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실손 청구 불편? 바꾸겠습니다”…의료계 반대 넘을까 [보험톡톡]
이재명, "현 체계 불합리하다" 실손 간소화 공약 발표
의료계 반대에는 ‘사회적 합의 보겠다’ 강조
13년 묵은 실손 간소화, 이재명 당선 후 추진할 수 있을까
“이재명이 제대로 바꾸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보험업계 ‘13년 묵은 과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공약을 발표하며 보험 관련 제도를 제대로 손 보겠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39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들의 청구절차 축소, 행정비용 감소 등의 이유로 보험업계가 오랫동안 법안 개정을 추진했지만 ‘보험사 배만 불리는 제도’라고 주장하는 의료계 반대로 무산돼왔다. 이에 업계에서는 과연 이재명 후보가 당선 후 의료계 반대를 넘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공약에 의료계 즉각 반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소비자가 병원 이용 후 따로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자동으로 실손보험금이 청구되는 체계다. 하지만 병원 등 의료계 반대로 수년째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의 공약 발표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공약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의료기관은 국민 개인과 보험사의 사적 계약 편의를 위해 청구 대행 업무를 하게 된다”며 “행정 부담과 비용이 증가하고 보험금 지급이 거부됐을 때 민원을 감당해야 한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말했다.
또 “국민은 청구 과정에서 알리기 싫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노출해야 한다며 "빅데이터화 된 환자 정보를 이용해 보험사가 보험 약관 개정시 지불 거부 사유를 만들기 용이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민단체도 반대의사를 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도 같은날 논평을 내며 “실손 간소화가 진행되면 환자의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필요 이상으로 집적된다”며 “환자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보험료 인상, 환자의 가족력과 같은 개인정보를 이용한 보험 가입 거절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은 이 후보의 공약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진행되면 보험금 청구가 자동으로 이뤄져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출액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정적 비용 감소와 소비자 편의 향상 등 긍정적인 부분을 감안하면 보험사들도 실손 청구 간소화 추진을 원하는 분위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비단 실손보험뿐 아니라 모든 보험금 청구 절차에 있어서 간소화를 도입하고 있다”며 “종이서류를 관리하는 것은 인력이나 비용에서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도 이달 초 신년사에서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 법안 국회 통과를 지속적으로 건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3년째 좌절된 실손 간소화, 합의가 관건?
하지만 지난해 11월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의원들이 의료계 눈치를 심하게 봤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후보가 ‘병의원 등 이해관계자들과 사회적 타협을 보겠다’고 밝힌 이유도 의료계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공약 발표 다음날(8일) 자신의 SNS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부연설명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13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아무리 이재명이라도 힘들 것’이라는 주위 여론을 의식한 게시물로 해석된다.
그는 SNS에서 “보험사, 그리고 의료계와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며 “국민 편의 증진이라는 목표와 의지가 명확하다면 구체적인 방안 마련과 추진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39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후보 입장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원하는 가입자가 많은 만큼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공약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4월 소비자단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입자 47.2%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46.6.%는 '청구서류를 챙길 시간 부족'이라고 답했다. 적어도 가입자 2명 중 1명은 실손보험금 청구절차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이 후보도 SNS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 이유에 대해 “국민들이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서류 준비 번거로움, 불편한 절차 등으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당선돼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험업계와 의료계간 사회적 합의를 위한 장은 그동안에도 여러 번 마련됐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 당선시 의료계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반대 여론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가 무리하게 법안 개정을 밀어붙였다가 의료계의 심한 반발을 받으면 향후 국정 운영에도 부정적인 여파를 미칠 수 있다. 이에 이 후보가 우선 사회적 합의를 보겠다고 밝힌 만큼 반발이 거센 의료계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절차가 복잡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는 가입자들의 권리도 중요하다”며 “적어도 보험금을 내는 가입자들이 청구 간소화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의료계는 실손 간소화 후 당국이 비급여 진료비에 딴지를 걸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중재안이 나와야 의료계도 한발 물러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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