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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한진중공업 경영악화 진원지는 ‘베르시움’(신문로 소재 호텔급 오피스텔)?

[Issue] 한진중공업 경영악화 진원지는 ‘베르시움’(신문로 소재 호텔급 오피스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8월 18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고민에 빠져 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8월 18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고민에 빠져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로 궁지에 몰린 조남호(60) 한진중공업 회장이 또 다른 난관에 부닥쳤다. 한진중공업이 시공한 ‘한진 베르시움’의 분양자 20여 명이 5월 말 조남호 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 한진 베르시움 시공사로 참여했다가 시공사 대표의 구속(횡령·배임·사기)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회사의 경영실적 악화 이유로 한진 베르시움 사업의 실패를 꼽고 있다. 경성대 허민영(경제학) 교수는 “한진중공업의 경영악화는 건설부문(한진 베르시움 포함)의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그룹 신사옥과 흥국생명 빌딩 뒤편에 호텔식 오피스텔이 있다. 지하 7층·지상 18층 규모의 한진 베르시움이다. 시공사는 한진중공업, 시행사는 보스코산업이다. 예정대로라면 2004년 1월 공사가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공사는 8년째 답보상태다. 공사 진척률은 78%에 머물러 있다. 왜일까. 한진 베르시움은 신문로 2-8 재개발 지구에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초부터 재개발이 진행됐다. 재개발을 추진한 이는 시행사 ‘거삼’의 대표 최모씨였다.

최씨는 1995년 시공사 ‘기산’과 계약을 맺고 대형 빌딩 ‘문화타워’ 건설을 시작했다. 문화타워는 한진 베르시움의 첫 번째 명칭이다. 계획은 처음부터 차질을 빚었다. 시행사 거삼은 예상과 달리 아파트 16세대·상가 24세대·사무실 1세대를 분양하는 데 그쳤다. 최씨의 마음이 급해졌다. 공사대금을 시공사인 기산에 주려면 분양이 잘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임의분양·이중분양 등 불법을 저질렀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최씨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기산은 지하층을 공사하던 중 부도가 났다. 1997년 10월의 일이다. 설상가상 최씨는 1998년 재개발 뇌물수수 사건에 휘말려 구속 수감됐다.

최씨가 운영하던 거삼은 신문로 2-8 재개발추진위로부터 불신임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는 사업시행인가 연장을 거부했다. 구속됐다가 풀려난 최씨는 사업 의욕을 버리지 않았다. 2001년 3월 자신 소유의 시행사 ‘보스코산업’으로 신문로 2-8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다시 따냈다. 자신은 뒤에 서고 ‘바지사장’ 이모씨를 내세웠다.



한진 베르시움 재개발 진통이번엔 화남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빌딩 명칭은 문화타워에서 ‘킹덤타워’로 바꿨다. 이번에도 분양은 원활하지 않았다. 화남건설은 2002년 5월 철골공사만 완료한 채 공사를 중단했다. 두 번째 파행이었다. 보스코산업의 채무는 당시 300억원. 법적 논란이 있는 채무는 1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이 회사의 자산은 47억원에 불과했다. 파산이 불가피했다.

그 무렵 한진중공업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2002년 8월 한진중공업은 보스코산업과 공사대금 520억원의 도급계약을 맺었다. ‘15개월 안에 준공’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생명은 보스코산업에 사업자금 530억원을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대출했다. 당시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의 건설부문 대표(부회장)였고, 2003년 7월 한진중공업 대표(회장)가 됐다.

돈줄이 막혔던 최씨는 단숨에 고민을 털었다. 최씨는 그간의 분양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두 가지를 바꾸려 했다. 먼저 빌딩 명칭을 킹덤타워에서 ‘한진 베르시움’으로 교체했다. 아울러 건물 용도를 설계변경을 통해 오피스에서 주거용 오피스텔로 바꾸고, 층고(層高·한 층의 높이)를 15㎝ 높일 계획을 세웠다. 한진중공업으로선 리스크가 큰 사업이었다. 이전에 공사를 맡았던 시공사는 부도 나거나 공사를 포기했다. 시행사 대표 최씨는 뇌물수수 의혹에 시달린 데다 1975년 특수절도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베팅했다. 한진 베르시움 사업의 수익성이 괜찮을 걸로 봤기 때문이다. 최씨가 당시 작성한 ‘한진 베르시움 자금수지표’를 보면 모든 분양이 완료될 경우 분양수익금은 2000억원에 이른다.

한진중공업의 공사와 최씨의 분양은 빠르게 진행됐다. 2002년 10월 최씨는 중앙일간지에 분양광고를 내고 일반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곧장 터졌다. 종로구청은 ‘분양광고 내용이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계획 인가와 다르다’는 이유로 분양중단 명령을 내렸다. 설계변경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와 분양이 진행됐던 것이다.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과 최씨는 공사와 분양을 2003년 6월 5일까지 계속했다. 종로구청의 명령을 무시한 것이다. 그 결과 한진 베르시움은 오피스텔 161세대·아파트 56세대 등 217세대(세대 수 기준 약 76%)를 분양해 계약금 602여억원을 받았다.



시행사는 장밋빛 전망 늘어놔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한진 베르시움.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한진 베르시움.

최씨는 불법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자금압박 때문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최씨의 2003년 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몹시 괴로운 하루였음. 죽을 수도, 안 죽을 수도 없는 불쌍한 내 신세. …빚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2003년 1월 22일).” “막걸리·순대 먹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2003년 1월 23일).”

종로구청은 2003년 6월 분양중지 명령을 다시 내렸고, 동시에 최씨를 고발했다. 분양과 시공은 곧바로 중단됐다. 이번에는 한진중공업이 난처해졌다. 한진 베르시움 공사가 70% 넘게 진행됐지만 공사대금 미수금이 320억원에 달했다. PF대출을 했던 삼성생명은 ‘시공사(한진중공업)가 책임지라’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한진중공업과 삼성생명은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 팽팽하게 맞섰지만 2008년 최씨가 횡령·배임·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자 판도가 달라졌다.

한진중공업은 올 1월 2심에서 “삼성생명에 348억원, 이자 37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한진중공업으로선 결정타였다. 공사대금 미수금까지 포함하면 손실이 1000억원을 넘었다. 한진중공업 자기자본(2조813억원)의 5%에 해당하는 손실이었다.

한진중공업은 현재 대법원에 항고한 상태다.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이자비용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손배금은 일단 지급했고, 이를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했다. 이는 한진중공업의 2010년 실적이 적자(마이너스 517억원)로 떨어지는 변수로 작용했다. 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지난해 한진중공업의 당기순손실이 500억원을 넘은 것은 건설부문(한진 베르시움) 소송 패소에 따른 영업외비용, 다시 말해 대손상각비(560억3000만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진중공업으로선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진 베르시움의 분양자 20여 명은 5월 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배소를 함께 제기했다. “종로구청의 명령을 무시하고 불법 공사·분양을 주도했다”는 이유다. 검찰은 8월 둘째 주 고소인 1차 조사를 마쳤다. 소송을 제기한 분양자들의 변호인인 정인봉 변호사는 “종로구청이 한진중공업과 보스코산업에 공사와 분양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구체적으로 내렸음에도 이들은 듣지 않았다”며 “제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구청의 명령을 무시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조남호 회장을 사법기관에 소환해 진위를 따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진 베르시움의 실패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진중공업은 2010년 경영악화를 이유로 부산 영도조선소 생산직 근로자의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회사는 그해 12월 15일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노조는 12월 2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노사갈등은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정도로 경영사정이 긴박했느냐’에서 비롯됐다. 회사는 “조선업의 불황으로 2010년 큰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고, 노조는 “회사 실적부진은 조선부문이 아니라 건설부문 때문”이라고 맞섰다.

 



조남호 회장 “수주 없어 경영 악화” 주장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회사 말대로 한진중공업은 2008년 이후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조남호 회장은 8월 19일 국회 환노위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규모가 작은 영도조선소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며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이 결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조선부문에서 17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결산 결과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성대 허민영(경제학) 교수는 “적자 원인은 건설 분야 소송에 따른 손해비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진중공업이 한진 베르시움 사업에 착수한 것 자체가 경영자의 판단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회사의 당기순손실과 건설부문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진 베르시움 사업은 한진중공업의 시공계약 체결 전부터 진통이 많았고, 시공사 대표 최씨를 둘러싸고는 악성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중공업이 한진 베르시움 사업에 시작했다는 건 적어도 경영자가 리스크를 감수했거나 간과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청문회에서 “한진중공업은 잘못된 건설사업 투자로 발생한 손실 1023억원과 (그에 따른) 이자부담 때문에 경영상태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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