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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日 장년층 기업연금 더 내고 덜 받을 판

Retirement - 日 장년층 기업연금 더 내고 덜 받을 판

회사의 적립금 부담 커지고 저금리에 수익률 떨어져 … 개혁 과정에서 법정 다툼



우리나라에서 퇴직연금이 노후 버팀목이 될까? 결론적으로 우려스럽다. 당장 수익률이 걱정이다. 기금의 93%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돼 수익률이 낮다. 아직은 높지만(2012년 4.5%) 저금리 상황이라 미지수다. 역마진 상품을 유지할 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또 73%가 안전 지향적인 확정급여(DB)형을 선택했는데 이는 일종의 기업 부채로 부실 여지가 적잖다.

연금 선진국인 일본 사례를 봐도 퇴직연금의 미래는 불안하다. 최근엔 한 운용대행사(AIJ투자고문)가 위탁연금 2000억엔 대다수를 날린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도덕불감증이었다. 낙하산 인사와 뇌물·접대가 얽히면서 겉으로 자랑한 고수익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는 노후 자금을 맡긴 가입자다.

문제는 후폭풍이다. 불똥이 전체 연금으로 튀면서 불안감이 구체화됐다. “리스크는 알았지만 이만큼 마이너스인지 몰랐다”는 표현처럼 손실 사례가 봇물처럼 터졌다. 믿고 맡긴 노후가 날아간 게 아닌지 우려와 함께 ‘연금=안전’ 등식마저 깨져버렸다.



업연금으로 풍요한 노후 기대퇴직연금은 일본에선 기업연금으로 불린다. 정부 관할인 공적연금의 부족분을 보완한다. 연금액이야 직장 경력, 기업 규모, 연봉수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업연금 가입자라면 노후 자금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30만~40만엔대의 풍요한 노후 자금원이 확보된다. 극소수지만 간부 퇴직자라면 50만엔대 수령자도 있다.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는 곤란해졌다. 퇴직했거나 정년이 임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제도개혁 탓에 덜 받는 쪽으로 금액이 삭감될 확률이 높아졌다. 수술은 시작됐다. 2000년대 이후 대기업이 기업연금 감액 조치에 돌입했으며 확대 추세다. 결정적인 개혁 계기는 일본항공(JAL)의 경영 파탄과 법정관리였다.

JAL 부도 이후 기업연금 수술은 일상적이다. JAL의 경영 파탄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 사원의 연령 구조와 기득권, 무리한 차입 경영 등이다. 그런데 여기엔 공통 분모가 있다. 고령화 문제다. 중년층 이상의 조직적인 집단 대응과 이기주의가 반민 반관의 기업 성격과 맞물려 재정 파탄을 야기했다는 게 중론이다.

파탄 원인 중 하나는 과도한 기업연금이다. 연금 지급액 절감이 불가피한데도 중년층 반발이 두려워 개혁을 미뤄왔다. 노조의 도덕적 해이도 한 몫 했다. 애초 JAL의 기업연금은 매력적이었다. 연 4.5%로 약속된 급부이율(적립금 운용수익률)에서 확인된다. 퇴직금을 맡겨 운용한 뒤 이를 연금 형태로 받을 때 적용이율을 4.5%로 미리 정한 것이다. 제로금리인 일본에서 4.5%는 엄청난 특혜다.

운용을 잘해 고수익을 내고 복리효과까지 누린다면 불가능하진 않지만 실제로는 시장평균조차 힘들었다. 확정급여형이면 회사는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이 결과 JAL의 모델연금(1~3층)은 연 583만엔으로 350만엔대인 기타 기업보다 많았다. 기업연금만 월평균 25만엔이다. 근속 42년의 극단적 사례지만 분명 거액이다. 경쟁사인 ANA는 기업연금이 9만엔대였다. 경영 파탄은 예고된 결과였다.

기업연금 적립 부족은 JAL만의 일이 아니다. JAL이 극단적인 파탄 상황까지 내몰렸을 뿐 대부분 기업 사정도 비슷하다. JAL의 적립 부족은 퇴직자에게 거액의 연금 지급을 약속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심각한 고령 추세를 봤을 때 연금 문제는 전체 기업의 공통 과제다.

또 연금문제가 골치 아픈 건 기업이 존속하는 한 지불 의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영 파탄으로 회사 갱생을 신청해도 의무는 남고 약속이율은 낮추기 힘들다. 그러니 소송이 많다. 2008년 노무라증권이 3315개사의 퇴직 급부 상황을 조사했더니 부채(76조1000억엔)가 자산(45조5000억엔)을 넘겼다.

업력이 길고 퇴직자가 많은 전기·전자업계의 연금 부담이 특히 크다. 산요전기·도시바·후지전기홀딩스·히타치제작소 등이 대표적인 적립 부족 회사로 분석된다. 물론 대형 제조회사는 증자로 연금 문제를 개선할 수 있지만 고율 지급을 약속한 대부분 회사는 언제든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나마 적립 부족금은 베일에 싸여 있다. 2001년 기업연금 자산과 채무의 차익을 장부에 반영하도록 했지만 혼란을 우려해 유예기간을 15년으로 둔 때문이다. 부족분은 최대 2016년까지 상각 유예가 가능하다. 이것이 미확인의 기업연금 채무로 불리는 판도라의 상자다.



단카이 세대가 첫 희생양기업연금의 부실 문제를 풀자면 적립금을 늘리거나 수급액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많은 기업은 후자를 선택 중이다. 물론 어렵다. 가입자 동의를 얻거나 경영 파탄에 빠지지 않는 한 힘들다. 금융회사인 리소나홀딩스가 2004년 평균 13%의 연금 감액을 선택했지만 퇴직자들과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비록 이기기는 했지만 예외 사례에 불과하다. NTT그룹은 현역 직원과 퇴직자의 급부 삭감에 손을 댔으나 결국 좌절했다. 그만큼 연금액을 줄이는 건 어렵고 번거롭다.

하지만 연금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거론된다. 끌어들일 자금 여력이 별로 없는 황에서 상당수 기업이 운용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직은 소수지만 JAL 사태 이후 급부이율을 떨어뜨리거나 실제 운용 결과에 연동해 연금액이 결정되도록 규약을 수정하는 기업이 늘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현직·퇴직자 일부를 대상으로 2010년 9월부터 기업연금 급부액을 연평균 1만2000엔 삭감 중이다. 자금 운용이 곤란해져 급부이율을 내릴 수밖에 없어서다. 월 1000엔 삭감인데도 반발과 충격이 컸다. 반대로 그만큼 기업으로서는 개혁 압박이 심했다. 기업연금은 고도성장 때 우상향의 성장 추세를 전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깨진 현재 지속성에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후폭풍은 거세다. 그간 강 건너 불구경하던 샐러리맨의 우려가 크다. 자칫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퇴직 연령에 돌입한 단카이 세대와 그 후배세대가 대표적이다. 노후 버팀목이라 여긴 기업연금조차 더 내고 덜 받는 본격 조정의 최초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공적연금은 양보해도 기업연금만큼은 짭짤할 것으로 봤기에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은 클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진에 배신감을 느끼는 배경이다. 배신감은 이해 못 할 게 아니다. 이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한 1970년대는 호경기였다. 입도선매가 일상적이었다. 대학 3학년 기말성적이 나오기도 전에 내로라하는 유망 회사에 취직이 결정됐다. 이들이 이전 세대의 연금을 지탱하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받쳐준 건 물론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버블 붕괴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기업연금 문제가 불거진 건 이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다. 급부이율에 미치지 못하는 운용이율이 많아지면서 연금 지속성에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돈을 굴리는 금융회사의 형편없는 실력도 문제로 불거졌다.

장기간 호송선단 방식으로 경쟁없는 성장을 반복한 금융회사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후배 세대에 기댈 수는 없다. 경기 악화로 제 한 몸 추스르기 힘든 청년 세대에 부담을 주기 힘들거니와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극히 작다. 기업연금 하나만 믿은 대다수 은퇴 예비군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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