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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한국의 코인 정책 [김형중 분산금융 톺아보기]

기업이 NFT 판매해도 현금으로 교환 못 해
그림자 규제에 몸사리는 은행들…실명계좌 발급은 요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 법인들이 너도나도 대체불가능토큰(NFT) 산업에 뛰어들면서 코인을 다량 확보하고 있다. NFT 판매대금으로 이더리움이나 클레이 등 코인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코인을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법인은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계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실명확인계좌가 없으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개인이든 법인이든 코인을 사고 팔 수 없다. 그래서 법인이 확보한 코인들이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해외 거래소에서 달러 또는 유로로 바꿀 수 있지만 국내로 반입할 때 외환관리법 저촉 여부를 살펴야 한다.
 

한술 더 뜨는 은행 

실명확인계좌를 발급하는 은행이 지난 해까지만 해도 케이뱅크, NH농협은행, 신한은행뿐이었다가 2022년 들어 전북은행이 하나 더 추가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명확인계좌라는 이상한 제도를 쓰는 나라가 한국인데, 게다가 그 많은 한국의 은행 가운데 실명확인계좌를 주는 곳은 고작 네 곳뿐이다.
 
힘들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통과해야 가상자산사업자 신고가 가능하다. 현재 신고가 수리된 거래소는 26개이지만 실명확인계좌를 받은 곳은 다섯 곳에 불과하다. 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그리고 고팍스 등 다섯 곳에서는 원화로 코인을 거래할 수 있지만, 나머지 21개 거래소에서는 원화로 코인을 사고 팔 수 없다.
 
‘특금법’으로 5개의 원화마켓 거래소와 21개의 코인마켓 거래소라는 두 그룹을 만들어 그 차별의 책임을 고스란히 은행들에 전가한 게 한국의 유능한 금융당국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신세계백화점이 만든 푸빌라 NFT 1만개가 완판되었는데 1차와 2차에서는 개당 250 클레이, 3차에서는 300 클레이에 팔렸다. 
 
그런데 신세계백화점은 법인 명의로 거래소에서 클레이를 거래할 수 없으니 그냥 보관하거나 장외시장(OTC)에서 불법적으로 원화와 교환해야 한다. 물론 신세계백화점 입장에서 10억원이 조금 넘는 NFT 금액은 껌 값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세계백화점이라면 그 클레이를 당장 현금화하지 않고 쥐고 있어도 된다.
 
현대자동차의 별똥별 NFT, 롯데홈쇼핑의 벨리곰 NFT 등을 들고 다른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이 기업들 역시 법인계좌 장애물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대기업들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만 스타트업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 법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사활이 걸렸으니 슬픈 일이다.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힘들다는 기업들이 많다. 한국의 금융당국이 그림자 규제로 기업을 옭아 죄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규제란 금융당국이 공문·지침 등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특정 행위를 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공문을 통한 규제를 행정지도라고 부르고, 구두 지시에 따른 규제를 창구지도라고 부른다. 법에 근거하지 않았다면 이 지도들은 불법이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은 뒤탈 가능성을 우려하여 규정이 애매할 경우 그림자 규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국에 항변하지 않고 무조건 금융당국의 지시를 따르고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은 금융당국을 향해 그림자 규제를 철폐하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은행은 규제 관점에서 고객들에게 떳떳할까? 그렇지 않다.
 
이럴 때 시인 김수영의 시가 생각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은행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은행이 금융당국의 규제에 이골이 나서 금융당국보다 더 강력하게 자기검열을 펼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코인을 사거나 팔려고 계좌 개설을 요청하면 은행 창구에서 무조건 거절당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 통장 개설이 가능하다. 다 그렇게 개설하고 있다. 통장을 개설하고 다시 20일 이내에 또 계좌를 트려고 하면 은행 창구에서 역시 제동이 걸린다.
 
법에 없는 이런 규제로 고객을 힘들게 하면서 은행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 연약한 풀’ 노릇을 하고 있다. 은행은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법보다 더 무섭다.
 
은행들의 용기 없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명확인계좌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거래소들은 은행의 안중에 없다. 오로지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가능한데 불가능하다? 

정권이 바뀌니 또 여러 제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핀테크산업협회가 금융규제혁신회의 출범식에서 제안한 아래 내용을 살펴보자.
협회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법인·기관투자자 투자 허용,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요건인 실명확인계좌 발급기준 완화 등을 요구했다.
 
투자나 계좌 발급이 법적으로 금지된 게 아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그림자 규제 때문이거나 아니면 은행의 자기검열의 결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애당초 실명확인계좌 발급기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이상하다. 은행이 알아서 결정하면 될 일인데 기준 완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꼭 요구하고 싶다면 발급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야 맞다. 은행들이 먼저 알아서 기는 한 차세대 금융은 요원하고, 은행은 핀테크 기업에 밀려날 것이다.
 
은행 준법감시인이 잘못된 그림자 규제에 대해 강력하게 항변하여 이를 바로잡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제발 듣고 싶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식민지의 순사 이야기도 있다. 어찌 보면 지금 한국의 은행은 왜정시대의 순사처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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