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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자동차→조선株 하락 가능성 커[이종우 증시 맥짚기]

IT경기 둔화 가능성에 아시아 주요국 주가 끌어내려
하반기 미국 소비심리 둔화되면 경제 급랭 우려감도

 
 
미국 증시가 상승 행진을 멈추고 하락장으로 떨어질 경우 국내 증시도 박스권을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중앙포토]
 
미국과 우리나라, 더 크게 보면 서구 선진국과 아시아 주요국의 주가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3대 주가지수(다우존스·S&P500·나스닥)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 유럽도 연일 고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우리 시장은 며칠 사이에 최고점에서 4% 넘게 떨어졌다. 대만도 비슷한 모습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아시아 주요국 주가 하락의 원인을 중국에서 찾았다. 중국 정부가 플랫폼과 사교육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통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가가 내려갔고, 그 영향으로 주변국 주식시장도 약해졌다는 것이다. 최근 이 설명의 힘이 약해졌다. 중국 주식시장의 하락이 멈춘 후에도 아시아 시장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 찾은 게 IT이다. 나스닥을 제외하면 미국 시장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유럽은 금융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IT가 하락하더라도 시장이 크게 타격이 받지 않는다.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IT하드웨어와 장비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39%로 대단히 높다. 2등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업종보다 비중이 네 배가 넘는다. IT 업종이 시장에서 과다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대만도 비슷하다. IT 비중이 큰 만큼 해당 업종의 경기와 실적에 따라 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최근에 IT 업종 중 특히 반도체 주가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7개월 가까이 8만원을 지켜오던 삼성전자 주가가 최근 7만원 대로 떨어진 후 하락에 속도가 붙었다. SK하이닉스는 10만원을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반도체 주가 하락은 외국인 매도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일주일 동안 7조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을 7조6000억원 어치나 내다 판 걸 감안하면, 시장이 아니라 반도체가 외국인 매도 대상이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전망에서 시작된 외국인 매도가 시장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선진국 경기둔화 우려가 코스피 끌어내려 

외국인 매도가 하락의 원인이 되자 외국인이 왜 반도체 주식을 내다 팔까가 궁금해졌다. 하반기에 반도체 가격 상승이 둔화할 가능성이 큰 역할을 했다.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한 산업이어서 제품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이익이 급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피하려는 것이다. 반도체 가격 전망이 나빠지면서 이익 전망도 영향을 받았다. 이익수정비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한 달 전에 비해 이익 전망치가 높아진 보고서 수에서 낮아진 보고서 수를 뺀 것이다. 100개의 보고서 중 이익 전망이 올라간 게 70개, 내려간 게 30개라면 이익수정비율이 40%가 된다. 3월에 80%까지 올라갔던 SK하이닉스의 이익수정비율이 최근 0%로 떨어졌다. 
 
이익이 이전보다 좋아질 거라 전망하는 사람과 나빠질 거라 전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비슷해졌다는 의미다. 7월 들어 삼성전자의 수정비율도 고점을 친 후 내려오고 있다. 반도체 가격 전망이 이익 기대에 영향을 주고, 이익 전망이 다시 주가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 경기 둔화도 우리 시장을 약하게 만든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 경기가 둔화할 경우 선진국시장이 더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 선진국 경기 둔화 이상으로 아시아 지역의 경기가 나빠지기 때문에 우리 시장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좋으냐 나쁘냐를 가지고 경기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초까지 해당 지표가 유례없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최근에 마이너스로 내려왔다. 지난해 4분기에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월등히 좋게 나왔지만, 최근에는 예상에 못 미치는 지표가 다수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예상치가 지나치게 높아져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생긴 결과다. 과거 예를 보면 이 지표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후 최소 두 달, 길면 넉 달까지도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지금에 적용해 보면 최악의 경우 올해 말까지 경제지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의 8월 소비자신뢰지수지수가 70.2로 7월 81.2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2011년 이후 최저치일 뿐 아니라 지난 50년 사이 있었던 여섯 번의 큰 하락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로 떨어진 폭이 크다. 2분기 미국 경제가 6%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건 소비 증가율이 12%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만약 소비심리 둔화가 현실이 돼 하반기에 소비가 약해질 경우 미국 경제가 급랭할 가능성이 있다. 상반기에 공급보다 소비가 경제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는데, 소비가 둔화할 경우 이는 성장둔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연말까지 코스피 박스권 탈출 어려워  

지난 13일 코스피가 3200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 명백해진 게 하나 있다. 올해 주식시장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에 코스피가 3500이나 4000을 넘을 것처럼 흥분했던 걸 감안하면 초라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부분은 박스권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이다. 시각은 둘로 나눠진다. 하나는 에너지를 모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다. 지난해에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에 일정 기간 휴식이 불가피하고 지금이 그 상태이지만 힘을 모은 후에 주가가 크게 상승할 거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8~10월 사이에 주가가 그런 모습이었다. 코스피가 1430에서 2300까지 상승한 후 석 달간 힘을 모았고 그걸 동력으로 다시 3200까지 올라갔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주가가 하락한 이후 개인 자금이 20조원 넘게 시장에 들어왔다. 이 돈이 아직 수익을 많이 내지 못했기 때문에 빠져나가지 않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쓰일 수밖에 없는데 사서 물리는 과정을 거쳐 가용자금이 줄어들 경우 힘이 약해지게 된다. 8개월간 주가가 횡보해서 지금은 주식을 팔았던 사람들이 주식을 다시 사기보다 지켜보고 있다. 주가가 다시 상승하면 매수에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돈을 빼 나갈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소모를 거쳐 주가가 하락하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최종 모습이 어떤 형태가 될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전체 구도는 에너지 축적에서 소모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지금이 힘을 소모하는 상황이라면 반도체 주가 하락은 반도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형주를 순차적으로 끌어내리는 형태로 발전할 텐데, 반도체가 조용해지면 자동차가 하락하고, 자동차 하락이 끝나면 조선이 내려가는 식이 될 것이다.  
 
주가가 박스권을 이탈해 하락으로 기울어지는 여부는 선진국 시장이 최종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선진국 시장이 사상 최고치 행진을 멈추고 하락으로 기울 경우 우리 시장도 박스권을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금은 시장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게 맞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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