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퇴직자는 수천명, 채용은 수백명…빈자리는 로봇 몫?
- [대체되는 사람들]①
현대차·기아부터 HD현대·한화오션까지 자동화 확산
정년퇴직 늘지만 신규 채용 제한적…청년 일자리 우려
자동차업계에서는 생산직 고령화와 대규모 정년퇴직이 진행되는 가운데 신규 채용 규모가 퇴직 인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조선업계는 숙련공이 맡던 용접 등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산업별 사정은 다르지만, 사람이 빠진 자리를 신규 인력만으로 채우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년퇴직은 늘고 채용은 제한적…자동화 속도 내는 자동차
대표적인 곳은 현대자동차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8월 임금협상에서 2027년 200명, 2028년 300명 등 기술직(생산직) 직원 5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차 노동조합에 따르면 매년 정년퇴직하는 직원은 2000명 이상이다. 합의된 채용 규모만으로는 퇴직에 따른 인력 공백을 모두 채우기 어렵다.
GM한국사업장(한국GM)도 비슷한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5~2034년 10년간 한국GM의 정년퇴직 예정자는 총 4455명이다. 이 가운데 생산직은 3583명으로 약 80%를 차지한다. 한국GM 노사는 숙련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정년퇴직자를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는 ‘촉탁 재고용 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현장의 자동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경기 의왕연구소에서 제조 신기술 200여건을 공개했다. 이 중 하나가 로봇을 활용한 조립 자동화 기술이다. 작업자가 허리를 숙여 장착하던 도어 가니시(차량 문 하단의 보호·장식 부품)를 로봇이 센서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조립한다. 사람이 반복하던 작업을 로봇이 수행하도록 바꾸는 방식이다.
이미 로봇이 공정 상당 부분을 맡은 공장도 있다. 기아가 목적기반차량(PBV)을 생산하는 경기 화성 ‘이보 플랜트’(EVO Plant)가 대표적이다. 이곳의 차체 용접 공정은 100% 자동화됐고 차체 이송 자동화율도 83%에 달한다. 무인운반차(AGV)가 차체와 부품을 옮기고 로봇이 용접과 조립을 수행한다.
자동화 범위는 더 넓어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에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훈련시설을 열고 생산공정 투입 준비에 나섰다. 2028년부터 미국 자동차 공장에 아틀라스를 투입해 조립 순서에 맞춰 부품을 분류·배치하는 ‘서열 작업’을 맡길 계획이다. 2030년부터는 부품 조립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조선업에서는 로봇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의 평블록 조립 공정에 협동로봇을 도입했다. 로봇이 레이저 비전 센서로 용접선을 인식하고 도면 정보를 분석해 작업하는 방식이다. 숙련 용접공이 직접 맡던 작업에 로봇이 투입되면서 작업자 1명이 최대 6대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처리 물량도 늘었다. HD현대중공업에 따르면 기존에는 작업자 7명이 하루 약 500t을 처리했다. 협동로봇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주간 작업 기준 750t, 주야간 운영 시 최대 1000t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운영시간 확대를 포함하면 하루 처리 가능한 물량이 종전의 최대 2배로 늘어난 셈이다.
자동화는 용접에 그치지 않는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 블록을 들어 올릴 때 쓰는 고리 형태의 부품인 ‘러그’(LUG)의 제작·재생·운반에도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 8대와 자율주행로봇 2대를 투입한 자율제조 시스템이다. 사람이 수행하던 용접과 절단, 운반을 로봇이 맡으면서 생산량이 87.5% 증가했다.
HD현대는 사람처럼 움직이며 용접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로보틱스는 미국 로봇기업 페르소나 AI와 조선소 특화 용접 휴머노이드의 실증·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숙련공의 용접 기술을 AI에 학습시켜 복잡한 선박 건조 작업까지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다.
한화오션도 로봇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블록과 배관 용접 등에 로봇을 투입하고, 숙련공의 작업 방식과 판단을 데이터로 축적해 학습시키고 있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거제조선소 실내 용접 공정의 AI 적용률은 67%다. 회사는 2030년까지 용접 공정의 전면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작업자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직접 용접기를 잡던 업무에서 로봇의 작업 경로를 설정하고 여러 대를 관리하며 품질을 점검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한화오션은 작업자 1명이 용접로봇 4~5대를 동시에 관리하면 시간당 처리량이 4~5배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직 채용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물량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원이 줄면 기업은 정년퇴직으로 발생한 공백을 과거와 같은 규모의 신규 채용으로 채울 필요성이 낮아진다. 대규모 해고보다는 퇴직에 따른 자연감소와 채용 규모 조정을 통해 인력 구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자동화가 곧바로 채용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량과 투자 규모, 로봇 운영·정비 등에 필요한 인력 수요에 따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기존 근로자의 역할 전환과 함께 신규 인력에게 요구하는 역량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로봇 도입을 확대하고 고경력 은퇴자를 재고용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결국 청년층의 신규 채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특히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대졸 청년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지만, 청년의 취업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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