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고객이자 경쟁자 되나…LG엔솔 ‘ESS 사업자’ 변신 딜레마
- ESS 플랫폼 사업자 경쟁력 확대 겨냥
북미 시장 두각 버테크와 시너지 효과 기대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장기화로 위기 국면에 놓였다. 커지는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사업자로 변신한 업체도 등장했다. 단순 배터리 공급이 아닌 관리·운영을 도맡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이런 통합 시스템의 선호도가 높다지만 고객사·사업자 병행으로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납품 외 운영·관리까지, 커지는 ESS 시장
LG에너지솔루션은 7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관한 ‘2026년 AI(인공지능) 활용 ESS 구축 지원 사업’에서 운영 사업자로 선정됐다. 국내 배터리사 중 유일하게 운영 사업자로 입찰했고, ESS의 가상발전소(VPP)로 첫 발을 내딛게 됐다. ESS VPP는 배선 선로에 ESS를 완충장치로 설치해 재생에너지 수용성과 전력 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단순한 배터리 공급자를 넘어 ESS 운영 사업자로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빅3’ 배터리사 중 유일하게 VPP 사업자 자격을 확보하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4년 제주 서귀포 지역에 배전망 연계형 ESS 발전소를 설립·운영하면서 꾸준히 AI 기반의 ESS 운영 경험을 쌓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ESS 사업자 변신과 자회사 버테크 운영 등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 플랫폼 기업’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21년 ESS 시스템 통합(SI) 전문기업인 미국 NEC에너지솔루션의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ESS 공급을 비롯해 기획·설계·유지보수를 모두 담당하는 사업 역량을 확보하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자 변신 행보는 고객사의 통합 솔루션 요구와 배터리 사고의 리스크 해결을 위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는 공급·운영을 모두 맡아서 하는 통합 시스템을 원하는 고객사들이 많다”며 “또 배터리 사고와 관련한 리스크 해결 차원에서도 사업자까지 병행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ESS에서 화재 사고 등이 발생하면 관계사들이 잘잘못을 따지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리고, 배터리 공급자 입장에서 원인 규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해 답답한 측면이 있다. 사업자로 운영·관리까지 맡으면 이런 보상과 비용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VPP로 경험을 쌓아 국내외 시장에서 역량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AI 활용 ESS 구축 사업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차세대 전력망 모델로 꼽힌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발전량이 많아지면 감당이 어려워지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ESS 및 에너지 전력망 통합 관리 등을 통해 전력 계통 안정화에 강점을 갖고 있다.
버테크도 북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미시간주 최대 종합 에너지 기업인 DTE에너지와 총 6GWh(기가와트시)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 규모 16억 달러(약 2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화큐셀과도 2024년 5월 4.8GWh, 2026년 5GWh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주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큐셀 측은 “북미 시장에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흐름인데 개인이나 사업자들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할 때 기본적으로 ESS 배터리가 따라가는 방향으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는 이런 통합 관리를 해주는 ESS 업체를 선호한다”고 ESS의 트렌드를 설명했다.
사업자 병행 우려 ‘양날의 검’
ESS 배터리가 전기차 캐즘 위기를 이겨낼 돌파구가 되고 있는 건 자명한 현실이다. 국내 빅3 배터리사인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은 올해 상반기에 보조금을 제외하면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 국내외 공장의 가동률이 50% 안팎에 머물며 고전하고 있다.
증권가 전망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4분기에는 ESS 배터리(대형) 매출(3조8000억원)이 자동차 배터리(대형) 매출(3조5000억원)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EV) 용의 판매 부진도 원인이지만 ESS 배터리 시장의 확대로 매출 구조가 역전되는 셈이다. 이에 배터리 3사는 북미 공장에 ESS 라인을 대폭 확장하는 등 사활을 걸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홀랜드·랜싱 공장 등 총 5개의 북미 ESS 생산 거점을 가동하고 있다. 얼티엄셀즈 테네시 공장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ESS용 LFP(리튬인산철) 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말까지 글로벌 ESS 생산능력을 60GWh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중 80%가 넘는 50GWh를 북미 지역에 배치하는 등 해외 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자 병행에 대한 우려도 고개 들고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사업자에 민감한 납품 단가 전략 등을 공개해야 하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AI 활용 ESS 구축 사업’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셀을 채용한 사업자는 LG에너지솔루션 뿐이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자동차 업체로 따지면 BYD의 모델로 볼 수 있다. BYD는 배터리와 자동차를 동시에 만들고 있는 공급자이자 운영자”라며 “자사의 자동차에만 배터리를 공급해도 충분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사업자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행보가 선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기존 사업자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SDI는 모험보다 배터리 공급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방침이다. SK온의 경우는 SK이터닉스가 ESS 구축·운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 사업자까지 병행할 이유가 없다.
업계 전문가는 “배터리 공급을 넘어 운영·관리하는 사업자까지 맡는다면 ‘턴키’(설계·시공·운영 일괄) 방식을 선호하는 흐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관련 수익 파이도 커질 것이다”며 “하지만 기존 사업자 플레이어들이 경계심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되는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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