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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룹 1000조 투자 약속, 지킬 수 있을까

[글로벌 경영 위기, 우리 기업 대응은③]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투자 힘들 것”
당초 투자 계획과 큰 차이 없어 “가능”

 
 
 
지난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다짐하는 행사 모습.[연합뉴스]
삼성 450조원, SK 247조원, LG 106조원, 현대차 63조원. 지난 5월 국내 주요 기업들이 향후 5년간 투자 계획을 줄이어 발표했다. 4대 그룹이 약속한 투자액만 약 860조원, 10대 그룹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1000조원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통 큰 투자 계획에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화답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이 계획대로 투자를 이행할 수 있을까다.  
 
계획대로 투자가 이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경기가 나쁘다는 점을 악재로 꼽는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조사 결과 기업 체감 경기 전망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기업경기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 조사를 보면 7월 BSI 전망치는 92.6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91.7) 이후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전달보다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전경련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대변되는 이른바 3고(高) 현상이 국내외 소비와 기업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당분간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초 1100원 수준에 불과하던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최근 1300원까지 치솟았다. 원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20% 가까이 상승하고 원자잿값이 함께 오르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졌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과 원화 환율의 변동요인 및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가와 환율 변동이 최종재 생산 비용에 반영되기까지는 5개월이 걸리고, 이로 인한 경제성장률 둔화 영향은 10개월 이후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위기가 내년 초에나 다소 완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에서 “(하반기 경기 침체로 인해) 전술적 측면에서 투자 지연이 있을 수 있다”며 투자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청주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했다.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올리고도 투자를 일단 멈추기로 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매출 13조8110억원, 영업이익 4조1926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가 13조원대 분기 매출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를 주저하는 건 향후 경기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은 직접 설명회에 나와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둬 축하하는 자리가 돼야 하지만 하반기 시황과 내년 불확실성 때문에 어려운 말씀을 많이 드린다”며 “SK하이닉스의 3분기 출하량은 기존 계획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정된 계획, 플러스알파(α)…투자 여력 충분 

투자 계획이 예상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기업의 투자 의지가 강력해서 나타나는 결과라기보다는 기업들의 약속 자체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는 해석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갑자기 나온 투자 계획에 내심 당황했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이미 회사가 발표했던 계획에 플러스알파(α)의 계획을 녹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고 했다.  
 
삼성의 경우 지난해 8월 ‘3년간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4만명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 투자 계획은 주력 산업인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단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평균 8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5년간 450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연간 9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당초 투자 계획을 연평균 80조원에서 90조원으로 늘려 잡은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10조원은 엄청난 규모의 금액이다. 주요 대기업도 연 매출로 10조원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4조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삼성이) 휘청거릴 만큼 투자하기 무리한 금액은 아니다”라며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삼성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SK도 비슷하다. SK는 지난 5월 향후 5년간 247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이 가운데 179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했다. 그런데 SK그룹 핵심 회사 중 하나인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밝힌 투자 계획을 보면 경기도 용인에 2028년까지 120조원을 투입한다는 게 핵심이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집적단지)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곳에 4개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D램·낸드플래시와 같은 주력 반도체와 차세대 미래 반도체 생산 거점까지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올해 발표한 투자 계획의 70% 이상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으로 확정돼 있던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도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단기간에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투자 발표는) 대부분 장기간 추진하던 사업이나 고민하던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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