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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 백신 예약시스템, 정부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김국현 IT 사회학]

백신 예약시스템·온라인 개학 등 정부 IT 시스템 문제 불거져
클라우드 필요성 각인 기회…네이버·카카오 사용자 접점 늘어나

 
 
7월 28일 부산 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 검사를 받으려는 많은 시민들이 길게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백신 예약시스템이 또 먹통이 됐다. 다급한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든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뉴스는 흘러들고, 잔여 백신의 인기도 목격한 마당. 내게 모처럼 돌아온 접종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접수 개시와 동시에 접속이 집중된다.
 
고육지책인지 대기자 수를 표시하고 기다리라는 마치 은행 대기표를 방불케 하는 시스템을 앞에 세워놨는데, 이는 현대적 상용 웹사이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사이트가 열리는데 3초 이상 걸린다면 50% 이상의 방문자가 포기해 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배짱을 부릴 수 있다.
 

백신 예약시스템 문제, 클라우스 필요성 알리는 효과  

국내에서만 유독 이러한 시대착오적 솔루션들이 특히 정부 기관에 납품되고 있는데, 클라우드를 쓰면 이 접수창구를 순간적으로 얼마든지 늘려줄 수 있다.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일반 기업에서도 클라우드가 대세가 돼가고 있는 시대에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다. 게다가 애초에 대기자 수라도 표시할 수 있는 대역폭이 있다면 그냥 접수해 버리면 그만일 텐데. 시스템 뒤쪽에 사정이 있나 보다.
 
이번 소동도 대기표 발급 같은 구시대적 시스템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뒷구멍을 발견해 발급 시스템을 우회해 새치기할 수도 있었으며, 비행기 모드를 껐다 켜는 방식으로 번호표 발급 시스템을 속일 수도 있었다. 요령 있는 이들은 알음알음 일을 끝내는 동안, 뭘 잘 모르는 일반인들만 답답함에 온 집안 폰과 PC를 총동원해 몇 시간씩이나 대기한다. 그 와중에 불과 몇 명을 남겨 두고 리셋이 되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IT 강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며 참모들을 질책하고 강력한 대응책을 요구했다. 범정부적 대응이 펼쳐졌고 네이버·카카오 및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긴급회의를 하게 된다.
 
장애는 당사자에게는 속이 타들어 가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이제 아마도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적절히 도와주면서 홍보 효과를 볼 터이고, 운이 좋으면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이미 전국민이 과도 의존 중인 서비스들은 접점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QR 방역으로 인해 네이버와 카카오 앱을 띄우지 않고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 마케팅 효과와 락인 효과, 즉 발목 잡는 효과는 엄청나다. QR 코드를 띄우는 행동에 익숙해진 김에 자사의 다른 여러 사업을 경험해 보도록 이미 유도해 가고 있다. 정부는 네이버와 카카오에게 더 없는 발판이 돼 준 셈이다.
 
정부의 IT는 또 실패하고 민간에 손을 내민다. 비슷한 일이 온라인 개학에서도 있었다. 그 사건 후 아예 민간에 맡기자라는 분위기조차 형성 중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것일까? 바로 IT를 조달할 수 있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데 있다.
 
IT를 토목이나 건설과 동일시한 정부 조달은 한계가 있다. 최소 1년 단위로 차세대 IT 시스
템을 조달하던 전통 기업들이 스마트 시대의 경쟁 속도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건물에 빗대는 관습은 사라져야 할 구태다. 대개 1년은 걸려야 하는 건축물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그 골조가 차곡차곡 매일매일 올라가지도 않는다. 시멘트가 굳는 것을 기다리듯 꼭 정해진 기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력의 맨먼스(소프트웨어 개발 등에서 사업의 대가를 계산하는 방식의 하나)도 큰 의미가 없다. 누가 와서 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제로에서 무한대까지 벌어지니 소프트웨어란 마치 경영과도 같다.
 
경영은 하청이 될 수 없다. 하청은 애초 계약에서 하기로 한 과업을 정해진 날짜에 끝내고 하루라도 빨리 원대 복귀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해서 괜히 일을 키우는 일은 프로젝트를 복잡하게만 한다. 계약에 없는 혁신도 자발적 개선도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이번 시스템을 구축한 중소기업의 실명까지 거론해 희생양 삼으며 대기업에 발주할 수 없었던 규제를 거론하고 있다. SI 대기업은 다시 공공 시장을 탐내고 있으나 그들의 참여가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하청의 본질에 있다.
 
부가가치세를 신고한다거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처럼 법 개정의 속도에 따라 연간 단위로 기획할 수 있는 일이라면, RFP를 공고하고 관변 조달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 후 기계적 공정함에 따라 선정해도 어찌어찌 시스템은 완성될 수 있다. 시간은 정부의 편이라서다. 적시에 시스템이 기능해주지 않더라도, 경쟁사에 기회를 잃는 일도 없다. 그 시스템의 제공자가 정부밖에 될 수 없는 일이라면, 아무리 한참 뒤라도 이탈자 없이 동수의 사용자가 찾아올 것이다. 비록 투덜댈 수는 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이해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정부의 시간이란 결국 제도가 결정한 시간. 늘어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행력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는 갑자기 당황한다. 실패의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 시스템의 실패가 민원인의 답답함에서 끝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방역, 더 나아가는 전시와 같이 예측 불가능의 사태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은 기업의 일상. 기업은 주어진 상황과 현재의 제약 조건, 그리고 꼭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두고 의사결정을 해나간다. 그리고 한 팀으로 일하는 개발팀원과 함께 바로 ‘2주간의 스프린트(단기간에 반복적으로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이를 개선하는 활동)’를 가동하고 새로운 릴리스를 낸다. 소위 말하는 애자일(Agile) 문화다. 그렇게 시스템은 탄탄해지고, 그런 곳만 살아남는다.
 

공공인력에 디지털 인재 내재화 고민할 때  

기술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획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적 한계를 알고 있었다면 공지를 통해 조금 더 촘촘하게 예약 시간을 분배할 수도 있었다. PO(프로덕트 오너)의 역할이지만, 그런 책임과 권한을 지닌 이들은 현장에 없다. 마치 조달청이 있듯이, 개발청을 신설해 범정부적 시스템 수요를 처리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 최근에는 개발자들이 실무 현장으로 흩어져 나간다는 뜻의 ‘개발자 디아스포라’가 트렌드다. 그래서 개발자가 금값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화면 [사진 코로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화면 캡쳐]
 
얼마 전 ‘코딩하는 공익’이 현장의 부조리를 하루 만에 코드로 해결해 버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익이나 돼야 강제로 정부의 현장까지 흩어져 파견될 수 있는 것이 개발자다.
 
현재의 공공 인력에 어떻게 디지털 인재를 내재화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도 이미 각종 연구소나 진흥원 등 산하기관의 준공무원은 적지 않은 상태다. 예방접종시스템 구축에는 총 41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한다. 돈도 일자리도 없지는 않건만, 꼭 해야 했을 일에 할 줄 아는 사람은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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