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승강기 없는 20층 아파트, “걸어 다니라”는 말로 충분한가[순화동필]
- 노후 승강기 교체는 불가피하지만 이동약자 보호대책은 부족
1동 1승강기 고층 아파트, 공사기간 대체수단 마련해야
규정 준수 넘어 입주민 안전·이동권까지 고려할 때
승강기 안전관리법은 설치검사를 받은 날부터 15년이 지난 승강기에 대해 정밀안전검사를 받도록 하고, 이후 3년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불합격한 승강기는 운행할 수 없다. 따라서 승강기 교체공사 자체는 공동주택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문제는 교체공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한 동에 승강기가 1대뿐인 고층 아파트의 경우 사정은 심각하다. 승강기가 여러 대라면 일부를 정지하고 나머지를 운행할 수 있다. 그러나 승강기가 1대뿐이면 교체공사는 전면 중단을 의미한다. 15층, 20층, 25층 입주민은 공사기간 내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별다른 대책 없이 “계단을 이용해 달라”고 안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다.
공동주택에서 승강기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고층 세대에서는 주거생활의 필수적 접근수단이다. 특히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심혈관·호흡기질환자, 영유아 동반 세대에게 운행 중단은 일상생활의 중대한 제약이 된다. 병원에 가야 하는 사람, 생수나 식료품을 운반해야 하는 사람, 아이를 안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매일 20층 계단을 이용하라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안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공용시설 유지·보수 과정에서 일정한 불편은 입주민이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에도 한계가 있다. 저층 세대가 며칠간 계단을 이용하는 것과, 고층 세대가 장기간 대체조치 없이 계단 이용을 강제당하는 것은 다르다. 공사기간, 층수, 승강기 대수, 세대 구성, 고령자·장애인·환자의 존재 여부, 사전고지와 대체조치의 유무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이동약자에 대한 고려는 중요하다. 공동주택은 생활공간이고,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20층 계단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외출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른 곳에서 단기 거주하면 된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각 세대의 사정에 따라 강요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승강기 교체공사는 입주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공사 과정이 또 다른 안전위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새 승강기로 바꾸는 동안 고령자와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환자가 병원 방문을 포기하며, 입주민이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면 안전을 위한 공사라는 명분과 배치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필요하다. 승강기 교체는 개별 단지의 문제가 아니라 고층 공동주택이 일반화된 도시 주거안전의 문제다. 특히 1동 1승강기 구조의 노후 아파트는 계속 교체 시기를 맞이한다. 지자체는 승강기 전면 중단 공사에 관한 표준 지침을 마련하고, 이동약자 보호대책, 사전고지 기간, 응급대응체계, 물품 운반 지원 등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노후 승강기는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입주민에게 모든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한 동에 승강기가 하나뿐인 고층 아파트에서 아무런 보완조치 없이 20층을 걸어 다니라고 하는 것은 관련 규정의 문제를 넘어, 기본적 생활과 안전의 문제다.
더 나아가 15년 또는 20년에 한 번씩 승강기 교체가 불가피한 관리 현실이라면 제도적 보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특히 한 동에 승강기가 하나뿐인 고층 공동주택의 경우, 장래의 교체공사 기간에도 입주민의 이동권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체 승강기나 보조 이동수단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승강기는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입주민의 생활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현행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입주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배려의 정도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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