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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변수(1) - 사외이사 연임 제한] 시간 없는데 사람도 없다 ‘선임 대란’

[주총 변수(1) - 사외이사 연임 제한] 시간 없는데 사람도 없다 ‘선임 대란’

556개 상장사에서 총 718명 선임해야… 기관투자자 선임 반대 확산 가능성도 커져
사진:© gettyimagesbank
‘사외이사 찾기’가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둔 상장사들의 난제로 떠올랐다. 법무부 등 정부가 지난 1월말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즉시 시행 방침을 정하면서 상장사들의 사외이사 구인 대란이 벌어졌다. 상장사들은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3월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임기 6년 제한을 넘어선 사외이사를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임기 6년에서 1~3개월가량 재직 기간이 남은 사외이사도 교체 대상이다. 한 상장사 IR 담당자는 “시행령에 맞춰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포함한 556개 상장사가 총 718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코스피 233개 상장사와 코스닥 333개 상장사 각각 311명, 407명씩이다. 상법에서 상장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어 사외이사 선임을 미룰 수도 없다. 특히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기업은 이사 총수의 과반수(최소 3인)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29개 상장사가 3명 이상을 물갈이해야 하고, 2명 이상을 모집해야 하는 상장사도 116개”라고 했다.

당장 셀트리온은 사외이사 6명을 모두 바꿔야 할 처지다. 김동일 인하대학교 교수(생명공학부)와 이요셉 인일회계법인 고문이 12년째 사외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조균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역시 재직 기간이 11년에 달해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연임할 수 없다. 조홍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과 전병훈 한남대학교 교수(무기체계 M&S 연구센터)도 오는 3월 임기 만료 기준 재직 기간이 6년을 넘는다. 재직 기간이 5년인 이종석 조슈아트리아시아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연임할 경우 임기 2년 중 1년만 이사직 유지가 가능하다.
 셀트리온·삼성SDI 사외이사 전원 교체해야
대기업 상장사도 상황은 같다. 이코노미스트가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상장사 264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새로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사만 40개로 나타났다. 삼성SDI는 사외이사 4명을 모두 바꿔야 한다. 2014년 3월부터 사외이사를 맡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 김재희 연세대 교수(전기공학부) 등이 연임할 수 없다. 2011년부터 사외이사를 맡은 김성재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도 마찬가지다. 삼성SDS는 박정호 고려대 전기공학부 교수 등 3명이 6년 제한에 걸린다. 카카오 역시 3명의 사외이사를 보내고 새로 뽑아야 한다.

대기업집단 상장사 중 13곳은 사외이사 2명씩을 새로 뽑아야 한다. 삼성전기는 권태균 법무법인 율촌 고문, 최현자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를 교체해야 한다. KT의 사외이사 장석권 한양대 교수(경영학과), 김종구 법무법인 여명 고문변호사는 임기 6년을 채웠다. 특히 장 교수와 김 변호사는 KT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구현모 사장 선출 절차에서 핵심 역할을 했지만,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물러나게 됐다. 현대건설, SK텔레콤, 고려아연, 영풍, LS 등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외이사를 1명씩 교체해야 하는 곳도 아시아나항공, 롯데하이마트 등 25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외이사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호소한다. 여러 회사가 똑같은 시기에 비슷한 인재풀에서 사외이사를 찾고 있어서다. A기업 관계자는 “전문성, 다양성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데 각 기업이 비슷한 상황에서 찾다 보니 적합한 사람을 섭외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B기업 관계자는 “6년 제한에 걸려 연임을 못 하게 된 사외이사가 있는 기업끼리 사외이사를 바꿔 선임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부)는 “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사외이사 눈치싸움, 기업 간 교체” 하소연
시간도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입법 예고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지난 1월 29일 공포 즉시 시행했다. 당초 경제단체 등의 요구로 1년 유예가 검토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월 25일을 시작으로 다음달 하순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의 릴레이 주총이 예정된 것을 고려하면 약 한 달 만에 새로운 사외이사를 후보로 올려야 하는 셈이다. 특히 현행법상 사업연도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주주총회를 열고 재무제표를 승인 받아야 해 12월 결산 법인은 모두 3월 31일 전에 주주총회를 열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 6일 ‘2019사업연도 결산 관련 시장 참가자 유의사항’ 자료에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정한 사외이사 비율 등을 충족하지 않은 경우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혀 상법 시행령 개정안 충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상장법인은 상법 및 본소 상장규정에 의거해 사외이사 요건 미충족 시 관리종목 지정 등 시장조치를 해야 할 대상”이라며 “주주총회 불성립 시에도 관리종목 지정 등을 유예받기 위해서는 주총 성립을 위해 노력한 사실을 거래소에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내용이 불분명한 것도 기업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와 이현수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2015년 합병으로 소멸한 옛 삼성물산부터 현재까지 약 8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6년 임기 제한을 넘었지만, 새 법인 기준으로는 2021년(계열사 합산 9년)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질의응답 자료를 내고 “계열사 합산 9년 임기가 적용되지만, 소멸회사 사외이사를 존속회사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경우 소멸회사 경력은 존속회사 사외이사 재직 기한에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장사의 사외이사 선임이 기관투자자들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높아졌다. 사외이사 졸속 선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들어 전문성 및 독립성 결여를 이유로 회사 감시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반대한 유일한 안건이 사외이사 선임안이었다. 국민연금도 지난해 기아차가 주주총회에 낸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반대를 표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마저 거세지고 있어 사외이사 섭외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볼멘소리에도 정부는 강경한 태도다. 대주주의 전횡과 독단경영을 막고 기업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사외이사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경영활동을 객관적으로 감시·감독해야 하지만 사실상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결정에 힘을 보태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 대상 대기업 집단 250개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2018년 5월부터 1년간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사외이사 반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24건(0.4%)에 불과했다.
 신규 사외이사로 정부 기관 출신 찾는 기업들
정부가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의 장기 집권 문제 해소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거수기 논란의 배경으로 회사 오너 등 최대주주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에 앉힌다는 지적과 해당 사외이사 임기의 장기화가 꼽혀왔다. 장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한 회사에 오래 있다 보면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독립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한국 기업 대부분이 오너 중심의 경영을 잇는 상황에서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외이사 임기 규제는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정부나 감독기관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사외이사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사외이사에 주로 이름을 올려온 교수 등 학계 인사의 규모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각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2월 25일까지 181개사가 사외이사 후보자 302명의 세부 경력을 공시했다. 이 중 20%(63명)가 정부나 감독기관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해 온 학계(28%)나 산업계(27%)에 육박했다.

그 중에서도 정부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의 등장이 눈에 띈다. 현대홈쇼핑은 내달 사외이사에 김재웅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신규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고문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의류업체 한섬도 최현민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에 신규 선임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 및 지방국세청 조사국장 출신들을 향한 기업들의 사외이사 영입도 이어지고 있다. 오리온 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오리온홀딩스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낸 김영기 세무법인 T&P 대표이사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한다는 공지를 냈다.

뿐만 아니다. 검찰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금감원,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까지 정부 기관 출신들을 향한 기업들의 사외이사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만도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로 선임했다. 종근당바이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 안전청장을 지낸 김인규 인천재능대학교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한 상장사 IR 관계자는 “기업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부 기관 출신 모시기에 혈안이 됐다”면서 “사외이사로 올릴 새로운 인물이 그나마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사외이사 재직 기간 존속회사에 포함해야”
일각에선 사외이사 제도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사외이사 대거 교체로 거수기 역할이 주는 대신 사외이사의 로비스트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기업의 사외이사 자리에 정부 기관 출신들이 대거 선임되면서 이들이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기보다는 권력기관을 상대로 로비스트로의 역할 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경영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종과 무관한 사외이사의 신규 선임에 따른 반대도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들은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까지 대거 교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2017년 섀도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상장사들이 일제히 감사를 새로 선임했기 때문이다. 감사 임기가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상장사들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까지 새로 영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감사 선임이 안 될 경우 기존 감사가 임시로 업무를 볼 수는 있으나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서 149개 상장사의 감사 선임이 불발됐는데 올해는 230개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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