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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외환시장의 뜨거운 감자, 미·중 관계] 첨예한 미·중 갈등,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 될 수도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외환시장의 뜨거운 감자, 미·중 관계] 첨예한 미·중 갈등,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 될 수도

20세기 말 허무 개그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그 중 정치인을 비하한 개그는 단골 레퍼토리였다. 정치 혐오는 당시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선거에서는 특정 후보를 적극 지지해서 표를 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호감 후보 중에 선택하는 정치 혐오자들도 있다. 치열한 선거의 경우 승부는 이러한 부동층(浮動層) 흡수 여부에 따라 갈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에 투표한 유권자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를 적극 지지한 유권자와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지 않음에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너무나 싫은 나머지 트럼프 후보를 선택한 유형도 있었다. 그렇다면, 트럼프도 싫고 힐러리도 싫다는 유권자들은 대체로 누구에게 표를 줬을까.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출구조사 결과는 클린턴과 트럼프를 모두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17포인트 차로 더 많이 투표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방식으로 최근 워싱턴 포스트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와 트럼프 대통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그나마 바이든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32포인트 차로 2016년 대선에 비해 많아졌다. 이는 재선의 문턱에서 코로나 19 악재를 맞닥뜨린 트럼프 대통령이 고전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승자 독식의 미국 대선은 사실상 경합주 승부에 달렸으니, 이 여론조사 결과가 경합주 승부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선 앞두고 속 타는 트럼프 대통령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 외 새로운 변수들이 추가되었다. 홍콩보안법 변수와 인종차별 항의 시위다. 어느 것 하나 유리한 것이 없다. 6월 초 현재 베팅 마켓, 일반 여론조사 결과 모두 그에게 불리한 형세를 반영하고 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의회 선거조차 하원은 민주당, 상원은 공화당 입지가 굳건했으나 현재로서는 상원의 수성 여부도 불투명하다.

트럼프는 역전의 명수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의 대응을 높이 사더니, 대선을 향해 전열을 정비하면서 4월 말부터는 중국을 맹공(猛攻)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미국내 반중 정서가 커지면서, 2016년 대선 당시처럼 중국 때리기로 방향을 정한 모양새다. 코로나 19 중국 책임론을 띄우기 시작했고, 미국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라면 제3국에서 만든 반도체라 할지라도 화웨이에 수출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 기업들을 겨냥해 미국 주식시장 상장 조건도 강화했다.

이렇게 중국을 향한 공세를 추가하는 와중에 중국 측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악재가 가세했다. 홍콩 정부가 보안법 입법에 실패하자, 중국이 금번 전인대에서 직접 보안법을 제정하여 홍콩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홍콩 보안법이 일국양제(一國兩制, 1국가 2체제) 원칙을 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외부에서는 일국양제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응하여 5월 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을 오늘날의 국제금융 허브로 지탱해줬던 미국의 특별대우 지위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발표에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언제’에 대한 언급이 없어 금융시장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발표 직후 미국 증시는 반등했다. 주말을 보낸 뒤 아시아 증시의 첫 반응도 상승이었다. 코스피 역시 직전 영업일 대비 1.75% 상승했다.

중국을 향한 트럼프 정부의 언사는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홍콩 이슈에 대한 대응을 보면 움찔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이 보복 조치로 트럼프의 특정 지지층을 겨냥할 수 있어 속으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례로, 대선에서 경합주로 꼽히는 팜 벨트(Farm Belts, 농업지대)의 표를 트럼프 대통령이 얻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의 농산물 구매가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구매키로 한 ‘1단계 무역합의’를 미국 스스로 뒤집기는 곤란하다. 지금까지의 대응을 보면 겉으로는 중국에 맹공을 퍼부을지라도 속으로는 눈치를 보는 듯하다.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를 철회하면 홍콩에서 미국산 수입품에 무관세를 적용받는 미국 기업 입장에서도 출혈이 불가피하다. 홍콩에 진출하여 혜택을 누리던 수많은 미국 기업들에도 직접 불똥이 튀고, 탈(脫) 홍콩 행렬이 시작되면 금융 허브인 홍콩 시스템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를 모두 철회하는 건 미국에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중국의 농산물 구매가 필요한 트럼프 정부
중요한 것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압박하는 배경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심은 미·중 관계 자체보다 미·중 관계가 11월 3일 대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있다. 모든 액션은 재선을 위한 것이다. 겉으로는 거칠게 중국을 압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실은 없을 수 있다. 미국 대선까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미·중 관계)를 끌고 갈 수 있다. 한편, 5월 25일,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뒤 촉발된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그간 은근히 인종 차별적 인식을 드러냈고 사후 대처도 현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종합해볼 때 부동층의 표를 흡수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대선은 시기상으로도 미묘한 시점에 있다. 코로나19 충격에서 헤어 나올 미국 경제가 대선을 치르고 나면 대선 리스크가 해소되는 동시에 불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누가 승리하든 미국의 재정을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부상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마이너스(-)10%에 육박했던 미국의 재정 적자(GDP 대비)는 2020년 무려 -15%를 넘기면서 연방정부 부채 비율도 130%에 육박할 전망이다. 2018년 시행한 법인세 인하를 되돌리거나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는 미국 주식시장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2018년 이후 미국 증시의 상승 배경을 법인세 인하 효과로 돌린 시각이 많았던 만큼, 증세 주장은 증시에 부담이다.

미국 대선 리스크가 해소된다는 것 자체로도 달러화 수요는 누그러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한 세대(generation)는 지속될 이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미·중 관계 경색에 달러화 매수로 대응했던 세력들은 미국 대선을 계기로 포지션을 정리하며 일단 차익실현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 미·중 관계 경색에 그간 위안·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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