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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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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스티글리츠

국제 경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트럼프 2기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과 KB금융그룹 주최로 열린 국제금융 콘퍼런스 특별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그는 "미국이 역사적인 선거를 치른 만큼 세계 모든 국가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있다"며 "트럼프 2기 불확실성이 높지만, 대규모 감세와 막대한 재정적자, 억만장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이어 "이는 곧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화된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겨서 결국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또 인구 위기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데 필수적인 글로벌 공조와 협력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특히 기후 분야에서 공조가 퇴보하는 점은 가장 가슴 아프고, 우려된다고 덧붙였다.니콜라스 라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수석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중 무역 대립이 격화되고,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중국 경제에 관한 비관적 전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실제론 긍정적인 요소와 회복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중국이 일본처럼 디플레이션과 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주장에는 "중국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오해"라며 중국의 기업 투자, 경제 활동이 여전히 살아있고 일본과 달리 더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세이케 아츠시 일본 적십자사 총재는 인구 위기를 언급했다.그는 "세계가 인구 고령화라는 전례 없는 도전을 동일하게 마주하고 있다"며 "이는 곧 노동인구감소로 이어져 경제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러면서 고령층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평생 활동 사회' 구축, 여성의 자녀 양육을 위한 기회비용 절감 정책 추진, 젊은 층을 위한 사회보장 혜택 강화 등을 강조했다.이날 콘퍼런스에서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도 참석했다.

2024.11.21 10:08

2분 소요
노벨경제학 수상 벤 버냉키는 연준에 어떤 말을 할까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전문가 칼럼

10월 10일(현지시각) 벤 버냉키 연준 의장(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필립 디비그 미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보고 누군가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벤 버냉키 같은 저명한 정책 입안자에게 상이 수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칫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들 노벨상 수상자들은 뱅크런을 피해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는데 큰 역할 했다는 것이 수상의 변이다. 뱅크런은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말한다. 은행이 부실해질 것을 두려워한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간다(run)는 데서 유래됐다.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은행의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관적으로 인식하면 그동안 저축한 돈을 인출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 대공황의 사나이에서 노벨경제학 수상자로 벤 버냉키는 1930년대에 뱅크런이 대공황을 어떻게 연장시켰는지를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대공황 연구 박사학위 논문에서 보여 주었다. 당시 지도교수는 2009년 타계한 폴 새뮤얼슨이었다. 이 논문은 그를 30대에 일약 경제학계의 스타로 만들었고 그는 ‘대공황의 사나이’(Depression Man)란 닉네임을 얻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자기실현적 예언은 그에게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이란 시대 사명을 주었다. 위기를 맞은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준의장으로서 그가 이전에 깨달은 교훈을 적용했다. 그가 이끈 연준은 위기를 맞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리를 대폭 낮추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미국 최대 은행들의 구제금융을 과감히 지원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고강도 구조조정과 높은 금리와 실업이라는 대가를 치렀는데 이와 비교한다면 그는 모국에 관대했다. 우리에게 혹독했다고 자평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왜 미국의 경제상황에 대하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을까? 그가 사용한 텍스트북은 코로나 팬데믹이 강타할 무렵 여러 나라들이 봉쇄에 들어갔을 때 중앙은행들이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도구로 다시 사용되었으나 모든 나라가 미국처럼 할 수는 없었다. 진정 그들은 심각한 위기와 값비싼 구제금융을 모두 피할 수 있도록 세상의 능력을 향상시켰을까? 누군가는 미국이 기축 통화를 이유로 천문학적으로 푼 유동성의 행방을 물으며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고개를 흔들 수도 있겠다. 버냉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연준 의장으로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그가 어떻게 돈을 풀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묘수를 가졌는지는 이제는 수수께끼 같다. 여하튼 우리는 그를 인플레이션 억제 전문가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런 묘한 말을 했다. “수십 번의 약한 지진보다 단 한 번의 강진이 지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훨씬 더 유용하다.” 그러나 그 강진은 우리에게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이란 악령으로 다르게 나타나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폴 새뮤얼슨 외에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없을까? 우리는 버냉키의 스승으로서 밀턴 프리드먼을 생각하게 된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K% 준칙을 주장했다. 경제의 흐름과 상관없이 매년 통화량 증가율을 K%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사람들의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이 K% 통화 준칙을 제기한 당시와 세상이 많이 달라져 중앙은행은 이제 통화량보다는 기준금리로 통화정책의 목표를 설정한다. 프리드먼은 이런 신뢰의 원칙을 항상 고수했을까? 프리드먼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새로 돈을 찍어내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말한다.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리자는 벤 버냉키의 아이디어도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화폐의 신뢰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기준금리가 제로이거나 마이너스가 된 후에도 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가 가능할까에 대해서 많은 말이 오갈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양적완화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최근 감세정책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에 일조했던 영국에서도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는 통하는 면이 있었다.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Jeremy B. Corbyn)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인민을 위한 양적완화(People’s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주장했다. 금융 위기 이후 2017년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까지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있어 수요를 견인할 주체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자산 가치를 올리면 간접적으로 수요가 창출될 걸로 믿는 버냉키의 견해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노리는 더 파격적인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규모 소비가 필요하고, 이자율 인하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였나? 팬데믹은 인민을 위한 양적 완화를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실시했다. 지금 실업률이 역사상 가장 낮은 시기에 임금을 상승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아 물가상승률과 실업률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커브가 누워버렸다는 표현은 사라졌다. 과거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자본주의가 인플레이션을 죽였나?”라는 표현은 무덤에 갇혔다. 시장의 기능이 고장 난 상황을 보며 우리는 금융의 신뢰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의 인플레이션 대응에 관한 조언을 들어 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무릇 정책이란 은행 부문이 건전하다는 인식과 금융의 건정성과 안정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통화정책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고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이 가공할만한 수준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하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은행 부문의 금융안정성을 걱정해야 한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지금 하는 세계 정책들이 누구를 위해 금융 건전성과 안정성이란 종을 울리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2022.10.11 11:42

4분 소요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26) 비트코인은 진정 버블인가?] ‘버블에서 디지털 금으로’ 투자 자산으로 떠오른 암호화폐

산업 일반

암호화폐 기반 블록체인 기술 활용시 거래 공정성 담보 등 혁신 가능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떠올린다. 암호화폐가 이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지만, 블록체인은 다양한 미래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실 비트코인의 지나친 급등은 되레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블록체인은 흔히 인터넷에 비유된다. 1990년대 인터넷이 등장해 전 세계를 연결한 것처럼 블록체인을 통해 다시 한번 대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 기업과 여러 기관이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지자체는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회사 데이터베이스를 블록체인으로 교체한다는 소식을 듣는 일도 이제 새롭지 않다.누군가는 블록체인이 지금까지 크게 보여준 것이 없다고 비난한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쓸모없는 기술이 과장되면 버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2000년대 초 정보통신(IT) 회사들이 닷컴 버블을 일으키고 그 투자의 후유증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닷컴 기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이후 2017년부터 닷컴 버블을 능가하는 암호화폐 버블이 2018년 초까지 진행되다가 꺼졌다. 당시 암호화폐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 같은 기술로 통했다.이제 냉정하게 블록체인 기술을 바라볼 때다.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 밤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재미있고 신기한 장난감이었던 인터넷은 문서들이 하이퍼링크된 웹이라는 정보의 바다였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신대륙을 감상했고, 정보를 여기저기 퍼 나르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낯선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지구인은 인터넷의 마법에 빠졌고,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세상은 크게 변모했다. 모든 와해성 기술은 탄생해서 성숙 단계를 거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인공지능(AI)은 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포스트 인터넷이라고 하는 블록체인에 사람들은 인터넷만큼 열광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비트코인 후 일상에서 우리 인식에 와닿는 신천지를 아직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래도 블록체인은 가능성이 많은 기술로, 그 잠재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 미국만 보더라도 블록체인에 대한 기업 투자액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금융업에서 블록체인 투자 지출이 가장 높아 전자 결제와 P2P(Peer to Peer) 대출이 유망하지만, 금융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유통 전 과정을 추적하는 물류서비스업을 비롯하여 디지털 인증, 예술품의 진품 감정, 위조화폐 방지, 전자투표, 전자시민권 발급, 차량 공유, 부동산등기부, 병원 간 의료 기록 관리공유, 저작권 보호처럼 신뢰성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 적정가격 없는 암호화폐, 투기냐 투자냐 투기와 투자는 누구에게는 글자 한 글자 차이고 누구에게는 글자 한글 자 차이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약 1100조원) 선을 넘어섰다. 이는 7000억 달러 규모의 테슬라 시가총액을 넘어선 수준이다. 미국 한해 GDP가 24조 달러이니 그 시가총액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웬만한 나라 GDP를 훌쩍 넘으니 비트코인 가격은 말 그대로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020년 한 해 동안 4배 이상 폭등한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2021년 들어서만 80% 넘게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가상화폐 사이트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2월 20일 오후 10시 개당 5만7269달러에 거래됐다. 2월 16일 사상 처음으로 5만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18일 5만2000달러선을 뚫는 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는 상황이다.종전에도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이 전 세계적으로 회자됐다. 워렌 버핏을 비롯한 금융계 인사들은 비트코인의 처참한 말로를 얘기했다. 반면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업가들은 기술로서 암호화폐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암호화폐의 기저 기술인 블록체인이 금융서비스 진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으나, 익명성을 가진 비트코인이 돈세탁, 테러자금지원, 조세포탈, 금융사기, 자본통제우회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규제방안을 위한 광범위한 국제협력을 강조했다.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셉 스티글리츠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당국의 감독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성공한 사기라고 보았다. 그는 비트코인이 사회적인 순기능을 할 수 없으니 불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쉴러 교수 역시 비트코인은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라며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예견했으나 현실은 그들의 주장과 반대로 갔다. 이 상황에서 정작 비트코인 개발자로 불리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그가 나타나서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비트코인 거래의 지침서는 없다. 회사의 이윤도, 채권증서도, 투자수익에 대한 지속적인 현금흐름도 참조할 것이 없다. 그냥 가격이 상승하여 수익을 낸 것을 참조할 뿐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에는 적정가격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기와 투자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투기와 투자는 흔히 혼용돼 사용되고 구분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누군가는 두 용어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가 리스크(위험)에 대한 통제권이 있는가의 유무이다. 리스크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면 투자이고 리스크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면 그건 투기이다.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생각해 보자. 덜컥 아무 생각 없이 매수하였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이다. 하지만 원자재가 경기와 동행하며 특정 통화의 강세와 상관도가 높게 움직인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였다고 하자. 이는 투자로서 해당 통화의 추세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으로 바람직하다 하겠다. ━ 암호화폐 최악의 버블? 금보다 5배 높은 가격 변동성 그렇다면 투기는 왜 위험한가? 합리적인 분석 없이 편승효과에 기반하여 너도 나도 투기판에 뛰어들어 버블이 형성됐다고 하자. 이후 손실이 가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돈을 잃으면 사회 탓도 하고 정부 탓도 한다. 게다가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한다면 개인적 사회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투기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해악을 끼치며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만든다.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문제도 이를 인식한 것이다. 2017년 광풍 때처럼 미성년자까지 뛰어들고 하루 24시간 시세판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면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현상인가? 물론 투자든 투기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강변할 수 있겠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투기꾼이 치고 빠졌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뛰어든 선량한 사람들이 버블의 끝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개인, 사회가 지불할 비용과 도덕성 문제가 막대하다면 국가가 가만히 수수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규제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적절히 헤아려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다.로버트 쉴러는 버블의 형성 과정을 생각의 전염이라고 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스토리를 만들어 사회 전체적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전염병처럼 번진 후 그 스토리에 의해 너도 나도 현혹돼 거대한 버블이 형성된다는 논리다. 그는 금융이 실물을 뒷받침하지는 않고 파생상품이나 여러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을 만들어 투전판이 되게 한 것에도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 발생한 자산 버블이 경제에 얼마나 해로운 지를 목격했다.투기에 의한 자산버블의 지속적 발생은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게 만든다. 비트코인이 아무리 신기술과 혁신의 산물이고 개인 간 거래에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 다른 버블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너무 변동성이 심해서 화폐로서의 안정성을 갖추지도 않은 채 스토리로 질주한다는 것이 진정 사토시 나카모토가 상상한 ‘신뢰의 개인 간 거래’의 세계일까 반문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지급결재 수단으로 생각하였다면 비트코인 가격의 안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개화도 하지 못한 ‘신뢰의 기술 블록체인’을 비트코인 가격의 변동성이 불신으로 물들게 한다면 그건 기술을 죽이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가치와 무관하게 스토리와 투기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광분하여 불나방처럼 뛰어든다면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에 땀 흘리며 노력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독버섯 같은 존재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그는 버블의 형성과 관련하여 사촌이 땅 사서 돈 벌면 배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편승효과로 투기판에 뛰어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을 편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금융·경제 맥락에서 버블은 ‘금융자산의 시장 가격이 투기에 의해 상승하고, 높아진 자산 가격이 자산 가치를 또다시 높이는 과정을 반복하다 가치가 빠르게 수축 또는 폭락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에서 버블은 ‘실물경제의 경제성장 이상의 속도로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 불가능하다. 이를 금융자산에 적용해 보면, 금융자산가치의 버블은 ‘자산이 창출할 미래의 현금 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내재가치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시장가치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른 현상’을 의미한다. 이 역시 지속되지 않는다. 버블을 충족하는 조건은 첫째, 투기에 의해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 둘째, 자산가격의 상승이 또다시 자산가치의 상승을 이끌어 내는 ‘자기가치순환’이 존재해야 한다. 셋째, 빠른 가치상승 후 ‘급격한 가치하락’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버블은 사후에만 인지 가능하다는 말이다.비트코인은 최악의 버블이며 저금리 시대 큰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투기판이 됐다는 회의론이 나온다. 특히 변동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급격히 오른만큼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은 비트코인은 금보다 5배나 변동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문제는 기관의 참여로 해결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규제 강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옐런 장관은 2월 18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비트코인은 투기성이 높은 자산이다. 최근 몇 년간 높은 수준의 변동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은) 거래 유도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투자자를 위한 보호장치도 잘 갖춰야 한다”며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기관을 규제하고, 이들이 규제 책임을 준수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교수 역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많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며 “비트코인은 실제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채권이나 주식처럼 안정적 수입을 제공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크게 데일 것이고, 이후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암호화폐, 결제 수단에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재조명 하지만 최근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10월 세계 최대 글로벌 결제·송금 기업인 페이팔(PayPal)이 암호화폐 결제 허용을 선언하였으니 몇 년 전 버블 운운할 때와는 기반이 달라져 보인다. 최근에는 10만 달러를 넘어 100만 달러(약 11억원)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좀 지나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비트코인의 큰 변동성에도 물가 상승과 빚이 늘어날 것이란 가정 속에 사람들이 값이 오를 ‘가치 저장 수단’을 찾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더 많은 기업이 비트코인을 자산에 편입하면 가격이 20달러를 훌쩍 뛰어 넘어설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결국 글로벌 준비통화(reserve currency·정부가 가치저장 수단으로 보유한 국제통화)가 될 것”이라며 시가총액이 금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기관도 등장했다. 하긴 종전 광풍과 다른 점이 여러 군데 보이긴 한다. 암호화폐 대표주자 비트코인이 초고속 랠리를 펼치며 비트코인을 지지하는 ‘큰손’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시장에 진입하는 기관 투자가들이 늘어난 것이 가격 급등 배경에 있다. 이는 개인이 주도한 2017년 비트코인 열풍과의 근본적 차이점이기도 하다.무엇보다 자산시장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산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페이팔보다 비트코인 결제를 먼저 허용한 미국 핀테크 결제 애플리케이션 스퀘어(Square)가 2020년 10월 비트코인에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돈의 3가지 흐름인 소비, 투자, 송금 생태계를 장악해 가는 스퀘어가 비트코인을 사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에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화폐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2020년 6월부터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DeFi, Decentralized Finance)가 본격화됐다. 한 예로 암호화폐를 담보로 걸고 일정 금액을 대출 받거나, 다른 담보를 제공하고 암호화폐를 대출 받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암호화폐 대출 특별 코인이 등장해 열풍을 몰고 왔고 그 시장은 확대될 전망이다. 이제 세상은 중앙집중화된 은행시스템이 아닌 암호화폐를 활용한 P2P 금융거래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인 댑을 활용하여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하나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 고유한 정보 또는 특성을 가진 토큰)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구현되고 있다. 2020년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 가격 상승 폭이 더 가팔랐다. 이더리움 플랫폼의 유틸리티 토큰으로서 NFT인 샌드(SAND)를 사용하는 블록체인판 마인크레프트인 더 샌드박스(The Sandbox Game) 게임을 실행해 본다.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어 사람들과 공유하며 게임을 즐기는 세상이 현실화했다. 샌드박스 캐릭터를 제작하고 수상자에게 해당 캐릭터를 판매해 수익금으로 만들어 블록체인 게임 커뮤니티를 확장시키고 있으니 킬러댑(Killer Dapp·편의성과 효용성을 확보한 플랫폼) 탄생의 염원이 현실화하고 있는 느낌이다.비트코인 가격이 뛰는 배경에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와 마스터카드 등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영향이 컸다. 테슬라는 2월 8일 공시에서 비트코인에 약 15억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비트코인으로 자사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2월 19일 트위터에서 법정 화폐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일 때 단지 바보만이 (비트코인 등)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해 투자심리에 불을 댕겼다. 대형 제조업체 중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쓰겠다는 기업이 처음 등장하자 금융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마스터카드는 2월 10일 결제수단에 암호화폐를 일부 포함할 계획이라 밝혔다. 고객과 가맹점·기업에게 가치 이전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다. ━ 버블이냐 자산이냐 뛰어넘어 가치 주목해야 같은 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중 한 곳인 뉴욕멜론은행이 자산관리 고객을 대상으로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비자도 은행들과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 출시를 준비 중이라 밝혔다. 비트코인에 ‘반신반의’하던 자산운용사들도 시장규모가 1조 달러 수준으로 커지면서 하나둘씩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모건스탠리 자산운용 자회사가 비트코인 투자를 고려중이며, 블랙록의 글로벌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 릭 리더가 CNBC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조금 해보기 시작했다”고 투자를 공식화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분명 고객들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불허했던 2017년과는 매우 다르다. 그래도 우리는 일론 머스크의 비트코인 투자 이후의 반응에도 신경을 쓸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일론 머스크가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높은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머스크는 대표적인 비트코인 회의론자이자 금 투자 옹호론자인 피터 시프의 트위터 글에 이러한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고 2월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머스크는 시프가 “금이 비트코인과 종래의 현금보다 낫다”고 밝히자 “돈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피하게 해주는 데이터일 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1조 달러(약 1100조원)를 넘어선 상황에서 머스크가 이렇게 말했다”고 주목했고, 경제전문매체 인사이더는 “머스크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높아 보인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 1월 27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약 86%가 CBDC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과 CBDC는 실물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반대의 특징을 갖고 있다.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비트코인은 네트워크 내 모든 참여자가 거래정보를 검증하고 보관하는 분산원장(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반면, CBDC는 탈중앙화에 정면 대응한 화폐로서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 데이터를 보유한다.우선 비트코인과 중국 인민은행이 낸 CBDC 디지털 위안화의 대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폐 발행은 중앙은행의 독점적 책임이고 중국의 CBDC는 ‘중앙집권적 관리’ 아래 있기에, 화폐 발행에 대한 국가의 독점력은 확고하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디엠으로 변경)’로 국가 화폐 발행권이 도전받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기존 화폐와 동등한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화폐 발행과 통화 정책에 대한 국가의 힘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막대한 모바일 결제 시장을 암호화폐나 민간 결제 시장에 넘겨줄 수는 없다. 민간 기업의 결제 플랫폼이 모바일 시장을 넘어 중국 금융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때에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거의 사용법이 같아서 두 회사에 대한 결제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CBDC는 특성상 자금 흐름과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거래 현황과 자산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에 현금처럼 익명성을 보장하고, 탈세나 자금 세탁, 테러 등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할 방침이다. CBDC애플리케이션은 결제 송금 기능을 갖추어 디지털 위안화 국제화에 기여할 전망이다.다음으로 우리는 암호화폐 이외에 사회에 기여하는 블록체인 세상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블록체인이 다음과 같은 세상을 열어간다면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그 배후에 있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죄악시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예컨대 중고차를 재판매할 때 “이 차의 주행 거리는 얼마인가요?”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사고가 났나요?” “이전 주인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용자는 전체 차량 기록을 추적 및 확인하고 주행거리와 같은 데이터를 제3자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 에너지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충전 관리 중심으로 벤처기업 대표 사례가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전기차 충전 결제 시스템, 태양광 공유 시스템이면서 동시에 전기차 충전 공유 비즈니스도 함께 하는 블록체인 벤처를 보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시너지를 이루는 미래를 그려 본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21.02.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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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인슈어테크의 부상, 보험의 미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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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시장 정보 비대칭성 두드러져... 테크 기업 보험사 설립해 문제 해결하려 디지털 혁신은 모든 산업에 늘 현재가 최선이냐고 묻는다. 근래 뒤에 테크가 붙지 않는 분야가 없다. 보험이 대상이 된 인슈어테크도 그중 하나다.아마존은 2018년 초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함께 보험회사 ‘헤이븐’을 설립했다. 이들은 미국의 후진적 보험 시장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건강 보험에 그치지 않겠다는 듯, 인도 아마존은 최근 자동차 보험에도 진출했다.지난 8월 아마존은 손목에 차는 웨어러블 건강 밴드 ‘헤일로’를 선보였다. 100달러에 월 4달러를 추가로 내야 하는 구독형인데, 화면조차 없다. 목적은 단 하나, 활동량이나 수면 같은 내 건강 상태의 추적이었다. 내장 마이크로 목소리를 듣고 심리상태를 판별하고, 연결된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 체형을 분석해 체지방률을 계산한다. 모든 절차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위에서 벌어진다. 당장 이렇게 취합된 정보가 자회사로 흘러갈 리야 없겠지만, 헬스케어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마존은 선언하는 듯했다. ━ 빅테크 기업 사용자 건강 정보 확보에 집중 보험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험업은 통계적으로 어떤 연령대에 어떤 병이 어느 정도 걸린다는 고정 데이터를 토대로 운용된다. 어느 정도의 보험료를 불특정 다수의 가입자에게 받을 수 있다면, 어떤 확률로 지출이 일어나고 수익을 얼마나 남길 수 있다는 어림짐작으로 사업을 한다.즉 기본적으로 모든 고객은 같다는 전제다. 실은 모든 고객의 리스크는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 상태는 실은 자신만 알고 숨길 수도 있다. 이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 기능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는 사례로 거론됐다.어딘가 시름시름 해서 보험이 급히 필요한 사람만 보험에 든다면 당연히 보험료는 오른다. 보험사는 건강하고 착실한 사람을 유치하고 싶은데, 올라버린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한다. 이 우량 고객들을 유치할 유인은 미래에 발생할 리스크다. 건강하고 착실하면 긍정적으로 되기 마련이고 이미 건강하다면 보험이 필요할 확률 자체도 당연히 떨어지니 이조차 힘들어진다. 시장 실패에 빠지고 말 수 있다.이를 극복하는 일과 관련해 노벨경제학상도 이미 적이 있다. 2001년 수상자 스펜스의 ‘시그널링’은 양품이 양품만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이를 이겨낸다는 이야기다. 기업 이미지 광고나 학위나 자격, 품질 보증 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공동 수상자 스티글리츠의 ‘스크리닝’은 부족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상을 ‘선별’ 심사한다. 중고차 수리 이력을 요구하거나, 질병 의심 소견 고지를 보험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으로 추가하여 뒤통수 맞는 일을 막는다.결국, 내가 상품의 주요 요소가 되는 보험의 경우 개인정보는 이 두 방법을 동시에 실현해 준다. 메이저 테크 기업들은 개인정보, 그 중에서도 특히 건강 관련 정보 확보에 여념이 없다. 개인정보의 보고(寶庫) 구글은 이미 지난해에 웨어러블의 기린아였던 핏빗을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유럽, 중남미 등에서 개인정보보호 및 독점 문제로 인수 제동을 걸고 있는데 물론 그 걱정도 이해가 간다.실시간으로 흡수되는 우리의 생체 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구글 알파벳 산하의 생명과학 기업 베릴리(Verily)는 세계적 재보험 회사인 스위스리(Swiss Re)와 기술기반 보험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데이터 사이언스와 결합한 개인 맞춤화된 헬스케어 솔루션이라 한다. ━ 애플 워치 25달러에 제공하는 보험 상품 인기 애플 워치는 패션 제품으로 등장했지만, 건강 보조기구가 된 지 오래다. 매년 새로운 기능이 보강되는데, 올해 신제품은 혈중 산소 포화도를 측정한다. 특히 코로나19 환자에게서 증상 없는 저산소증이 보인다는 소식 이래, 기존에 제공되던 심박수나 심전도 기능과 더불어 95% 이상으로 산소를 머금은 헤모글로빈의 비율을 높이는 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다른 측정 기능처럼 시계 뒷면의 LED가 손목을 비춰 혈관으로부터 반사된 빛을 분석한다. 이 분석에는 훈련된 인공지능이 활용된다. 구독형 건강 제품도 함께 내놓았는데, 애플 워치를 차고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정보를 관리해 준다.활동량과 수면의 질, 그리고 심박수와 심전도까지. 여기에 향후 어떤 생명 정보가 흡수될지 모르지만, 내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소비자들은 기꺼이 손목에 찬다. 내게 확실한 효용만 준다면 개인정보는 얼마든지 맡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아직은 아마존도 애플도 구글도 어느 회사도 명시적으로 이 모든 퍼즐을 조립하지는 않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닌 개인정보에 입각한 새로운 헬스케어 보장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많지 않다.미국의 보험사 존 핸콕은 애플워치를 단돈 25달러에 제공해 왔다. 몇 년째 히트 상품이 되어 올해도 진행 중인데, 2년의 할부 동안 신체 활동 점수에 따라 할부금이 면제되거나 할인된다. 절반 정도가 돈을 더 내지 않았다고 하니 역시 미래의 건강보다 당장의 돈은 훌륭한 동기부여다. 이 리워드 프로그램 참가자들 40만 명의 신체 활동도 34%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보험 가입자의 건강 관리를 통해 질병을 방지해 보험금 지불을 억제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실은 애플워치를 미끼로 보험사에게 필요한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신규 고객을 유치한 셈이다.웨어러블을 스스로 기꺼이 차고 할부금마저 안 내겠다는 의지 또한 훌륭한 하나의 시그널링이다. 건강한 이들이 스스로 보낸 신호만 선별해 합리적 보험료로 미래를 보장하는 상품이 등장하고, 이에 가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는 일종의 사회적 지위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테크 기업이 나서서 아예 보험을 만들고 전체 소비자 인구 중 가장 달콤한 부분만 데려갈 수도 있다.그러나 아직은 모두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스마트 워치를 차서 생체 신호가 클라우드에 헌납되는 순간, 그 어떤 보험에도 가입이 거부되는 디스토피아가 찾아올 수도 있다. 거북한 일이다.그렇지만 왜 열심히 건강 관리한 내가 저 방탕하고 게으른 사람의 리스크까지 부담하는 동률의 보험료를 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노력한 이에게 그 노력의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형평성 주장은 성장을 멈춘 사회에서 강해진다.어느새 기계가 우리의 안색과 체형을 관리해 주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어느 누가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이들도 늘고 있다. 더 좋은 사회의 사회적 후생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20.11.15 16:57

5분 소요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19) 2020 노벨경제학상에서 바라 본 경매이론의 현실과 미래] 19세기 형식으로 노벨상 소식을 접한 스승과 제자

전문가 칼럼

경제학은 이론과 현실을 접목해야 함을 알려준 계기 경매이론은 경매시장의 특성과 참가자들의 의사결정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은 경매이론을 연구한 스승과 제자인 미국 경제학자 2명에게 돌아갔다.그들은 미국의 한동네 사람이다. ‘높은 나무’란 뜻의 스탠퍼드대학 주변의 팔로 알토(Palo Alto) 마을에서 둘은 4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산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10월 12일(현지시간) 수상자로 지명한 이들은 폴 밀그롬(Paul Milgrom, 72)과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83) 두 명의 스탠퍼드대 교수다.로버트 윌슨은 스톡홀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제자는 자느라 스웨덴에서 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 전화를 받지 못했다. 노벨위원회 측은 이웃에 사는 스승 로버트 윌슨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길을 건너 폴 밀그롬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 자고 있던 제자를 깨웠다. 영문을 모르던 제자는 처음에는 화를 냈다. 그는 잠을 푹 자려고 핸드폰을 무음 처리했었다. 노벨상을 받은 제자가 이번의 로버트 윌슨을 포함해 3명인데, 자신까지 이번 수상자로 들어있으니 스승은 얼마나 행복했을까?팔로 알토의 아름다운 마을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은 그들을 특별히 조명하고 있었다. 미시간대 수학과를 졸업한 제자는 보험회사 계리원과 컨설팅회사 컨설턴트로 일한 후 나이 서른에 스탠포드 MBA에 진학했다. 제자의 재능을 엿본 스승이 제자에게 박사 과정을 제안했다. 제자는 3년 만에 학위를 땄는데, 1979년 경매이론 논문으로 ‘레오나드 사비지상’을 받았다. 그게 둘을 경매로 이어지게 한 인연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이미 받은 두 명의 수상자인 앨빈 로스, 벵트 홀름스트룀도 스승 로버트 윌슨의 제자이다. 제자인 폴까지 노벨 경제학상을 타면서 스승인 로버트 윌슨은 3명의 수상자인 트리피타를 갖게 된. 이번에 스승까지 수상했으니 크리켓 용어로 노벨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됐다. ━ 폴 밀그롬 교수와 그의 제자 3명 노벨 경제학 수상 경매는 어디에서든 벌어지고,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에 두 교수를 선정한 게 일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노벨위원회는 “두 교수가 경매 이론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유형의 경매 형태를 고안해 전 세계 매수자와 매도자, 납세자에게 도움을 줬다”고 노벨 경제학상 선정 이유를 발표했다.제자는 스승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스승이 노벨상 수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미안했을까? 스승은 항상 제자를 경매 이론의 선두주자로 생각했고 자랑의 대상으로 여겼다. 시장 디자인과 경매 디자인에 있어서 제자는 늘 앞서가는 존재였다. 물론 과거에도 경매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서 방법을 연구해낸 것이 성과로 인정받았다.둘은 경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응찰자들이 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론적으로 명확히 했다. 그 결과 이들이 고안한 새로운 경매방식으로 입찰이 간단해졌고, 자원 배분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둘의 경매이론은 이익 극대화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혜택을 목표로 했다.두 교수는 경매이론에 앞서 게임이론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긴 미시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밀그롬은 경매이론의 초기부터 대부분 연구에 참여해 기틀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윌슨은 존 내쉬 이후 게임이론의 굵직한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성명에서 “둘은 라디오 주파수(radio frequencies)처럼 종래의 방법으로는 팔기가 어려운 상품과 서비스를 위한 새로운 경매방식을 고안하는데 통찰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밀그롬은 실제로 다수국가의 주파수 경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광고 경매 기법 개발 때 조언한 바 있다. 사람들은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응찰자에게 물건을 팔거나, 가장 싼 가격을 부르는 응찰자에게 물건을 샀다. 요즘은 매일 경매를 통해 가재도구뿐만 아니라 예술품과 골동품, 증권, 광물, 에너지 등 천문학적인 금액의 가치가 있는 재화의 주인이 바뀐다. 공공 조달도 경매를 통해 진행된다.당신이 응찰자라면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전략적으로 행동할까? 스스로 아는 정보와 다른 이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동시에 전략 자산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수상자들의 이론을 좀 더 현실적인 각도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윌슨 교수는 입찰자들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의식해 최상의 추정치보다 더 낮은 가격에 응찰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하여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입찰자는 불확실한 상품의 경매에서 낙찰될 때 일반적으로 그 자산이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경향이 있다.교수가 동전이 가득 있는 항아리를 만들어 경매를 제안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학생들은 입찰서를 쓸 수 있고, 가장 높은 입찰 가격을 쓴 자가 항아리 내용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그의 이름을 밥이라 하자. 모든 사람이 입찰서를 작성한 후, 교수는 어떻게 입찰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급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 밥은 45달러를 쓴 높은 입찰가다.“축하해, 밥, 방금 항아리에 있는 동전을 다 땄어!” 교수가 말한다. 그가 따낸 항아리에는 20달러가량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기분이 어때?”“별로입니다.” 밥은 항아리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듣기도 전에 말한다. 밥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일까?많은 경매 우승자는 밥처럼 승리에 저주받은 감정을 느낀다. 경쟁 입찰 협상 시나리오에서 이기는 게 협상 테이블에서 최적이거나 가치를 창출하는 결과가 아닐 수 있다.실제 일화를 보자. 1950년대에 미국 석유 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추정하여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는데 입찰자가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2000만 달러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땄지만, 후에 측량된 석유매장량의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낙찰자는 10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것이다. ━ 승자의 저주란 무엇인가? 윌슨은 1960년대와 1970년대 3편의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합리적인 경매 입찰자들이 그들이 입찰 중인 물건의 가치를 얼마나 과대평가할 수 있는지 제시했다. 위에서 제시한 항아리 사례의 경우, 항아리 자체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는 같은 액수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입찰자마다 항아리에 동전 중 미화 쿼터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에 대한 짐작은 갈릴 수 있다. 이처럼 경매 대상에 대해 임차자의 정보는 다르지만, 누구나 집단으로 공통의 가치가 부여된 상황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입찰자가 낙찰받는 것을 ‘공통가치경매(common value auction)’라 한다.윌슨은 이 이론과 관련한 최초의 분석틀을 제공한 인물이다. 실제 사례로는 국고채 입찰, 기업공개(IPO) 입찰, 스펙트럼 경매, 값비싼 미술품, 골동품 경매 등이 있다. 스펙트럼 경매는 정부가 경매 시스템을 사용해 전자기 스펙트럼의 특정 대역으로 신호를 전송하고 희소한 스펙트럼 자원을 할당하는 권리를 판매한다. 윌슨은 논문에서 낙찰가가 물건의 진가를 넘나드는 경향인 ‘승자의 저주’를 조사했다.승자의 저주는 신중한 입찰자들이 저주를 피하고자 경매대상을 낮게 평가하게 할 수 있으며, 입찰자들이 경매대상의 실제 가치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특히 문제가 된다. 평균적으로 입찰자들이 정확하게 가치를 추정한다면, 가장 높은 입찰가는 상품의 가치를 과대평가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 입찰자들은 역선택을 예상할 것이고, 평균적으로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스승인 밀그롬도 1982년에 로버트 웨버(Robert Weber)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 상기 공통 가치 경매와 개별가치경매(private value auction)를 다루었다. 개별가치경매는 경매 대상에 대한 각 입찰자의 가치 평가가 다르고 또래 기업의 평가와 무관한 경우를 의미한다. 밀그롬 역시 승자의 저주를 분석했는데, 가격이 저렴하게 시작되어 상향 입찰되는 영국식 경매는 높은 가격으로 시작되어 하향 입찰되는 네덜란드 경매보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데 더 낫다고 판단했다. 입찰자가 낙찰되면서 입찰자들은 영국식 경매 과정에서는 경매 대상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는 진위 증명서, 전문가 평가, 다른 입찰자의 가치 평가에 대한 추정치와 같은 정보를 중시한다. 경매 대상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더 높은 수익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진 여러 경매방식의 전략을 분석해서 응찰자들이 여러 경매 중에서 서로의 추정가치에 대해 알게 되면 매도자의 기대 이익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현재도 승자의 저주는 회자된다. 은행권의 우량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고객 혜택을 차별화해 신용도가 좋은 고객에게는 예금금리를 얹어주거나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조건은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은 다른 은행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무보증 신용대출 금리를 떨어뜨려 출혈 경쟁을 감수한다. 금융대전의 성패가 돈 되는 고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은행이 우량고객 확보에 무리수를 둘 경우 수익성을 해칠 수 있다. 개별 은행은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우량고객의 가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 주파수 경매에서 빛이 난 경매이론 경매이론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Frequency Auction System)를 시작하면서다. 기존에 예술품이나 꽃, 수산물, 정부조달 등의 거래에서 주로 이용되던 경매방식이 국가정책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20세기 초 작은 대역 거리에서 무선 신호를 전송하는 데 성공한 이후로 물리학자들, 엔지니어들, 발명가들은 음성·데이터·비디오 신호를 전송하기 위해 전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전파는 휴대전화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무선 데이터 네트워크, 아날로그 TV 방송, 무선 전화기, 레이더, 전자레인지의 핵심으로 작용한다.한국에서 전파는 인공적 매개물이 없이 공간에 전파하는 3000GHz보다 낮은 주파수의 전자파라고 정의된다. 주파수는 헤르츠 또는 초당 사이클로 측정된다. 1 헤르츠는 1초에 1 사이클이다. 가장 일반적인 무선 주파수인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주파수는 초당 100만 사이클 또는 메가헤르츠 단위로 측정된다. 주파수는 다양한 사업자가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상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적절한 가격을 받으면서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동통신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어떻게 이 모든 공중 송신이 뒤엉키는 간섭을 피하고 진행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전파를 이용한 방송을 원하는 모든 기업이나 개인은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FCC는 서로 다른 유형의 무선 기술인 AM 라디오, 휴대폰 신호, 텔레비전 방송, 기타 채널에 서로 다른 주파수 범위를 할당한다. 예를 들어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하면서 특정 무선 주파수에서 작동하려면 FCC에 면허를 신청하고 구입해야 한다. 1994년 이후 FCC는 전자파 주파수의 가용 주파수에 대한 면허를 경매에 부쳤다. 기획사는 익명의 경매는 경쟁을 늘리고, 돈을 더 모금하며, 다수의 구매자 간의 불공정한 담합이나 밀약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혹시라도 있을 담합이나 기타 부작용이 생겨서는 안 되기에 경매 제도를 설계하기는 쉽지 않다. 주파수 경매는 방송통신용 전파(주파수) 이용 면허를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사업자에게 주는 할당 체계이다.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입찰을 반복하는 ‘동시 오름차순 경매’가 일반적이다. 전문용어로 동시다중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Auction) 방식의 주파수 경매라 하는데, 동시에 각 주파수 대역별로 여러 라운드 입찰을 진행해 하나의 입찰자가 남을 때까지 경매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특정 대역에 대한 최고가 입찰자가 정해지면 그 이후 라운드부터 다른 대역에 입찰할 수 없도록 해 낙찰자가 되고도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있도록 했다.1994년 미국이 이들의 경매이론을 도입해 주파수 경매를 했으며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이 방식을 뒤따랐다. 한국은 오랜 준비 끝에 2011년 8월 처음으로 주파수 경매를 치렀다. 주파수 1.8GHz 대역 내 폭 20MHz를 두고 이동통신 시장 1, 2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KT가 격돌해 관심을 모았다. 승자는 SK텔레콤이었다. 9950억원을 내고 2021년까지 10년간 주파수를 쓰게 되었다. KT는 대신 800MHz 대역 내 폭 10MHz를 2610억원에 확보했다. LG유플러스도 2.1GHz 대역 면허를 4455억 원에 사들였다.윌슨 교수는 완전 경쟁시장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전통적인 시각에 의문을 품고, 오히려 소수의 경쟁기업 간에 전략적인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형성 과정에 관심을 뒀다. 밀그롬 교수는 주파수 경매의 초기부터 참여해 최근까지 제도 설계에 큰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도출했다. 밀그롬은 경매이론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현실 참여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밀그롬과 윌슨이 고안한 새로운 경매방식은 미국 무선주파수 경매는 물론 라디오 주파수, 전기, 천연가스, 이산화탄소 배출권 경매 방식에도 활용되고 있다. 항공기 이·착륙 권리와 같은 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도 경매에 부칠 수 있게 됐다. ━ 노벨경제학자에게 배우는 은밀한 교훈 이번 노벨경제학 수상은 경제학이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분석할 수 있다. 경제학이 이론을 넘어 현실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경제이론가는 경제모델을 만들어서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을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논문이 현실을 반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는 완전 경쟁시장이나 인간의 합리성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합리성 한계를 인지한 행동경제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경제학의 지평이 넓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두 학자는 경매와 관련한 이론을 넘어 현실 적용을 중시했다. 이전엔 1개 아이템을 가지고 진행하는 경매 이론만 있었지만, 두 학자는 여러 개 아이템을 동시에 경매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론화했다. 예를 들어 유명 포도주를 1병만 경매할 때는 기존 경매 이론으로도 시장 특성과 참여자 행동 방식에 대해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포도주를 여러 병 경매할 때는 1병씩 팔아도 되고 3~5병으로 묶어서 팔아도 되는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긴다. 두 학자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경매할 방안을 연구했다. 실제로 그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획기적 방식의 수많은 경매 형태가 탄생했다.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마련된 국유자산은 정부가 관리하고 운영하여 책임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통신(KT의 전신)을 국영기업으로 운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수 있다. 정부가 공공재, 국유자산인 주파수를 경매 방식을 통해 파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그래야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환경오염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경매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볼 때 경매이론의 적용 가능성은 미래에도 얼마든지 있다.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을 위한 시장 기반 정책수단이다. 이 제도는 일반적으로 원칙에 기초해 운영된다. 정부가 경제 주체들을 대상으로 배출허용 총량을 설정하면, 대상 기업체는 정해진 배출허용범위 내에서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 즉 배출권을 부여받게 된다. 배출권은 정부로부터 할당받거나 구매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경매가 이용될 수 있다.밀그롬 교수를 기억하는 제자들은 그가 어려운 이론을 쉽게 풀어 설명을 너무 잘해 매번 강의 능력에 감탄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최대의 이슈가 된 지금 우리는 경매이론을 다시 들여다보며 경제학의 현실과 미래를 조망하게 된다. 옥션을 통해 주파수 시장이 형성되고 인터넷이 개발됐다. 이후 이베이 등 검색엔진이 시장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옥션이 여러 가지 경제활동을 통합시킨 디지털 소통 창구였던 셈이다.사제는 빛났다. 스승은 추측에 주로 의지했다지만 겸손했고, 제자가 매우 정확했다고 치켜세운다. 스승이 만든 주파수 경매 디자인은 제자가 집어넣은 매우 혁신적인 요소에 실제 많이 의존했다. 스승은 전통적인 경매 이론가였으나 제자가 경매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매우 혁신적이었기에 서로 보완이 되었다. 스승은 제자가 상자 밖에서 생각하고,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진정 그들처럼 아름다운 사제 간의 미덕을 대학에서 발휘하고 있을까? 학자라는 라이선스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노벨경제학상이라는 라이선스를 진정으로 쟁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20.10.25 12:36

11분 소요
재난기본소득의 불가피성과 시급성

산업 일반

우리 사회가 코로나19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는 느낌이다. 그 공포란 단순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도무지 정체불명이라는 데서 공포감은 유래한다.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스크, 손 씻기, 그 무엇도 확실한 답이 되진 못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하루에 수백 명씩 늘어나면서 공포는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밤마다 휘황한 불빛을 내뿜던 거리가 일순 텅 비었다. 이 고요가 공포감을 배가했다.짙은 안개 속에서 두려워하던 우리에게 희미하나마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아쉽게도 그것이 백신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이었다. 코로나19가 전 지구적 유행병으로 발전하면서 함께 퍼지고 있는 이 표현은, 묘한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것, 기침할 때 입을 막고 마스크를 쓰는 것, 필요한 게 아니면 외출을 삼가는 것, 가급적 집에서 식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다. 왜 그것이 필요한가.서로 간의 거리를 둔다고 감염병 확산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속도가 느려질 뿐이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 바로 그것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핵심이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같은 수의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그 속도를 늦출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가진 의료체계가 감염된 이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을 것이다. 확진자의 완치율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백신 개발에 필요한 시간도 벌 수 있을 것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발휘하는 마법이란 이런 것이다. 이 새로운 인식 덕택에, 타인과의 접촉을 삼가고 학교와 교회와 가게의 문을 닫는 것이 감염병 확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우리 자신의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 되었다. 그것은 더는 막연한 공포심에 의해 강제된 행위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행위에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했으니, 이제 우리는 일정 한도 안에서 상황을 통제할 수도 있다.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는 등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하고,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면밀히 따지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춰 삶을 재조직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당분간 계속되어야 한다.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엔 이중적인 성격이 있다. 이동과 접촉을 통해 수입을 거두는 많은 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을 이룬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카페, 서점, 식당, 학원, 운동센터 등 동네의 활기를 먹고 사는 작은 점포의 업주들과 거기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들,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학교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될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때때로 마을도서관이나 주민센터에 찾아와 우리의 메마른 삶을 촉촉이 적셔주는 인문·예술 강사들도 일이 끊겨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병으로 죽을 확률은 낮추지만, 경제적으로 죽을 확률은 높이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 재난기본소득은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 위한 물적토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맹점을 훌륭하게 보완할 수단이 있다. ‘재난기본소득’이다. 그것이 처음 제안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잠꼬대’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이후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잇따라 주장하면서 재난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지며 빠른 속도로 지지세를 확장하고 있다.나라 바깥에서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이자 보통 ‘우파’로 분류되는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까지도 우리의 재난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안을 지지하고 나섰다.재난기본소득의 기본 아이디어는 지금과 같은 전국적 재난상황에서 국가가 전 국민에게 일정액의 구호금을 일시에 지급하는 것이다. 위의 두 도지사는 100만원을 제시한 바 있지만, 액수는 얼마든 조정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이름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히는 기본소득이 아니다.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정액 소득을 의미하지만, 재난기본소득은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름은 껍데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제어하고 그 치사율을 낮추는 데 필요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의도치 않게 많은 이들의 ‘경제적 치사율’을 높일 위험이 있다는 점, 그리고 재난기본소득이 그걸 낮춰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병의 확산을 늦추듯, 재난기본소득은 일부 사람들에게 몰아치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평탄화해준다. 재난기본소득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성공하기 위한 물적 토대다.재난기본소득의 핵심은 그 보편성에 있다. 모두에게 줘야 한다. 선별이 낫지 않나. 일반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재난 상황에서 선별이란 필시 피해의 여부와 정도를 기준으로 할 것인데, 그런 선별은 현재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하다 해도, 거기엔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하니만 못하다.그렇다고 재난기본소득이 선별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즉각적으로 실행 가능한 선별까지 배제하진 않는다. 예컨대 아동수당 수혜자인 7세 미만의 시민은 뺄 수도 있다. 이미 이들에겐 40만원을 추가지급하기로 결정됐다. 둘째, 김경수 지사의 안대로 지금 보편지급된 것을 나중에 소득세체계를 통해 일부 거둬들인다면 사실상 소득수준에 따른 차등지급이 된 셈이다. 셋째, 재난기본 소득은 단기적으로 위기의 폭발을 늦춤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선별적인 지원책이 실효성 있게 펼쳐질 시간과 여건을 마련해준다. 이것도 재난기본소득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한 유사성이다. 둘 다 시간을 벌음으로써 한정된 경제적‧의료적 자원을 고도로 선별적이고 집중적이며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봉사한다.지금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역학적 대응이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선도적 모범을 사회경제적 차원에까지 이어나가야 한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이 그 초석이다. 바로 여기에 그간의 모범적인 역학적 대응의 궁극적인 성공 여부도 달렸다. 시간이 없다.- 김공회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0.03.22 10:34

4분 소요
[확대되는 ‘조정대상지’] 감염병 확산 닮은 집값 과열

부동산 일반

조정대상지역 수도권 31곳→43곳… 주택시장도 면역력 필요 지난 2월 21일 정부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권선·장안구 및 안양시 만안구와 의왕시를 조정대상지역에 추가했다. 조정대상지역은 2016년 11월 정부가 ‘국지적 과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택시장이 과열됐거나 과열 우려가 있는 지역’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기존에 있던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제도의 강도가 세다고 보고 다소 약한 강도의 조정대상지역을 새로 만들었다. 당시 서울 전역(25개구)과 과천시 등 경기도 6곳, 해운대 등 부산시 5곳, 세종시를 처음으로 지정했다.3년3개월이 지나는 사이 일부 추가되고 일부 해제됐다. 2017년 8·2부동산대책 전인 6월엔 경기도 광명이 추가됐다. 다시 2018년 9·13부동산대책 전 경기도 구리시, 안양 동안구, 광교지구에 이어 그해 12월 말 수원 팔달구와 용인 수지·기흥구가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다.현재 조정대상지역은 전국 44곳이다. 지방에서는 부산이 모두 해제돼 세종시만 남았다. 수도권으로 보면 처음 지정된 31곳에서 43곳으로 12곳이 늘었다. 특히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조정대상지역이 들어있는 자치단체가 6곳에서 12곳으로 2배로 증가했다.조정대상지역이 증가하면서 규제 ‘파워’가 세졌다. 원래는 청약제도 규제에서 출발했다. 청약자격과 전매제한을 강화했다. 그러다 2017년 8·2대책과 2018년 9·13대책을 거치며 양도세(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대출(9억원 이하 담보인정비율 50%)에 이르기까지 규제 범위가 전방위로 넓어졌다. 조정대상지역 확대는 정부의 잇따른 고강도 대책에도 집값 상승세가 쉽게 잡히지 않고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집값 과열’이 퍼지고 있다는 뜻이다. ━ 스마트폰·SNS 발달로 ‘이야기’가 집값에 큰 영향 2000년도 초·중반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자 정부는 ‘투기지역’으로 대응했다. 2003년 2월 3곳으로 시작한 투기지역이 2007년 6월 전국 93곳으로 급증했다. 당시 250개 자치단체 3곳 중 하나(37.2%)가 투기지역에 지정됐다.이쯤 되면 집값 과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염병을 연상시킨다. 한 곳에 그치지 않고 퍼지는 모양새가 닮았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일찍이 2000년대 중반 미국 집값 폭락을 예견하면서 집값 급등을 전염병과 연관 지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비이성적인 집값의 주범으로 ‘야성적 충동’을 지적하며 5가지 요소를 꼽았다. 그중 가장 주요한 것이 ‘이야기’다. 토지 한계 등으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과거 집값 상승이 반복된다는 ‘학습효과’와 규제지역 인근이 반사이익을 보는 ‘풍선효과’도 이야기에 속한다. 이 이야기가 집값 상승 기대감과 믿음을 나르며 전염병을 퍼뜨리는 바이러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실러 교수는 2009년 쓴 책 에서 “이야기가 바이러스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후인 지난해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란 책을 내며 이야기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국가·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염병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범위가 넓어지듯, 스마트폰과 SNS 등의 발달로 집값에 미치는 이야기의 영향력도 커졌다.전염병 대책도 집값 대책과 비슷하다. 확진자 동선을 뒤지 듯 주택구입자금 흐름을 샅샅이 조사한다. 확진자가 다닌 곳을 폐쇄하고 접촉 범위에 든 사람을 격리하듯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는다. 위기경보를 단계별로 올리듯 규제 강도가 더 센 규제지역으로 지정한다. 전염병과 집값 모두 대응을 둘러싼 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중국인 입국 금지, 위기경보 수준 등이 쟁점이다. 주택시장도 규제의 시기·강도·범위·대상 등을 두고 시끄럽다.그러나 적정대응 여부는 과정 중에는 판단하기 어렵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전염병을 다루는 데선 화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 하지만 주택시장에선 집값 과열을 너무 잡아도 안 된다. 선제적 과잉대응은 ‘맞춤형’ ‘핀셋’ 규제와는 반대 대응으로, 미리 규제 지역을 넓히고 규제 강도를 확 올리는 것일 텐데 경착륙 후폭풍이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 실러 교수가 ‘야성적 충동’을 제어하는 데 있어 정부의 역할을 ‘현명한 부모’에 강조했지만 현명한 부모가 되는 방법을 찾기가 어디 쉬운가. ━ 주택공급·교육·문화·교통 등 주거환경 격차 줄여야 구체적인 방법 못지 않게 대응 과정에서 일관성·투명성으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바이러스 전파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더라도 바이러스가 발병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바이러스가 몸 속으로 들어오더라도 병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주택시장도 면역력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주택 공급과 교육·문화·교통 등 주거환경 격차 줄이기 등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라는 바이러스가 전파돼 실제로 집값 과열로 이어지는 데는 주택공급 부족, 뛰어난 교육환경, 개발계획 같은 재료가 있어야 한다. 주택시장의 체력이 강하고 면역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애초에 감염병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바이러스를 이겨냈을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대학원)는 “정부의 주택 정책이 확산 방지에만 집중하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다”고 지적했다.주택 수요자는 집값 과열 확산기의 풍선효과에 주의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본다면 전염병은 잡히고 수그러들게 된다. 이를 잘못 타면 긴 터널을 만날 수 있다. 12년 전인 2008년 서울 주택시장에서 강북이 뜨거웠다. 강남 집값이 2007년 꺾인 뒤 풍선효과와 뉴타운 개발 공약이 쏟아진 4월 총선 영향이었다. 그해 상반기 6개월간 노원구 아파트값이 30% 급등했다(서울 평균 9%, 강남3구 1% 선).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집값 상승기 때 꼼꼼하게 따져 들어야 할 말이 ‘풍선효과’ ‘반사이익’”이라며 “집값 과열 열기가 한풀 꺾인 뒤 ‘막차’를 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2020.03.01 17:41

4분 소요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6) 인플레이션 시대의 종언?] 뉴노멀 시대 누워버린 필립스 곡선

전문가 칼럼

각국이 돈 풀어도 물가 낮고 실업률도 안정적… 수요 자극 위한 적절한 임금 인상 필요 미국 증시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한국·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주요국 증시는 10~30%대로 올랐다. 주요국 시장의 장기 채권 역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도 저조한 성장률 가운데서도 미중 무역분쟁의 1차 협상 타결과 영국 보수당의 총선 압승 후 안정을 찾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은 강세를 이어갔다. 넘치는 유동성이 원동력이다. 이렇게 유동성이 넘치고 고용 사정도 유례 없이 좋은 데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물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지난해 4분기 이후 물가안정으로 세계 중앙은행들이 비둘기파적으로 변했고, 그런 기대감이 자산시장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취임 초기만 해도 서슬퍼렇던 파월 미 연준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내년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경기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증시를 달아오르게 만들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를 계속 내리라고 압박할지 모를 일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고용 호조에도 물가 압력이 크지 않은 현실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통상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하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야 한다. 이쯤에서 자신의 이론이 먹히지 않아 좌절해 버릴 경제학자 빌 필립스를 불러보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거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필립스 곡선이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출신 경제학자 필립스가 제시한 이 그래프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마이너스의 상관관계임을 제시한 것이다. 이 곡선은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물가가 하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빌 필립스가 울고갈 현상? 사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정부나 국민에게 고통거리다. 국민 생활 고통지수는 미저리 지수(Misery Index)라고 한다. 이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으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해서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6%이고 실업률이 7%이라면 국민고통지수는 13%이다.필립스 곡선의 탄생으로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실업률이 너무 높으면 세금 감면이나 소비 촉진, 이자율 인하 같은 확장 정책을 구사하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할 때는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이며, 이자율을 높이는 수요 줄이기 정책에 나선 것이다. 1960년대까지 각광받던 필립스의 이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여러 지역에서 실업률 증가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으로 이론적 문제점이 지적됐다. 종전의 필립스 곡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수요의 관리를 통한 해법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물가와 실업률이 모두 높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상황을 개선하면 다른 쪽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 경우 공급 충격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생산기술의 발달로 생산비용이 줄어 재화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 수요가 늘어 경기가 차츰 활발해진다.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기업의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래서 생산기술의 발달이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는 필립스 커브를 좌측으로 옮겨 더 낮은 물가 상승률과 더 낮은 실업률의 상황이 도래하게 한다.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미국 고용시장이 개선 조짐을 보일 때까지 ‘사실상 무기한’ 매달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담보증권(MBS)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어쩌면 빌 필립스가 제공한 필립스 곡선의 문제의식에 연유한 것이리라. 벤 버냉키의 주장과 반대로 실업문제를 변형된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고, 실업의 문제는 임금의 문제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실업률은 노동 시장에서 임금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중앙은행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주장이다. 아울러 실업률과 물가 사이에 안정적인 함수관계가 있다고 본 빌 필립스의 주장은 최근 통계를 보면 무색해지게 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위기 이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인 음(-)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져 보인다.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을 동시에 이루었음에도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았다. 물가와 실업률과의 반비례 관계가 부정되는 사례다. 이런 사례는 또 있었다. 1991년 이후 113개월간의 장기 호황을 설명하기 위해 비즈니스위크는 신경제(New Economy)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인플레이션 없이 장기 호황을 누린 미국의 경제 모델에 붙인 이름이다. 당시 컴퓨터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생산성이 계속 증가하면서 임금상승률보다 생산성 증가율이 높아졌다. 인플레이션 없는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나라마다 상이한 여건과 수요 요인으로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다르기도 하고 공급 조건이 달라지면 필립스 곡선 자체가 움직이기도 한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 한국의 경우 자본집약적 수출의존도가 확대됐다. 세계화와 경제 개방의 진전도 있었다. 그래서 국내 수요 요인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결과 성장률과 물가 간의 탄성치 하락 속도가 빨라져서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다. 경제 성장으로 수요가 늘어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가능하다. 성장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아지는 데다 정보통신기술 등 자본집약적 산업 위주로 수출이 이뤄지다 보니 성장 확대가 고용 증대, 임금 상승, 기업 비용 증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해졌다. 성장이 이뤄지면 고용이 늘고, 이에 따라 임금이 올라 기업 입장에선 비용 증가로 이윤을 맞추기 위해 가격을 올렸으나 성장이 되도 고용이 이뤄지지 않으니 가격을 올릴 요인도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세계 경제의 공급 측 요인, 즉 곡물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각국의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여하튼 온라인 경제의 발달과 세계화로 필립스 곡선은 점점 더 눕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도 먹히지 않는 필립스 곡선 최근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고용률만 놓고 보면 상당히 호조이다. 고용률은 23년 만에 최고를, 실업률은 6년 만에 최저를 각각 기록했다. 정상적인 필립스 곡선과 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해 빌 필립스를 무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증감률이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물가에 수출 가격 하락이 겹쳤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와 달리 GDP디플레이터에는 국내에서 생산한 수출품이 들어간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이다. GDP를 구성하는 투자, 소비, 수출입 등 경제 전체의 물가수준을 반영해 ‘GDP 물가’로도 불린다. 소비자물가가 가계 지출 비중이 큰 460개 품목에 가중치를 붙여 산출하는 반면 ‘GDP 물가’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하는 종합 지표여서 체감경기와 밀접하다. 거시경제 진단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3분기 수출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6.7%를 기록했다. 이는 3년 전인 2016년 3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물가도 같은 기간 7.4% 떨어졌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11.9%) 이후 최대 낙폭이다. 중국 등 다른 나라와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리의 수출 주력 제품 경쟁력이 약해져 제값을 받기 어려워진 게 수출 물가 하락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좀 더 이어질 전망으로 갑작스러운 GDP 디플레이터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그래서 혹자는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한다. 디플레이션은 ‘앞으로 물건 값이 더 싸질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생각에 기반을 두어 소비심리를 더욱 악화시킬지 두려움이 앞선다. 신용평가사 S&P는 2020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이라고 경고했다. S&P는 우리나라의 경기가 바닥을 지난 것 같지만 수퍼 예산편성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에도 경제성장률과 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금리는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S&P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투자도 부진한 만큼 디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이런 디플레이션 상황에 맞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얼마까지 낮출 수 있을까? S&P는 한국은행이 통화완화 효과를 내려면 정책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며, 한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음을 제기한 대목이다. 이 와중에 미중 무역 분쟁 1차 협상이 타결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일본에서부터 미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은행, 미 연준,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대표 중앙은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는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기묘한 일이다. 일본의 실업률이 26년 이래 가장 낮고, 미국의 실업률도 근 50년 만에 가장 낮은 데도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게 세계 경제의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는 수요 진작을 위해 지금의 상황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나타난 세계적인 경기 반등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취한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는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전반적 소득은 살아나지 못했다. 일본은행은 1999년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 부근으로 유지해왔다. 가끔은 그 아래로 내리기도 했다. 다시 성장이 시작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일련의 개혁 조치에 착수했지만, 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가 수요 진작의 책임을 중앙은행에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경쟁력과 생산성 제고에 필요한 수급 상황의 개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이 구조적 개혁보다 통화 부양책에 의존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선순환적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심한 인플레이션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 주기를 일으킬 수 있게 임금을 올려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하나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 조치 어느 것도 국민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낙수 경제’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입증해주고 있다. 이제 통화정책이나 재정 정책만으로 경제 성장을 제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세계는 인식해야 한다. ━ 에드먼드 펠프스의 필립스 곡선 반론 노벨경제상을 탄 에드먼드 펠프스는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인 역학관계를 종합적으로 보고 진단하는 방법을 사용한 학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06년 그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거시경제 정책의 장기와 단기 효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힌 공로를 인정했다. 그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그리고 경제성장 사이의 상호 충돌을 해결하는 데 언제나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도대체 어떻게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했다.펠프스는 필립스 곡선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필립스 곡선 이론에 ‘물가상승 기대심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물가는 실업률과 함께 물가상승 기대심리에 영향을 받으며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물가가 아닌 노동시장의 기능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았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단기적일 뿐이고 고용주에 대한 보조금 등 임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정정책으로 중산층을 육성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펠프스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차별화된 고용 보조금 제도가 빈곤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빈곤이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의 원천이 되고 있다면서 취약계층에서 벌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을 제시한 것이다.세계 주요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음에도 소득은 크게 늘지 않고 자산시장의 양극화만 조장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에드먼드 펠프스의 인본적 시장경제를 생각하면 어떨까? 그는 완전한 자유방임 상태의 시장경제는 취약계층에게 야수와도 같은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정부가 고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파격적으로 낮출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각종 규제와 예외로 만들어진 진입장벽을 쌓아올려 유명 기업을 도와왔다고 평가하며 거대 기업들이 포진한 산업군에서 새로운 산업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고 역설했다.인터넷의 발달은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물가를 하락시킨다.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세계화에 따른 국가별 분업이나 전자상거래 확산 같은 세계적인 요인에 이전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글로벌 요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 대응에도 주요국 인플레이션은 장기간 물가목표를 하회하며 하향 동조화 현상을 보였다. 세계적인 저인플레이션 지속 현상은 글로벌 공급망 확충, 온라인 거래 확산 같은 구조적 요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이 확대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은이 물가상승률에서 경기순환적 요인과 불규칙 요인을 제거한 ‘추세 인플레이션’을 구해본 결과, 우리나라는 2001~2008년 사이 2.5%였는데 2011~2018년은 1.7%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21개국 평균치는 같은 기간 2.0%에서 1.4%로 하락했다. 동 보고서는 “글로벌 요인이 개별 국가의 추세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규모 국가에서 비교적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글로벌 요인의 영향은 대외 연계성이 높을수록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2013년 3분기 이후 우리나라에 대한 글로벌 추세 인플레이션 영향력은 더 커졌다. 2001년 2분기~2013년 2분기 양측의 상관계수는 0.5였지만 2001년 2분기~2019년 1분기 상관계수는 0.91까지 높아졌다. 세계 공장의 역할을 한 중국을 보자.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8%에서 2018년 25%로 확대됐고,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기존 선진공업국의 비중은 축소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그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적 상품을 세계에 대규모로 공급했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앞다퉈 중국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선진국 기업들의 제품 다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였다. 이제 그 공급망이 더 싼 베트남 등으로 이동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의 발달로 선진국에서도 더 싸게 공급할 기반이 마련됐다.지금의 저물가 부분이 우려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논의하는 디플레이션과는 아직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당장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여러 요인에 의해 종말을 고하고 있을 수 있다. 이쯤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디플레이션은 수요 부진에서 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포용적 성장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물가 하락이 기술 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공급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면 그건 꼭 위협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친노동적 정책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한지 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처방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다양하게 추진될 수 있다. 소비수요를 충분히 자극시키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하는 문제와 양립이 가능해야 한다. ━ 수요 요인과 공급 요인의 혼재 적정한 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은 시간은 곧 화폐인 세상을 묘사했다. 세상에서 지폐와 동전이 모두 사라지고 시간만이 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해서 시간을 벌고, 번 시간으로 소비를 한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다 쓰고 잔여시간이 제로(0)가 되는 순간 누구나 심장마비로 죽는다. 이런 세상에서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은 결국 가난한 사람이다. 주인공 윌 살라스는 48시간 이상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가난뱅이였다. 어느 날 그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던 부자의 목숨을 구한 대가로 100년이란 시간을 받게 된다. 너무 기뻐 꽃을 사들고 어머니의 귀가를 기다리지만 그날 어머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버스비가 갑자기 1시간에서 2시간으로 오른 탓에 생명줄인 시간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아득한 옛날 같지만, 금융위기 직후에도 우리는 그걸 겪었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두려운 게 디플레이션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영화 에서 어머니를 잃은 살라스는 무작정 한 대형 시간은행의 은행장을 찾아가 협박하며 금고 안에 있던 100만년을 시중에 유통시키라고 절규한다. 그러자 은행장은 그렇게 되면 시스템이 파괴되고 다음 세대 삶의 균형까지 무너진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말하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유동성을 엄청나게 살포하는 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은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필립스 곡선은 그래서 부침이 많은 주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장(국립외교원 파견)이다. 대한민국 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9.12.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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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문제에 초점 맞춘 올해 노벨경제학상] “빈곤은 무지와 게으름 문제 아니야”

산업 일반

뒤플로, 크레이머, 바네르지 교수 영예… 국제 원조의 효과 높일 현실적 방안 고민 노벨위원회가 10월 14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빈곤 연구 분야의 권위자들을 선정한 것은 국가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현실 속에서 경제학의 관심이 점점 더 분배 문제로 향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47)와 마이클 크레이머(55), 아브히지트 바네르지(58) 등 교수 3명은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 원조의 효과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 경제학자들이다. ━ 뒤플로, 최연소 겸 두번째 여성 수상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수상자인 뒤플로 교수에게 맞춰졌다. 바네르지·뒤플로 교수가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질문은 주로 뒤플로 교수에게 집중됐다.바네르지 교수는 이른 새벽 수상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은 과정을 설명하면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우리 부부 중 한 명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하고 싶다면서, 특별히 여성을 요청했다”면서 “나는 자격 미달이라서 침대로 되돌아갔다”고 말해 회견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취재진에게 ‘바네르지와 그의 아내’라는 표현을 삼가달라고 당부하면서, ‘뒤플로와 그의 남편’으로 부르도록 제안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뒤플로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이들조차 빈곤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 등을 통해 희화화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뒤플로·바네르지 부부는 2011년 함께 출간한 책 에서 가난이 개인의 무지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님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뒤플로 교수는 여성으로서 역대 두 번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때에 (수상이) 이뤄졌다”며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들은 그들에게 마땅한 존경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뒤플로 교수는 이번 수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라듐 발견으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가 상금으로 라듐을 샀다는 내용을 어릴 적 읽었다”면서 “공동 수상자들과 논의해 ‘우리의 라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바네르지 교수는 뒤플로 교수와 함께 2003년 이들이 몸담은 MIT에서 빈곤퇴치연구소를 설립해 빈곤국 원조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실증적 방법을 통해 연구했다. 제대로 된 주거와 음식,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갈 수 있을지를 경제학 분석 기법을 활용해 연구한 것이다. 김부열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들의 연구성과에 대해 “개발경제학은 1940~1960년대에 성장이론 분야로 많이 논의된 분야”라며 “바네르지 교수 등은 개발경제학의 접근 방식을 미시경제학적으로 바꾸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 나라가 성장하는 경제성장 이론도 중요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농업, 교육, 보건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평가했다”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문적 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아프리카 케냐 사례를 연구한 크레이머 교수의 경우 케냐 초등학생의 결석률과 기생충 피해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후 교육 관련 공적개발원조 프로그램에서 구충제 보급이 필수가 됐다.홍성창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실장은 “개발협력 사업을 하거나 공적원조를 할 때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유인체계를 마련해 어떻게 하면 정책 효과성을 더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이라며 “이를 계량적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크레이머 교수가 2016년 6월 KDI가 주최한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위한 글로벌 교육재원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의 경제발전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기억했다. 홍 교수는 “크레이머 교수가 한국 역시 교육을 통해 빈곤을 탈출한 아주 좋은 사례라고 언급하며 그런 발전 경험을 다른 개발도상국과 많이 공유해 달라고 강조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뒤플로 교수는 10월 14일(현지시간) MIT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남편 바네르지 교수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국 취재진 질문에 뒤플로 교수는 “한국은 좋은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바네르지 교수도 “기술과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동의했다. ━ 한국은 좋은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 크레이머 교수가 MIT에 있을 당시 그에게 경제성장론을 배운 안상훈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경제학은 부유한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게 아니고 부와 빈곤의 문제를 동시에 보는 것”이라며 “빈곤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는 “바네르지 교수는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주류 경제학자”라며 “과거 콘퍼런스에서 봤을 때 대단히 분석력 있고 날카로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다 그런 인상을 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와 달리 주류 경제학계는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에서 분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번 노벨 경제학상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정원 중앙일보 기자, 연합뉴스 bae.jungwon@joongang.co.kr

2019.10.20 16:38

4분 소요
[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투자 망치는 인간의 집단본능

전문가 칼럼

과도한 낙관·비관론에 치우치기 일쑤... 역발상 혹은 역행 투자 필요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온통 편 가르기 천지인 듯하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편을 갈라 극심한 대립을 보인다. 대학 입시제도, 분양가 상한제, 일본과의 갈등, 대북 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 교육·부동산·대외정책·노동정책 각 분야에서 첨예한 의견 갈등이 나타난다. 이런 대립이 보수·진보의 이념적 차이의 결과이든, 자신이 처한 경제적 위치에 따른 정치적 판단의 결과이든, 혹은 지역 정치색에 따른 것이든 간에 지나치게 선명하고 날카롭다. 온라인상의 댓글에서는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의 기미마저 발견하게 된다. 집단 극단화란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의 공저자 캐스 R. 선스타인은 에서 집단 극대화가 사회적으로 무서운 이유로 극단화된 집단에 ‘어떤 권위적인 주체가 소속되어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맡기는 경우에는 대단히 좋지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례로 파시즘, 인종청소, 테러집단 등은 전형적인 집단 극단화의 추악함과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것들이다.그런데 집단에 소속하고자 하는 인간 심성은 본능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집단에 충실했던 원시인들의 후손이다. 원시시대에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곧 생명의 위협을 의미했다. 혼자로는 맹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고, 마실 물을 찾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심성에는 집단이나 무리에 속해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새겨져 있다. 따돌림이나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무리에서 멀어진 원시인의 고통과 불안감에 다르지 않다. 폭력을 당하면서도 또래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청소년들의 태도는 고립의 고통이 더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 집단 심성은 인간의 본성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집단본능이 역효과를 낳는 분야가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이다. 집단 내 어떤 믿음을 견고히 하는 촉매 중 하나가 ‘정보’이다. 인간은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나와 같거나 비슷한 의견을 집단 내에서 제시하면, 금세 동조화가 일어난다. 더 나아가 강력한 유대감도 생겨난다.온라인상의 부동산이나 주식 커뮤니티를 보면, 그들이 서로 기대는 믿음이 얼마나 강고한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정보도 자신들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으면 부정한다. 더 심한 경우, 아전인수격으로 정보를 왜곡해 집단 내에 유통하기도 한다. 대개 강력한 상승장이나 폭락장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집단본능은 투자자들을 낙관과 비관의 극단으로 내몰기도 한다. 낙관이나 비관의 감정은 기대감과 실망감 혹은 두려움을 의미한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가격 상승을 목도한 사람들에 의해 전염병처럼 확산된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 교수는 이를 두고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이란 표현을 쓴다). 사회적 전염은 반대로도 작동한다.주식이나 부동산을 다른 사람들이 급매로 처분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극도로 비관적인 전망으로 돌아선다. 주식이나 부동산의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주위에 낙관 혹은 비관에 휩싸인 사람들의 행동 자체에 우리는 큰 영향을 받는다.집단본능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링컨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발탁했다. 바로 정치학자 도리스 굿윈이 이름 붙인 ‘라이벌의 팀(Team of Rivals)’이다. 정적이라도 과감하게 자신의 주위에 발탁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다양한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후 그가 내린 결정은 미국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또 ‘악마의 변호인’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란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는 존재를 말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투자대상이나 시장 흐름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일류 투자회사 중에는 확증이 강한 소수에 의해 투자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장일치제를 도입하거나 악마의 변호인을 두어 반론을 제기하도록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장치들은 집단 본능과 그것에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확증 편향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심리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스로를 고독에 빠뜨릴 수 있어야 한다. 다수가 가는 길은 피하고 소수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일종의 역발상 투자 혹은 역행 투자이다. 가령 투자 종목을 발굴할 때, 가장 핫(Hot) 곳은 피하고 반대로 업황이 어렵고 지지부진한 분야에서 1등 기업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투자 고수가 아닌 개인 투자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벌기란 어려운 일이다.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자연스런 역행 투자를 하는 방법은 주기적인 리밸런싱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과 채권에 각각 50%씩 투자했다면, 일정 시점마다 바뀐 비율을 다시 50:50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든 투자처는 가격이 하락했다는 의미이자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비중을 재조정함으로써 오른 것은 팔고 떨어진 것을 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투자 전 조사·분석에 힘 쏟아야 평소 매수 후보 리스트를 만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가격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로 추격 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지만 추격 매수는 주로 최고점에서 이뤄지는 게 다반사이다. 가격이 오를 때는 사지 못한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된다. 이런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매매보다는 조사에 먼저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만일 상가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관심 지역의 상권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해야 한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이다. 관심 지역을 자주 방문하고 중개업소와 사귀어 두어야 한다. 주식은 말할 것도 없다. 주식은 가격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살아 있는 유기체를 사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조사가 없다면 그것은 투기에 다름 아니다. 간접투자인 펀드도 다른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는 이유로 가입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지, 펀드 규모는 어떠한지 등등을 조사해야 한다.미리 조사해 두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투자의 세계에서 이번 한번뿐인 경우란 없다. 일부 사이비 예언가들이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얘기한다면, 귀를 막아버리는 게 낫다. 만일 당신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남들에게 과연 떠벌리겠는가. 기회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게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리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2019.09.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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