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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 루머·테마주 기승 - 뒷북 조사에 솜방망이 처벌 악순환

증시에 루머·테마주 기승 - 뒷북 조사에 솜방망이 처벌 악순환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원)가 국내 증시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선 테마주와 온갖 루머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대선 후보와 관련된 테마주가 급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북한 관련 루머까지 가세해 시장을 흔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테마주를 부추기는 증권사 직원이나 루머성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업체 등 금융시장 전반으로 조사범위를 넓히고 있다.

금감원은 1월 9일 테마주에 편승한 시세조종이나 북한 루머와 관련된 부정거래를 전담하는 ‘테마주 특별 조사반’을 새로 만들었다. 특별조사반은 가격왜곡이 심한 테마주의 매매현황을 종목별로 분석·조사한다. 금감원은 특히 “테마를 만들어내는 세력과 주식 거래 관계자들 간 부정거래가 발견되는 즉시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북한 루머와 관련해 높은 수익을 얻은 풋옵션 등 특정거래 계좌 수십 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어 12일에 대선 후보 테마주와 관련해 증권사의 부당 영업행위 여부에 대한 일제 점검에도 나섰다. 각종 루머가 증권사 영업지점을 통해 투자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취약한 증시 루머에 휘청금감원이 특별조사반까지 만든 배경에는 1월 6일 떠돈 ‘북한 영변 경수로 대폭발’ 루머가 있다. 당일 오후 1시58분 증시에 퍼진 이 루머로 코스피 지수는 13분 만에 42포인트 급락했다. 반면 방사능 측정업체 ‘대봉엘에스’ 등은 루머 유포 30분도 안돼 상한가를 쳤다. 대선 테마주 등이 특정 종목 주가를 좌지우지 했다면, 북한 루머는 전체 코스피 시장을 뒤흔들었다. 금감원이 허위 루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특별조사반 신설은 특단의 조치다. 그만큼 루머가 한국 자본시장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금감원과 증권거래소는 이미 ‘합동 루머 단속반’을 두고 있다. 루머 단속반은 상시적으로 테마주나 시장루머를 조사한다. 하지만 최근 루머가 시장을 교란하는 수위가 한층 높아져 일상적인 단속반만으로는 조사가 힘들어진 것이다.

신설된 특별 조사반은 증권투자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 게시자료와 메신저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을 통해 유통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쪽 정보흐름도 단속 대상으로 삼는다. 또 악성루머를 이용한 위법행위가 계속된다면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도 생략할 예정이다. 증권선물위원회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는 불공정거래 계좌의 조사여부를 심의하는 기구다. 루머단속반과 달리 특별조사반은 즉시 조치가 필요한 루머라고 판단되면 이 심의를 건너뛰고 검찰에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바로 고발·통보할 수 있다. 루머가 빠르게 번지는 만큼 발 빠르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증권가 루머는 확산 속도가 빠르고 경로가 다양해졌다. 과거 루머 유통 경로였던 인터넷 게시물이나 메신저는 유포자의 IP주소나 랜카드 고유번호 등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조사가 힘들어졌다. 불특정 개인들 사이로 루머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얻은 정보는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또 확인했다해도 개인 간에 전달된 정보이기 때문에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금감원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SNS 서비스는 인터넷 게시물에 비해 기록이 잘 남지 않아 증거물로 인정받기 어렵다. 한 SNS 서비스 대표는 “개인 사이에 주고받은 메시지는 1주일마다 정기적으로 서버에서 삭제한다”면서 “누가 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기록은 남겨두지만 내용은 완전히 지운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검찰에 빨리 고발하지 않으면 혐의증거가 되는 메시지가 지워질 수 있다.

현재 테마주나 루머 조사는 기관 간 협력체제로 진행된다. 증권거래소가 의심계좌를 찾아내면 금감원이 거래내역을 확인해 혐의점을 파악한다. 금감원은 루머 유포자 수사를 경찰청에 의뢰하고 부정거래 혐의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한다. 검찰은 루머 유포자와 부정거래자간 상관관계를 금감원과 함께 찾아낸다.

의심거래는 증권거래소가 투자경보제도를 통해 솎아낸다. 5거래일 동안 주가가 75% 이상 상승을 반복하거나 20일 동안 150% 상승을 반복하는 종목, 5일 이상 100% 이상 수익률을 반복적으로 올린 투자자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한다. 투자경고종목이 되면 신용거래가 제한된다. 투자자는 위탁증거금을 실제 거래금액만큼 넣어야 하고 현금 대신 사용하던 대용증권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또다시 연속 3거래일 동안 최고가를 경신하면 투자위험종목이 돼 그 종목은 하루 동안 매매거래를 할 수 없다.

금감원은 거래소로부터 투자경고종목을 넘겨받아 조사에 착수한다. 특별조사반은 루머의 출처를 쫓는 한편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다. 또 투자경고종목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인 계좌를 선별해 낸다. 선별된 계좌의 거래자, 실소유주 등을 가려내 혐의지점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금감원 특별조사팀을 이끌고 있는 강전 조사총괄팀장은 “SNS 때문에 루머 유통이 복잡해지고 전달과정이 여러 단계로 다층화돼 찾아내기 힘들어졌다”면서 “루머 유포자 색출은 경찰청이 더 빨리 찾기 때문에 이관하고 금감원은 수익을 올린 거래계좌를 추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교란 세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밝혀질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로 도피한다 해도 언젠가는 분명히 잡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특별조사팀의 한계는 뚜렷하다. 먼저 자본시장법으로는 실질적인 거래 없이 루머만 흘린 쪽을 처벌할 수 없다. 루머 유포자를 잡아도 실제 거래 내용이 없으면 혐의를 확인할 수 없다. 통신보호법 위반 등으로 가벼운 처벌을 가할 수는 있지만 자본시장을 흔들어 다른 투자자에게 끼친 손해를 책임지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증권가 작전세력은 루머팀과 매매팀을 점조직 형태로 구분해 혐의점을 숨기고 있다.

금감원의 뒷북 조사도 문제다. 한 증권사 대표는 “루머야 언제 어디서 퍼질지 몰라 그렇다 쳐도 대선 테마주가 나온 건 이미 한참 지난 일인데 이제서야 조사에 나서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뒷북 조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50억 넘게 벌어도 대부분 집행유예어렵게 주가 조작자를 잡아내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도 문제다. 테마주 주가조작으로 범죄를 두 번 이상 저지른 상습범 중 4분의 3이 초범 때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다. 한 언론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법원이 판결한 시세조종(주가조작) 사건은 모두 149건, 이 가운데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86.6%인 129건에 달했다. 시세조종으로 50억원 이상 이득을 취한 33건의 사건 중 30건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실제 루머나 테마주 범죄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해도 범인을 밝혀내는데 2~3달 걸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혐의입증이 어려운 새로운 수법을 조사하다보면 조사기간이 길어져 범인이 거금을 들고 해외로 도피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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