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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문호 여는 해외 명문 골프장] ‘개와 여성은 출입금지’는 옛말

[여성에 문호 여는 해외 명문 골프장] ‘개와 여성은 출입금지’는 옛말

R&A 첫 여성 회원이 된 앤 공주, 안니카 소렌스탐, 로라 데이비스(왼쪽부터). / 사진:R&A 제공
종전까지 여성 골퍼에게 문을 꽁꽁 닫아걸었던 남성 중심의 명문 골프장들이 내장객을 늘리고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해 여성에게 문호를 활짝 열고 있다.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세인트앤드루스만에 위치한 영국왕실골프협회 즉, 로열앤에인션트(R&A)클럽의 입구에는 20여년 전만하더라도 ‘개와 여성은 출입금지(No dogs or women allowed)’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여성을 개와 빗댈 만큼 여성 차별이 심했던 곳. 그래서 남성들만의 비밀 결사와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 골프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골프(Golf)라는 단어가 신사들만의 게임이니 숙녀들은 금지(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에서 나왔다’는 철지난 우스갯소리를 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고 ‘마초’라고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영국·미국의 오랜 남성들만의 클럽들은 이를 새로운 운영 시스템의 변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콧대 높던 로열앤에인션트 클럽의 전향적 결정
피터 도슨 R&A회장은 지난 2월 초 ‘앤 공주, 안니카 소렌스탐, 로라 데이비스 등 7명이 260년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회원이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슨 회장은 “3년 내에 여성 회원 수는 15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여성 회원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뜻을 시사했다. 앤 공주는 1976년 몬트리얼올림픽에 승마 선수로 출전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일 정도로 스포츠계에서 비중이 있는 인물이다. 소렌스탐이야 골프여제로 전설이된 인물이며, 로라 데이비스도 메이저 4승을 한 선수다. 1754년에 설립된 R&A는 ‘지난해 9월 전 세계 회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85%의 찬성으로 이번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유럽 골프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R&A의 여성 회원 입회 허용 조치는 주변의 완고한 골프장들에 메가톤급 파장을 가져왔다. 한 달여가 지나자 세인트앤드루스와 함께 브리티시오픈을 순회 개최하던 로열세인트조지 골프장도 개장 128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회원 허용을 발표했다. 이 골프장은 2011년을 포함해 브리티시오픈을 14번이나 개최한 명문 코스로 회원의 81%가 참가한 투표에서 90%의 회원이 이를 찬성했다고 한다.

R&A를 비롯한 브리티시오픈 개최 코스들은 그동안 여성 회원을 받지 않는 규정으로 인해 다양한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 2013년 남성 전용 클럽인 스코틀랜드 뮤어 필드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 때 여성인 마리아 밀러 영국 문화장관이 항의 표시로 참관하지 않기도 했다. 브리티시오픈 10개 코스 중에 뮤어필드와 로열트룬은 남성들만의 회원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나 여기도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1878년 창립돼 137년간 남성 클럽으로 있던 로열트룬은 내년에 개최하는 브리티시오픈에 맞춰 여성 회원 입회를 허용할 전망이다. 로열트룬 위원회는 이웃한 여성클럽인 트룬과 공동으로 내년 남녀 브리티시오픈을 공동 개최하기 위한 합작위원회를 만들었다. 현재 여성 골퍼는 로열트룬에서 라운드는 가능하지만, 회원이 될 수 없고, 클럽하우스에도 들어갈 수 없다.

뮤어필드는 유일한 남성 클럽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골프사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생겨난 회원들의 모임이 뮤어필드였다. 골프장의 별칭도 ‘영광스런 신사의 클럽’이다. 오늘날에도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려면 넥타이를 매야 하는 등 이곳만의 특수 의례가 엄격하게 지켜진다. 심지어 게임 방식도 오전에는 포섬(2인 1조로 볼을 번갈아 치는 방식), 오후에는 포볼(2인 1조로 두 명중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방식)로 플레이해야 한다. 여성은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수 없고, 라운드는 허용되지만 여성 4인이 한 팀으로 플레이 하는 것은 금지되며 남성이 한 명이라도 동반해야 한다. 뮤어필드가 여성 회원을 받는다면 클럽 이름 변경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여성 참여를 반영해야 하는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미국의 전통 명문 클럽들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종과 여성 문제의 첨예한 대결장이기도 했다. 미국 최상류층인 백인 사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 문화가 온존한 곳이 프라이빗 회원제 골프장들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 PGA챔피언십 개최를 두 달 앞둔 개최 코스 쇼울크릭의 오너 홀 톰슨이 멤버십에 관한 답변을 하면서 “우리는 흑인만 빼고 회원에 어떤 차별도 없다”고 말했다가 흑인과 시민단체의 극심한 시위에 직면했다. 스폰서인 IBM이 후원을 철회했고 주관 방송국도 이듬해부터는 갈릴 정도였다. PGA투어 등 골프 유관단체들이 공동으로 ‘대회장을 선정할 때 인종과 차별 문제를 중시하겠다’고 천명하자, 오거스타내셔널은 첫 흑인 회원인 가넷TV 대표론 타운젠드를 받아들이며 발 빠르게 위기를 모면했다. 이와 달리 AT&T페블비치내셔널프로암을 개최하던 사이 프러스포인트와 웨스턴오픈을 개최하던 시카고의 버틀러내셔널은 남성 회원만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대회 개최권을 잃었다.

하지만 2002년에 여성 인권 운동가 마사 버크가 오거스타내셔널의 여성 차별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논쟁은 다시 불붙었다. 여러 스폰서 기업이 이에 동조하자 골프장 측은 스폰서들을 배제하는 초강수로 맞섰다. 대회장에 기업 광고가 없고 순수한 대회만 있는 고집은 마스터스의 특징으로 자리잡았고 오거스타는 판정승을 했다. 그러던 2011년 새로운 딜레마에 봉착했다. 메인 스폰서인 IBM의 회장은 의례적으로 명예 회원으로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입도록 초청된다. 그런데 당시 IBM 회장은 여성인 버지니아 로메티였다. 고심 끝에 오거스타는 로메티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녀는 결국 핑크재킷을 입고 마스터스를 참관했다. 이듬해 오거스타는 여성 회원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투자회사인 레인워터의 달라 무어 부회장을 회원으로 받아들였고, 작년에는 로메티 IBM 회장까지 입회하면서 여성 회원은 세 명으로 늘었다.
 폴라 크리머 “여자 마스터스 열어달라”
최근에는 인기 여자 골퍼인 폴라 크리머가 “여자 마스터스를 오거스타에서 열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호응했으나, 오거스타는 ‘회원들만의 라운드로도 빠듯하다’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무시했을 상황이다.

미국에는 남성만 회원으로 받는 폐쇄적인 회원제 코스들이 더러 있다. 일리노아주 오크브룩의 버틀러내셔널, 메릴랜드주 베데스타의 버닝트리클럽,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킨바 등이 대표적이다. ‘시카고의 오거스타내셔널’에 비유되는 버틀러내셔널은 최근 내장객이 줄고 골프에 대한 관심이 줄자 여성을 받을지 회원 투표까지 했으나 40%로 부결됐다고 한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놀이터를 빼앗길까 반대하고, 젊은이들은 골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1922년 설립된 버닝트리는 워싱턴과 가까워 역대 대통령들이 회원으로 있던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슬로우 플레이를 하는 여성 골퍼들에 짜증이 난 설립자가 ‘여성 회원은 받지 않는다’고 공표한 것이 오늘날까지 골프장 운영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칵테일파티에는 여성의 클럽하우스 입장이 허용되고, 프로숍에서 물건을 사도록 문호를 열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족 클럽’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곳에서 여성이 라운드할 때가 멀지 않았다는 뉘앙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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