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모독 발언'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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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A씨가 생전 고인에게 반복적으로 폭언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유족들에게 받은 녹취록에서 A씨는 2022년 10월 새벽 방송을 마치고 퇴근한 오요안나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A씨는 "네가 예전에는 신입이어서 실드(방어)를 쳤는데, 지금도 방송을 너무 못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렇게 되면 그냥 잘리거나 기상팀이 없어지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어 "안 그래도 기상캐스터 지금 없어도 된다는 얘기가 너무 많은데 태도까지 안 좋으면 있어야 될 이유가 없다"며 "나는 계속 실드를 쳤는데 '입사한 지 얼마나 됐는데', '아침 방송을 지금 한 지가 얼마나 됐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진짜 일단 기분이 너무 안 좋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오요안나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설명을 부탁하며, 이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자 A씨는 "눈물을 가릴 생각도 없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을 안 하냐"며 "선배한테 그게 할 태도냐. 너가 여기서 제일 잘 났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이후 오요안나는 동료에게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A씨와 있었던 일을 전하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그는 "내가 오늘 라이브(생방송) 하느라 남아서 선배님께 날씨 좀 여쭤봤는데, 나한테 '너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 태도 좋게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며 "내가 뭐 나쁘게 한 적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배님, 뉴스 투데이 팀에서 이야기가 나온 거냐'고 이랬더니 '투데이팀 이렇게 내가 말할 순 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설명했다.지인이 "네가 건방지게 했을리가 절대 없는데"라고 답하자 오요안나는 "잘못을 했어도 내가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최악인가 싶다"고 했다.A씨는 선배로서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퇴근한 오요안나를 회사로 불러들이거나 퇴근 자체를 막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기상캐스터들 앞에서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며 도를 넘는 비난과 인격 모독적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유족 측은 "오요안나를 그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고, 가해자의 감정이 모두 사그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한편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고인은, 생전 MBC 관계자 여러 명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별도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MBC는 지난 3일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하고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2025.02.10 10:39
2분 소요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살인자’라고 칭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전 의원 발언과 관련해 “민주당은 오늘 국회에서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 대통령 가족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뱉었다”면서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에 거친 말을 쏟아낸 것은 한 인간에 대한 인권 유린이며 국민을 향한 모독”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민주당의 공식 사과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한다. 민생을 논해야 하는 국회가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해방구가 된 점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소추안 조사 관련 청문회에서 의사진행 발언 중 “김건희가 살인자다. 김건희, 윤석열이 죽인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지난주 국민권익위원회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김 여사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고인은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 헬기 이송 사건을 담당했다.전 의원의 이와 같은 발언 이후 여권은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108명)은 국회에 전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2024.08.14 22:00
1분 소요![세계 공공의 적 1호된 러시아 푸틴의 진짜 속마음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2/03/04/ecn85135e91-fd01-445b-b5c4-0684e55edea1.353x220.0.jpg)
블라디미르 푸틴(69)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공적 1호가 되고 있다. 2월 24일 이웃 우크라이나를 전격으로 침공하면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가 정책을 둘러싸고 한 주권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전면 침공해 국가 대 국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의 인심을 완전히 잃었다. 혹독한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이유다. ━ ‘최저 지지율 59%’ 푸틴의 러시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다 외교적으로도 고립되는 분위기다. 유엔총회는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표결 참가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채택되는데, 이날 유엔 전체 회원국 193개국 중 181개국이 표결에 참여해 141개국이 찬성하면서 77.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반대는 러시아·벨라루스·시리아·에리트레아·북한 등 5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인도·이란 등 35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 내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조치에 대한 엄중한 규탄으로 채워졌다. 러시아의 2월 24일 ’특별 군사작전‘ 선언을 규탄하고, 무력 사용 또는 위협으로 얻어낸 영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개탄하고,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 군병력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핵 무력 태세 강화 경정도 규탄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보전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으며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아울러 러시아를 거들어온 벨라루스의 불법 무력 사용도 개탄했다. 지난해부터 이날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여온 거의 모든 압박, 위협, 군사작전을 유엔 총회의 이름으로 규탄한 결의다. 당연히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러시아군 최고사령관을 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 성명이나 다름없다. 유엔 총회 결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다. 유엔 총회 결의 정도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지시킬 수도 없다. 군사력과 푸틴의 밀어붙이기 앞에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결의는 현실적으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공식 핵보유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비토권을 보유한다. 하지만 141개국이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은 만큼 러시아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전망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다. 푸틴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국내외에서 위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러시아 내에서는 높은 지지율을 누리면서 ‘푸틴이 아니면 러시아를 통치할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푸틴은 1999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맡으면서 최고 89%이고 최저 59%의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러시아 NGO인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20년 7월 조사에서 푸틴은 60%의 지지율을 보였다. 러시아에서 정치인 푸틴의 지지율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아래에서 총리를 맡고 있던 1999 8월 31%에서 시작해 그해 11월 80%를 기록한 이래 고공 행진을 계속해왔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의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푸틴은 2000년 5월 첫 당선했는데 첫 임기 내내 6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3년 1월 62%를 기록했지만 2014년 5월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85.9%로 치솟았다. 같은 해 9월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시작되자 87%로 올라갔으며, 2015년 6월 역대 최고인 89%를 찍었다. 국가적 위기와 함께 서구세력이 러시아를 포위하고 해치려 한다는 전통적인 배타주의와 대외 공포, 그리고 민족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푸틴에 대적할 만한 정치적인 맞수나 야당이 제대로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지지율은 그 뒤로도 줄곧 60% 이상을 기록하다가 2018년 연금 개혁을 서두르다 59%를 기록,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지만 이내 회복됐다. ━ 서구 향한 기만전으로 시리아 등 외교 문제 해결해와 푸틴은 그동안 강한 자존심과 권력욕을 숨기지 않았다. 국내에선 높은 지지율 속에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 권위주의 체제를 다지는 한편, 국제 사회에서는 석유·가스 등 자원을 바탕으로 ‘에너지 차르’로 군림해왔다. 중국과 손잡고 수퍼파워 미국을 견제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중동에선 시리아에 상주기지를 건설하고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면서 중동 진출을 가속해왔다. 푸틴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푸틴은 2013년 9월 11일 자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지면에 ‘러시아로부터의 호소’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당시엔 화학무기 사용자에 대한 서방의 무력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며 문명화된 평화주의로 가장했다. 결과적으론 알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한 기만이었다. 기고문 요지를 살펴보자.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부 갈등에 군사 개입을 다반사로 하는 것을 우려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민주주의의 모델이 아닌 폭력에만 의존하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미국 예외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어떤 의도에서 간에 미국인들이 자신을 예외로 여기는 건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힘의 언어를 강제하지 말고, 문명화된 외교 해법을 구사해야 한다.” 푸틴의 NYT 기고에 미국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즈(민주)는 “KGB 출신인 아무개가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걸 보니 걱정스럽다”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은 트위터에 “푸틴의 기고문은 미국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모욕을 당한 기분”이라는 반응이었다. 당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언론에 푸틴 대통령의 기고문을 실린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러시아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언론의 자유가 퇴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푸틴은 이런 비난 속에서도 시리아를 군사적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서방을 누르고 중재안을 성사시켰다. 전 세계는 당시 그렇게 평화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던 푸틴의 진짜 속마음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확인하고 있다. 20세기 초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 공산체제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우크라이나·러시아·폴란드 등에서 벌어진 살육을 그린 ‘피에 젖은 땅’으로 유명한 미국 예일대의 러시아·우크라이·폴란드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이런 푸틴의 행동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 미국 잡지 디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스나이더 교수는 푸틴의 행동을 마스키로브카와 프로보카치아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마스키로브카는 상대를 속이고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기만’을 가리킨다. 기만전은 푸틴이 직접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푸틴이 해왔던 “절대 침공하지 않는다” “공격 의도가 전혀 없다” “국경지대에 배치한 군대는 훈련을 위해 집결했을 뿐이다” “우리는 안전보장과 평화만 원할 뿐이다” 등의 유화적인 발언은 철저하게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기만하기 위한 거짓 선전술이었던 것이다. 공식 발표는 물론이고 이면에서도 미디어 전을 벌이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대비 태세를 허물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의 관영 매체가 총동원되고 인터넷에선 온갖 댓글 부대가 총공세를 펴면서 ‘평화 애호 국가 러시아’ ‘평화주의자 푸틴’을 연출했다. 이를 위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동원됐다. 앞으로 러시아나 푸틴 정권과 협상이나 대화, 또는 접촉을 하는 모든 외국 지도자나 관리는 이를 철저하게 명심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외교나 선전이 총칼을 감춘 전쟁이지만, 러시아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발’은 상대를 자극하고 모욕해 먼저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전술이다. 이번에는 푸틴이 먼저 전쟁에 나섰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시작은 러시아가 했는데, 사태의 책임은 자칫 상대방이 뒤집어 쓸 수도 있다. ━ 소련 KGB 장교에서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푸틴 잠시 푸틴의 배경을 살펴보자. 발트해 연안의 옛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레닌과 스탈린의 별장에서 요리사로 일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진 않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잠수함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18일까지 872일 동안 ‘나치에 포위된 도시’로 버텼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산 시절 이름)에 남아 기아와 포격 속에서 지냈다. 그동안 푸틴의 형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숨지거나 부상한 407만 8000여 명 중 하나다. 푸틴은 나치가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하면서 나라와 가정, 개인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생인 푸틴의 정신을 분석할 수 있는 요긴한 정보다. 대학 졸업 뒤 옛소련의 보안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1975~91년 장교로 근무했다. 동독에 파견돼 동베를린에서 공작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혹시나 군중들이 KGB 베를린 사무실에 난입할까 두려워하며 기밀 서류를 소각했다고 한다. 무너지는 공산 제국의 실체로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이 사태가 푸틴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일 것이다. 소련 쿠데타로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1991년 8월 중령으로 퇴역했다. 그해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군도, KGB도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장래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뒤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나톨리 소브착 시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들어갔다. 1996년 모스크바에 진출한 그는 이듬해 보리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에게 발탁돼 비서실 차장을 맡았다. 옐친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던 그는 1998년 KGB의 후신 중 하나로 국내 보안을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V) 국장을 맡았다. 그런 다음 1999년 8월 일약 러시아 5대 총리에 올랐다. 알코올 중독자로 국내외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던 옐친의 후계자로 사실상 발탁된 순간이었다. 그해 12월 31일 옐친이 갑자기 사임하면서 푸틴은 총리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했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해 그해 5월 러시아 2대 대통령에 올랐다. 2004년 재선해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3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을 따르겠다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은 대신 자신이 총리로 임명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내세웠다. 메드베데프가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하자 그의 전체 임기인 2008년 5월~2012년 5월 실세 총리를 지내며 러시아 정치를 좌우했다. 2012년 3월 대선에서 다시 당선했으며 5월 7일 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현대 소련·러시아 역사에서 후임자가 전임자를 배신하지 않은 것은 메드베데프가 처음이다. 푸틴의 위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 경제 살려 인기 누린 푸틴,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락으로 정치인 푸틴이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것은 경제 실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옛 소련 붕괴 뒤 한때 수렁에 빠졌던 경제를 회복한 것은 물론 러시아의 외교적,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한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푸틴이 총리에 오른 1999년부터 대통령 2연임을 마친 2008년까지 러시아의 경제적 성과는 눈부셨다. 그 기간 동안 러시아인의 실질수입은 2.5배가 됐으며 실질임금은 3배로 올랐다. 국내총생산(GDP)은 명목 금액 기준으로 6배로 성장했으며 구매력 기준으로도 72% 성장했다. 이런 성장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가스 가격이 거의 5배로 올랐고 푸틴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면이 크다. 여기에 더해 거시경제 운용을 적절하게 하면서 재정개혁을 이루는 등 푸틴 행정부의 정책 효과도 작지 않다. 러시아 국민의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런 경제적 성과가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으로 주러시아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푸틴은 부분적이나마 러시아를 옛소련과 같은 강대국의 위치로 복원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푸틴은 상당 부분에서 러시아 역사를 역행시켰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옐친의 권력을 물려받았지만, 그의 시장경제·민주주의 부정한 ‘배신’의 권력사를 이뤘다는 평가다. 권위주의, 정치의 경제통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스탈린 못지않은 권력 집중을 이뤘다. 이너서클 중심의 폐쇄적인 사람 쓰기와 쓴 사람은 비교적 오래 기용하는 특성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획했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합참의장은 201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2004년부터 계속 장관직을 맡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극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물론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성장을 이룬 중국에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푸틴은 강한 ‘소련 노스탤지아’ 성향을 보인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에도 대조국전쟁 승전기념일 퍼레이드를 감행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추모에 진심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소련 지향적인 셈이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질 때 벨라루스·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을 러시아의 영역 안에 잡아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향이 합쳐져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악수를 두게 딘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물론 크게 보면 옛소련의 위신회복이라는 ‘푸틴몽’과 러시아의 초라한 경제력, 그리고 나토의 허점이라는 삼위일체가 전쟁의 원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에 대한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히틀러에 비교되기도 한다. 러시아는 고립되고 있다.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같은 중립국인 스웨덴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마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핀란드는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침공을 받아 1940년 3월 13일까지 겨울전쟁을 치렀으며 2차 대전 종전 뒤 핀란드화로 불리는 ‘시장 경제와 민주체제는 유지하되 군사적으론 서방과 공식 동맹을 맺지 않는’ 정책을 펴면서 실질적인 중립을 유지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유럽연합(EU)에는 가입했지만,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장래에 대해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푸틴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러시아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2.03.04 15:35
9분 소요성폭력 피해당한 미국 십대 소녀가 트위터로 정의의 심판을 구했다사반나 디트리크는 지난여름 자신을 성추행했던 두 남자아이의 이름을 밝히며 도전적인 트윗을 날렸다. 당시 격분한 상태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 이제 어디 나를 잡아넣어봐. 내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든 인간은 누구든 가만 두지 않아(I’m not protecting anyone that made my life a living Hell).” 16세 고등학생인 그녀가 썼다.그녀는 녹색 눈에 암회색 아이라인을 했다. 머리카락은 옆으로 모아 느슨하게 땋아내렸다. 어느 상쾌한 가을날 고향 켄터키주 루이빌의 동네 커피숍에 앉아 지난 6월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이 지면에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디트리크는 자신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다.그녀의 시련은 파티에서 정신을 잃으면서(she had passed out at a party) 시작됐다. 16세 소년 두 명이 그녀의 브라와 속옷을 벗겼다. 소년들은 돌아가며 그녀의 성기에 손가락들을 찔러 넣으며 그 행동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디트리크가 고소하자 소년들은 검사가 제안한 거래에 응해 유죄를 시인했다(pleaded guilty in a deal offered by the prosecutor). 하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에 부닥쳤다. 그녀가 겪은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판사의 명령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와 디트리크에 따르면 언론자유의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였다. 법원이 “피해자의 입을 막아 범죄사실을 숨기려 했다”고 그녀의 엄마 샤론 디트리크가 말했다.그렇잖아도 그 사내아이들이 형량거래로 너무 쉽게 빠져나간다고 느끼던(already feeling that the boys were getting off easy under their plea agreement) 사반나 디트리크는 트윗을 날리기 시작했다. “내가 윽박지르면 겁을 먹을 만한 작은 소녀라고 모두가 생각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켄터키 억양이 약간 섞여 있었다.하루에 10개 트윗을 쏘아 보냈다. 7번째 트윗 내용은 “루이빌에선 피해자를 위한 정의실현보다 강간범 보호가 더 중요하다”였다. “그 일에 관해 입을 열어서는 안 되며 만약 발설하면 구속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니 그들이 이걸 읽고 나를 구속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엿 같은 정의.” 10번째 트윗 메시지다.다음날 소년들의 변호사들은 법정모독을 이유로 디트리크의 구속명령을 신청했다(filed a motion to hold Dietrich in contempt of court). 제출된 신청서에 따르면 그녀는 “이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으며 “강간범”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범죄행위에 관한 거짓 주장”을 했다. 법정모독 혐의가 인정되면 그녀가 수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소년들은 감형거래 덕분에 징역형을 면하게 된다.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은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력을 신고할 때 직면하는 해묵은 문제점들을 노출시킨다. 하지만 미국 십대들이 겪는 일의 변화상을 사실 그대로 상기시켜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기술발달로 청춘의 어리석음이 지역사회를 뛰어넘어 훨씬 멀리까지 알려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as technologies make it possible for youthful stupidity to become known far beyond the community).어쩌면 바로 10~20년 전만 해도 커뮤니티 안에서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에는 책상 밑으로 필기 메모가 전달된 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지금은 사진, 문자 메시지, 트윗이 메모 역할을 대신한다. 이들은 사용하기에 따라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훨씬 막강한 힘을 보태줄 수 있다.그리고 이런 매체들은 일단의 법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프라이버시와 명예훼손의 한계를 넘나든다(pushing the boundaries of both privacy and defamation). 지난 11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한 강간 재판에서 증언대에 선 고소인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남성 4명에게 법정모독죄가 적용됐다.그중 한장이 트위터로 전송됐다고 알려졌다. 지난봄 영국 축구선수 체드 에반스가 강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그의 친구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피해자 신원을 공개했다(outed the victim). 그들은 지난 11월 벌금형을 받았다. 한편 재판 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또 다른 사람도 벌금형에 처해졌다.법적위기에 처한 디트리크는 뉴스위크와 첫 단독 인터뷰를 갖고 가해자와 재판부 모두에 맞서 싸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두 소년의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이 이 기사 취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소년들은 지난 9월 소년법원에서 선고를 받았다. 중범죄인 일급 성적학대와 경범죄인 관음증 혐의가 인정됐다(for sexual abuse in the first degree, which is a felony, and voyeurism, a misdemeanor). 이 사건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피고인측 변호사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디트리크를 비롯한 그녀 변호사측 요청으로 재판기록이 일반에 공개됐다.이 모든 일은 2011년 8월에 시작됐다. 어느 날 저녁 디트리크는 아빠가 출장을 떠난 사이 친구 두 명과 함께 몇몇 사람을 집으로 초대했다(그녀의 부모는 이혼했다). 그날밤 초대손님 중 두 명은 가톨릭계 일류 남자학교인 트리너티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곧 2학년이 되는 디트리크는 전에 그들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고 한다. 두 소년 모두 착한 학생이었으며 라크로스(하키 비슷한 구기)의 열성 팬이었다. 법원서류에 따르면 “교실에서 금지된 검을 소지하는” 등 사소한 일들 말고는 둘 다 큰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Neither had been in any major trouble).그날 저녁 소년들이 도착한 뒤 그 그룹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재판서류에 따르면 더 나이 많은 친구가 사온 맥주·보드카·위스키를 나눠 마셨다. 디트리크는 여러 잔을 들이킨 뒤(After downing a number of shots)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브라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속옷이 벗겨져 있었다.” 그녀는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pushed the thought away).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던 듯하다”고 그녀가 말했다.디트리크가 그 사진에 관해 알게 된 건 몇 달이 지난 11월 말이었다. 그 남자 아이들이 그녀의 반누드(seminude) 사진을 찍었다는 루머가 나돈다고 한 남자 친구가 그녀에게 귀띔해줬다. 정확히 어떤 모습의 사진인지 또는 누가 그 사진들을 봤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그녀는 11월 28일 소년들과 부닥쳐보기로 했다. 대화는 문자 메시지로 이뤄졌다.“내 인생을 망쳐줘서 고마워(Thanks for ruining my life).” 법정 기록에 따르면 그녀가 소년 중 한명에게 보낸 메시지다. “뭐, 내가 어떻게 네 인생을 망쳤는데.” “무슨 말인지 알잖아. 모르는 척 하지 말아(Don’t play that bulls--t).” 수 차례 메시지가 오간 뒤(After a flurry of back-and-forths) 그는 그녀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실토했다. 어떤 모습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삭제했다고만 말했다. 또 다른 소년에게 문자를 보내자 그는 그녀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고 암시했다.“맹세코 네가 떡이 되도록 취해서 제 손으로 옷을 벗었다구(You were drunk as s--t and you did take it off yourself I promise).” 그가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결코 스스로 브라를 벗지 않는다는 건 내 자신이 잘 알아, 절대로.” 그녀가 말했다.두 소년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느낀 그녀는 그중 한명에게 “아동 음란물과 관련된 성범죄자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뒤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진을 본적이 있는지 묻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그제야 문제의 전모가 명확하게 파악됐다고(Only then did the full extent of the problem become clear to her) 그녀는 말한다. 알몸 사진과 성폭력 모두 말이다. 그 남자아이 휴대전화에서 그 사진들을 봤다고 여러 명이 밝혔다. 디트리크는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 라크로스 팀 전원이 봤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지극히 평범한 일에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I was so stressed out, I would just burst into tears at the most normal things).” 그녀는 루머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몇몇 사람은 ‘동의하지 않은 게 확실해?’라고 물었다.” 정말 바닥이라고 느꼈을 때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그녀는 말한다.여성법률지원단체 이퀴타스의 제니퍼 젠타일 롱 소장은 그런 사례가 갈수록 늘어난다고 말한다. 신기술이 “피해자를 희롱하고 모욕을 주는 무기로 사용되면서 전례 없이 도를 넘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기술은 피해자에게 신문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한다. 홀러백(Hollaback) 같은 앱을 이용하면 길거리에서 당한 희롱을 현장에서 신고하고 위치를 알릴 수 있다(allow users to report and map street harassment on the spot). 디트리크는 휴대전화 문자를 이용해 경찰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그녀는 12월 14일 조사를 받은 뒤 남자아이 중 한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거짓말했어.” 그는 경찰에 신고해서 “우리 인생을 영원히 망가뜨리지” 말아달라고 애걸했다.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아(just a dumb one I guess).” 크리스마스 직전 디트리크는 엄마에게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엄마 샤론은 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말문이 막혔다(speechless)”고 한다. “딸은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태도였다”고 샤론이 말했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 해질 무렵 동네를 걸었다. 거리에 낙엽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일은 속상했지만 성폭력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용기를 내서 기뻤다고(was glad her daughter had the confidence to speak up) 그녀는 말했다.크리스마스 다음 날 경찰 조서가 접수됐다. 올해 2월 초 소년들이 수사계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둘 다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Both confessed to the crime). “그녀 셔츠를 밀어 올리고 가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녀 바지를 끌어 내리고 … 성기에 우리 손가락을 밀어 넣었습니다.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별로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찰 조서에 기록된 한 소년의 말이다.형사가 물었다. “두 사람이 사진을 찍을 동안 그녀는 내내 그냥 누워 있기만 했나요?” “예,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그랬죠.” 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그 뒤 그들은 디트리크를 2층 그녀 방으로 옮겼다고 그가 말했다. 도중에 실수로 그녀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형사가 다시 물었다. “그녀가 자신의 성기에 손가락을 넣어달라고 요청한 건 아니죠?” 소년은 “예”라고 대답했다.조서에 따르면 또 다른 남자아이의 진술도 비슷했다. 사건 당시 디트리크의 “눈꺼풀이 아래로 처져 정말로 피곤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소년들의 휴대전화기를 압수해 과학수사대로 보냈다.지난 3월 남자아이들은 법정으로 소환돼 성적학대와 관음증으로 기소됐다(were arraigned, charged with sexual abuse and voyeurism). 검사는 피고인들에게 거래를 제안했으며 그들은 6월 말 유죄를 인정했다(The prosecutor offered the boys a deal, and they entered guilty pleas). 합의에 따라 소년들은 성범죄자 상담과 함께 5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Under the agreement, the boys would get 50 hours of community service, along with sex-offender counseling). 그들의 나이가 만 19세 6개월이기 때문에 유죄인정 철회신청을 해서 소송이 취하되고 전과기록을 말소되도록 할 수 있다(they could move to have the guilty plea withdrawn, the case dismissed, and their records expunged). 디트리크는 검사가 소년들에게 형량거래를 제안한 사실을 자신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검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그 심리공판에서 피고인측 변호인들은 디나 맥도널드 판사에게 소년법원의 비밀유지원칙을 설명하도록(to explain the rules of confidentiality in juvenile court) 요청했다. 판사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공판절차가 법정 밖에서 논의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판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범죄 자체도 논의될 수 없다고 시사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누구에게든 그 사건에 관해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판사가 말했다. 디트리크 법률팀이 제출한 재판서류 기록이다. “누구도 무엇이든 말하거나 기록해서는 안 된다.”바로 디트리크가 트위터를 전송한 날이다. “입에 재갈이 채워진 기분이었다(I felt silenced)”고 그녀가 말했다. “도전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피고인측 변호사들이 법정모독죄 적용을 신청했다. 디트리크 가족은 국선 변호인 2명을 선임해(got a pair of public defenders) 투쟁을 준비했다. “피가 끓어올랐다(I was boiling in my blood)”고 디트리크 엄마가 말했다. 딸 옆에 앉은 그녀의 식탁 앞에는 점심식사로 주문한 그리스식 치킨 케밥과 감자 튀김 접시가 놓여 있다. 디트리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쏘아본다(shoots her mom an impatient look).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디트리크는 그 주 법정모독죄 적용 취하신청서를 들고 법정에 출두했다(appeared in court that week with a motion to dismiss the contempt charge). 그녀의 변호팀은 범죄 피해자의 입을 막는 건 재판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언론 자유의 문제라는 주장이었다.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전속 변호사인 아덴 파인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법정이 발동하는 포괄적인 발언금지 명령은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헌법 제1 수정조항에 저촉된다(Broad orders issued by courts prohibiting speech raise First Amendment questions). 딸이 겪은 일을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말인가?” 디트리크의 트윗 발송 결정을 두고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발언도 다른 발언과 똑같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 점은 대법원이 명확히 판결했다.”취하신청은 다른 판사에 의해 기각됐으며(The motion to dismiss was overruled) 법정모독 심리공판이 7월로 잡혔다. 이 두 번째 판사도 맥도널드 판사와 마찬가지로 공판과정이나 범죄에 관해 거론하지 말라고 디트리크에게 경고했다. 디트리크 변호팀이 제출한 법정서류 내용이다.재판이 가열되자 디트리크는 개인변호사 토머스 클레이를 고용했다. 클레이는 “완전히 뒤죽박죽 엉망진창(downright topsyturvy upside down)”이라고 그 상황을 묘사했다. 또한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입는(the victim being revictimized)” 상황이라고 평했다.디트리크 변호팀은 두 판사와 검사를 걸고 들어가 세 사람 모두 공판과정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went after both judges and the prosecutor, requesting that all three be disqualified from the case). 검사가 객관적이 아니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알고 보니 그는 피고인들의 고등학교(트리너티) 동문으로(had attended the same high school as the boys) 여전히 적극적으로 후원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법원 제출서류에 따르면 학교 동창회와 동문 모임 위원을 맡고 있다(serving on a reunion committee and in an alumni society). 판사들과 검사, 그리고 트리너티 고등학교 측은 이 기사의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들의 법정투쟁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도시뿐 아니라 미국 각지 신문의 1면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트윗으로 알린 죄로 구속될지 모른다는 뉴스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피고인측 변호사들은 법정모독죄 적용 신청을 취하했다.결국 공판과정에서 배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법원기록은 디트리크 팀의 요청으로 공개됐다. 피고인측 변호사들이 지나친 언론의 관심을 유발해 소년들의 갱생을 방해한다며 반대했지만 묵살됐다. 트리너티 고교에서 졸업반 과정을 남겨뒀던 소년들은 재등록이 허용되지 않아 다른 학교를 새로 찾아야 했다. 형량도 더 엄해졌다(got a stiffer sentence).지난 9월 발표된 최종 형량거래에선 당초거래와 달리 중범죄가 완전히 말소되지 않는다(the felony crime can’t be completely expunged). 하지만 아무런 말썽을 피우지 않을 경우(if they stay out of trouble) 3년 뒤 경범죄로 감형될 수 있다.디트리크는 그해 사건들로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주중의 늦은 오후, 커피숍을 나서 집으로 향한다. 음식점 종업원 아르바이트를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사건이 대인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어졌다(became hard to go out and socialize). 알몸으로 사람들이 있는 방 안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오래 만나 마음편하게 여기는 남자친구는 한명 있다. 하지만 다른 남자아이들이 자신에게 팔을 두르거나 스스럼없이 몸을 건드리는(touch her casually)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그 사진들은 지금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그녀를 괴롭힌다. “아직도 정말 그 사진들을 보고 싶고 누가 봤는지 알고 싶다”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경찰이 휴대전화를 확보했을 때는 사진들이 이미 삭제된 상태였으며 과학수사팀도 그 사진들이 누구에게 전송됐는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경찰 대변인이 말했다. 하지만 디트리크는 자신이 맞서 싸운 일이 기쁘다고 말한다.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 트윗을 절대 내리지 않겠다.”
2012.12.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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