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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개월 복구 미완했지만…500년만 폭우에 안전 지켰다” [정상화 속도 내는 포항제철소③]

“태풍 매미 때도 안 멈췄는데”…“경영진 고로 중단 판단, 포항제철소 살렸다”

 
 
 
23일에 방문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근 냉천의 모습. [사진 이창훈 기자]
23일 새벽, 포항을 적시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화창한 하늘이었다. 약 3개월 전 서울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침수시킨 냉천의 하늘이 그랬다. 
 
포스코가 당초 계획한 3개월 내 수해 복구 완료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50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덮쳐 물에 잠긴 포항제철소에선 단 한 건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안전이 최우선 원칙인 수해 복구 작업 현장에서도 중대재해는 없었다. “천재지변에 3개월 내 수해 복구 완료는 미완했지만 안전은 지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낮 12시 20분쯤 도착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근 냉천은 고요했다. 다소 강한 바람이 불긴했지만, 포항제철소 전체를 집어삼켰다고 상상하긴 어려울 정도의 하천이었다. 500년 만에 집중 폭우를 비롯해 낮은 제방 높이, 만조 등 사실상의 모든 악재가 겹치면서 빚어진 참극이었다. 
 
수해 당시 상황을 설명한 황종연 포스코기술연구원 그룹장은 “단시간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 반대편보다 낮은 제방 높이, 만조로 1m 정도 높아진 수위 등 모든 악재가 겹친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포항제철소 근처에 있는 이마트 포항점은 침수 피해로 여전히 휴업 중이다.  
 
포항제철소로 이동 중인 차량에서 본 포항제철소 주변에선 점심시간을 활용해 산책하는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3개월 전 모든 지하 배수로가 물에 잠겨 아비규환이었던 포항제철소의 정상화를 암시하는 분위기일까. 포항제철소 내부로 들어서자 건물 곳곳에 안전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상에서 1m 이상까지 물에 잠겼던 포항제철소 내 도로는 깨끗이 정비돼 있었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부소장은 “포항제철소 수해 복구에 78일간 약 100만명이 헌신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30년 ‘고로쟁이’의 고백 “내 평생 최고의 경영진 판단”

 
전날 방문한 포항제철소 3고로 중앙운전실에선 수십 개의 화면에서 풍량, 원료 및 풍량 제어, 쇳물 온도 예측 제어 등에 관한 다양한 수치와 장면들이 쏟아졌다. 힌남노 상륙에 대비해 창사 이래 최초로 멈췄던 포항제철소의 ‘심장’인 고로가 정상 가동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30년간 고로와 함께 근무했다고 밝힌 김진보 포항제철소 부소장은 “힌남노에 대비해 고로 조업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로를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포스코 경영진의 고로 가동 중단 결단은 30년간 고로와 함께 살아온 ‘고로쟁이’로서 지켜봐온 경영진 선택 중에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또한 “우리나라에서 고로가 처음 가동된 1973년 이후 수백 개의 태풍이 상륙했는데, 그간 단 한 번도 고로 가동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며 “고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로 가동 중단 결정을 두고 지나친 대응이란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포스코 경영진은 고로를 멈춰 세웠고, 이 결단으로 고로를 복구할 수 있었다는 게 김 부소장의 말이다. 포항제철소 3고로 바닥 틈에선 쇳물의 빛이 새나왔고, 3고로에선 시뻘건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포항제철소의 ‘심박수’는 정상이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복구 작업 모습. [사진 포스코]
 

2열연공장 지하 8m선 ‘死鬪’ 중

 
정상 가동 중인 포항제철소 ‘심장’인 고로와 달리, 가장 큰 침수 피해를 입은 2열연공장에선 1000명 넘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수해 복구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완료된 2열연공장 지상에선 1m 이상의 위치에 침수 당시 수위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손승락 포항제철소 열연부장은 “당시 밀려들어온 물을 빼내는 배수에만 4주가 소요됐고, 물과 함께 유입된 토사(土砂) 제거에 2주가 걸렸다”며 “오늘(23일)도 1300여명의 인력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철제 계단을 따라 진입한 지하 8m의 2열연공장에는 여전히 침수 피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하 8m의 2열연공장 바닥은 물이 빠져 나오면서 생긴 얕은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괴어 있었다. 지하에 있는 모터 등 각종 설비들엔 침수가 할퀴고 남긴 검은 얼룩이 선명했다. 
 
손승락 열연부장은 “길이 450m, 폭 12m에 달하는 지역이 모두 물에 잠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2열연공장 피해 상황을 전하는 손 부장 사이로 침수된 설비를 옮기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올해 안으로 포항제철소에서 공급하던 제품 모두를 정상 공급하기 위한 직원들의 사투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복구 되겠습니까?” 물음에 명장은 이렇게 답했다  

 
침수 피해 한달 만인 10월 7일 일찌감치 정상 가동한 1열연공장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1열연공장 내부에선 쉴 새 없이 수증기와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손승락 열연부장은 “열연 코일을 어떻게 냉각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다르다”며 냉각 공정을 위해 뿜어 나오는 물에 대해 설명했다.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포스코 1호 명장인 손병락 명장은 “고졸 사원인 자신의 말에 경영진이 움직였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말했다. 압연기용 메인 모터 총 47대 중에 33대를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하는데 성공했고, 나머지 작업도 각 공장 재가동 일정에 맞춰 진행 중이다. 
 
손 명장은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 당시 참담했던 상황에 ‘되겠느냐’는 후배의 물음에 “하면 된다”고 답했다고 밝히면서, 이 말을 현 시점에도 모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창훈 기자 hun8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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