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변수(1) - 사외이사 연임 제한] 시간 없는데 사람도 없다 ‘선임 대란’
[주총 변수(1) - 사외이사 연임 제한] 시간 없는데 사람도 없다 ‘선임 대란’

▎사진:© gettyimagesbank

당장 셀트리온은 사외이사 6명을 모두 바꿔야 할 처지다. 김동일 인하대학교 교수(생명공학부)와 이요셉 인일회계법인 고문이 12년째 사외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조균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역시 재직 기간이 11년에 달해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연임할 수 없다. 조홍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과 전병훈 한남대학교 교수(무기체계 M&S 연구센터)도 오는 3월 임기 만료 기준 재직 기간이 6년을 넘는다. 재직 기간이 5년인 이종석 조슈아트리아시아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연임할 경우 임기 2년 중 1년만 이사직 유지가 가능하다.
셀트리온·삼성SDI 사외이사 전원 교체해야

대기업집단 상장사 중 13곳은 사외이사 2명씩을 새로 뽑아야 한다. 삼성전기는 권태균 법무법인 율촌 고문, 최현자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를 교체해야 한다. KT의 사외이사 장석권 한양대 교수(경영학과), 김종구 법무법인 여명 고문변호사는 임기 6년을 채웠다. 특히 장 교수와 김 변호사는 KT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구현모 사장 선출 절차에서 핵심 역할을 했지만,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물러나게 됐다. 현대건설, SK텔레콤, 고려아연, 영풍, LS 등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외이사를 1명씩 교체해야 하는 곳도 아시아나항공, 롯데하이마트 등 25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외이사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호소한다. 여러 회사가 똑같은 시기에 비슷한 인재풀에서 사외이사를 찾고 있어서다. A기업 관계자는 “전문성, 다양성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데 각 기업이 비슷한 상황에서 찾다 보니 적합한 사람을 섭외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B기업 관계자는 “6년 제한에 걸려 연임을 못 하게 된 사외이사가 있는 기업끼리 사외이사를 바꿔 선임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부)는 “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사외이사 눈치싸움, 기업 간 교체” 하소연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 6일 ‘2019사업연도 결산 관련 시장 참가자 유의사항’ 자료에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정한 사외이사 비율 등을 충족하지 않은 경우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혀 상법 시행령 개정안 충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상장법인은 상법 및 본소 상장규정에 의거해 사외이사 요건 미충족 시 관리종목 지정 등 시장조치를 해야 할 대상”이라며 “주주총회 불성립 시에도 관리종목 지정 등을 유예받기 위해서는 주총 성립을 위해 노력한 사실을 거래소에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내용이 불분명한 것도 기업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와 이현수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2015년 합병으로 소멸한 옛 삼성물산부터 현재까지 약 8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6년 임기 제한을 넘었지만, 새 법인 기준으로는 2021년(계열사 합산 9년)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질의응답 자료를 내고 “계열사 합산 9년 임기가 적용되지만, 소멸회사 사외이사를 존속회사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경우 소멸회사 경력은 존속회사 사외이사 재직 기한에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장사의 사외이사 선임이 기관투자자들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높아졌다. 사외이사 졸속 선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들어 전문성 및 독립성 결여를 이유로 회사 감시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반대한 유일한 안건이 사외이사 선임안이었다. 국민연금도 지난해 기아차가 주주총회에 낸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반대를 표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마저 거세지고 있어 사외이사 섭외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볼멘소리에도 정부는 강경한 태도다. 대주주의 전횡과 독단경영을 막고 기업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사외이사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경영활동을 객관적으로 감시·감독해야 하지만 사실상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결정에 힘을 보태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 대상 대기업 집단 250개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2018년 5월부터 1년간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사외이사 반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24건(0.4%)에 불과했다.
신규 사외이사로 정부 기관 출신 찾는 기업들

기업들은 정부나 감독기관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사외이사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사외이사에 주로 이름을 올려온 교수 등 학계 인사의 규모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각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2월 25일까지 181개사가 사외이사 후보자 302명의 세부 경력을 공시했다. 이 중 20%(63명)가 정부나 감독기관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해 온 학계(28%)나 산업계(27%)에 육박했다.
그 중에서도 정부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의 등장이 눈에 띈다. 현대홈쇼핑은 내달 사외이사에 김재웅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신규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고문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의류업체 한섬도 최현민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에 신규 선임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 및 지방국세청 조사국장 출신들을 향한 기업들의 사외이사 영입도 이어지고 있다. 오리온 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오리온홀딩스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김영기 세무법인 T&P 대표이사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한다는 공지를 냈다.
뿐만 아니다. 검찰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금감원,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까지 정부 기관 출신들을 향한 기업들의 사외이사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만도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로 선임했다. 종근당바이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 안전청장을 지낸 김인규 인천재능대학교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한 상장사 IR 관계자는 “기업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부 기관 출신 모시기에 혈안이 됐다”면서 “사외이사로 올릴 새로운 인물이 그나마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사외이사 재직 기간 존속회사에 포함해야”

한편 기업들은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까지 대거 교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2017년 섀도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상장사들이 일제히 감사를 새로 선임했기 때문이다. 감사 임기가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상장사들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까지 새로 영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감사 선임이 안 될 경우 기존 감사가 임시로 업무를 볼 수는 있으나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서 149개 상장사의 감사 선임이 불발됐는데 올해는 230개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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