드는 단연 테슬라다. 테슬라 모델Y는 지난달 8762대가 신규 등록되며 수입차는 물론 국산차를 포함한 전체 승용차 모델 가운데 판매 1위에 올랐다.
다만 누적 판매 기준으로는 판세가 달라진다. 올해 1~5월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많은 차량을 판매한 브랜드는 테슬라가 아닌 기아였다. 기아는 이 기간 6만12대를 판매하며 테슬라(4만5020대)를 약 1만5000대 차이로 앞섰다.
기아의 강점은 특정 모델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에 있다. 기아는 EV3·EV4·EV5·EV6·EV9으로 이어지는 승용 전기차 라인업에 전기 PBV인 PV5까지 갖췄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부터 대형 SUV, 상용·플릿 시장까지 아우르는 전동화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이다.
여러 차종이 동시에 판매를 견인하는 구조는 수입 전기차 공세에 대응하는 데 강점으로 꼽힌다. 특정 모델의 성적에 따라 브랜드 전체 실적이 흔들리는 구조와 달리 기아는 차급과 용도를 세분화해 시장 전반에 판매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테슬라의 무기가 모델Y라면 기아의 무기는 라인업 자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아는 비교적 일찍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왔기 때문에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었다"며 "테슬라는 모델Y에 판매가 집중된 구조지만 기아는 여러 차종이 판매를 떠받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대중화 전략도 한몫
기아의 전기차 대중화 전략도 시장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기아는 전기차 구매 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EV3와 EV4에는 저금리 할부 프로그램을 적용했고 EV5 롱레인지와 EV6 가격도 조정했다. EV5 스탠다드 모델은 서울 기준 실구매가가 3400만원대까지 내려간다.
이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저가 공세와도 맞물린다. 중국 업체들은 낮은 가격과 빠른 제품 출시를 앞세워 국내 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가격 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아의 가격·금융 전략이 단순 판촉이 아니라 전기차 수요층 확대를 위한 전략적 대응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정책 효과도 있겠지만 가격과 금융 조건, 사후관리 부담이 낮아지면서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후관리(AS) 체계 역시 기아의 강점으로 꼽힌다. 기아는 전국 17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750여개 오토큐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고전압 배터리 부분 수리가 가능한 거점도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전체 교체 대신 부분 수리가 가능해지면 소비자들의 유지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중장기 전략도 명확하다. 기아는 2021년 전동화를 핵심으로 한 '플랜S'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2027년 PV7, 2029년 PV9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2030년 PBV 23만대 판매 목표도 제시했다.
향후 PV7과 PV9이 추가되면 기아의 전기차 포트폴리오는 승용과 상용, 개인과 법인 시장을 모두 아우르는 구조로 확대된다.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가격과 상품성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사이 기아는 더 넓은 시장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테슬라는 모델Y를 앞세워 국내 전기차 수요를 끌어내고 있고 중국 전기차 브랜드 역시 보급형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까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반기 보조금 정책 변화와 신차 출시도 변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올해는 유가 영향까지 겹치며 테슬라가 빠르게 성장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시장 환경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면 기아가 연간 판매 1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변수는 테슬라의 공급 물량"이라며 "국내 대기 수요가 충분한 만큼 한국에 얼마나 많은 차량을 배정하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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