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세갈 르노 글로벌 영업·운영 총괄 부사장
"中 자동차 경쟁력 인정"…신차 개발 속도 주목
개발기간 4년→2년 단축 추진…트윙고에 첫 적용
이반 세갈 르노 글로벌 영업 및 운영 총괄 부사장은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6 파리 모터쇼'에서 국내 기자단과 만나 “중국 브랜드가 유럽 시장 전반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들이 왜 경쟁력이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 첫 번째 대응 원칙”이라고 밝혔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성장을 막기 위해 관세나 규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세갈 부사장은 “정부나 유럽연합(EU)의 규제나 결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중국 업체들이 우리보다 앞서나간 부분을 직시하고 빠르게 따라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노가 주목한 것은 중국 업체들의 신차 개발 속도다. 세갈 부사장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과거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 통상 4년이 걸렸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같은 과정을 2년 만에 끝낸다. 신차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 셈이다.
르노도 개발기간 단축에 나섰다. 중국 현지에 소규모 전담 조직을 두고 새로운 기술과 개발 방식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본사 경영진과 엔지니어들도 수시로 중국을 방문해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성과도 나왔다. 르노는 중국 현지 개발사와 협력해 소형 전기차 '트윙고'를 1년 11개월 만에 개발했다. 과거 유럽에서 통상 4년이 걸렸던 개발기간을 2년 미만으로 단축한 것이다. 르노는 이를 다른 차량에도 적용해 향후 전 차종의 개발기간을 2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강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력에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세갈 부사장은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최근 12%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하면서도 르노는 오히려 점유율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는 전동화 전략을 꼽았다. 르노는 5년 전부터 풀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중심으로 제품군을 구축했다. 중국 브랜드의 공세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시장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해왔다는 설명이다.
오랜 기간 구축한 유통망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르노는 프랑스에만 약 3000개의 서브 딜러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도 지역별 판매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다.
세갈 부사장은 유럽 소비자들이 지역 판매점과 오랫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차량을 구매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중국 브랜드들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내놨다. 당장의 판매가격보다 차량을 구매한 이후 중고차 시장에서 얼마나 가치를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유럽에서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월 납입금을 기준으로 한 금융 프로그램이 널리 활용된다. 이때 차량의 잔존가치는 월 납입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신차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중고차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 금융상품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르노는 잔존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무등록 차량을 밀어내거나 단기 렌터카 판매를 늘리는 대신 일반 소비자와 우량 법인 고객 중심의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세갈 부사장은 공격적인 저가 전략을 펼친 중국 차량들이 2~4년 뒤 중고차 시장에 나오면 잔존가치 하락이라는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르노는 상대적으로 높은 잔존가치를 유지해 경쟁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업체와의 협력도 이어갈 방침이다. 다만 모든 시장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제휴보다는 각 지역의 사업 여건에 따라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력에 집중한다는 원칙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지리자동차와의 협력이다. 르노는 한국의 '오로라 프로젝트'와 브라질 사업, 파워트레인 합작법인 '호스(Horse)' 등을 통해 지리차와 협력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지리차가 합작법인 지분 26%를 확보하고 르노의 현지 딜러망과 공장 생산라인을 활용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르노는 대신 지리차의 플랫폼을 공유받아 개발 비용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세갈 부사장은 지난 12개월간 양사가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세갈 부사장은 지리차와의 협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글로벌 제휴가 아니라 철저히 국소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윈윈 상황에 한정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사가 자산을 공유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확인될 때만 협력을 진행한다"며 "일방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방식이나 무분별한 글로벌 확장은 추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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