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로'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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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투자에 대해서는 당분간 (내부에서)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만난 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검토 중인 투자처가 있느냐는 질문에 “복수의 투자처를 훑어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PEF 운용사는 최근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로 드라이파우더(펀드 내 미소진 금액)가 상대적으로 넉넉한 상황이다. 최근 시장 분위기가 반등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도 이 운용사는 상장사 투자에 확실히 선을 그은 것이다. 이 관계자는 “머지않아 (상장사에 대한) 투자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면서도 “지금 상장사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이나 에쿼티(지분) 투자에 나설 경우 따져야 할 경우의 수가 적지 않다 보니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 ‘주가는 맘대로 안돼’…상장사 투자 휴업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상장사 투자를 보류하고 있다. 주가와 연동하는 회사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사수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부정할 수 없어서다. 지난해와 비교해 몰라보게 내려간 주가에 대한 피로감도 상장사 투자를 주저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PEF 운용사들은 반대급부로 아직 상장하지 않은 회사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비상장사 가운데서도 단기간에 밸류가 껑충 뛴 스타트업은 제외하고 견조한 실적이 받쳐주는 대기업 계열사를 주요 타깃으로 보고 있다. 공모시장 반등에 따른 기대감을 유지하는 한편 제때 상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장 수익률 사수에도 신경 쓰는 모습이다. 자본시장에 따르면 국내외 PEF 운용사들이 올 하반기 뛰어든 대형 투자처로는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가스설비(브룩필드) ▶SKC 산업필름사업부(한앤컴퍼니) ▶SK온 프리IPO(한투PE컨소시엄) 등이 있다. 이 밖에 2조원대 중반에 MBK파트너스와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3D 구강스캐너 업체 ‘메디트’와 본입찰에 나선 KT클라우드도 국내외 PEF 운용사들로부터 관심이 뜨겁다. 연내 잠잠하던 PEF 운용사들이 연말 들어 뭉칫돈을 풀어놓을 조짐을 속속 보이고 있다. PEF 운용사들이 거액을 투자했거나 조율 중인 투자처의 공통점이라면 국내 증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이나 일진머티리얼즈 등이 올해 새 주인을 찾았지만, 중장기 성장을 염두에 둔 대기업 계열 전략적투자자(SI)가 인수했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PEF 운용사들이 상장사 인수를 위해 거액을 아끼지 않던 것을 떠올리면 올해 PEF 운용사의 상장사 투자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크게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우선 마뜩잖은 국내외 증시 분위기가 꼽힌다. 당장의 주가 급락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대기업 계열 SI와 달리 PEF 운용사들의 상장사 인수는 여러모로 환경이 좋지 않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지난해 인수한 한샘이나 최근 인수금융 연장에 성공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락앤락 등은 크게 내린 주가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상장사 인수 때 적용해야 하는 웃돈도 부담이다. 대부분의 상장사 인수는 당시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예컨대 IMM PE는 지난해 7월 한샘 지분 27.7%를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작년 7월 당시 한샘 주가는 14만원대까지 올랐는데, IMM PE는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22만원에 한샘 주식을 사들였다. 하지만 현재 한샘 주가는 4만7300원(7일 종가기준)까지 떨어졌다. ━ 걱정하느니 사지 말자…비상장사 풍선효과 상황이 이렇자 상장사 인수에 대한 피로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주가라는 게 회사의 본질적 가치를 100% 반영하진 않지만, 주가가 크게 빠진 현 상황을 안심하고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며 “주가 방어도 시장 분위기가 플랫(평시)해야 가능한 건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다 보니 (상장사) 밸류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 자본 시장에서 PEF 운용사들의 투자처로 급부상한 곳은 확실한 업사이드(상승여력)가 보장되는 비상장사다. 여기서 일약 유니콘으로 발돋움한 스타트업은 제외다. 자금난에 몸값이 의도치 않게 출렁일 수 있다는 리스크(위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PEF 운용사들은 시장 분위기에 상관없이 견고한 실적 성장이 가능하고, 공모 시장에서도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평가받는 곳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PEF 운용사들의 투자를 이끌어낸 회사들이 앞선 전제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했던가. 투자 컨셉의 큰 변화에 더해 투자금 회수 안전장치 마련 움직임도 분주하다. 기업공개(IPO) 가능성을 열어두되, 예정 시기에 상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장수익률 확보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투자 안전장치를 여러 경로로 마련해 이윤 추구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SK온 프리IPO의 경우 상장 예정 기한을 2027년에서 2026년으로 1년 단축하는 한편 투자자 보장수익률을 기존 연 5.5%에서 7.5%로 2%포인트나 올려 잡았다. KT클라우드 투자유치도 IPO 결렬이나 지연에 따른 투자금 회수 채널을 어느 선에서 보장해주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 안팎에서는 KT 측이 5% 수준의 보장수익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파른 금리 인상에 해당 수준에서 만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주춤한다고 하지만, 기업 공개는 국내에서는 엑시트(자금회수)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아예 접을 수는 없다”며 “해당 부분 여지를 남겨두되 (투자금이) 깨지면 안 되는 시장 분위기를 감안할 때 리스크(위험)를 감수하지 않는 투자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이데일리 기자 sk4he@edaily.co.kr
2022.12.10 14:00
4분 소요
국제가전박람회에서 선보인 카메라 장착 인공지능 스피커, 스마트 프로젝트 내장스피커 등을 소개한다 제임스 보즈웰의 전기 ‘새뮤얼 존슨의 생애’가 국제가전박람회(CES)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이다. 맹세컨대 이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할 때 존슨 박사(18세기 영국 시인 겸 평론가)의 재치 있는 명구를 인용하려 하지 않았다. 진짜 책을 읽으며 CES 관람 중 휴식을 취하다가 문제의 그 문장과 맞닥트렸다.보즈웰에 따르면 존슨이 지인과 마주쳤는데 그는 판테온(1772년 축조된 근사한 ‘공공 엔터테인먼트’ 궁전)이 사치와 여가를 조장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존슨이 답했다. “선생, 나는 공공 엔터테인먼트의 열성 팬이라오. 사람들이 악을 멀리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오늘밤 여기 있지 않았다면 매춘부와 함께 있었을 게요.”존슨 박사가 말한 명언을 접하지 않았다면 서양 문명의 지속적인 쇠퇴에 관한 매우 비관적인 기사를 들고 라스베이거스를 떠났을지 모른다. 기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안된 뒤 ‘최저임금’이라는 어구가 최악의 금기어로 간주되는 중국 선전 같은 곳에서 노동착취를 통해 생산되는 엄청나게 많지만 거의 쓸모 없는 디지털 기호품을 다룬 내용이었다.24만여㎡ 전시장 통로를 거니는 동안 해마다 다를 바 없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2017년 버전의 CES 개최지라고 말했더라도 차이점을 말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무인기가 곳곳에 널려 있고 스마트폰은 아주 약간 더 스마트해졌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음성인식 비서 알렉사 또는 구글 어시스턴트 기기에 명령을 내리는 동안 또 다른 불쌍한 인간들이 다소 날렵한 몸매의 대만 로봇과의 스크래블(영어 단어 보드 게임) 대국에서 지고 있었다. 그 로봇은 적수들에게 뜨거운 커피를 부어주며 손과 눈의 협응능력(hand-eye skills)을 과시하기도 했다.구글 vs 아마존의 구도에 관해 말하자면 구글은 레노보 같은 제3의 제조사와 제휴해 동영상을 지원하는 아마존 에코쇼(터치스크린 장착 인공지능 스피커) 경쟁제품을 만들어냈다. 알려진 대로 구글은 최근 자사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아마존 에코쇼에서 제거했다. 고양이 동영상 스트리밍에 관한 한 시장을 독점하려는 노림수다. 레노보 스마트 디스플레이(8인치 또는 10.1인치 버전 모두)는 아마존 쇼보다 훨씬 선명하다. 그리고 자신의 파자마 취향을 전 세계에 방송하기를 원한다면 500만 화소 카메라도 포함한다.CES에는 요즘 워싱턴 정가에서 들려오는 백색소음(TV나 라디오 등의 잡음)을 뒤덮을 만큼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가 많이 출품됐다. 그러나 맥주캔 크기 케이스에 스마트 프로젝터를 내장한 것은 하나뿐이다. 충전 기기로 더 잘 알려진 앵커 이노베이션스의 네뷸라 캡슐은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콘텐트를 최대 2.5시간 동안 스트리밍할 수 있다. 조도와 음질도 놀랍도록 선명하지만 가격은 400달러 미만. 안드로이드 7.0이 내장돼 캡슐을 스마트폰에 연결할 필요가 없다.그리고 다양한 유무선 이어폰·헤드폰 속에서도 어쿠스틱 리서치의 최신 모델이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록에 빠져 있던 십대 시절 이 회사의 스피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AR-E100 고음질 인이어 이어폰은 고급 오디오 애호가 부품을 이용해 작은 사이즈에 실제 같은 소닉붐(초음속 비행 항공기의 충격파로 발생하는 대음향)을 전달한다. 게이머뿐 아니라 음악 애호가 특히 M2 또는 M200 등 AR의 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수긍할 것이다. 가격 대비 사운드가 훌륭하다.카타나-에어 기타 앰프를 선전하는 보도자료를 잘못 읽곤 누군가 실제로 ‘에어 기타’(기타 연주 흉내) 플레이어 용 앰프를 고안했을 것이라 생각해 롤랜드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에릭 클랩턴 따라쟁이들의 판토마임 동작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엔지니어링의 기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도 칸타나-에어는 인상적이었다. 이 배터리 지원 무선 풀사운드 앰프는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지하철역 연주자의 필수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엄마 아빠를 잠에서 깨우지 않고 조용히 연습할 수 있게 하는 헤드폰 잭을 갖춰 거리의 악사에게는 꿈의 기기다.벨킨은 기기 세계에선 알아주는 이름이다. CES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만한 제품 두어 종을 선보였다. ‘부스트 업듀얼 와이어리스’ 충전 패드는 애플과 삼성전자 제품을 모두 지원한다. 각 제품에 맞춤 조율돼 초고속 무선 충전을 최적화할 수 있다. 자매회사 링크시스는 그들의 ‘벨로프 AC 1300 듀얼-밴드’ 메시 네트워킹(mesh networking, 단말기가 직접 연결해 통신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의 저가 모델을 선보인다. 홈 와이파이 설정의 사각지대를 제거해주고 필요할 경우 알렉사와 대화도 가능하다.IT 마니아로서 나의 가장 깊숙하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한 장치를 만난 일은 CES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 스마트 TV의 부속 기기 카보(Caavo)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찾으려 여기저기 돌려볼 필요가 없다(그리고 리모컨을 여러 개 사용할 필요도 없다. 나는 현재 4개를 사용한다). 카보에는 8개의 HDMI(고선명멀티미디어인터페이스) 인풋과 음성 작동 원격조종장치가 있다. ‘CNN 보자’ ‘X-파일 보자’고 하면 즉시 명령에 따른다. 좋아하는 프로그램 있는 곳이 넷플렉스인지 아마존인지 또는 신만이 아는 어느 곳인지 기억해낼 필요가 없다. 케이블이든 위성이든 메모리 스틱이든 스트리밍 박스든 카보는 숲 속을 뒤져 바늘을 찾아내 건네준다. 훌륭한 기술이 제때 나왔다.그리고 끝으로 성능이 좋을 뿐 아니라 좋은 일도 하는 기기다. 부이(Buoy)를 자택의 급수관에 부착하면 얼마나 많은 물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나 낭비하는지에 관한 확실한 데이터를 제공해준다. 부이는 잠재적인 누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위기 시 전용 앱을 통해 즉시 급수를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용도(변기·설거지 등)로 정확히 얼마나 많은 물을 사용하는지도 세분화해 기록한다. 케리 워터스 CEO는 가구 당 평균 10%를 누수로 잃는데 돈이 하수구로 빠져나가는 격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와이스 뉴스위크 기자
2018.01.29 11:23
4분 소요■ 미국 모토롤라 1500만 달러 투자 없었으면 지금의 팬택도 없다 ■ 모토롤라 레이저폰 히트 칠 줄 예상치 못했다 ■ 2006년 레이저 쓰나미 몰아쳤을 때 빠르게 조직정비 했어야 ■ 신뢰하는 임원 내치지 않았다면 구조조정 실패했을 터 ■ 팬택의 새 DNA는 자율과 열정 그리고 맷집 ■ 팬택 신화 끝나지 않았다. 잠시 주춤했을 뿐이다 한눈에 봐도 주름살이 부쩍 늘었다. 몸무게는 7~8㎏ 빠진 듯했다. 벤처신화의 주인공에서 부실기업 오너로 추락…. 그것도 1991년 팬택 창업 이후 처음 맛본 고배.아무래도 팬택계열 박병엽 부회장에게 전달된 충격파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9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며 재기의 날개를 펴고 있는 지금, 박 부회장은 “남아 있는 것은 독기뿐”이라고 했다.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워크아웃 기간을 묵묵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16일 팬택 본사 19층에 위치한 부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보였지만 때론 목멨고, 때론 언성도 높였다.모토롤라 덕에 웃고, 모토롤라 탓에 울고>>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게 공식적으로 2006년 말 이후 3년여 만입니다. (인터뷰 전날 팬택은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이 자리엔 박 부회장이 참석했다.) 몸무게가 많이 준 것 같습니다.“그래 보입니까? 7~8㎏은 빠진 것 같아요. 마음고생이 심해서…. 주름살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웃음)”박 부회장의 속앓이. 생각보다 심했을 게다. 자신이 창업한 팬택이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더구나 첫 번째 시련이었다. 박 부회장은 팬택이 워크아웃에 돌입했던 2006년까지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그의 꼬리엔 늘 ‘신화’라는 말이 따라붙을 정도였다. 무리도 아니었다.자본금 4000만원에 직원 6명으로 시작한 무선호출기 제조업체에서 연 매출 3조원 휴대전화 제조사로 변신. 창업 후 2005년까지 연 평균 50%가 넘는 성장률. 호사가들은 신화, 그 이상의 단어가 있었다면 여과 없이 붙였을지 모른다. 물론 이런 고속성장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정·관계 인맥 때문에 컸다”는 루머는 박 부회장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꼬리표였다. 그는 아직도 이 말만 들으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아닌가요? 팬택은 수출 중심 기업입니다. 경쟁사도 삼성전자, LG전자죠. 우리가 인맥의 도움을 받았다? 만약 그랬다면 경쟁사가 가만히 나뒀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틀린 말이 아니다. 팬택의 고속성장 밑거름 중 하나는 발 빠른 변신이었다. 무선호출기로 승부를 걸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사업방향을 과감하게 휴대전화로 돌린 게 주효했다. 팬택을 창업한 지 6년 만인 1997년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계약을 따내, 그해에만 7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롤라도 팬택 성장을 도왔다. 1998년 모토롤라는 1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를 발판으로 팬택은 2000년 287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모토롤라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격이군요.“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토롤라의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팬택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모토롤라가 왜 팬택에 투자했는지 궁금한데요.“모토롤라는 한국시장을 아주 만만하게 봤어요. 그런데 삼성전자가 CDMA폰으로 점유율을 높이니까 안 되겠다 싶었나 봐요. 그래서 우리를 인수하려 했죠.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지만 거절했죠.”박 부회장은 모토롤라가 인수자금으로 얼마를 제시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큰 액수라는 말만 할 뿐…. 궁금하다. 인수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제가 창업한 팬택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게 유일무이한 꿈입니다. 그때도 그랬죠.” 당시도, 지금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 꿈이라는 얘기다.>> 인수를 거절하니까 투자했다는 말이 되는군요. 뜻밖입니다.“그렇습니다. 총 1500만 달러를 투자했죠.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죠. 우리에겐 큰 발판이 됐습니다. 제대로 된 기업이, 제대로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죠. 더욱 갚진 것은 모토롤라의 수준 높은 경영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였죠.”경제정글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좋은 파트너 모토롤라가 팬택에 비수를 꽂을지 그때까진 박 부회장도 몰랐다. 경제정글의 냉혹함이 읽힌다. 팬택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2006년 중순.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 이른바 ‘레이저 쓰나미’가 몰아쳤다.모토롤라의 레이저 휴대전화가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팔린 양만 해도 7000만여 대에 달했다. 여기도 레이저, 저기도 레이저, 곳곳이 레이저였다. >> 2006년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강타한 ‘레이저 쓰나미’가 팬택을 부도 위기에 빠뜨렸죠?“그렇습니다. 레이저 때문에 덤핑을 쳐도 팔리지 않았죠. 당연히 재고가 쌓였고, 적자폭은 연일 커졌습니다.”>> 예상하지 못했습니까?“솔직하게 말해야겠죠. 그렇게 히트 칠 줄은 몰랐습니다.”2006년 한 해, 팬택은 339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7년 상반기 적자까지 포함하면 5000억원에 이른다. 팬택은 속수무책이었고, 박 부회장도 손쓸 틈이 없었다.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털어놨다.>> 두 가지 실수는 무엇입니까?“일단 레이저의 인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름의 이유야 있지만 모두 제 탓이죠. 두 번째 실수는 수습시기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빨리 경영전략을 재조정해야 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긴박한 조치가 한 템포 늦었다는 이야기입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들까지 목줄을 조이더군요. 시중은행들은 2006년 한 해 2000억원을 회수하고, 2000억원의 신용거래를 중단했습니다. 한꺼번에 4000억원이 날아가버린 셈이었죠.”채권은행들 “법정관리 외 방법이 없다” 압박>> 당시 심경을 듣고 싶습니다.“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죠.”2006년 11월, 박 부회장은 갈림길에 섰다. 법정관리냐, 워크아웃이냐였다. 은행들은 법정관리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소멸된 상태. 워크아웃이 개시되려면 채권단 100% 동의가 필요했다. 기촉법만 살아 있었다면 75% 동의만 받으면 됐다.문제는 또 있었다. 팬택의 채권자 가운데 소액주주가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팬택 부채는 1조1000억원 선. 그중 6000억원가량은 산업은행을 포함한 10여 개 시중은행의 채권. 나머지는 개인·새마을금고·신협 등으로 구성된 소액 채권자의 몫이었다. 이들이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독기가 생기더군요. 그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계기가 있었습니까?“2006년 11월 워크아웃 신청을 하자마자 산업은행은 관리인을 우리 쪽에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더군요. ‘3개월이면 복귀한다’고 말입니다. 그때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다짐했죠.”박 부회장은 곧장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4500억원에 이르던 주식 대부분을 처분했다. 채권은행은 물론 소액 채권자들도 일일이 찾아다녔다. 여기엔 박 부회장의 눈물겨운 호소가 숨어 있다. 칼바람이 불었던 2006년 겨울. 박 부회장은 혈혈단신으로 100여명에 이르는 부산 새마을금고 채권자를 만나러 갔다. 싸늘한 분위기.모두 박 부회장을 죄인처럼 쳐다봤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중앙단상으로 나가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15년 동안 단 한 번 실수해 이 지경이 됐습니다. 반드시 회생시키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진심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게 마련이다. 부산 새마을금고의 채권자들은 박 부회장에게 박수를 보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 5개월 만인 2007년 4월. 박 부회장은 100% 가까운 동의를 얻어 워크아웃 개시결정을 얻어낸다. 기적이었다.“15년 동안 단 한 번 실패했다”이후 박 부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꾀했다. 임원 70명을 먼저 내보냈다. 그 가운덴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던 박 부회장의 오른팔, 왼팔도 포함돼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단이었다. 적자투성이였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했을 때조차 단 한 명도 자르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인적 구조조정은 박 부회장의 스타일과 다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회사가 중요했습니다. 제가 신임하는 사람을 정리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명분을 찾을 수 없었죠. 창업주가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섰구나 하는 비장함을 주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박 부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음에 단단히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읍참마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직도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남아 있나 봅니다.“생각이 나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줬죠.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살기 위해 오른팔, 왼팔을 자를 수밖에 없는 것, 처참한 기억입니다.”박 부회장이 구조조정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인 것은 또 있다. 마인드 변화다.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가 아닌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문화를 원했다. 그가 자율코드 정착을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알 수 있는 사례 중 하나. 당시 박 부회장이 금기어로 지정한 게 있었다. 제출·승인이었다. ‘경영계획 채권단 제출·승인’이라는 문구만 보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출, 승인이라는 말은 통상적 단어 아닙니까? 호통까지 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그렇지 않습니다. 경영계획은 우리 스스로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누군가에 의존하면 팬택의 미래는 없다고 봤습니다. 설사 그게 저여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말하는 자율은 채권단, 최고경영자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습니다.”>> 채권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고경영자로부터의 독립은 낯설게 느껴집니다.“제가 없을 때도 팬택은 무리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팬택의 힘은 직원들의 자율에서 나와야 합니다.”박 부회장의 ‘자율경영’ 의지는 조직 전반에 퍼지고 있다. 팬택 직원들은 주말을 반납한 지 오래다. 매주 토요일 적게는 300명, 많게는 1200명이 일한다. 매주 일요일에도 100명 안팎의 인원이 상시 근무한다. 자율경영이 조직을 관통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마인드 개선만큼이나 전략도 많이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픽스앤맥스(Fix&Max) 전략인데요.“자원과 지출은 고정하면서 효율성은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회사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한정된 내부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자는 취지죠. 이는 이른바 ‘3효 전략’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연구개발의 효율효용을 증대하면서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자는 것이죠.”>>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팽창’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그렇습니다. 버릴 곳은 버리고, 가능한 곳은 집중 공략하자는 것이죠. 그것도 대충 공략하는 게 아니라 맞춤형으로 말입니다. 가령 모바일 인터넷 등이 가능한 스마트폰 수요가 높아지는 북미시장에선 고급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음악문화가 발달한 중남미에선 뮤직폰으로 공략하는 식이죠. 국내에서 추진하는 사업자별 맞춤폰도 같은 전략입니다.”>> 재무개선을 위한 노력도 눈에 띕니다. 특히 반도체 칩 제조사 퀄컴에게 지급해야 할 로열티 미지급액 7600만 달러를 출자전환한 것은 돋보입니다. 협상이 만만치 않았을 듯합니다. 퀄컴사로선 손해보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테니까요.“협상 과정이 간단치 않았습니다. 폴 제이콥스 회장과 구두 합의하고 성사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렸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사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퀄컴의 출자전환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의 기술력과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얘기니까요.”이런 노력 덕분인지 팬택의 실적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이 회사는 올 3분기 매출 5557억원에 영업이익 418억원을 올렸다. 2007년 3분기 이후 9분기 연속 영업흑자다. 올해 매출은 2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2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휴대전화 판매량도 2007년 750만 대, 2008년 970만 대 등으로 증가추세다.올해엔 1100만 대가 팔릴 전망이다. 워크아웃 개시 전 판매량(2006년 1510만 대)의 63%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팬택의 프리미엄 브랜드 스카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론칭 10년째를 맞은 스카이의 총 판매량은 1530만여 대. 이 가운데 지난 3년간 판매된 수량은 740만 대로, 전체의 48%에 이른다.‘스카이는 매니어층을 위한 브랜드’라는 선입견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잘라 말한다.>> 워크아웃 졸업이 2년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글로벌 기업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선 내부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2011년 12월까지 연구개발투자를 꾸준히 늘리는 등 장기성장에 필요한 내실을 쌓을 방침입니다. 이런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13년 휴대전화 판매 2500만 대, 매출 5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합병도 선언하셨는데요.“지금 필요한 것은 경영 효율화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선 강력한 시너지가 필요합니다. 두 법인은 현재 사실상 하나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두 개 법인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영활동을 제외한 조직·업무·프로세스·의사결정체계 등을 통합해 놓은 상태죠. 두 법인이 합병되면 업무상 비효율과 일부 자원의 중복 요소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마사이족처럼 집착하라”하지만 팬택으로선 한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내실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지만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팬택의 부채 규모는 현재 5000억원가량. 더구나 워크아웃도 2년여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무모한 전략 아닐까?>> 아직 투자를 늘릴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한 걸음 전진했습니다.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경쟁사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판매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판매량을 늘려야 부품가격 등 원가가 떨어집니다. 규모의 경제를 꾀하기 위해서라면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박 부회장은 워크아웃 경험이 새로운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이젠 어떤 역경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비법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별게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려도 열정과 집념만 있으면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을 아십니까? 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더군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입니다(웃음).” 악착같이 달려들면 꿈은 이뤄진다는 뼈 있는 농담이자 그가 바라는 팬택의 미래 DNA다.
2009.10.20 10:05
9분 소요뉴욕 한인 중에는 청과물 가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전 세계 어느 소방서에서나 금기어로 통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뉴욕시다. 뉴욕시 퀸즈보로(區) 소방서는 올 3월 화재신고 접수와 동시에 소방차를 출발시키는 방법을 써서 출동시간을 24초나 줄였지만 돌아온 것은 소방공무원노조의 비난이었다.그 기간 발생한 화재 2건이 인명사고로 연결된 게 소방차가 빨리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 100여 개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온 이민자들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방관들이 이를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곳을 향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었다. 그만큼 뉴욕시에서 이민자들은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그러나 그동안 뉴욕 이민자들의 특성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적었다. 그나마도 특정 국가나 민족의 특성을 미국의 특성에 접목하는 선에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9월 5일 메트로섹션 2면 대부분을 할애해 민병갑(66) 뉴욕 시립 퀸즈칼리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경제적 생존을 위한 민족 결속(Ethnic Soli darity for Economic Survival)』을 크게 소개했다.민 교수는 서울대 사학과를 1970년 졸업, 코리아헤럴드 기자를 거쳐 72년 도미했다. 민 교수는 조지아주립대 연구원 생활을 거쳐 87년 퀸즈칼리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민 교수의 신간이 주목 받은 이유는 이민자들의 사업형태로부터 이들의 경제적 성공요인과 정체성 확립 과정을 설명한 독특한 논리 때문이다. 이번 저서는 흑인들의 폭동이 한인과 흑인 간의 유혈사태로 번진 1992년 ‘LA 폭동’을 추적한 『가운데에 낀 한인(Korean cut in the Middle)』의 후속편이다.다른 민족과의 갈등이 성공요인 민병갑 교수가 꼽은 재미동포 성공요인 ■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강한 생존력 ■ 언어장벽이 오히려 자영업자들 양산 ■ 도매상인 백인과 고객인 흑인과 갈등하며 단결 “뉴욕의 한인은 생업을 이어가는 와중에 건물주이자 도매상인 백인들과 갈등하면서 성장했고 고객이던 흑인들과의 갈등을 거쳐 이제는 종업원인 히스패닉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민족 간의 갈등을 통해 한인들은 경제력 신장과 정체성 확립을 일궈냈다. 이런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확립됐고 업종별 협회를 조성해 앞서 나갔다.” 민 교수는 뉴욕 한인사회의 대표업종인 청과상들의 성장과정을 통해 이러한 이론을 도출해 냈다. 민 교수는 설문 대상 한인 277명 가운데 자영업자 6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재미동포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가장 큰 발판은 공동체의 강한 결집력이다. 민 교수는 이런 결집력의 원인을 자영업을 하면서 부닥치는 인종 간 갈등에서 찾는다. 민 교수 이론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한인과 흑인 간 갈등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기타 아시아 이민자의 청과업계 진출이 늘어 한인들이 표적에서 벗어났고 ▶한인 2세가 가업 대신 전문직을 택해 청과상 수가 줄어든 데다 ▶시 정부가 할렘 등 흑인 거주지역에 대형 식품점을 허용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와 정비례해 한인 공동체의 결속력도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약해지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 2세들이 공동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청과협회가 매년 한가위 잔치에 50만 달러(5억5000만원)를 들이고 공동체 장학금이 수십 개에 달하는 것이 한인 공동체의 장점이었다”며 “1965년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의 54%가 타 민족과 결혼하는 것에서 보듯 공동체 약화 조짐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1960년 뉴욕의 한인 동포는 불과 400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대학 유학생이었다. 그러다 65년 미 정부가 이민규제를 완화하면서 점차 늘어났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87년 크게 늘었지만 92년 LA폭동 여파와 한국 경제력 신장으로 점차 하향세를 보였다. 다시 이민자가 크게 증가한 계기는 98년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를 덮었던 외환위기였다. 2000년 센서스 조사에서 한인은 17만500명으로 집계돼 30년 새 크게 늘었다. 뉴욕을 제2의 고향으로 결정한 한인 이민자들은 대개 자영업을 하거나 현지 한인 업체에 취업하게 된다. 특히 자영업자 비율이 24%로 크게 높다. 이는 그리스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계(27%)에 이어 3위다. 영어 서툴러 자영업 비율 높아“아시아 국가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영어에 능통한 비율은 필리핀이 70%로 가장 높고 인도와 기타 국가 출신도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한인 이민자의 영어 능통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면 찾을 수 있는 직업의 범위가 좁혀지는 것은 상식이다. 한인 업체가 아니면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1990년대 중반까지 뉴욕에서 한인들이 주로 종사한 업종은 청과업, 가발업, 피혁업이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이었던 청과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매상이 아닌 소매업이다. 매장도 대부분 한국의 일반 과일가게 정도 크기로 비교적 영세했다. 그러나 뉴욕의 비싼 임대료와 생활비를 놓고 보면 작더라도 자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본력이 필요하다.현재 미국의 투자이민 액수는 100만 달러(11억원)다. 뉴욕시에서도 경제력이 위축된 브루클린 일부를 포함해 정부가 지정한 일부 지역의 경우 50만 달러(5억5000만원)로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적지 않은 액수다. 뉴욕 한인 청과상들은 도매상을 선점한 유대계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텃세를 딛고 일어서야 했다. 결국 1974년 뉴욕 한인 청과상들은 한인생산협회(Korean Produce Association)를 만들었다.협회는 80년 브롱스 도매상가 헌츠포인트마켓에 서비스센터를 열어 소규모 청과 및 식품점 운영자들과 대형트럭 운전사들의 쉼터를 조성하기도 시작했다. 82년 뉴욕시는 KPA를 비영리단체로 인정했다. 한인이 자영업을 통해 다른 아시아계(일본 제외)보다 비교적 빨리 아메리칸 드림을 거머쥔 데는 한민족 특유의 성실함이 큰 힘이 됐다.이들은 가게 문을 오전 7시30분에 열고 밤 11시까지 일했다. 가족 외에 종업원도 없었다. 휴일도 없었다. 가게를 7시30분에 열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브롱스의 도매상가인 헌츠포인트마켓에서 물건을 떼 와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청과상을 노동집약적 사업이라고 정의하며 “한인 청과업자들은 아이들의 자는 얼굴밖에는 볼 수 없었다”고 표현했다. ‘잠든 아이 얼굴 보기’는 세계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한민족 부모들의 숙명이다. 전화 인터뷰 민병갑 교수 “한인들도 부동산·금융업 진출해야” -집필 계기는. “이민자들의 발전은 민족 단결력의 문제라기보다 업종 형태에 따라 겪는 타 민족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요지다. 단순히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이민자 사회 단결력의 원천이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리스계나 이스라엘계 미국 이민자의 자영업 비율이 더 높은데 왜 이들은 민족 간 갈등을 통해 성장하지 않은 건가. “먼저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인이 많다. (한인은) 3%포인트 차이로 3위인데 설문대상에서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는 부분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자영업자 비율은 43%가 맞다. 센서스(인구통계)에 아예 등록되지 않은 숫자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타 민족을 대상으로 영업하기 때문이다. 건물주나 물건을 공급받는 도매상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계를 예로 들면 건물주, 도매상, 고객 모두가 중국계인 경우가 많다.” -최근 뉴욕시가 저소득층도 신선한 청과를 살 수 있도록 가판대를 늘리는 ‘그린카트 조례’를 제정했다. 청과협회는 이를 반대하고 로비도 벌였는데 이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다. 하지만 법안의 뒤편에서 부동산업자와 개발업자인 유대계가 이득을 보고 있다. 해당 지역 이웃도 반대했다. 지역마다 특유의 문화가 있는데 이것이 깨지는 것 아닌가. 대형 유통업체들이 들어설 때 영세상인들이 반대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뉴욕 한인들의 주력 사업이 네일살롱과 세탁소로 이동했다. 이후에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는가. “우리가 중국계보다 떨어지는 것이 부동산 투자다. 우리는 가게를 먼저 열고 중국계는 부동산을 먼저 산다. 이 부분도 최근 10년 동안 놀랍게 성장했다. 부동산을 비롯해 이와 연관된 보험, 금융 같은 서비스 업종으로 나가야 한다. 미국 사회가 그렇게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2008.10.2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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