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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부동산 중개수수료 논란 - 신혼집 잔금 치를 날짜가 코 앞인데…

반값 부동산 중개수수료 논란 - 신혼집 잔금 치를 날짜가 코 앞인데…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원들이 3월 2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반값 중개수수료’ 조례 통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서울 화곡동에서 7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박찬우(가명·38)씨는 지난해 말부터 “중개수수료를 미리 깎아 줄 수 없느냐”는 문의를 받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부동산 중개보수체계’ 개선안을 확정·발표한 이후부터다. 각 지자체에 권고안이 전달돼 이르면 4월 초 개정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들의 반발로 서울 등 지방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박씨는 “어차피 곧 시행되면 인하해줘야 하는데 미리 적용해주면 안 되느냐고 억지를 쓰는 손님이 적지 않다”며 “현행 수수료율을 기준으로 최대한 낮춰서 적용하는데도 더 깎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중개업자들은 자영업자나 마찬가진데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 우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고가 주택 적은 강원도만 진통 없이 통과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개선안에 따르면 주택 매매가 6억원 이상~9억원 미만인 경우 중개수수료율은 현행 ‘0.9% 이하 협의’에서 ‘0.5% 이하’로 낮춰진다. ‘0.8% 이하 협의’를 적용하는 임대차 주택은 3억원 이상~6억원 미만일 경우 ‘0.4%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고 있는 현행 중개보수 체계가 2000년에 마련돼 달라진 부동산 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취지에서다. 매매가 6억원, 전세가 3억원 이상의 고가 주택이 늘어난 현실에 맞춰 수수료 체계를 개편, 소비자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다만 3억원 미만(임대차)과 6억원 미만(매매) 주택의 중개보수는 현행 요율인 0.3~0.4%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거셌다. 현재 조례 개정을 진행 중인 서울·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인중개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개정이 보류된 상태다. 세종시와 충북, 경남 의회는 상임위원회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지금까지 국토부가 권고한 중개수수료율을 무리없이 통과시킨 지자체는 강원도가 유일했다. 업계 관계자는 “강원은 인구는 물론 고가 주택의 비중이 전국에서도 가장 적은 수준”이라며 “권고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큰 영향을 받을 지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가 주택이 많은 서울·인천 등을 비롯해 대도시 중개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텐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논란은 공인중개사협회가 3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현행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의 문제점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악화 양상을 보였다. 공인중개사협회 측은 현행 중개보수 체계와 국토부 중개보수 개정안 등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왜 유독 부동산 중개수수료만 상한선을 두고 협의해 정하라고 하는 것이냐”며 “정부가 명확한 고정요율을 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소비자 협상권을 박탈하는 행위”라며 “정부가 부동산 중개보수를 개정할 때 시민단체와 중개업자들이 모두 참여해 결정한 사안인데 이제와 이러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도 넘은 ‘제 밥 그릇 챙기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업계와 소비자가 첨예한 의견 대립을 펼치는 가운데 경기도의회가 3월 19일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정부 권고안을 받아들이면서 중개수수료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지자체 중 가장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인 곳 중 하나다. 2월에 국토부 권고안을 자체적으로 수정해 고정요율제를 적용하는 결의안을 상임위원회에 상정·통과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결국 한 달 넘게 처리를 미루던 경기도의회는 우여곡절 끝에 국토부 권고대로 상한요율제를 반영한 개정조례안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98명 중 찬성 96명, 반대 2명이다. 인천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도 이날 오전 국토부 권고안을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원안 가결해 본회의에 넘겼다. 경기도의회의 이번 결정은 현재 심의를 보류 중인 서울시의회 등 다른 시·도의회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가 마련한 개선안에 대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반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요율을 낮춘다는데 머물지 않는다. 수수료율을 고정하지 않고, ‘~% 이하’로 명시해 유동적으로 적용된다는데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김포시 운양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상한선만 두고 나머지는 협의에 맡긴다는 식인데, 그럼 소비자들은 상한선보다 더 낮은 요율을 요구할 것”이라며 “어쩔 수없이 상한선을 낮추게 된다면 고정하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중개사들은 요율이 고정되지 않는 한 상한선을 지키려는 중개사와 이를 깎으려는 소비자 사이에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고정요율제 vs 상한요율제’ 극명한 입장차
정부와 업계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이르면 4월 초 개정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주택 구입자들의 기대감도 꺾였다. 오는 5월 중순 결혼 예정인 윤성환(35)씨는 3월 말 신혼집 잔금을 치를 예정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결혼자금에 전세자금대출을 더해 3억2000만원짜리 전세를 어렵게 구했지만 중개수수료 부담마저 피할 수 없게 됐다.

조례 개정이 완료되면 윤씨는 중개수수료로 전세가의 0.4%인 128만원을 내면 되지만 현행 ‘0.8% 이하 협의’가 유지되면 최대 256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윤씨는 “1월까지만 해도 곧 개선안이 적용될 것을 예상해 ‘복비를 최대한 깎아주겠다’는 부동산이 많았는데 막상 2월 말 집 계약할 때가 되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며 “오히려 부동산 측에선 전세 매물이 없는 시기에 어렵게 전셋집을 찾아줬으니 수수료를 더 받아야 할 판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치솟은 전셋값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기대했던 ‘반값 수수료’마저 적용되지 않는다니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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