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주가는 뛰는데 원화는 왜 약할까…달라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얼굴 [홍춘욱의 경제프리즘]
- 반도체 호황에도 외국인은 한국 주식 매도
기업실적 넘어 주주환원·지배구조 신뢰 높여야
즉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면 한국 기업의 실적 전망이 악화돼 주식이 팔리고, 동시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원화 가치도 하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한국 주식과 원화가 동시에 약세를 보이는 구조다.
‘한국 주식과 원화 가치의 동조화’ 흐름은 글로벌 분산 투자의 매력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민연금이 2001년 0.1%에 불과하던 해외 자산 투자 비중을 2007년 10.6%까지 높인 데 이어, 2021년 43.8%까지 조정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으로 KOSPI지수가 크게 하락했을 때, 달러 등 해외자산을 보유한 덕에 국민연금의 손실은 -8.2%에 그쳤다.
해외자산 분산투자의 효과는 주가 움직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기 때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된 해외자산의 원화 환산가치는 오르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하락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한국 투자자에게 해외자산이 일종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이유다.
주가는 뛰는데 원화는 약세…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런데 2025년부터 흥미로운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는 동안 환율 역시 1500원 수준까지 폭등한 것이다. 이른바 ‘반도체 슈퍼 사이클’ 덕분에 강력한 기업실적 개선이 나타났는데, 왜 환율이 상승한 것일까.
가장 직접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2026년 상반기에 1062억8000만달러의 한국 주식 순매도를 단행한 것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고 난 다음, 이 돈을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더 나아가 국내 주식시장의 랠리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수가 상반기에만 485억6000만달러에 이른 것도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달라진 셈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업이익이 개선되면서 국내 주가는 상승했지만, 자금의 흐름만 놓고 보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고 국내 투자자는 해외주식을 사기 위해 달러를 찾았다. 주가 상승과 원화 약세라는 과거와 다른 조합이 나타난 배경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매도에 나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 수준이 매우 낮은 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KOSPI지수가 2400포인트 전후에서 바닥을 형성한 후, 2026년 6월 9300포인트까지 상승하면서 강력한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2028년까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임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래 실적 전망에 대해 믿음을 보여주지 않는 셈이다.
기업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주가가 같은 폭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을 얼마나 높은 가격에 사줄 것인가는 기업에 대한 신뢰와 주주환원, 지배구조 등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한국 기업이 많은 돈을 버는 것과 한국 주식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적만 좋아선 부족하다…결국 문제는 ‘신뢰’
더 나아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주 중시 경영’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기 힘든 것도 문제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2025년 12월 결산 법인의 배당금은 35조원에 불과해 시가 배당수익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2026년 한국 기업들이 거대한 이익을 기록했기에 앞으로 주주 보상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업들의 태도 변화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낙관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사례가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을 담당하는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 추진이다. 미국 등 글로벌 주식시장에서는 ‘모자회사’의 동시 상장을 발견하기 힘들지만, 한국은 ‘자회사 중복 상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기업실적이 개선되더라도 해외 투자자금이 국내에 장기간 머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의 이익 증가가 국내 주식에 대한 장기투자와 외화 유입으로 이어져야 원화에 대한 구조적인 수요도 함께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을 감안할 때 ‘위험자산’으로서 한국 원화의 위상은 앞으로도 크게 바뀌기 어려울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의 공격적인 매도세가 진정되고 일본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니 환율 하락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 기세가 앞으로 계속되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국내 위험자산에 올인하기보다 미국 달러나 일본 엔 등 다양한 선진국 통화에 분산 투자하는 전략은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기대된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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