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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만 환호 … 미국도 실익 못 챙겨

증시만 환호 … 미국도 실익 못 챙겨

경제지표 부진에도 증시 상승 … 버블 위험 갈수록 커져



일본이 도대체 뭘 믿고, 어디까지 가려나 싶었는데 결국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미국 재무부는 4월 12일 의회에 제출한 ‘2013년 환율정책 반기별 보고서’에서 ‘일본은 정책 수단을 자국 내 목표를 달성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경쟁력 회복을 목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하거나 환율을 변동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표면적으로는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보고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중국까지 강경한 어조로 비판한 게 눈에 띈다. 이는 중국의 위안화 환율이 적정 수준에 근접했다는 시장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잭 류 재무장관은 중국 방문 때 위안화 환율 문제를 언급했지만, 그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미국 뒤늦게 일본에 견제구한·중·일을 겨냥한 미국의 환율 공세는 내수 수요를 늘리라는 압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거시건전성 지도까지 환율 조작 대상이라며 비판한 건 다소 뜻밖이다.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속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달러 강세에 따른 미국 수출 업체의 불만 때문은 아니다.

얼마전 CNBC에 출연한 GM의 CEO는 “엔화 약세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GM의 경쟁력은 환율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기업 실적에서도 달러 강세로 인한 이익 감소보다는 신흥시장의 매출 감소가 실적 부진의 주요 요인이다. 따라서 미국 기업의 사정을 고려한 조치는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 또는 엔화 약세를 위한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나온 후 일본 자금의 움직임은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상당히 달랐다. 일본 자금은 해외로 탈출하기는커녕, 엔화 약세를 빌미로 보유 해외 자산을 매각해 일본으로 들여오는 ‘역캐리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다고 일본 내 수요가 증가한 것도 아니다. 일본 경제재건상은 4월 12일 엔화 약세 효과가 실물경제 부문에도 나타나려면 애초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계 자본의 헛물과 달리, 일본 자금은 미국 국채시장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4월 11일 미 국채 30년물 입찰 때 일본 자금의 입질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 증시로 이동한 것도 아니다. 엔화가 달러당 100엔 가까이 근접해 미국 증시에 투자하기에는 무리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선 엔화 약세로 얻는 이득이, 적어도 현재까진 거의 없다. 일본의 수요 증가로 미국 수출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일본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든 것도 아니다.

현재로서는 일본의 엔화 약세, 혹은 창조적 양적·질적 완화 통화정책은 일본 금융회사의 재무제표를 개선시키는데 그쳤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통해 무제한 통화발행의 ‘선례’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실익은 별로 없었다. 미국의 공세는 환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4월 11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에게 무역거래를 위한 국제적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미국은 특히 인도를 겨냥해 인도는 ‘엄청난 헛점(loophole)’을 새로이 도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WTO 대사인 마이클 펑크는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WTO의 협상 기능이 잘못 작동하는 데 대해 수수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WTO의 159개 회원국은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통관 절차 간소화 등으로 국제 교역을 1조 달러가량 증가시킬 수 있는 조치에 대한 평가회의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에 검토되는 조치는 2011년에 성과 없이 끝난 도하 라운드보다도 대폭 후퇴한 것이다. 펑크 대사는 다른 국가의 WTO 대사들에게 본국 정부로부터 4월 말 이전에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한 훈령을 받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만일 발리 협상이 실패로 끝난다면, 우리는 WTO를 무역 협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기구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펑크 대사의 이번 발언은, 미국이 의도하는 무역 정책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정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경고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WTO 비판은 연례적인 것이지만, 이번 비난 발언은 수위가 상당히 높다. 물론 이제 와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교역 질서를 형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미국의 대외 경제전략은 ‘위기 직후의 수세적인 국내 통화정책 → 2009년 오바마의 수출 배가 정책을 기반으로 한 달러화 약세 정책 → 양적 완화 시리즈를 국제적으로 용인 받는 통화 외교정책으로 나아갔다.

미국의 이번 환율·무역 정책의 강공 드라이브는 또 다른 정책 전환의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미국의 이 같은 공격적 대외 무역·통화 정책은 그 이후에 올 추가적인 새로운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제 조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미국의 강도 높은 WTO 비판훗날 역사가들은 지난 몇 주를 어떻게 평가할까? 일본 중앙은행은 혁명적인 정책을 택했고, 미국 증시는 전고점을 가뿐하게 돌파했다. 순진하게 본다면, 미국 증시는 2000년 이래의 하락장에서 벗어나 대세 상승장으로 나아갔다. 그렇지만 의외로 축포 쏟아지지 않았고, 새로운 한 시대를 맞이했다는 감동도 없다. 미국 증시가 왜 상승하느냐는 다음 기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 4월 12일자다.

‘투자가들은 가장 위험하며, 가장 거래하기 어려운 종류의 정크 본드를 선호한다. 일본과 미국의 중앙은행이 올해 말까지 계속 부채 시장을 부양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화된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가들이 제로금리의 금융 억압을 피해 수익률을 찾아 시장 더 깊숙이 내려갔다고 분석했다. 투자가들은 만일 미국 연방 준비제도가 2조30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유동성을 퍼붓지 않았으면 부도에 가장 취약했을 기업의 채권을 사들였다.

최악 등급의, 최악 유동성의 채권에도 입 맛을 다시는데 상장 주식이면 훌륭한 밥상이다. 주가가 올라갈 때 그 이유를 갖다 붙이기 나름이지만, 이번만큼은 사실상 이유와 무관하다. 얼마 전 급락(5.2%)한 HP 주식을 보자. 이 회사 주식은 지난해 가을 이후 40% 올랐다. 정보기술(IT) 소비 추세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간다는 시장 분석도 필요가 없고, 윈도8이 죽 쑤고 있다는 시장반응도 상관 없다. 4월 초부터 이 회사 주가는 고점 대비 약 15% 하락했지만 여전히 나쁜 실적에 비해서는 높은 순이다.

또 예상치를 훨씬 하회한 미국의 3월 소매판매 지표의 부진도, 고용시장 부진도 증시의 랠리를 막지 못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제임스 매킨토시는 “안전자산은 거품처럼 보인다”면서 “증시 랠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오직 선진국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금융시장은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가 언제 중단 혹은 축소되느냐에만 반응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노골적으로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세계 주요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이런 때 시장 향배는 당국의 정책에 달려있다. 시장 내부의 동학이나 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거품을 인식할 수 없으며, 막을 수도 없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벤 버냉키의 표현을 빌면 그건 중앙은행의 책임이 아니다. 아예 버블에 눈을 감은 중앙은행들 덕분에 양적 완화가 지속될수록 거품 혹은 자산 배분 왜곡의 위험성이 커진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잘나갈수록 반대편에서는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서 소로스펀드의 전 투자전략가인 스탠 드럭켄밀러는 다음 세 가지를 조언한다. ①이건 프로들의 장이니 아마추어가 낄 곳이 아니다. ②유동성이 풍부한 곳에서 놀아라. ③만기가 긴 장기 구조 상품은 가까이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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