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논쟁은 미래에서 온 사람들과의 대화다 [이윤정 에코앤로]
독일 헌재 “미래세대 제약해선 안돼”
연방기후보호법 위헌 판결 개정 명령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나는 주말에 잠깐씩 교육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부모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 본 동영상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소아정신과 교수님의 인터뷰였는데,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부문이, ‘부모와 아이는 3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으니 (서른 살 이후에 아이를 낳았다면 그 이상) 부모는 이 아이를 “미래에서 온 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30세 전후일 것이므로, 부모가 30년 이후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참 좋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30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가져야 할 것이고, “아빠 클 때는 없어서 못 먹었는데, 너희들은 차려 준 밥도 안 먹냐?” 같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잣대로 아이를 비난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아이의 단기 성과 (예를 들어 영어·수학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대범함도 단련해야 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올해, 2022년에 태어난 아이는 진짜로 2052년에 서른 살이 되어 2052년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30년 후 이 세상의 주역이 되어 살아 갈 아이들의 문제이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전 세계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훨씬 아래로 유지하고,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IPCC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으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하여야 하고, 2050년경에는 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 (넷 제로) 상태를 달성하여야 한다고 한다.
정부·기업 상대 기후·환경 소송 증가
전 세계에서 환경단체나 개인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이유로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미국 콜롬비아 로스쿨 데이터베이스에 취합된 전 세계 기후변화 소송은 총 2,002건이고, 이 중 약 70%는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것이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건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탄소 대량 배출 기업, 기타 화석 연료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식품, 농업, 운송, 플라스틱, 금융업에 종사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들은 2013년 네덜란드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Urgenda Foundation v. 네덜란드 정부),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20일, 유럽인권조약상의 생명권, 개인 생활권 등에 의거하여 네덜란드 정부는 과다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 변화의 위험을 방지해야 하므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줄여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지구의 벗 등 환경단체들은 위와 유사한 논리로 2019년 4월 글로벌 에너지회사 A 사를 상대로 온실가스 감축 소송을 제기하면서, A사의 사업모델상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불충분하여 파리협정에서 설정한 목표에 위험을 가함으로써 인권과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A사는, 사기업은 파리협정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탄소 배출 한도와 관련한 법적 규제가 존재하지 않아서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관할 지방법원은 2021년 5월 26일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A사는 기존 사업모델에서 계획하였던 것 보다 더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하여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에너지 안보 중요하지만 탄소중립 더 중요해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4월 29일, 국가는 기후변화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미래세대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현행 독일 연방기후보호법 상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관련 규정은 미래세대에게 탄소예산을 소비할 권리를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그 결과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헌법 위반이 있다며 독일 연방기후보호법 일부 위헌결정을 발표하면서 2022년 말까지 감축 목표를 개정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서 독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개정되었다).
올해 들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가격 폭등과 인플레 문제 등 정치, 경제적 불안 요소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전에 비해 어느 정도 덜한 것도 사실이다. 유수의 글로벌 대기업들의 대주주인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020년과 2021년에는 투자 대상 회사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했던 데 비해 올해는 대부분의 기후변화 관련 주주결의가 너무 극단적이고 규범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황이 바뀌어서 전통적인 연료 (화석연료) 생산에 단기적으로 더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기업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고, 경영진의 판단도 블랙록과 유사하리라고 생각한다. 물가와 금리가 상승하고 있고, 에너지 안보가 중요한 위기상황에서 당장 살아남기도 힘든 판국에 30년 후 탄소중립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끼고 있을 기업들도 상당히 있으리라 추측된다.
물론, 현실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 곧 다가올 어쩌면 더 큰 위기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절대 게을리 하면 안될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하루하루 살기 힘들어도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여야 하는 일을 포기하면 안되듯이, 기업 경영자는 현실에서 당면한 위기 해결에 몰두할 때 조차도 30년 후의 투자자들, 소비자들이 우리 기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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