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①] 구글, 한국에 법인세 5000억 낼 가능성 높아졌다
‘구글세’ 반대하던 미국, 법인세 인상으로 기업 이탈 우려해 합의 주도
글로벌 IT 기업 조세 회피에 골머리 앓던 한국, 세수 확보 길 열려
오는 10월 G20 최종 합의하면 국제 조세 원칙 대전환 가속될 듯
‘디지털세(Digital Tax)’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 정부가 득실 계산에 들어갔다. 다국적 기업이 돈 번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세계 각국이 손을 잡았는데, 나라별 세수 증감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해외에 디지털세를 내야 할 기업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구글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에 제대로 과세하면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디지털세가 미칠 파장을 짚어봤다. [편집자]
“30년간 이어진 각국의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 (지난 4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외침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6월 초,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이 국제 법인세에 대한 최저 세율(15%) 합의안을 도출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30개국도 같은 내용에 동의한 것이다. 다국적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이 자국에 본사를 두고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에 자회사를 설치해 조세를 회피하는 ‘꼼수’를 차단하는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합의안 참여국 명단에 그간 낮은 법인세율로 해외기업 유치에 나섰던 중국과 인도도 포함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법인세 하한선 합의와 함께 물리적 고정 사업장을 설치하지 않고 해외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다국적 기업을 과세하기 위한 ‘디지털세’도 8부 능선을 넘었다. 현행 국제 조세 협약은 다국적 기업에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 아닌 ‘법인 소재지’에서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구글·아마존 등 공룡 IT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 조세 피난처에 법인을 세우고 조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디지털세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다.
매출발생국에 과세권을 배분하고 국제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안은 오는 9~10일 이탈리스베네치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전망이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합의안이 통과되면 오는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0여년간 이어온 국제조세 원칙의 대전환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EU 디지털세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한 미국, 바이든이 교착 풀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서도 법인세율이 크게 낮은 나라로 이윤을 빼돌리자 유럽에서는 조세 회피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구글세’ 논의가 촉발된 배경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2014년 12월 자국 내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른 나라로 옮길 경우 이전 금액의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우회 수익세’를 의결한 것이다.
디지털세 도입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더욱 확산됐다. 하지만 미국은 디지털세가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겨냥하고 있어 불공정하다며 보복관세로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바이든 행정부도 전임 정부의 기조를 유지했다. 불과 지난 6월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디지털세를 도입한 영국·이탈리아·스페인·인도 등 6개국에 20억 달러 보복관세를 물렸다. 단 관세부과는 6개월 동안 유예하는 조건이었다.
표면적으로 맞불을 놨지만 물밑에서는 전향적인 움직임을 이어갔다. 선진국들이 미국 IT기업들을 포함해 대기업에 법인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고, 국제 최소 법인세율도 추진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 변화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불가피한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약 2500조원 규모의 기반시설 투자 방안인 ‘미국 일자리 계획’을 발표했다. 매머드급 부양책을 실행하기 위한 재원은 ‘증세’로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21%인 미국의 법인세를 28%까지 올리기로 한 것이다.
법인세를 올리면 미국 기업이 자국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기 부양책이 되레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국제 최저 법인세를 도입되면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갈 유인책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속셈을 모를 리 없는 EU 등 다른 국가들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강력히 반대해왔던 디지털세 카드까지 제시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미국은 과세 대상을 디지털 기업에서 소비재·전자·제약 업종 등으로 크게 넓혀 실속을 챙겼다.
법인세 올릴 필요 없는 한국, 기업 유치에 긍정 영향
관심은 ‘디지털세’다. 다국적 IT 기업들과의 과세 전쟁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구글·애플 등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도 제대로 된 과세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 IT 기업 134곳이 2019년 납부한 세금(2367억원)은 국내 기업인 네이버 한 곳이 낸 법인세 4500억원의 절반에 그쳤다.
한국에서의 사업 실적도 최근에서야 베일을 벗었다. 지난해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이 개정되면서 유한회사인 외국계 기업들에도 국내 기업들처럼 외부 감사를 받고 실적을 공시할 의무가 생겨서다.
지난 4월, 처음 재무제표를 공시한 구글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201억원, 155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5조3041억원과 4조1567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오는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안이 통과될 경우, 빅테크 기업들의 매출 축소 신고 행위는 더는 불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구글코리아 추징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IT기업이 한국에서 내야 할 세금은 수천억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 같은 계산이 가능한 이유는 구글의 핵심 수익원인 앱 마켓 수수료 부문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앱 마켓 수익은 구글코리아가 아닌 싱가포르 소재 구글아시아퍼시픽 매출로 기록된다.
매출 6조에 법인세 97억 사례 자취 감출 듯
이에 지난해 1월, 국세청은 구글코리아가 외국에 서버를 두고 조세를 회피했다고 판단해 법인세 약 5000억원을 추징한다고 고지했다. 당시 국세청은 이들의 서버가 비록 외국에 있다 하더라도 사업하는 국가에서 실질적으로 영위된다는 점을 과세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구글코리아는 부과된 세액을 납부한 뒤 과세에 반발해 조세심판원에 불복 절차를 제기한 상태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관련 건에 대해 계속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며 “언제 결론이 날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IT 기업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 이용자가 1000만 명이 넘는 넷플릭스의 지난해 매출은 4155억원이었다. 하지만 세율이 낮은 네덜란드법인에서 이용권을 구입해 한국 이용자에게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한국 매출의 80%인 약 3200억원을 네덜란드법인으로 넘겼다. 전형적인 매출 빼돌리기인 셈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넷플릭스의 한국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납부한 세금은 고작 22억원이었다.
하지만 오는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안이 통과될 경우, 매출 축소 신고 행위는 더는 불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구글코리아 추징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IT기업이 한국에서 내야 할 세금은 수천억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합의 무력화 우려에 소비자에게 부담 전가될 수도
디지털세 부과로 인한 부담이 사실상 소비자와 중소기업에게 전가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지난 4월 펴낸 ‘국제조세 추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디지털세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자 유럽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IT기업을 겨냥한 디지털 서비스세(DST) 도입을 결정했다. 그러자 구글은 영국에서 구글 애드와 유튜브에서 발생한 모든 광고에 대해 수수료를 2% 인상했다. 아마존도 지난해 9월부터 제3자판매업체들에게 적용하는 수수료를 2% 올렸다.
프랑스 디지털세 도입 당시 딜로이트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기업은 디지털세의 4%를 부담하는 대신, 소비자와 중소기업을 포함한 소매상이 각각 57%와 39%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재화의 경우에는 소비자의 세 부담이 45%이지만 디지털 광고의 경우에는 77%로 급증했다. 또한 소매상의 세 부담은 디지털 광고의 경우 23%였으나, 서비스의 경우 48%로 증가했다.
이런 전례에 비춰 하나금융연구소는 “미국 IT 기업들이 프랑스와 영국 등의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 결정 이후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를 감안하면 세수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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