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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규제는 모두 철폐해야"

[인터뷰] 박병원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규제혁신 성과는 해당 업종 고용·투자 성과로 평가
노동자 선택 폭 넓혀주는 점진적 노동개혁 시급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 회장은 노무현정부 재정경제부 차관, 이명박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다. 최근 민관 합동의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으로 위촉됐다. [이영훈 기자]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 회장이 금융규제혁신의 재판관으로 돌아왔다. 노무현정부 재정경제부 차관, 이명박정부 경제수석으로 정파와 이념에 관계없이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이자 우리금융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거친 그는 최근 민관 합동의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으로 위촉됐다.  
 
최근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박 의장을 만났다. 그는 금융규제개혁과 관련,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규제는 기본적으로 모두 철폐해야 한다”며 “규제혁신의 성과는 해당 업종에서 고용과 투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개혁과 관련해선 “제도를 획일적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기득권과 싸우려 하지 말고, 기득권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Q : 금융규제혁신회의의 역할은.  
A : 출범식 첫 회의에서 규제개혁의 판사 역할을 하겠다고 했어요. 금융위나 금감원은 피고 역할을 할 각오를 하라고 했지요. 금융업계나 업권별 협회는 원고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 자세로 일하자고 했습니다. 규제개혁을 철저히 업계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얘기지요.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신은 피고보다는 원고의 변호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규제개혁을 위한 기본자세는 잘 돼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 업계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그대로 존속시킬지 폐지할지 최종 심판은 금융위가 아니라 이 혁신회의에서 담당해볼까 합니다.
 
Q : 금융규제 혁파를 위한 기본적인 전략은.  
A :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는 규제는 모두 철폐하자는 입장입니다. 금융산업의 종주국 영국만큼만 하면 됩니다. 왜 다른 나라에서 안 하는 규제를 굳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두바이가 성공 사례예요.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국제금융허브를 주창하던 2003년 비슷한 시기 두바이에서도 MENA(이슬람권)의 국제금융허브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년이 흘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우리나라 금융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데 두바이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업권에서 해외 선도기업을 유치하며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비결은 소프트웨어를 영국식으로 전환한데 있어요. 두바이금융센터에서 금융업을 영위하는 건 영국에서 영위하는 것과 동일하도록 했지요. 지금 한국과 두바이의 금융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Q : 규제혁신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하실 겁니까.  
A : 규제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투자와 일자리입니다. 금융규제 혁파의 성공 여부도 은행 증권 보험 업종별로 해당 업종에서 투자와 고용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여부로 평가할 겁니다. 만약 특정 업종에 대해 규제혁신을 했다고 했는데 주식시장에서 해당 업종의 주가가 미동도 안한다면 그 규제혁신은 무의미한 것이예요. 단순히 찔끔찔금 규제 몇 건 없앴다고 혁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해당업종의 투자활성화와 고용창출로 증명해야 합니다. 특히 외국인투자까지 유치하면 100점을 주겠어요.  
 
Q : 금융위원장이 혁신의 최우선 과제로 금산분리를 꼽았습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실 예정입니까.  
A : 금산분리, 사실상 은산분리는 지금 별 의미가 없어졌어요. 은산분리는 재벌(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해 대출 재원을 독식하는 것을 막는다는 게 목적인데 지금은 거액의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재벌은 없어요. 투자를 받든 회사채를 발행하든 국내는 물론 뉴욕과 런던 등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요. 더욱이 비금융업자들이 이미 금융시장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어 이미 은산분리는 포기됐다고 봐요. 다 죽은 규제는 빨리 사망선고를 내려야 합니다. 
 
Q : 노동개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A :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는 적대관계가 아닌 순망치한의 의존관계입니다. 노동은 노동과 경쟁하고 자본은 자본과 경쟁하는 겁니다. 노동법에 의한 노동시장 규제가 노동자를 위한 것이고 이를 완화한다면 자본가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건 좌파의 프레임일 뿐입니다. 노동규제의 수혜자는 가장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10%정도의 노동자들 뿐 나머지 노동자나 미취업자, 실업자들은 입장이 달라요. 이들에게 노동규제는 불리한 경우가 많지요. 최저임금규제는 그 이하의 임금에라도 취직하고 싶은 노동자에 대한 규제이기도 합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가 320만명 정도 된다는 것이 그 증거죠. 주 52시간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종마다 노동 강도는 다를 텐데 왜 획일적으로 52시간이어야 하는 거죠? 당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를, 당신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Q : 노동개혁의 우선 과제는.  
A : 본질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입니다. 채용과 해고의 유연성, 임금체계의 유연성 두 기둥입니다. 해고가 불가능하니 채용을 잘 안합니다. 그런데 해고를 쉽게 해 주는 법 개정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결국 임금체계의 유연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생산성은 점점 떨어지는데도 임금은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호봉제를 없애 나가야 합니다.  
 
Q : 노조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A : 한날 한시에 호봉제를 철폐하고 연봉성과급제로 가자고 한다면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요. 사실 호봉제에서 연차가 높을 때 많은 연봉을 받는 건 연차가 낮은 시절 적게 받았던 걸 보상하는 면도 있습니다.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 연봉제, 성과급 중심의 새로운 임금체계 도입을 획일적으로 시행하면 저항이 큰 이유입니다. 노동자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적용하든지 아니면 신입사원부터 점진적으로 실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도 20년 후면 모두 직무급제로 전환될 겁니다. 20년 전에 시작했으면 지금 거의 끝나 있겠죠. 노동개혁도 노동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득권과 정면대결을 해서는 이기기 힘듭니다.  
 
Q : 결국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자는 게 핵심이군요.  
A :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 노동자란 노조의 울타리에 있는 최상위 10% 노동자가 아닌 그 아래에 있는 노동자와 미취업자를 말합니다. 미취업자를 노동시장에 원활히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게 노동개혁입니다. 최상위 10% 노동자의 기득권과 싸우려 하지 말고 그 기득권은 유지시켜주되 취약계층 노동자들, 실직자, 구직자들이 원하는 것을 막지 말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면 사용자도 그 반사적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노동자 전체가 같은 입장은 아닌 거지요. 획일성은 규제의 다른 얼굴입니다.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방식의 점진적 개혁이라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박 의장=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17회 행정고시 합격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재정경제부 1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전국은행연합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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