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 피플 (102) 순 다르 피차이 구글 새 CEO] 가상현실+사물인터넷으로 제2 도약 노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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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102) 순 다르 피차이 구글 새 CEO] 가상현실+사물인터넷으로 제2 도약 노려

[글로벌 파워 피플 (102) 순 다르 피차이 구글 새 CEO] 가상현실+사물인터넷으로 제2 도약 노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새 CEO. / 사진:중앙포토

▎순다르 피차이 구글 새 CEO. / 사진:중앙포토

순다르 피차이(인도식으로는 피차이 순다라라잔·43)은 구글의 기술 주역이다. 제품 담당으로 일하던 피차이는 지난 8월 10일 구글의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이날 구글은 기업혁신 전략을 깜짝 발표했다. 현재 구글 CEO인 래리페이지는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구글은 그 자회사가 된다는 내용이다. 알파벳은 앞으로 새로운 투자회사로 변신하게 된다. 이날 발표의 하이라이트는 페이지에이은 구글의 새 CEO에 인도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와 정착한 피차이를 지명한 일이다. 피차이는 페이지가 새로운 투자회사인 알파벳닷컴을 정비하는 대로 구글의 새 CEO를 맡게 된다.
 구글의 미래 진로 짐작할 수 있어

피차이는 구글의 웹 브라우저인 크롬 개발에 이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운영시스템인 안드로이드까지, 기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온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런 인물이 구글의 새 CEO를 맡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번 선임은 구글이 단순히 CEO를 창업주인 페이지에서 인도 출신의 엔지니어 피차이로 교체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술 기반의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의미다. 피차이를 관찰하면 구글의 미래 진로를 짐작할 수 있다.

피차이가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보면 이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인도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O’는 피차이에 대해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10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피차이의 어린 시절은 고달팠다. 고향인 첸나이에서 방 2개짜리 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피차이 본인과 부모, 그리고 동생과 함께였다. 피차이와 그의 동생은 거실에서 잤다. 학교 생활은 활기찼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학교 크리켓팀에서 맹활약해 주장까지 맡았다. 주장을 맡는 동안 지역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리더십이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성장기에 그의 가족은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없었다. 그의 가족은 자그마한 스쿠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피차이의 모친은 아들 형제를 낳기 전까지 속기사로 일했다. 아버지는 영국 기업인 GEC의 전기 기사 출신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공장의 경영을 맡았다. 피차이를 전자의 세계에 입문시킨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매일매일의 업무 중 겪은 일화와 해결 방안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줬다. 넷째, 피차이가 기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계기는 가족이 처음으로 전화기를 장만했을 때였다. 12살의 피차이는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는 과정에서 숫자에 대한 비상한 기억력을 발견했다. 한 번 걸었던 번호는 귀신같이 기억해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능력이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알지 못했다.

다섯째, 그가 인도 명문 카라그푸르 인도공과대학(IITKGP)에서 전공한 것은 전자공학이 아니고 야금학이었다. 지도교수는 파차이를 ‘가르쳐본 학생 가운데 최고’라고 말했다. 카라그푸르 IIT에서 얻은 좋은 성적 덕분에 파차이는 미국 스탠퍼드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여섯째, 아버지 레구나타 피차이는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 떠나는 데 필요한 항공권과 경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대출이 거절되자 노후에 대비해 모아둔 가족저축을 깼다. 그의 연봉보다 많은 액수였다. 일곱째, 그렇게 유학을 떠난 피차이는 스탠퍼드에서 석사를 마친 직후 부모를 놀라게 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어플라이드 매터리얼’이라는 반도체 제조 업체에서 엔지니어 겸 제품 매니저로 일하기 위해 박사 과정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모는 크게 실망했지만 피차이는 공학박사 대신 2002년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뒤 맥킨지에 컨설턴트로 취직했다.

여덟째, 피차이가 구글에 합류한 것은 2004년이었다. 첫 과제는 구글의 서치 툴바 개발이었다. 이어 구글에 고유 브라우저를 새롭게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구글 공동 창업주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지지를 받았지만 당시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반대했다. 이 브라우저가 바로 크롬이다. 크롬 개발은 피차이와 구를 모두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줬다. 오늘날 구글 크롬은 모바일과 PC의 브라우저 시장에서 32%를 차지하고 있다. 아홉째, 피차이의 또 다른 성공작이 안드로이드다. 그의 감독 아래 개발됐다. 안드로이드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운영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가 최대 고객이다. 2012년 구글은 안드로이드용 구글 크롬 브라우저 버전을 선보였다. 이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이 개발했던 모바일 브라우저를 대체했다. 루빈은 모바일 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사의 창업주 출신으로 이 기업이 구글에 인수합병되면서 구글의 모바일과 디지털 콘텐트 부문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피차이가 안드로이드용 구글 크롬 브라우저를 내놓으면서 부상하자 구글을 떠났다.
 인도가 낳은 영재
열째, 구글은 이전까지 매년 내놓은 안드로이드 버전이 시들해질 무렵 다음 버전을 발표했는데 피차이는 이를 과감하게 바꿨다. 매년 5월 열리는 구글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인 구글 I/O에서 다음에 선보일 안드로이드 버전을 프리뷰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차이가 이를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구글 내부에서는 이런 방침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개발자들이 엄청난 부담에 시달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새 버전 개발을 위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휴가도 반납하고 일해야 함을 의미했다. 게다가 구글과 제휴한 모바일 제조 업체도 매년 새로운 버전을 탑재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구글에 역동성을 높였으며 안드로이드의 수준을 높여 시장을 석권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지난 5월 열린 2015 구글 I/O를 보면 앞으로 피차이가 끌고갈 구글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구글은 지금의 구글을 만들어준 안드로이드마저 앞으로 비중을 줄일 태세다. 대신 비즈니스의 무게 중심을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으로 옮길 계획이다. 구글은 가상현실을 시청할 수 있는 미디어 상품으로 저가형 헤드셋 카드보드 2.0을 선보였다. 이를 쓰면 눈앞에서 가상현실 콘텐트를 볼 수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 콘텐트가 많이 개발되면 모바일을 대체할 거대한 신규 시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가상현실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인 점프도 주목 받는다. 액션캠의 선두주자인 고프로(GoPro) 16대를 연결해 360도 가상현실 콘텐트를 촬영할 수 있는 기기다. 이를 이용해 촬영된 콘텐트는 입체 가상현실 영상으로 구현돼 카드보드를 이용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서비스도 개발됐다. 구글 스포트라이트 스토리는 스마트폰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360도 모든 방향에서 콘텐트를볼 수 있다. 자신이 영화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카드보드 같은 하드웨어 없이도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어 앞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구글은 모바일·하드웨어·PC 등 다양한 기기를 이용한 일련의 가상현실 시스템을 개발해 사내에서 서로 경쟁시키고 있다. 구글은 사물인터넷 분야에서도 가상현실 전용 운영시스템인 브릴로와 관련 통신 플랫폼인 위브를 공개했다. 브릴로는 안드로이드폰과 사물 사이의 연결을 맡는다. 아직 인프라가 부족한 사물인터넷과 모바일을 서로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일을 맡아 앞으로 세상을 바꾸고 혁신할 피차이는 인도가 낳은 영재다. 피차이는 1972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첸나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속한 타밀족은 인구 13억의 인도에서 전체의 5.91%인 6000만명으로 5위를 차지한다. 그의 고향집 주소는 아쇼크 나가르 7번로 46번가다. 고대 인도의 정복 군주였던 아쇼카 대왕이 세운 기념석주가 주변에 있어 아쇼크 나가르라는 지명이 붙었다. 그런 피차이는 2004년 구글에 입사해 11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피차이의 가장 큰 공로는 구글 고유의 웹 브라우저인 크롬 개발이다. 2009년 피차이는 크롬 운영체계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시험용 크롬북을 내놨다. 이는 2012년 대중에게 선보였다. 2010년 5월애는 세로운 비디오 코덱인 VP8의 소스를 공개했으며 새로운 비디오 포맷인 WebM도 내놨다. 웹 엔지니어 피차이의 면목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지금까지 제품 관리와 구글 크롬과 크롬 운영체계를 비롯한 구글의 소비자 소프트웨어 분야의 제품 혁신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다는 사실이다. 구글 드라이브도 맡아 왔다. 혁신기업 구글에서 사실상 핵심 분야를 맡아온 셈이다.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이를 소비자에게 접목하는 업무다. 개발자와 소비자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비즈니스를 꾸려 나가는 일이다. 그는 해외를 다니면서 G메일과 구글맵의 현지판 애플리케이션 제작에도 앞장서왔다. 이에 따라 구글의 글로벌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평가다.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개발자와 엔지니어, 소비자, 이익을 올려야 하는 영업 담당, 그리고 세계 각지의 제휴사 사이에서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온 셈이다.

안경을 쓴 검은 얼굴의 피차이는 수학이나 과학에 푹 빠진 우등생 이미지다. 학부와 석사 전공도 야금학이다. 금속공학의 한 분야다. 하지만 그가 스탠퍼드 공대 야금학 석사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비즈니스 학교인 와튼스쿨 MBA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는 사실 스탠퍼드에서는 물론 와튼스쿨에서도 장학생이었다. 이공계와 경영학 모두에서 뛰어난 학업성적을 올리면서 탁월한 기술 경영 감각을 익힌 인물이다. 그는 구글에 근무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잘 보여줬다. 단순히 크롬을 개발하고 안드로이드 관련 운영체계 개발에 앞장선 엔지니어를 넘어선 경영자로서의 폭넓은 능력을 자랑했다.
 MBA·컨설턴트 경력도 눈에 띄어
그렇다고 공부만 잘 하는 괴짜는 아니다. 그는 구글에서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인물로 꼽힌다. 유쾌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아울러 탁월한 업무 조절 능력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앤지니어와 개발자, 소비자와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조직은 서로 이해관계는 물론 보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조정이 가장 필요한데, 피차이는 이런 업무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는 일종의 상인 기질이다. 게다가 반도체 엔지니어와 매킨지 컨설턴트를 거치면서 구글 외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것도 그에겐 큰 도움이 된다. 유연성이 있는데다, 큰 시장을 보는 눈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페이지에 이어 구글의 2인자로서 구글을 이끌어온 데는 그러한 능력이 큰 도움이 됐다. 레리 페이지는 이런 피차이의 능력을 입체적으로 살폈다. 엔지니어로서 피차이의 능력만 활용하려고 했다면 그는 기술 경영의 귀재인 피차이를 놓칠 뻔했다. 피차이의 진면목을 알아본 페이지도 보통이 아니다. 피차이가 앞으로 어떻게 구글을 가동시킬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개발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크게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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