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이 쌓아올린 사상누각…돈줄 마르자 여기저기 ‘곡소리’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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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이 쌓아올린 사상누각…돈줄 마르자 여기저기 ‘곡소리’

시장 분위기 급변…스타트업 투자 난항
오버밸류 난무하며 키우던 덩치 부메랑
자금난 빠진 스타트업 대규모 구조조정
‘대박’ 그리던 직원들 하루아침 날벼락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광장.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광장. [연합뉴스]

“최근 펀딩(자금유치)에 난항을 겪는 기업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업체마다 BEP(손익분기점)을 맞춘다고 임직원들부터 줄이는 추세입니다.”
 
최근에 만난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자금 유치 상황을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뭉칫돈을 우습게 모으던 스타트업 분위기가 몰라보게 변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투자 기조가 보수적으로 변한 상황에서 VC들도 투자를 망설일 수 밖에 없다”며 “특히 IPO(기업공개)가 임박한, 기업가치가 수 천억원에 달하는 스타트업 투자 유치 문제가 더 크다”고 진단했다.  
 
끝 모르고 덩치를 키우던 스타트업 투자가 막히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 넘쳐나는 유동성에 거침없이 유입되던 투자금이 몰라보게 줄어든 여파다. 후폭풍은 생각보다 빠르게 몰아치고 있다. ‘대박의 꿈’을 안고 스타트업에 합류한 임직원 대상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자본시장에서는 향후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여서 칼바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대박의 꿈’ 안고 입성한 스타트업…분위기 급변
최근 몇 년새 취업준비생과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도, 금융기관도 아닌 스타트업이었다.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와 눈에 보일 정도로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이 성취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한 AI(인공지능) 기반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스타트업 입사를 결정했다. 그는 “대기업 입사 보다 스타트업에서 주도적인 업무를 하는 게 더 났다고 생각했다”며 “회사 성장 때 수반되는 인센티브와 같은 금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VC는 물론 회계·법무법인 가릴 것 없이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적지 않았다. 실패를 감안하더라도, 속된 말로 ‘대박’을 위해 장래를 베팅해보겠다는 결심이 많아진 결과였다.  
 
자본시장 분위기도 이러한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금리 기조에 넉넉해진 유동성(시중자금)이 공격적으로 투자처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초기 기업에 씨 뿌리듯 자금을 집행하는 한편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예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에 거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투자금 대비 수익을 실현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관대함’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IPO 시장 열기가 역대급으로 치달으며 수 천대 일 청약 경쟁률이 어렵지 않던 상황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시장이 받쳐주다 보니 상장이 유력한 공모주 프리IPO나 시리즈 투자에서 자금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파티는 오래가지 않았다. 물가·금리·달러·원자재 인상이 맞물린 이른바 ‘쿼드러플 인플레이션’ 국면이 올해 본격화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투자자를 골라 받던 스타트업 분위기가 일순간에 가라앉은 데 걸린 시간은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인천 연수구에 있는 스타트업파크를 방문하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9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인천 연수구에 있는 스타트업파크를 방문하던 모습. [연합뉴스]

자금난에 대규모 구조조정…혹한기는 지금부터
아이러니한 점은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던 IPO 기대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증시 한파에 공모주 시장까지 덩달아 주저앉으면서 IPO가 수익실현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시드 투자나 시리즈 초기 단계 기업들은 성장 구간이 아직 열려 있는데다 투자 규모도 크지 않아 투자에 나서는 곳이 아직 있다”면서도 “오랜 기간 투자유치를 여러 단계 거치거나 프리IPO에 돌입한 기업들의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좀처럼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공개를 앞두고 투자를 받지 못해 지분 매각에 나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 ‘왓챠’가 대표적이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왓챠는 지난해부터 추진하던 1000억원 규모 프리IPO에서 펀딩에 실패했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한 투자자들조차 없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설령 IPO에 나서더라도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와 마주한 결과다.  
 
투자유치가 가로막혀 자금난에 허덕이는 스타트업들의 선택은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중견 게임업체 베스파는 투자 유치에 실패하자 지난해 6월 기준 367명이던 직원 수를 지난달 105명까지 줄였다.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도 지난해 말 이후 직원 수를 30% 가까이 줄였다.  
 
왓챠도 210명 가까운 직원 가운데 절반 수준인 100명 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대박’을 꿈꾸며 회사에 몸담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날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왓챠는 임대로 부담에 강남에 있는 본사 이전까지 추진 중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연말까지 본사를 경북 김천시로 옮긴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무분별한 투자 난맥상(亂脈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한 VC 심사역은 “예전에 아는 투자사에서 A기업에 투자한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남들도 다 했는데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였다”며 “자금이 넉넉했더라도 보다 꼼꼼하게 투자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회사가 지닌 본질적인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아 후속 투자 유치가 사실상 힘들어진 기업들이 적지 않아서다. 투자 혹한기에 자금난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파산 위험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급 임원은 “유동성이 넘쳐나던 상황에서는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지만 지금은 냉정히 봤을 때 아니다”며 “과도한 밸류에이션을 받고 투자를 받은 기업들로서는 후속 투자 유치가 힘들어지면서 회사의 존폐기로까지 걱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이데일리 기자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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