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美·이란 휴전 협상에도 안도 못 한다…페인트업계 덮친 공급망 쇼크
- 원료값 급등했지만 가격 인상은 제한적
MDI 시장도 요동…중소업체 수익성 직격탄
[이코노미스트 안민구 기자] 국내 페인트 업계가 중동발 공급망 쇼크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한 후속 협상에 돌입했지만 첫날부터 양측이 거친 설전을 주고받으며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어서다. 협상 국면에 들어섰음에도 중동 정세가 언제든 재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면서 원자재 시장도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유와 나프타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와 거래처 부담 등으로 제품 가격 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가 부담은 커지고 가격 전가는 막히면서 수익성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원재료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업계의 긴장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페인트 제조사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과 판매 가격 인상 제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와 나프타 가격이 출렁이면서 제조원가는 빠르게 높아졌지만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와 공정거래위원회 감시, 거래처와의 협상 부담 등으로 제품 가격 인상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제 일부 업체들은 지난 3월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섰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이 진행되면서 인상 폭을 축소하거나 계획을 철회했다. 원가 부담은 커졌지만 이를 판매 가격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여부가 향후 원재료 시장의 최대 변수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은 재개됐지만 중동 곳곳에서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면서 언제든 공급망 불안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유 시장에서도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원재료 가격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
업계의 고민은 원가 상승에만 그치지 않는다. 원재료 수급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완화됐음에도 원료 공급망과 가격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은 원료 확보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레탄 계열 핵심 원료인 MDI(메틸렌 디페닐 디이소시아네이트) 시장이다. MDI는 도료와 코팅재, 접착제, 실란트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기초 소재다. 최근 일부 거래에서는 제조업체가 원재료 가격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물량부터 확보한 뒤 월말이나 다음 달 정산 시점에 최종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페인트 업계 관계자는 “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 자체가 중단될 수 있어 가격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우선 구매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은 원재료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중소 업체일수록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 중소 도료업체는 올해 2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 인상이 두세 차례 누적됐지만 시장 상황상 이를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며 “전쟁이라는 외부 변수로 인한 부담을 페인트 업계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원가 상승만이 아니다. 원재료 공급 부족과 가격 변동성이 지속되면서 시장 가격 형성 기능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과 물량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발주와 생산, 재고 운영 전반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페인트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유와 나프타를 기반으로 하는 석유화학, 건자재, 도료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다. 원재료 공급 불안이 제조업 전반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됐다고 해서 공급망이 곧바로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쟁보다 더 큰 문제는 전쟁 이후 남은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재료 가격과 물량의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 업계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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