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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혁신이 은행을 삼킨다

인터넷 혁신이 은행을 삼킨다

혁신적 와해의 영순위 후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흥 IT 업체가 금융시장 잠식해



우리가 알던 금융이 도트 프린터보다 더 구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에선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은행 대신 인터넷 업체에 돈을 맡기고 있다. 필리핀의 신흥 중산층은 신종 소셜네트워크 대출업체들로부터 돈을 빌려 교육비와 의료비를 충당한다. 미국에선 설문조사 대상 밀레니엄 세대 중 3분의 1이 은행 대신 첨단기술 기반의 금융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게 된다고 예상했다.

한편 71%는 “은행들이 하는 말을 듣느니 차라리 치과에 가겠다”고 답했다(내 치과의사를 아직 만나보지 못해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뱅크레이트닷컴의 선임 분석가 그레그 맥브라이드는 최근 한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고리타분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재산을 불리고 돈을 저축하고 미래에 투자하려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합류해야 한다.” 요즘 이 같은 사고는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라는 아버지의 훈계 같은 인상을 준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많은 금융 데이터일 뿐이다. 은행들은 그동안 지점 직원 수 감축에 열을 올렸다. 따라서 많은 고객들에게 은행은 가시적인 형태가 아니다. 돈은 상당부분 네트워크 상에서 급속히 이동하는 암호다. 오늘날 은행의 주된 경쟁우위는 외부 침입자를 막는 규제다.

그러나 규제조차 은행들을 더 오래 보호해 주지 못한다. 금융의 낡은 개념이 사방에서 신세대 기업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데이터에 관해 더 정통하며 그것을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 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혁신적 와해의 영순위 후보로 간주돼 왔다. 그리고 이제 그런 일이 우리 눈 앞에서 실현되기 시작한다.

첨단기술 공동체 주위에서 ‘혁신적 와해’가 난무할 수 있다. 마치 미국 코미디언 루이 C.K가 상스런 욕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듯이 말이다. 흔히 첨단기술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의해 야기된 참담한 실패에 ‘혁신적 와해’ 라벨을 붙인다. 디지털 음악이 CD를 날려버렸듯이 말이다. 그러나 은행은 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흰개미가 동시에 여러 개의 기둥을 서서히 파먹어 들어감으로써 집이 내려앉듯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벤처의 후원을 받아 아시아에서 영업을 하는 업체 렌도(Lenddo)가 그런 흰개미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은행들은 절대 고려하지 않을 방식으로 데이터를 이용해 금융업을 한다. 렌도는 새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이용자가 소셜네트워크에서 누구를 아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용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이용한다. 이용자의 융자상환 능력을 평가할 때 그런 데이터가 신용점수보다 더 정확하다는 판단이다.

“수백 년 전부터 대출은 평판을 토대로 이뤄졌다.” 렌도 CEO 제프 스튜어트가 내게 말했다. “소셜 네트워크 덕분에 대출의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젠 세계적이고 기업적인 규모로 이뤄진다.” 지금껏 렌도는 필리핀·멕시코·콜롬비아에서만 영업을 해 왔다. 신흥 중산층이 새로 부상하는 나라들이다. 그들에겐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을 만한 금융실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렌도는 사회적 평판을 토대로 융자를 해준다. 새로 부상하는 세대의 고객들을 은행으로부터 낚아챈다.

렌도는 미국에선 대출영업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거미줄 같은 규제 때문이다. “우리가 필리핀에서 대출을 집행하는 비용이 뉴욕주에서 대출영업에 관한 전문가 의견만 듣는 비용보다 낮다”고 스튜어트가 말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초연결 사회에선 금융에 국경이 없다. 렌도 같은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성공할 경우 미국이나 유럽에도 상륙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게 된다.

중국에선 첨단기업들이 또 다른 선례를 만들고 있다.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고객은 수억 명에 달한다. 약 1년 전 중국의 은행들보다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고객들에게 제안했다. 지난 2월까지 8100만 명이 가입 신청을 했다. 알리바바는 현재 중국 최대 규모의 머니마켓펀드(MMF)를 운용한다. 중국의 선두 검색업체 바이두는 최근 금융업 허가를 신청했다.

인터넷 업체가 왜 금융업에 뛰어들까? 데이터다! 이용자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기업일수록 더 큰 힘을 갖는다. 금융업은 이용자에 관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빨아들인다. 그들이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사는지 등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금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 앱을 열 때마다 데이터, 그리고 고객들에게 마케팅할 방법이 더 많이 생긴다. 구글과 페이스북 경영진은 막후에서 알리바바와 바이두를 지켜보며 분명 미래의 유력한 금융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을 듯하다.

온갖 규제가 뻗쳐 있는 미국에서도 신흥 강자들이 은행들을 가장자리부터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간다.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금융 위기 이후 6년이 지났지만 대형 은행들은 가장 신용도 높은 중소 사업체 외에는 여전히 대출을 꺼린다. 전통적인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당수의 잠재 고객들을 외면한다.

그에 따라 딜스트럭(Dealstruck) 같은 신종 대출업체가 파고들 만한 틈새가 생겼다. 딜스트럭은 여유자금을 가진 사람과 돈을 빌려 사업을 키우려는 중소 사업주들을 인터넷 상에서 연결해준다. 이들 첨단기술 기반 대안 대출업체들이 콜로라도주의 합법 마리화나 상점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거기에 비트코인도 있다. 앞으로 수년 이내에 비트코인이나 또는 어떤 다른 글로벌 디지털 거래 시스템이 급부상하게 된다. 그때 가면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의 등장으로 장거리 전화회사들이 설 땅을 잃었듯이 신용카드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듯하다. 디지털 결제 시스템은 물건값을 지불하는 더 싸고 우수한 방법을 제공한다. 은행의 신용카드 고객들을 끌어들이며 은행 수입 중 큰 몫을 앗아갈 것이다.

신흥 강자들이 돈을 다루는 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동안 고객들과의 관계가 분명 은행을 구제해 주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는 고속도로 요금소의 수금원을 잘 모르듯이 은행 창구직원이나 지점장을 잘 모른다. 온라인에선 그저 차별성 없는 상품을 내놓으며 수수료를 떼어가고 우리 돈이 도난 또는 분실되지 않도록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그러니 밀레니엄 세대가 은행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을 만하다. 스크래치는 3년간에 걸친 조사를 통해 1981~2000년에 태어난 이들 청년 세대가 금융업의 ‘지각변동’을 견인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은행의 말을 듣느니 치과를 찾아가겠다는 조사 정보도 여기서 나왔다).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도 은행들의 앞날이 밝지 않다고 내다본다. “2020년에는 은행이 차지하던 북미 시장의 35%가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 보고서에서 평했다. 보고서는 전통 은행들이 올리던 수입의 15%가 첨단기술 업체로 넘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막대한 운영비 부담을 안은 대형 은행들은 그런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다. 대형 구조물들은 기둥이 한 두 개만 빠져도 기우뚱거리다가 폭삭 주저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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