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4대 금융, 경영승계 본격화…“은행장 인사 공식 달라진다”
- 신한 후보추천·하나 쇼트리스트 참여…은행 임추위 권한 확대
우리 외부검증 강화·KB 인선 착수…실질적 인사권 분산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금융지주 회장이 사실상 결정하고 은행 이사회가 추인하는 인사 구조에 변화가 시작됐다. 연말 은행장 인선을 앞둔 4대 금융지주가 은행 자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참여 범위를 넓히고 후보 검증 절차를 강화하면서다. 다만 최종 후보를 추천하는 핵심 권한은 여전히 지주 차원의 위원회가 갖고 있어 실제 인사권 분산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는 은행장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경영승계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신한금융이 지난달 21일 먼저 인선 작업에 들어간 데 이어 KB·하나·우리금융도 30일 관련 위원회를 일제히 가동했다.
올해 인선의 특징은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 은행 이사회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도록 제도를 손질했다는 점이다. 신한은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권을 부여했고, 하나는 최종 후보군에 대한 의견 개진권을 추가했다. 우리금융은 외부 전문기관을 활용한 경영성과 검증에 무게를 실었다.
이 같은 변화는 금융당국의 잇단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맞닿아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5일 자회사 CEO 승계 과정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자격요건과 불투명한 후보 압축 절차, 제한적인 자회사 임추위 역할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어 23일에는 8개 은행지주 회장들을 직접 만나 승계 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지주 차원의 후보추천위원회가 자회사 임추위에 충분한 후보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 평가 과정에서도 자회사 임추위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 추천부터 최종 평가까지…은행 이사회 목소리↑
가장 먼저 승계 절차를 시작한 신한금융은 후보군 형성 단계에서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확대했다. 신한금융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는 지난달 21일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비롯한 12개 자회사 대표이사의 승계 절차를 개시하면서 은행 임추위에 승계후보군 정보를 공유하고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은행이 지주에서 전달받은 후보를 심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보 발굴 과정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회사별 CEO 자격요건도 세분화하고 세부 평가기준을 마련해 후보자의 전문성과 경영역량을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은 은행 임추위의 참여 범위를 최종 후보 평가 단계까지 넓혔다. 하나금융은 기존에도 은행 임추위가 은행장 후보 대상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올해부터는 압축된 최종 후보군인 ‘쇼트리스트’(Short List)에 대해서도 의견을 낼 수 있게 했다.
그룹 임추위가 후보군을 압축하면 이를 은행 임추위와 공유하고, 최종 후보를 평가하는 자리에는 은행 임추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검증 일정도 구체화했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 ▲하나증권 ▲하나카드 등 6개 주요 관계회사별로 10월 말까지 3명 이내의 최종 후보군을 추리고 12월 초 최종 후보자 1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후보 압축 단계마다 최소 2주 이상의 검증기간을 확보하고, 최종 후보군에 대해서는 경영계획 프레젠테이션(PT)을 포함한 심층면접과 평가표 작성, 투표를 진행한다. 그룹임추위 위원 4명 중 3명이 사외이사라는 점도 독립적인 심의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내세웠다.
우리금융은 후보자의 경영성과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승계 절차부터 은행 임추위에 경영성과 점검 절차를 신설하고 외부 전문기관을 평가 과정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내부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장의 시각에서도 후보자의 경영성과를 검증하겠다는 취지다.
주요 승계 단계별 평가기준과 절차도 사전에 마련해 심사 과정의 객관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후보자의 과거 실적뿐 아니라 실제 경영성과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검증 체계를 구체화한 셈이다.
KB금융도 지난달 30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를 열고 은행장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 CEO 후보 선정 기준을 논의했다.
KB금융은 지주 대추위가 후보를 검토해 최종 후보자를 추천하면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이를 심사·추천하는 구조다. 통상 9월 말 선정 기준을 마련한 뒤 11월부터 12월 초까지 본격적인 후보군 검토가 진행된다.
다른 금융지주들이 은행 임추위의 후보 추천 및 평가 참여 범위를 구체화한 가운데 KB금융 역시 이번 인선 과정에서 자회사 이사회의 실질적인 역할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심사다.
은행은 후보 추천…지주는 최종 후보 선정
문제는 제도상 참여 확대가 실제 의사결정 권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올해 주요 금융지주의 개선 방향은 공통적으로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넓히는 데 맞춰져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신한은 후보 발굴 ▲하나는 최종 후보군 검토 ▲우리는 경영성과 검증 등 참여 영역에 차이가 있다.
더욱이 은행 임추위가 후보를 추천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지주 차원의 위원회가 후보군 관리와 압축, 최종 후보 추천의 핵심 권한을 갖는 기본 구조는 상당 부분 유지된다.
은행 임추위가 제시한 후보가 실제 최종 후보군에 포함되는지, 은행 이사회의 평가 의견이 최종 추천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에 따라 제도 개선의 실효성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강조한 부분 역시 단순히 임추위의 형식적인 권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과 객관적인 평가기준, 단계별 검증기간 확보 등을 통해 자회사 이사회가 독립적인 검증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번 인선을 통해 금융지주들이 마련한 승계 절차 개선안의 실효성도 확인될 전망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장의 임기가 모두 오는 12월 31일 만료된다. 은행장뿐 아니라 보험·카드·증권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의 거취도 연말 인선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권이나 의견 개진권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인선 과정에서 그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핵심”이라며 “이번 인사는 금융지주들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안이 형식적인 절차 보완을 넘어 실질적인 권한 분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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