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글로벌 AI 공룡이 줄 서는 ‘언어 데이터 거상’ 플리토 이정수 [AI 3강 이끌 개척자들]②
- 세계 시장서 인정받은 데이터 정제 기술력
언어 장벽 허물고 글로벌 AI 학습 원천 공급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넘치는 아이디어를 무언가로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소년이었다. 워크맨 배터리가 잘 빠지지 않아 손톱을 다치기 일쑤이자, 배터리 밑에 실을 걸어 잡아당기는 장치를 공책에 그려 선생님에게 제출했을 정도다.
주재원이었던 부모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 대표에게 발상과 창작 욕구를 자극한 최고의 재료는 ‘언어’였다. 그리스와 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에게 서툰 현지어로 몇 마디를 건넸을 때 돌아온 환한 웃음은 평생 잊히지 않을 원동력으로 남았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언어 장벽을 없애겠다는 이 대표의 꿈이 현실이 된 결과물이 플리토다. 최고의 번역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도전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전환점을 맞았다.
AI 모델 개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를 학습시킬 정제된 언어 데이터의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플리토는 글로벌 빅테크가 먼저 데이터를 요청하는 ‘언어 데이터 거상’으로 성장했다.
지난 8월 3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모니터 화면에 데이터 요청서를 펼쳐 보였다. 비밀유지 계약으로 이름을 가린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의 요청서에는 소수민족의 생소한 언어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사용 인구가 2만8000여명에 불과해 챗GPT조차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소수 부족 언어 ‘쿠쿠카로’가 대표적이다.
플리토는 AI가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희귀 언어 데이터 요청이 들어오면 세계 각지의 지역 담당 인력을 현장에 보내 현지인의 발화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정제한다. 사람이 발로 뛰어 확보한 고품질 데이터가 AI의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자산이 되는 셈이다.
언어 데이터 수집 노하우의 출발점은 ‘K팝’이었다. 사업 초기 K팝 가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을 해외 팬들이 직접 번역하고 서로 추천을 눌러 검증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기계 번역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현지어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했다.
플리토는 이를 기반으로 세계 173개국에서 140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모아 독자적인 집단지성 수집 체계인 ‘크라우드 워킹’을 구축했다. 희귀 언어부터 특수 산업 분야의 음성 데이터까지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고품질 정제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했다.
현재 데이터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실시간 통번역 솔루션인 ‘라이브 트랜스레이션’과 ‘챗 트랜스레이션’도 잇달아 상용화하며 올해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AI 산업이 발전할수록 정교하게 정제된 언어 데이터의 가치는 높아진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은 데이터 공급 역량을 바탕으로 누구나 필요한 데이터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해 AI 시대의 새로운 커머스 시장을 열겠다”고 말했다.
1. 영감을 준 ‘인물’(WHO)은 누구입니까?
“제가 만났던 수많은 창업가들입니다. 그들의 진지한 삶의 태도가 저를 움직였습니다.”
SK텔레콤 투자팀에 있을 때 수많은 창업가를 만났습니다. 다들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크고 소수만 성공하는 힘든 길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진지하게 사는 모습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남들은 퇴근 후 맥주 한잔할 생각을 할 때 자기 일에 눈을 반짝이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눈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2. 빅테크가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독자적 가치’(WHAT)는 무엇입니까?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하는 ‘데이터 정제 기술력’과 저작권 리스크 없는 ‘클린 데이터’입니다.”
저희는 데이터 수집부터 정제, 검수까지 전체 과정의 노하우를 바닥부터 쌓았습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게 아니라 대규모 크라우드 작업 인력을 운영하며 부정 입력을 막고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는 노하우가 핵심입니다. 전 세계 3만명만 쓰는 소수 부족 언어부터 가솔린 엔진 소리가 섞인 차량용 음성 데이터까지 AI 기업들이 원하는 정교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공급합니다.
3. 자본과 인프라 한계를 ‘어떤 방식’(HOW)으로 돌파하고 있습니까?
“크라우드 워킹 시스템과 게임 요소를 접목한 집단지성 플랫폼 운영 기법입니다.”
미국 기업들은 인건비가 비싸 데이터 단가가 높은 편입니다. 저희는 글로벌 크라우드 소싱 방식을 적용해 전 세계 화자들이 참여하고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검증된 유저 풀을 활용해 다단계 품질 검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정확도 ▲속도라는 3박자를 모두 맞춥니다.
4. 기술을 걸고 승부를 보겠다고 확신한 ‘결정적 계기’(WHY)는 무엇입니까?
“시장이 작다고 타협하지 않고, 우리 기술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에서 상장 가치보다 높은 금액으로 인수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거절했습니다. 거창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우리 기술로 시장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창업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감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데이터 매출의 90% 이상을 글로벌 기업에서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5. 기술력을 마침내 인정받게 될 ‘결정적 시점’(WHEN)은 언제입니까?
“기존 디지털 데이터가 고갈되고, 개인과 기업이 쿠팡처럼 데이터를 사고파는 데이터 마켓플레이스가 확산되는 시점입니다.”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온라인에 유통되는 일반적인 데이터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습니다. 산업·언어별로 정제된 맞춤형 데이터의 가치는 향후 크게 뛸 것입니다. 저희가 준비하는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로 기업뿐 아니라 소형 개발사나 개인 창작자들까지 플랫폼 안에서 데이터를 손쉽게 유통하고 구매하는 생태계가 안착할 때 플리토의 가치와 기술력이 제대로 입증될 것입니다.
6. 가장 먼저 파고들 ‘핵심 타깃 영역’(WHERE)은 어디입니까?
“글로벌 AI 데이터 시장입니다.”
한국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기업이 적어 데이터 투자가 열악하지만, 미국과 글로벌 시장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씩 데이터에 투입합니다.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데이터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글로벌 빅테크 및 AI 기업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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