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고장난 K-바이오 밸류에이션…신뢰 흔드는 ‘엉터리 피어그룹’
- [길 잃은 바이오 IPO]②
사업모델·규모 다른 대기업과 비교 관행에 밸류에이션 신뢰도 ‘흔들’
‘가치평가’인가 ‘가격 정당화’인가…고무줄 밸류에이션 논란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들이 잇달아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자, 상장 당시 이뤄졌던 기업가치(밸류에이션) 산정 방식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IPO 단계부터 지적돼 온 비교기업(피어그룹) 선정의 부적절성이 시장 신뢰를 흔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사업 모델과 규모가 현격히 다른 기업을 피어그룹으로 설정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공모가의 타당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 단기적인 주가 흐름과는 별개로 이러한 무리한 비교는 K-바이오 시장의 신뢰 기반을 약화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IPO를 통해 처음으로 주식 시장에 나설 때,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해당 회사의 ‘적정 주가’다. 그리고 이 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도구가 바로 주가수익비율(PER)이다. PER은 쉽게 말해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 대비 주가가 몇 배 수준에서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시장이 이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붙는 일종의 프리미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프리미엄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상장 예비기업과 ‘유사한 기업’인 피어그룹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전기차 기업과 전통적인 내연기관차 기업은 같은 자동차 산업에 속해 있더라도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달라 PER 배수가 다르게 형성된다. 따라서 가치를 평가할 때는 비슷한 산업군 내에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경쟁사를 피어그룹으로 선정하는 것이 공모가 산정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상장 기업 밸류에이션의 신뢰도를 담보하는 핵심 전제다.
고장 난 공식, 바이오 IPO의 ‘무리한 비교’
하지만 최근 수년간 바이오 기업 IPO 시장에서는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완벽히 동일한 상장사를 찾기 어렵고, 설령 찾더라도 대부분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인 만큼 적자를 면치 못해 PER 기준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는 결국 피어그룹 선정의 적정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장을 추진했거나 마친 주요 바이오 기업들의 피어그룹 선정 내역을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항▲항체-약물 접합체(ADC) 기술 개발사 인투셀 ▲면역항암제 연구 기업 이뮨온시아 ▲약물전달 플랫폼 기업 지투지바이오 등은 모두 사업 영역이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피어그룹으로 한미약품, 대웅제약, HK이노엔 등 소수의 대형 제약사를 공통으로 포함시켰다.

이러한 비교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사업 성격의 차이를 넘어선다. 바이오 IPO에서 피어그룹으로 자주 등장하는 해당 대형 제약사들은 다양한 의약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연 수천억에서 수조 원대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종합 제약사다. 반면 상장을 추진하는 바이오 벤처는 소수의 신약 후보물질이나 플랫폼 기술에 성패가 갈리는 매출 100억 원 안팎의 R&D 중심 기업이다. 이처럼 사업의 본질과 재무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두 기업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객관적인 비교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GC지놈은 올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 유일하게 국내 대형 제약사를 피어그룹으로 삼지 않았지만, 비교기업과의 괴리는 오히려 더 컸다. GC지놈은 주력 사업이 NGS(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반 유전체 분석 서비스임에도 사업 모델이 완전히 다른 진단 장비·시약 제조·판매 글로벌 기업인 홀로직(Hologic)과 레비티(Revvity)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또 GC지놈의 지난해 매출은 258억 원에 그쳤지만, 홀로직은 5조 7000억원, 레비티는 3조 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매출 규모의 차이 또한 막대했다.
결국 이러한 피어그룹 선정 방식은 기업의 본질 가치를 평가하기보다 공모가 산정이라는 기술적 요건을 충족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비교기업 선택이 사업 유사성과 재무 적정성을 고려한 객관적 근거라기보다 미리 정해둔 결과를 정당화하는 수단처럼 작동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적 한계 속 사각지대 놓인 공모가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 IPO 주관사 관계자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정확히 일치하는 사업 모델을 가진 상장사가 없는데다, 있다 한들 대부분 적자 상태라 PER 산정 자체가 어렵다”며 “그렇다고 해서 비교기업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면 밸류에이션 산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혁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밸류에이션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비교기업의 구성이나 사업 유사성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면 정정 요구를 통해 보완을 요청하고 있다”며 “실제 피어그룹 구성이 과도하거나 불분명할 경우 신고서 효력 발생을 보류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하에서는 발행사가 증권신고서에 ‘비교기업과의 사업 모델 차이로 투자 위험이 존재한다’는 식의 경고 문구 한 줄을 넣는 것만으로 상장사는 상당 부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결국 밸류에이션의 적정성 여부가 시장 참여자들의 납득할 수 있는 실적 기반의 근거가 아닌 규제 당국의 심사 기준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만약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바이오 IPO의 가치평가는 발행사가 원하는 밸류에이션에 맞추는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 참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평가 체계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심우정·신응석·양석조 등 검찰 수뇌부 '사의'…檢인사 임박(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특 누나' 안타까운 소식…"아직 울컥해" 왜?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주담대 6억 규제'로도 집값 못 잡으면…한은이 내놓은 대책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신평 3사, 롯데지주·롯데케미칼 신용등급 일제히 강등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4연상했던 에이비온, 29.75% 급락한 사연…유틸렉스 ‘강세’[바이오 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