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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경색과 부채의 역습의 그림자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부채상환부담 늘면 소비성향 줄어
집값 하락 연체 증가 대출 부실화

 
 
미국 달러, 스위스 프랑, 영국 파운드, 유로 지폐의 그림 삽화.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이 경기 침체에 빠져 있고 미국이 6-9개월 뒤에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의 이 말을 비웃기로 하듯 주식시장이 단기 랠리를 세게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는 경기 경고등이 켜져 있고 경기침체를 쉽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랜만에 우리 시장에 온기가 돌고 환율이 급락했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현재의 2.1%에서 1%대로 낮출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채권 금리를 대표하던 LIBOR(London Interbank Offered Rate, 런던 은행간 금리)가 2023년 7월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LIBOR가 말하는 경기침체 위험과 재정건전 중요성

은행 간 자금시장이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담합해 금리를 낮게 조작한 사건으로 LIBOR의 한계는 드러났다.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고 한때 전세계 기축통화로 군림했던 영국 파운드화는 재원마련 대책 없는 감세정책으로 달러대비 환율이 1.03달러까지 가는 수모를 당했다. 영국발 금융위기까지 경고 되는 상황에서 세계는 양적완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였나? 양적완화와는 다르지만 정부가 지정한 돈으로 발행한 정부 채권은 부도가 날 수 없고, 정부는 독점적으로 화폐를 공급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화폐를 발행하여 빌린 돈인 채권을 갚을 수 있다는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은 쑥 들어가 버렸다. 재정건전성이 만능이 아니지만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세계적으로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고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시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상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앙은행이 통화(금리)준칙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정부 역시재정준칙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만큼 사회보장 부담 등으로 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보다 정부부채 비율이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 방안 마련이 긴요하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와중에 부채의 역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유동성 미스매치(Liquidity Mismatch)와 신용경색이 시장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시스템 위기까지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더라도 금융불안에 정부는 회사채 시장과 단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 확산과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플러스알파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는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5대 금융지주회사가 자금시장의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9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조달의 안정성이 낮을수록, 자산의 현금화 가능성이 낮을수록 유동성 불일치는 커지게 되고 해당 리스크는 증가한다. 레고랜드(강원도 지방채 쇼크), 흥국생명(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여부)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투자자의 신뢰 약화와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단기 자금시장은 물론 공사채와 회사채를 포함해 장기 자금시장까지 흔들리고 있다. 자금시장 경색은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고 자칫 금융 위기에 준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저축은행의 재무건전성 지표가 약화되고 중소형 증권사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들 금융기관의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불일치 심화와 유동성 하락 위험을 심각하게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개가 자욱한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가계·기업·정부 부채 급증, 위기의 한국경제

지난해 말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는 106.1%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하는 가계부채 비율 임계수준(80%)을 크게 웃돈다. 가계부채가 임계수준을 넘어서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와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현실에서 복합위기 요인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이 금리 상승과 가계부채이다. 전체 가계부채 중에서 2030 청년층의 빚이 차지하는 비중이 치솟고 있는 점도 문제다.  
 
자산 규모가 청년층보다 큰 40대·50대는 가계부채 비중이 줄고 있는 점과 대조적이다. 2020년 주식 가격이 폭락 후 급등하는 과정에서 청년층 사이에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가 늘었고, '영끌' 주택 구매도 나타났다. 2030 세대의 전세자금 대출과 주택구입자금 대출이 계속 늘고 있다. 60대 이상 연령층의 가계부채가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는 것은 고령화 현상으로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의 빚 증가 속도가 베트남에 이어 2위인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35개 조사 대상 주요국 가운데 1위였다. 1년 전 105.2%보다 낮아졌지만 가계가 국가경제 크기보다 많은 빚을 진 나라는 한국뿐이다.  
 
비금융 기업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홍콩 싱가포르 중국에 이어 35개국 중 4위지만 비율은 117.9%로 역시 GDP보다 많다. 기업들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어 새로 채권, 기업어음을 발행해 만기가 된 빚을 갚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주택관련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56.8%다. 주택관련 대출을 보유한 차주의 신용대출을 포함할 경우 주택시장과 연계된 가계대출 비중은 67%까지 상승한다. 주택 관련 대출 보유 차주의 채무상환부담 정도를 보면 LTI(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가 2021년말 기준 346.4%로 해당 대출이 없는 차주(152.0%)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DSR(소득 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 비율)도 주택관련 대출 보유 차주(47.6%)가 미보유 차주(25.9%)보다 1.8배 높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 자금 대출을 모두 보유한 차주의 DSR은 80% 수준에 달한다.  
 
부채상환부담이 늘면 소비성향이 하락하고, 주택보유 차주는 소득감소나 금리 상승 등 거시경제 충격에 더 취약하다. 주택가격 하락 지역의 대출 연체율이 크고 주택가격 조정 직전 차입으로 주택을 구입한 경우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하는 운명에 있다. 이래저래 시름이 높아지는 한국경제가 이 고난의 시기를 제대로 된 여야 협치로 잘 넘겨야 할 역사적 사명에 놓여 있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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