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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 아이비리그의 부끄러운 민낯

EDUCATION - 아이비리그의 부끄러운 민낯

1911년 허구 속의 인물 딩크 스토버가 예일대에 도착했다. “잘 다려진 외투를 느긋하게 벗으며” 대학생활을 향해 침착하게 걸어들어갔다. “스토버는 정복하러 왔다”고 소설가 오웬 존슨은 1912년 소설 ‘예일대의 스토버(Stover at Yale)’에서 썼다. “그의 발걸음엔 열정이 있었다.” 스토버의 열정은 학문적 탐구와 아무 연관이 없었다.

예일대는 2014년 5월 제313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존슨은 그 점을 분명히 한다. “영광스러운 4년, 즐거운 시간, 좋은 친구들”이 스토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 내용 대부분은 스토버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비록 마지막에 스토버는 지난 300년 동안 예일대의 삶을 정의해온 비밀 사교모임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에 염증을 느끼긴 하지만 말이다.

윌리엄 더레시비치는 스토버보다 약 90년 늦게 예일대에 도착했다. 그는 허구를 즐겼던 실제 인물이다. 영문학 교수였던 더레시비치는 예일대의 자랑스러운 영문학과에서 10년 동안 가르쳤다. 그로부터 5년 동안 그는 고등교육, 특히 유명한 강연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가 규정한 미국 고등교육에 대해 글을 썼다. 더레시비치가 쓴 두 수필 ‘엘리트 교육의 난점들(The Disadvantages of an Elite Education)’과 ‘고독과 리더십(Solitude and Leadership)’이 불러일으킨 관심은 그의 문제 제기가 핵심을 찔렀음을 시사했다.

새 저서 ‘뛰어난 양: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과 의미있는 삶을 향한 길(Excellent Sheep: The Miseducation of the American Elite and the Way to a Meaningful Life)’은 더레시비치가 존 하버드와 그의 아이비리그 친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목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난다. 스토버가 “사상과 행동의 자유에 헌신하는 위대한 대학”이라 말했던 것이 말 그대로 골드먼삭스 말단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지나지 않게 됐다. 더레시비치의 새 책에서 발췌한 글이 최근 미 잡지 뉴리퍼블릭의 표지기사로 선정됐다. 잡지 표지는 불타는 하버드 깃발과 함께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지 말라”는 문구가 장식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이 쓴 두 책이 더레시비치의 열렬한 공격을 뒷받침했다. 한 권은 ‘로버트 피스의 짧고 비극적인 삶(The Short and Tragic Life of Robert Peace)’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젊은 소설가 제프 합스의 작품이다. 피스는 합스와 방을 함께 쓴 친구였다. 2002년 합스와 함께 졸업한 뒤 고향 뉴저지주 이스트오린지로 돌아가 마약 거래를 다시 시작했다. 피스는 예일대에서 이미 마약거래로 1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스트오린지는 파릇파릇한 대학 교정과 달랐다. 피스는 지역 범죄조직과 충돌하면서 2011년 총에 맞아 죽었다.

앤드류 로제 역시 뉴저지 출신이지만 극빈층이었던 피스와 달리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로제의 할아버지와 형은 다트머스대를 나왔다. 로제도 다트머스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로제는 사교모임 시그마알파입실런(SAE)의 지하실에서 술독에 빠져 살았다.

이후 놀랍게도 그는 “사교모임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대기업 취직에 여념이 없는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의 현실에 분노를 드러냈다. 로제의 회고록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청년의 고백(Confessions of an Ivy League Frat Boy)’은 롤링스톤지에 게재된 동명의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재닛 라이트먼이 작성한 이 기사는 아우구스투스적 구원을 고통스럽게 찾아 헤매는 로제의 삶을 연대기식으로 작성했다.

이 세 책은 모두 아이비리그가 무너지기 직전이며, 현재 아이비리그가 구가하는 성공은 실제 효용에 비해 그 매력을 과장한 마케팅의 승리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이 로제 같은 비교적 특권층 자제를 사회적 모범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피스 같은 극빈층 자제가 거의 벗어날 뻔했던 사회적 궁핍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게 한다면 그런 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쩌면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이 “공공도서관에서 1.5달러면 배우는 지식을 습득하는 데 15만 달러나 들였다”고 거만한 하버드 학자들에게 쏘아붙였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비리그 교육비는 그 영화가 나온 지 17년이 지난 오늘날 훨씬 더 비싸졌다.

윌리엄 더레시비치는 끊임없는 의심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컬럼비아대에서 학사, 석사를 거쳐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예일대에서 10년 동안 강의한 그는 그 누구보다 아이비리그 사람들을 많이 안다. 더레시비치는 그들을 “근심 많고 소심하며 지적 호기심은 거의 없고 목적 의식을 잃은” 성과 달성 기계라 평한다. “무엇보다도 남의 말에 따르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견해들은 주관적이다. 예컨대 케냐에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일하는 코넬대 졸업생 같은 경우는 이 글이 몹시 일방적이며 심지어 모욕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더레시비치는 일화에 크게 의존한다. “앰허스트대에서 가르치는 한 친구가 말하길…” “한 포모나대 학생에 따르면…” 같은 식이다. 오늘날처럼 사실과 수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도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뛰어난 양’은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형식을 버리면서 진부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기존 주장과 차별화를 꾀한 셈이다.

세상엔 명문대 사회학자 몇몇의 이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더레시비치는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이를 저술에 잘 활용했다. 한 학생이 더레시비치에게 한 말을 보면 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예일대 학생에게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으라’는 말은 해봐야 소용이 없다. 우린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연구로는 이런 실패를 포착하기가 불가능하다.

더레시비치가 인용하는 수치들은 절망적이다. 예를 들면 프린스턴대 11학번 36%는 금융업계에 취직했고, 하버드대 10학번 약 절반이 금융업계와 컨설팅업계로 향했다. 그 새 영문학 전공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2011~2012년도 학생 비율이 3%까지 추락했다. 40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이와 반대로 경제학은 인기가 크게 치솟았다. 하버드대, 다트머스대, 프린스턴대, 펜실베니아대 등에서 최다 학생 수를 기록했다. 경제학은 미국 최상위 대학 40개 중 26곳에서 최고 인기 과목이다.
우수한 미국 고등교육의 상징인 아이비리그가 최근 잇따른 비판에 직면한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더레시비치는 자신이 규정한 “의미있는 삶”에 독자들이 동의하리라는 추정 하에 글을 써나간다. 이는 사실상 독자들이 타인의 외롭고 갈팡질팡하는 삶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정도로 오만하다고 전제하는 것에 다름없다. 더레시비치는 그 단어를 책에서 수십 번 언급하면서도 의미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 비록 영문학 전공의 쇠락을 통탄하면서 실마리를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책 대부분에서 의미를 부정적으로 규정한다.

실버포인트캐피털이나 캐드월러더, 위커셤앤태프트에 취직하는 것이 브라운대 졸업 학력으로 가능한 가장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슬레이트지에 해설기사를 쓰는 건 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 디트로이트에서 도시농업을 하는 건 훨씬 더 의미 있다. ‘뛰어난 양’ 내용에 따르면 돈을 버는 것과 성찰하는 삶은 결코 양립이 불가능하다.

동의하기 어렵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수재들이 모두 어디가 모자라서 맥킨지나 구글 같은 기업에 취직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몇몇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단지 돈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몇 년만 일하다가 클리블랜드의 한 중학교에 교사로 이직할 사람도 있으리라. 더레시비치가 지적한 대로 세계 경제를 망친 주범 상당 수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 전체에 연좌제를 적용하는 건 지나치다. 심성이 나쁜 이들은 다른 전공에도 얼마든지 있다.

내 오랜 친구 바질리가 생각난다. 바질리와 나는 소련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둘 다 코네티컷주에 정착했고 다트머스대를 졸업했다. 바질리는 13살 때 내게 기업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형사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기업변호사 말이다. 그는 이미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아성찰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트머스대에서 바질리는 사교모임에 가입해 맥주를 마시며 여가를 보냈고 평점 3.9점으로 졸업했다. 경제학을 전공했고, 그 학문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졸업 후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일류 기업에 취직해 그가 바라마지 않던 직업을 얻었다. 취직 후 바질리는 더레시비치의 말처럼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고 일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단지 그 열정을 조세법이나 그 비슷한 것에 쏟았을 뿐이다. 우린 이제 연락을 주고받지 않지만 최근 바질리의 페이스북 글들을 봤을 때 그는 행복하다. 바질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나로선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바질리는 행복을 느끼는 소수 예외일지도 모른다. 로제의 저서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청년의 고백’을 읽어보면 그런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 책에서 로제는 자신이 미래의 석사들과 함께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지하실 바닥에 토하는 특권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 더레시비치가 경멸한 바로 그 문화다. 로제는 교지 ‘더 다트머스’ 칼럼란에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사교모임의 허무주의”라는 글을 쓰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SAE 회장직을 맡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다. 무엇보다도 대소변 속에서 수영을 했다는 내용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글은 귀여운 고양이 사진 모음집 못지 않게 인터넷에 널리 퍼졌다.

로제는 더레시비치의 주장을 여러 측면에서 뒷받침했다. 저서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무균실에 갇힐지 모른다는 공포에 쫓겨 성공을 추구했는지” 그리고 저 “교육공업단지”가 자신을 필경사 바틀비 같은 삶에서 구해주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는지 털어놓았다. 처음엔 보류됐던 입학이 마침내 허가됐지만, 결국 사교모임의 스타가 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데 그쳤다.

다트머스대는 높은 학생 대비 교수 비율과 교육의 질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회고록에선 그런 자랑거리를 찾기가 힙들다. 로제의 이야기 속에서 수업은 그저 숙취가 없을 때나 듣는 소일거리에 불과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오와주의 고등학교들에서 눈을 반짝이며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던 젊은이들이 대학 입학 후엔 눅눅한 지하실에서 술마시기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무서운 이야기나 구강성교, 기업 인턴십” 에 대한 잡담을 주고 받는다.

(왼쪽)뛰어난 양: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과 의미있는 삶을 향한 길 윌리엄 더레시비치 지음 프리프레스 펴냄 / (가운데) 로버트 피스의 짧고 비극적인 삶 제프 합스 지음 스크리브너 펴냄 / (오른쪽)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청년의 고백 앤드류 로제 지음 토마스듄북스 펴냄

로제에 따르면 사교모임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진짜 가르침은 “영예로운” 금융업계 일자리를 얻는 방법이다. 재닛 라이트먼이 롤링스톤지에 쓴 기사에서 로제는 “평점 3.7점을 받고 남자 사교모임 회장을 역임하는 게 혼자 공부하면서 평점 4.0점을 받는 것보다 골드먼삭스 같은 곳에 취직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기업 환경은 남자 사교모임 문화와 판박이다.” 당연히 고등학교 직업상담 선생님한테선 배울 수가 없다.

로제의 책에 깊숙이 배어 있는 악취는 구토와 배설물뿐만이 아니다. 미성숙한 청소년기도 거기에 한몫한다. 이 아이들은 어리석진 않지만 항상 머저리처럼 행동한다. 더레시비치가 ‘뛰어난 양’에서 권하는 사항 중 하나는 더 많은 대학이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 사이에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휴학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제가 대학입학 전 루이지애나주에서 해안선 복원 봉사활동을 했더라면 SAE의 마수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긴급한 과제가 산적했다는 사실을 알면 술마시기 게임이나 여자 꼬실 궁리를 하기가 꺼려질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로제는 자신이 다트머스대에서 내놓았던 흥미로운 제안 일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중 하나는 SAE를 고발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2011년 로제는 월스트리트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학우들을 설득하는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목소리에 동참했다. 로제는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에 들어가는 학우들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썼다. “다트머스대는 투자은행을 위한 직업학교가 아니며,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세계가 왜 지금 이 모양인지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려 이 대학에 입학했다. 우리가 그동안 떠받들어왔던 부와 권력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레시비치의 논변 못지 않게 설득력 있는 글이다. 로제가 ‘고백’에서 밝힌 그 어떤 내용보다 더 예리하다.

로제와 달리 빈민가에서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로버트 피스의 사례는 희망이 필요한 도심지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법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비극이었다. ‘로버트 피스의 짧고 비극적인 삶’은 아무도 예상치도, 바라지도 않았던 책이다. 제프 합스는 이미 소설 ‘여행자들’(The Tourists)을 써 호평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던 중에 페이스북을 통해 옛 예일대 친구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합스가 그의 죽음을 세밀하게 추적한 결과 밝혀진 진실은 알려진 바보다 훨씬 참혹했다.

피스가 학교에 다녔던 뉴어크부터 예일대까지의 기행은 길지만, 예일대에서 뉴어크까지의 기행은 더욱 길었다. 영웅이 치명적인 결점 하나에 무릎꿇는다는 점에서 고전 비극과도 닮았다. 이 경우 그 결점은 피스의 아버지 로버트 더글러스와 관계가 있었다. 더글러스는 ‘재치꾼 대장’이라 불리며 코카인을 거래했다. 밤마다 어린 아들에게 힙합 가수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노래를 들려주며 아들이 육아도우미의 말처럼 “교수”가 되기보다 “남자”로 자라길 열망했다.

아버지의 그릇된 가르침은 머지 않아 종지부를 찍었다. 1987년 더글러스는 여성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수사 상에 의문점이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고 2006년 암으로 옥중에서 사망했다. 합스는 피스가 강한 길거리 남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잊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투옥이 피스에게 끝없는 분노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결국 그를 술꾼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피스는 어머니 재키 피스의 밑에서 자라면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입증했다. 동시에 그는 13살 때부터 술과 마약에 빠졌다. “더글러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술과 마리화나를 구입하기가 쉬웠다. 피스의 생애는 정반대 성향의 부모 사이에서 펼쳐진 줄다리기였다.

한동안은 그의 어머니가 이기는 듯했다. 피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해악만 가득한 공립학교에서 성베네딕트 기독교학교로 전학시켰다. 그곳에서 피스는 수구를 즐겼으며 월등한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합스는 “주변에서 피스가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교외 출신 흑인 소년이란 인식이 형성됐다”고 썼다. 사실은 아니었지만 그럴 듯했다.

피스는 존스홉킨스대 입학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제때 부치지 않는 바람에 예일대에 가야 했다. 합스는 그 장소가 불쾌하지 않았지만 뉴헤이븐에서 예일대 입학을 자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일대에 왔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멍청이 취급을 받는다”고 합스는 썼다. 로제가 다트머스대에 불평했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합스는 전체 10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 가난한 도심 지역 출신으로 “피스와 직접 교류한” 학생은 30명 남짓했다고 계산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는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업계다.

피스의 비극은 빠르고 음울하게 다가왔다. 그는 대학 외부의 ‘잡초집’이란 곳에 빠졌다. 다트머스대에서 로제가 빠졌던 사교모임처럼 중독성이 강한 곳이었다. 마약을 하고 예일대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피스는 “자신이 살던 세상과 지금 속한 세상 사이를 잇는 다리”를 발견했다. 그는 재주 많은 마약중독자에 그치지 않았다. 고향에서 자신을 찾아온 한 친구가 “예일대 사람드로 마약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스는 “예일대에선 길거리처럼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저지의 연줄을 동원해 그는 마침내 “교내 주요 마약 거래꾼”이 됐다.

“예일대와 예일대 학생들에 대한 경멸”에도 불구하고 피스는 분자생화학과 생물물리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럼에도 그는 표류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았던 뉴어크의 위험한 기류를 느꼈는지 졸업 후 몇 달 동안 리오데자네이루에 머물렀다. 낙원과 같은 생활이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그는 뉴저지로 돌아와 모교 성베네딕트 기독교학교에서 가르쳤다. 처음엔 훌륭했지만 갈수록 무너졌다. 교사 일을 그만 두고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에서 수하물 담당자 일을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했다.

이 시점에서 피스의 얘기는 로제와 겹친다. 로제는 다트머스대에 다니면서 식당 종업원으로 힘들게 일했다. 두 남자는 왜 아이비리그 학생이 하찮은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학우들로부터 놀라움을 자아냈다. 학우들은 그 두 남자에게 아이비리그가 얼마나 하찮아 보였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로제와 피스의 이야기는 다시 갈라진다. 피스는 화학 지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마리화나 품종 ‘시큼한 디젤’을 제조하면서 마약업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어쩌면 너무 유명해졌는지도 모른다. 합스도 자세한 부분까진 알지 못하지만, 그는 아마 피스가 “경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지역 범죄단 더블II셋 블러드의 표적이 됐으리라고 본다. 피스와 손잡은 거래상들은 피스의 세력이 지나치게 작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과가 어쨌든 간에 2011년 5월 18일, 피스가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스미스가의 집 앞에 차가 한 대 섰다. 남자 2~3명이 내려서 집에 들어갔고 사건은 신속히 마무리됐다. 그 결과 피스는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합스는 명민하고 우아한 작가다. 글 속에 쓸 데 없이 자기 얘기를 써넣지 않는다. 그러나 피스의 죽음은 합스로 하여금 자신이 피스와 함께 받았던 예일대 교육을 돌이켜보게 만들었다. “아무도 기대했던 만큼 돈을 벌지 못하고, 살게 되리라 생각한 집에서 살지 못하며, 앞으로 하게 되리라고 믿었던 일을 하지도 못한다. 졸업식 날 꿈을 이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이 뼈 아픈 질문을 던진다. “대학에서 거창하게 제시한 것들이 실제와 조금도 비슷하지 이유는 무엇인가?” 피스는 예일대 교육이 약속했던 것들을 끝내 얻지 못한 채 죽었다. “삶이 그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모두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피스는 혼란과 분노에 휩싸였다.” 피스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두 책 사이엔 또 한 가지 놀라운 유사점이 있다. 교수의 존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로제는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학부생 교육을 자랑하는 대학에 다녔다. 피스는 교수 대 학생 비율 6-1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대학을 다녔다. 그럼에도 두 학생 모두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교수를 만나지 못했다. 행실 문제로 학장을 만난 게 전부다. 로제는 코카인 소지, 피스는 대마초 소지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더레시비치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친절을 다하는 교수였을지 의문이다. 그런 교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더레시비치도 잘 알 것이다. 그는 아이비리그가 불완전하다면 불완전한 교수들이 비난 대상이 돼야 한다는 사실도 틀림없이 안다. 그는 “교수들은 학생들을 보살펴 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로제나 피스처럼 길 잃은 영혼에게 줄 가르침은 없다. 교수 사회는 교육의 기본 요소조차 이미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외부 강사들에게 떠맡기고 있다.

교육의 위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엔 더 많은 비난은 물론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2011년 하버드대 학생 알렉산더 헤프너는 US뉴스 웹사이트에 긴 불평 글을 기고했다. “하버드 교육은 광고와 다르다”라는 낚시성 제목이 달린 이 글엔 불평이 목록을 가득 채웠다. 그 중엔 “교수와 학생 간 상호작용 부족”도 있었다. 교수들이 보통 학생과 효율적으로 접촉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기숙학교에서 최고급 교육을 받았다는 헤프너는 독자들에게 설령 하버드 입학허가를 받는다 할지라도 들어가지 말라고 권했다.

더레시비치의 말도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아이비리그 대신 웨슬리언대, 리드대, 그리넬대 같은 작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얘기다. 그곳 학생들은 보다 더 열정적이고 수용적이며 이력서 꾸미기에도 덜 열중한다고 한다. 작지만 내실 있는 대학에 주목하는 요즘 추세와도 걸맞은 훌륭한 조언이다. 그러나 온갖 신문과 잡지가 자체 대학 순위를 매기는 미국에서 그의 말만으로 아이비리그 열기를 꺾기엔 한참 부족해보인다. 몇몇 아이는 프린스턴대, 다트머스대, 하버드대 사교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대신 현명하게 갬비어대에서 4년을 보내거나 케년대에서 진지한 연구를 해보기로 결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의 채용담당자들은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이비리그 대학 홈페이지를 잠시라도 살펴보면 보기 좋은 사진들을 마주치게 된다. 학생 12명이 세미나용 책상에 둘러 앉아 영문학 교수와 함께 월리스 스티븐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나, 식물학 교수가 아이비리그 학생답게 호기심 어린 얼굴을 한 학생들과 함께 전원적인 들판에 서서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말이다. 가끔은 어떨지 모르지만 더레시비치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다면 앤드류 로제가 고백을 할 필요도, 로버트 피스를 위한 부고가 쓰일 필요도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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