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관점에서 본 사우디의 ‘피의 숙청’] 원전·신도시 개발 대규모 시장 열린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 사우디의 ‘피의 숙청’] 원전·신도시 개발 대규모 시장 열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가운데)가 10월 24일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콘퍼런스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왼쪽),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나란히 앉아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사실상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2) 왕세자가 주도한 친위 쿠데타 성격의 정변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경제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사태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무함마드와 사우디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2) 국왕의 아들로 왕세자이자 국방장관 겸 반부패위원장이다. 연로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의 정치·국방·보안·외교·사회를 총괄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부친이 국왕에 오른 2015년 1월부터 자신이 장관을 맡고 있는 국방부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상당수의 보안 병력을 보유한 주요 권력기관인 내무부를 접수했다. 사촌인 무함마드 빈나예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58) 왕세질(국왕의 조카로 왕위계승권자)이 내무장관을 겸하고 있었으나 지난 6월 왕세제와 내무장관직에서 전격 물러나 연금 상태다. 더구나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 11월 정변 직전에 미데브 빈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가경비대장을 전격 경질해 국가경비대 병력까지 장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 정변으로 국방부와 내무부, 국가경비대 등 사우디의 무력을 모두 손에 넣었다. 여기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주요 왕자까지 기습적으로 체포해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했다.
연로한 국왕 대신 사우디 전반 총괄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왼쪽 세번째)이 10월 31일 오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하얏트호텔 회담장에서 심 야마니 사우디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 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이번 사태는 정변임에도 사우디 경제에 결코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숙청사태 이후 첫 평일인 지난 11월 6일 국제유가는 3%대로 급등해 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경질유(WTI)는 전거래일 종가보다 배럴당 1.71달러(3.1%) 오른 57.35달러의 종가를 기록했다. 2015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내년 1월물 브렌트유도 같은 날 2.25달러(3.62%) 오른 64.32달러까지 뛰었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사우디 정변과 숙청이 위기를 예고해 국제유가가 올랐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은 그동안 감산 합의를 지지해온 무함마드 왕세자의 정치적인 입지가 이번 사태로 더욱 탄탄해지고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데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사우디는 상당 기간 석유를 증산해왔다. 사우디는 지난 8월 기준 외환보유액이 4870억 달러로 세계 4위다. 이를 바탕으로 유가 하락에도 정치적인 증산을 계속해왔다. 이는 지난해 초 국제 합의 이후 시장을 새롭게 확대하는 이란에 타격을 줬다. 이란은 중동 사회에서 사우디의 숙적이다. 그 여파로 에너지 산업에 의존해온 러시아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상 명목금액 기준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2831억 달러로 1조4110억 달러인 한국에 이어 세계 12위다. 러시아는 에너지 가격이 강세이던 2010년에는 GDP가 1조6384억 달러로 세계 10위에 올랐지만 그 후 저유가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감산파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내부 권력 기반을 더욱 다졌으니 사우디의 감산 가속화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의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사우디의 국제수지에도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 권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는 11월 말 열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기총회에서 감산 합의를 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 2030’으로 불리는 경제개발 계획 주도

▎10월 23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건국 87주년 행사장에 처음으로 참석이 허용된 여성들이 온몸을 가리는 전통의상 아바야를 입고 앉아 있다.
무함마드는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콘퍼런스(FII)에서 이를 공개하고 세계 투자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요르단과 이집트와 가까운 사우디 서부 홍해와 아카바만 연안 지역에 5000억 달러(약 564조원)를 투자해 서울의 44배 규모인 2만 6500㎢ 면적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미래형 신경제 구역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사우디 서북부에서 아카바만을 건너는 다리를 건설해 사우디 서북부의 로스알셰이흐와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쪽의 세계적인 스킨스쿠버 휴양지 샤름엘셰이흐와 연결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최초의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서 사우디의 성지 메카 순례를 오는 무슬림(이슬람신자)은 시나이 반도에서 선박 편으로 아카바만을 건너야 했다. 이는 지정학적으로 사우디의 북아프리카에 대한 접근성과 영향력을 높이는 게기가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선 아카바만이 접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중동 국제정치의 지형도가 대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무함마드의 개혁은 단순히 사우디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중동, 나아가 세계를 뒤흔드는 대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무함마드는 이 경제구역에서 로봇 등 첨단 기술산업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와 엔터테인먼트산업까지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지금까지 사우디 경제를 지탱해온 석유산업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다. 사우디는 석유 국영화를 통해 국가 독점산업으로 유지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나라 경제를 꾸려온 대표적인 석유 의존 국가였는데 이를 탈피하겠다는 폭탄 선언이다.
‘석유 복지’에 의존하지 않는 일하는 사우디 건설 목표
무함마드가 뜻을 이루려면 나라 경제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사우디는 이를 위해 석유산업을 국영화해 자금을 마련해왔다.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그 실체다. 아람코는 ‘침묵의 계약’을 유지하는 왕실의 돈주머니였다. 무함마드는 현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꾀하고 있다.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2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돼 지분의 5%를 상장하면 1000억 달러 정도의 현금을 얻을 수 있다. 무함마드는 세계 IPO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아람코 기업공개를 통해 사우디 경제를 혁신할 자금을 마련할 계획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현재 런던 증시와 뉴욕 증시의 경쟁을 부추기며 이윤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2018년이나 2019년쯤 아람코의 상장이 이뤄지면 세계는 사우디 특수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무함마드는 국부펀드를 조성해 미래형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문화·스포츠·관광산업을 포함한 산업 다각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취업을 촉진하는 것이 중간 목표다. 국민이 정부 복지에 의존해 살아가는 분위기를 일신하고 사우디를 ‘일하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석유가 고갈되거나 유가가 떨어져 석유 복지를 제공하지 못해도 다른 산업을 진흥해 일자리를 마련하면 국민의 불만이 줄어들 것이란 계산이다.
문제는 이를 이루려면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신장하고 좀 더 자유로운 나라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무함마드는 이미 이를 위한 신호탄을 쏘았다. 여성 운전금지 해제가 그것이다. 이럴 경우 사우디의 자동차 수요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가 늘면 도로와 교통망 정비에도 돈이 풀릴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이동과 레저가 발달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사우디 전역에 레저를 위한 시설을 건설하는 거대한 건설수요도 늘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거대한 건설수요로 사우디 특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원격진료 시스템 확충과 의료시설 확대, 병원의 전산시스템 강화를 비롯한 복지시설 확대도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건설수요를 넘어 한국이 자랑하는 의료 시스템을 수출하는 것이어서 부가가치도 높을 전망이다. 사우디에서 성공 사례를 보이면 중동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시장을 넓힐 수도 있다.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원전 수요다. 사우디는 경제 발전과 탈석유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함께 대규모 원전 건설 계획도 추진 중이다. 사우디의 탈석유 에너지 계획을 주도하는 사우디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은 일단 2030년까지 200억~300억 달러(약 22조~34조원)를 투입해 1400MW급 원전 2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에는 현재 원전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15%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선 1000억 달러(약 110조원) 이상을 투자해 10기 이상, 최다 17기의 원전을 지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우디에 거대한 원전 특수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세계에서 이 프로젝트에 도전할 능력이 있는 나라는 서방에선 한국과 프랑스, 옛 사회주의권에선 러시아와 중국이 꼽힌다. 하지만 프랑스 국영 원전 기업 아레바는 핀란드 원전 공사가 지연되면서 투자 여력과 신뢰를 상당히 잃은 상태다. 러시아와 중국은 원전의 종류가 서방형과 사뭇 다르다. 신뢰성을 투명하게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달리 한국은 한국형 표준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해 1999년 특허 등록하고 원전에 적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개발된 3세대 원자로 중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에 착공한 신고리 3~4호기에 적용하고 있다. 신고리 3호기는 2016년 APR-1400으로 상업적 운전을 하고 있다. APR-1400은 한국 최초의 원전 수출로,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4기의 원전에도 장착하기로 했다. 건설부터 원자로까지 모두 한국의 기술과 능력으로 이뤄졌다. 이 여세를 몰아 한국은 세계 원전시장 점유율을 5%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그간 달려왔다. 한국은 1500MW급 차세대 신형 원자로인 APR+를 개발해 2014년 8월 정부의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했다. 100% 고유 기술로 개발했으며 안정성도 훨씬 강화됐다. 현재 세계 원전시장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28%, GE가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아레바가 24%, 러시아 AEP가 10%, 캐나다 ACEL이 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내수용 원전 건설에 몰두해왔다. 이들 국가는 새로 열리는 사우디의 거대 원전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권력 강화로 사우디의 탈석유 친원전 정책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무함마드발 거대한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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