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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의 부활…RG 발급 양극화에 중소 조선사는 ‘고사 위기’

[금융 지원 못 받는 중소 조선사①]
상반기 RG 발급 6조원 가운데 소형 조선사 발급은 25억원에 불과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 한도도 부족해 지원 받지 못해



 
지난 2017년 1월 일감 부족 등으로 현대중공업의 협력업체 공장이 텅 비어있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 조선업계가 수년째 이어진 불황에 마침표를 찍고 재도약의 뱃고동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중소형 조선사들은 재도약은커녕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들이 대형 조선사 위주의 금융 지원에 골몰하는 사이, 중소형 조선사들은 존폐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른바 ‘K-조선 재도약의 명암’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주요 은행들의 지난 20년간 RG(선수금 환급 보증) 발급 현황을 추적한 이유다. 조선사 파산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 금융사가 선주에 선수금을 대신 환급하기로 약정하는 보증인 RG는 조선사 금융 지원의 핵심이다.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30일)에만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들의 RG 발급 규모는 6조원을 넘어섰지만, 같은 기간 소형 조선사에 대한 RG발급은 25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사가 밀집한 부산·울산·경남 등에 위치한 지방은행이 지난 10년간 소형 조선사에 발급한 RG 건수도 6건에 그쳤다.  
국내 주요 은행은 부실 대출을 우려해 소형 조선사 RG 발급을 꺼리고, 신용보증기금의 중소 조선사 RG 특례보증 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K-조선 재도약 속 침몰 위기에 내몰린 중소 조선사 문제와 해법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정부가 조선 재도약을 외치고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가 9월 현재 올해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등 국내 조선업계의 부활이 임박한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 중소 조선사들은 여전히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중소 조선사들에 대한 RG(선수금 환급 보증) 발급이 사실상 전무(全無)해, 중소 조선사들이 일감이 있어도 선박을 수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건조 과정에서 인도 지연이나 파산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융사가 선주에 선수금을 대신 환급하기로 약정하는 보증이다. 통상 선주는 RG 발급 후 선박 대금을 지급하고, 조선사는 이 대금으로 원자재 등을 구매해 선박을 건조한다. RG 발급이 없으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30일) 국내 주요 은행들의 RG(이행성 보증 제외) 발급 현황을 보면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신한은행, NH농협,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포함한 8개 은행은 대형 조선사(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에 무려 59억4800만 달러 규모의 RG를 발급했다.  
 
금액별로 보면 올해 상반기 대형 조선사에 가장 많은 RG를 발급한 은행은 수출입은행이다. 수출입은행의 올해 상반기 RG 발급 규모는 19억6790만 달러로 집계됐다. 다
음으로는 10억6360만 달러의 RG를 발급한 산업은행이다. 이는 8개 은행 전체 RG 발급 규모의 절반이다. 이어 신한은행(6억5400만 달러), NH농협(5억9650만 달러), KB국민은행(5억6720만 달러), 하나은행(4억8340만 달러), 우리은행(4억6890만 달러), IBK기업은행(1억4650만 달러)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8개 은행들이 중형 조선사(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대선조선, 대한조선)에 발급한 RG 규모는 4억5500만 달러에 그쳤다. 대형 조선사의 RG 발급 규모와 비교하면 13분의 1 수준이다. 중형 조선사의 상반기 RG 발급의 대부분은 산업은행(4억2510만 달러)이 차지했다. 농협,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5개 은행은 상반기 중형 조선사에 단 한 건의 RG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
 
소형 조선사(대·중형 조선사 제외한 모든 조선사)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기업은행을 제외한 7개 은행 모두가 상반기 소형 조선사에 RG를 발급하지 않았다. 기업은행이 발급한 RG 규모도 210만 달러에 불과했다. 조선업 불황 등의 여파에 시달리는 중소형 조선사들이 수년째 RG 발급 기준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형 조선사 중심으로 RG 발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8월 열린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의 2021년 제2차 조선산업위원회에선 중소 조선사들이 RG를 발급 받지 못해 일감이 있어도 수주를 포기하는 문제 등이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당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2021년 상반기 대형 조선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수주량을 달성했으나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업체는 원자재 가격 급등, RG 발급 문제, 주 52시간제 시행 등 복합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중소 조선사들과 중기중앙회 등에 따르면 중소 조선사들이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수주 금액이 큰 해외 수주를 추진할 때, RG가 없어 최종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사례가 누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중소 조선사의 신용도를 넘어서는 금액을 수주하면 수주 금액만큼의 RG를 확보해야 하는데, RG가 없어 최종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중소 조선사들의 경영 악화 등을 감안하면 중소 조선사에 대한 무분별한 RG 발급은 이른바 ‘부실 대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통상 국책은행은 대형 조선사 위주로 RG를 발급해왔고, 중소 조선사의 경영 악화를 고려하지 않은 RG 발급은 부실 대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신용보증기금이 중소 조선사 대상 RG 특례보증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중소 조선소 대상 RG 펀드 운영 확대해야” 

문제는 신용보증기금이 운영 중인 중소조선사 RG 특례보증이 일반 기업과 동일한 신용도 기준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의 RG 특례보증 대상 중소 조선사는 50여개 업체인데, 일반 기업과 동일한 신용도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실제 이 보증을 이용할 수 있는 중소 조선사는 1~2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 신용보증기금의 RG 특례보증 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조선업이 지역 경제와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중소 조선사에 대한 RG 특례보증 한도를 늘리거나 중소 조선사만을 위한 별도의 RG 자금 펀드 등을 운영해 중소 조선사 RG 발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9월 9일 발표한 ‘K-조선 재도약 전략’에서 RG·제작 금융 특례보증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신용보증기금의 RG 특례보증 현행 한도(150억원)의 상향 조정을 검토한다는 것.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RG 특례보증 한도 상향에 대해 당국과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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