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폐막식'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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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이징 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가는 가운데 각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단의 유니폼이 주목받으면서 ‘두 패션 브랜드’가 화두에 올랐다. 한국 선수단 유니폼에 새겨진 미국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입고 등장한 유니폼에 붙은 국내 브랜드 ‘휠라’다. 올림픽 후광효과를 노리려는 패션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두 브랜드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 평가다. ━ 국가대표 가슴에 ‘노스페이스’…역대 최장수 웃고 있는 곳은 노스페이스다. 노스페이스는 미국 의류 브랜드지만 국내 시장에선 판권 계약을 맺고 있는 영원아웃도어가 이끌고 있다. 이번 2022년 베이징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개회식, 폐막식 단복부터 유니폼 제작을 모두 맡았다. 벌써 4번째다.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올림픽을 시작으로 2018년 평창올림픽, 지난해 개최된 도쿄올림픽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단 가슴에 노스페이스가 새겨졌다. 국내 유니폼 역사상 최장수 파트너사로 활동 중인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대한체육회와 4년 계약을 더 연장하면서 2024년 프랑스 파리올림픽의 공식 단복 제작까지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노스페이스는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선 꽃다발을 주는 간이 시상식과 메달을 주는 공식 시상식이 두 번씩 열리고 황대헌, 최민정, 곽윤기 등 빙상 종목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노스페이스 로고 노출 빈도를 높였다는 분석이다.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페트병 등 리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기술로 선수단복을 재활용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트렌드에 맞는 행보로 특별함을 더했다. 공식단복 한 벌 제작에는 페트병(500㎖ 환산기준) 약 200여개가 재활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소비자들 반응도 좋다. 올림픽에 맞춰 노스페이스는 선수단복 4종을 모티브로 한 ‘팀코리아 레플리카’를 내놨는데 인기가 높다. 시상용 단복을 모티브로 한 ‘베이징 팀코리아 V 재킷’은 공식몰에서 초기 물량이 짧은 시간 안에 품절됐고 선수들의 개·폐회식 단복을 모티브로 한 베이징 ‘팀코리아 다운 파카’는 벌써 리셀(재판매) 시장에 등장할 정도다. 노스페이스의 선전을 ‘올림픽’ 수혜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년간 국가대표 단복을 제작하는 대표성을 띄면서 기업 존재감이 부각되고 전 세계로 중계되는 스포츠 경기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 런던 후원으로 3000억대 홍보효과…이제는 해외로 반면 휠라는 앞으로도 자리 뺏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유니폼을 제작하며 활약했지만 영원아웃도어의 선전으로 승기를 다시 가져오기가 역부족이다. 런던올림픽 당시 후원으로 휠라는 국내외에서 3000억원대의 홍보효과를 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휠라는 ‘한국 귀화’ 브랜드라는 장점을 살려 올림픽 해외 마케팅에 더 무게를 실을 전망이다. 이번에 제작한 네덜란드 선수단 단복 역시 그 일환이다. 카메라에 비춰진 네덜란드 선수들은 한눈에 들어오는 오렌지색 유니폼과 가방, 신발에 새겨진 휠라 로고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 필라 형제가 만든 브랜드지만, 2007년 한국지사가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완전 인수하면서 ‘토종 기업’ 브랜드가 됐다. 휠라 관계자는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국제적 행사인 만큼 인지도 재고 차원에서 글로벌 후원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컬링, 봅슬레이 등 국내 후원 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빙상팀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토종’ 휠라가 버려지고 ‘미국’ 노스페이스가 선택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2017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10개월 남짓 앞두고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벌인 싸움이 단초가 됐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빙상 대표팀의 선수복 공급업체를 ‘휠라’에서 돌연 ‘헌터’로 바꾼 것이 화근이 됐다. 평창을 앞두고 5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새로운 경기복을 공개할 예정이었던 휠라는 뒤통수를 맞고 대한빙상연맹과 법적 다툼까지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업체간 다툼이 있고, 연맹이 껴 있는 데다 선수들 의견까지 불일치하는 등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면서 “반박자료에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법적인 다툼까지 가는 휠라를 결정권자들이 좋게 봤을 리 없다. 소위 말해 제대로 찍힌 것 아니겠냐”라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주먹구구식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공정성과 공공성에서 더 멀어진다면 체육계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해관계와 득실을 따지기 보단 선수들과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이 선행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2022.02.19 13:06
3분 소요![도쿄올림픽에 ‘진짜 일본은 없었다’ [장근영 팝콘 심리학]](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8/20/ecn849f78e9-4092-4479-85b5-179f681a1346.353x220.0.jpg)
마침내 2020 도쿄 올림픽이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사태에 휩쓸려 전례 없는 1년의 연기 끝에, 이름은 2020이지만 2021년에 개최된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반드시 개최했어야 하는 행사였다. IOC나 주최국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역시 여러 건의 아름다운 스포츠맨십 사례들을 보여주며 비대면으로 지켜본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보여준 도쿄 올림픽 예고편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일본 문화의 저력을 만방에 자랑하는 멋진 쇼였다. 도쿄의 랜드마크인 시부야 역부터 주요 명소들이 일본의 유명 운동선수들의 모습과 함께 짧게 소개되며 그 사이로 ‘캡틴 츠바사’와 ‘팩맨’ ‘도라에몽’ ‘헬로키티’를 거쳐 ‘수퍼마리오’로 변신한 총리가 등장하는 그 짧은 예고편은 지금까지 일본이 전 세계 대중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 기대와 다른 객관적 자아 그런데 정작 본 행사의 개막식과 폐막식은 예고편과는 전혀 달랐다. 어디에도 전 세계 대중문화를 장악한 일본 아니메나 게임의 캐릭터는 없었다. 일본 분위기를 잘 담았다 평가되었던 마스코트조차 어디론가 사라졌다. 코로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차분한 기획이라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픽토그램 판토마임은 또 뭐였단 말인가. 물론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것들은 모두 전통적인 일본 문화의 요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일본과는 달랐다. 최소한 2016년에 아베의 빨간 모자를 보며 기대했던 일본 문화는 아니었다. 이것을 보며 정체성의 두 측면인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가 떠오른다. 여기서 주관적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같은 것들이 모두 주관적 자아에 해당한다. 자기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했다면 주관적 자아가 적절히 형성된다. 문제는 객관적 자아다. 원칙적으로 객관적 자아는 ‘남들이 보는 나’다. 객관적 자아는 자의식과도 연결된다. 자의식이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을 깨달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들의 생각을 내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의 생각을 추측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객관적 자아가 형성되려면 우선 남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남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남들은 나와는 달리 뭘 더 좋아하고 뭘 더 싫어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생겨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G.H.Mead)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남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걸 남들은 모를 수 있고, 남들이 아는 걸 나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시기가 대략 생후 3년 차부터다. 이때부터 우리는 남들이 나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와는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도대체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남의 마음을 알면 그 마음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혹은 그 마음에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적절히 거짓말을 하는 법,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도 여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가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내 정체성, 정확히는 객관적 자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알았다고 여기는 남의 마음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객관적 자아는 실제보다 과대평가돼 있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 역시 내 예상만큼 높지 않은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 현실과 자의식간의 격차 덕분에 자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1979년 심리학자 알로이(Alloy)와 아브람슨(Abramson)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중요성, 타인의 시선 등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일종의 자가당착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깨닫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약간의 자가당착은 내 자부심을 지켜준다. 하지만 이 격차가 지나치게 크면 민폐를 끼치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현실감각을 잃고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격차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한다. 예를 들어, 소위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며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귀하게 새겨들으리라 믿으며 각종 참견과 사생활 침해를 저지른다. 사실 그 남들 대부분은 그를 일종의 자연재해로 여기며, 그저 더 심한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주변에서 멀어져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라도.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의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이를 적절한 범위에서 조절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조직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장점과 약점이 고객이나 시장에서 보는 장단점과 어긋난다면, 그 조직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조절이 필요한 까닭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의 격차가 좀 더 복잡할 수도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 개막과 폐막 행사를 보며 내가 느꼈던 당혹감도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 요컨대 기획자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일본인으로서의 주관적 자아가 다른 나라에서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 즉 일본의 객관적 자아와 크게 달랐던 셈이다. 이 자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덕분에 일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기회가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좀 아쉽기는 하다.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만화와 게임으로 쌓아 올린 문화적 영향력은 이제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캐릭터는 디즈니가 아니라 ‘포켓몬’과 ‘헬로키티’였다. 이번에 도쿄올림픽에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국가원수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정말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만화 작가였다. 유럽에서 온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숙소에서 ‘나루토’ ‘드래곤볼’ ‘원피스’ 캐릭터 포즈를 취하며 이들 캐릭터의 본고장 방문을 자축했다. 그러니 나는 일본의 주류 혹은 기성세대가 자국의 대중문화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 중 자국의 행적을 정당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 , 등을 썼고 , ,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박사
2021.08.20 13:29
5분 소요![2020 도쿄올림픽 바이러스와 전쟁 시작…위기는 여전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7/24/ecn2ed31bbc-f017-444e-b82b-d249f2dafb7e.353x220.0.jpg)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연기됐던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패럴림픽’이 1년 연기 끝에 7월 23일 개막했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채화해 1년간 보관됐다가 올해 일본 47개 현을 돌았던 올림픽 성화가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불을 밝혔다. 8월 8일까지 열전이 이어질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악재, 일본의 아날로그 방역과 더딘 백신 접종, 준비 부족, 열기 저하 등 숱한 논란 끝에 개막했다는 점에서 어느 올림픽보다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난민 대표팀을 포함해 전 세계 206개 국가·조직이 동참하고 1만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도핑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러시아는 국가 이름으로의 참가가 금지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름으로 개별 선수가 출전한다. 북한은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발표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으며, 도쿄2020올림픽에 불참하는 유일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 기록됐다. 올림픽이 통째로 연기돼 개최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처음이다. 도쿄 2020패럴림픽은 8월 24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열린다. 올림픽 1년 연기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코로나19의 충격은 올림픽 행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막식·폐막식의 네 행사는 ‘전진(MovingForward)’이라는 공통 주제를 담았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TOCOG·이하 조직위)는 “우리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장애물인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 속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며 “스포츠가 가진 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 코로나19 범유행, 1년 연기 끝에 개막 7월 23일의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Emotion)’였다. 조직위는 “개막식을 통해 우리는 스포츠의 역할과 올림픽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모두 함께 해 온 노력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전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그 배경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난 1년을 살아왔고, 2020 도쿄올림픽은 전례 없는 범유행의 한가운데에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8월 8일 치러질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Worlds we share)’로 잡았다. 조직위는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 세계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며 “우리는 폐막식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렇게 2020 도쿄올림픽은 인류가 바이러스와 벌이는 싸움을 상징하는 대회가 됐다. 대회 자체가 1년 연기된 것부터, 올림픽 선수단·관계자를 거품 안에 넣는 것처럼 외부와 접촉할 수 없게 분리한다는 ‘버블 방역’ 등 초유의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결국 개최한 데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하지 못한 방역과 골판지 침대 등 부족한 대회 준비 등으로 지적이 끊임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도쿄올림픽은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의 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 말고도 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인은 적지 않다. 국제 분쟁과 갈등이 그것이다.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일뿐 현실은 올림픽이 열린다고 분쟁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분쟁 감시·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R)의 로버트 맬리 전 회장은 ICR 웹사이트에서 기고한 글에서 세계 10대 분쟁·위기·긴장 지역을 제시했다. 아프가니스탄·예멘·에티오피아·부르키나파소·리비아·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한반도·카슈미르·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 등이다. 이미 수시로 국제뉴스에 등장해온 지역들이다. 미국외교협회(CFR)는 현재 글로벌 분쟁·갈등·위기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CRR은 전 세계 갈등 지역을 ‘위기 상황’ ‘중대 상황’ ‘제한적 상황’으로 세분했다. 국제적 분쟁이나 내전, 갈등의 고조, 위기나 불안의 지역 또는 글로벌 확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반영했다. 미국 국익에 주는 영향을 기준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상황의 심각도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 올림픽 시작됐지만, 글로벌 분쟁·갈등·위기는 심화 CFR은 위기 상황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남중국해 영토 분쟁, 동중국해 긴장, 북한 위기, 미국과 이란의 대치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글로벌 5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가 중국과 관련이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이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벌이는 섬과 바다의 영유권 다툼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7월 중국이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마이동풍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앞세워 여기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이기도 하다. 이 바다는 한국과 일본에도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이기도 하다. 동중국해 분쟁은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관련한 갈등을 가리킨다. 2020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바다는 이처럼 긴장 상황이다. CFR은 중대 상황으로는 12가지를 추렸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와 레바논의 정치적 불안정, 이집트의 불안정, 터키와 쿠르드 무장조직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절반이 중동에 집중됐다. 지리적으로 중동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슬람권인 파키스탄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활동과 인도와의 분쟁 등 2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았다. 남미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베네수엘라의 불안정 등 2가지가 제시됐다. 유럽에선 러시아가 개입한 우크라이나 분쟁이, 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학생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의 폭력이 각각 꼽혔다. 미국의 국익에 대한 영향을 제한적이지만 현지 주민의 고통은 상당한 분쟁·갈등도 10가지가 거론됐다. 중동에선 리비아 내전과 예멘 내전(국제전으로 비화)이 꼽혔다. 유럽에선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들어갔다. 아시아에선 미얀마의 로힝야 위기가 제시됐다. 아프리카에선 말리 지역의 불안정,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민주콩고공화국(DRC)의 폭력, 소말리아 극단주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알샤바브의 발호, 에티오피아 분쟁, 남수단 내전이 6가지가 포함됐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분쟁이 벌어지거나 무장단체 조직원이 주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일시 총성이 멎었어도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한 곳도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에도 세계 곳곳에 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살상이 벌어지지 모르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분쟁이나 갈등과 관련한 이런 지적들은 올림픽이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올림픽 헌장은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는 문구일 뿐이며, 현실에선 여전히 갈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고대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고대 올림픽은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력과 국력이 좌우하는 근육질 행사였다. 당연히 이상은 훌륭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1000년 이상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신을 모시는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경기를 치렀다. 엘리스에는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이 올림픽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 국내와 국제 정치 대결장이었던 올림픽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도 현실은 종교나 도덕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 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창과 방패를 들고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장한 스파르타 전사들을 야단치고 벌금을 받아내기란 어지간한 배짱으론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보다 힘이 좌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국제정치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지배욕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 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패배한 도시는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올림픽에서도 문제가 되는 아마추어리즘이 고대 올림픽에서도 역시 문제가 됐다. 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두둑한 상금과 격려금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근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우승자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연애와 결혼은 물론 경제활동과 심지어 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고려해 축구나 야구,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라고 돈과 거리가 먼 가난한 스포츠 수도승은 아니다. 그래도 종교행사였으니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수시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 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사례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고대 올림픽도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더욱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부정이나 돈 때문이 아니다. 고대 올림픽은 종교로 시작해 종교로 막을 내렸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은 게 계기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니 이교도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은 폐지됐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지면서 하나의 문화가 단절됐다. 이런 고대 이집트의 비극과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고대 올림픽 폐지는 그나마 평화로운 편이었다. 도쿄올림픽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이런 형편에도 IOC가 중계료 수입 때문에 대회를 강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개인의 안전과 명예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로 선수들의 참가와 불참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도전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세계가 도쿄를 주시하고 있다. 7월 23일 개막해 8월 8일까지 17일동안 열전이 벌어질 도쿄 2020 올림픽은 인류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축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7.24 18:55
8분 소요![[도쿄 올림픽 연기] 역대 올림픽은 순탄하지 않았다](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2/24/ecn3698936108_OzwTeJY4_1.353x220.0.jpg)
전쟁·냉전으로 취소·보이콧… 반칙·승부조작은 고대 올림픽도 마찬가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혼란이 급기야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패럴림픽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3월 24일 45분간 통화하면서 연기에 합의했으며 IOC는 이날 즉시 임시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연기를 승인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먼저 연기를 제안하고, 바흐 위원장은 “100% 동의한다”고 응답하면서 담판이 이뤄졌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연내 개최를 포기하고 2021년 여름까지는 개최하며, 그리스에서 채화돼 일본으로 옮긴 올림픽 성화는 일본이 보관하고 시기를 미뤘음에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2020’이라는 대회 명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성화 릴레이도 연기됐다.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 안전한 곳이 없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언제 꺾일지 알 수 없어 올해 하반기로 옮기는 방안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선수의 안전과 관중의 참여, 그리고 전 세계적인 흥행을 위해선 개최 시기를 한 해 뒤로 옮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후폭풍 만만치 않아 결국 개최 시기를 1년 연기했지만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내년 비슷한 시기에 열릴 예정인 다른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 시기 조정도 문제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2021년 여름과 초가을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수영세계선수권 대회와 고베에서 장애인육상 세계선수권 대회가 예정돼 있으며, 미국에선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대회 연기에 따른 행정 처리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가장 먼저 생각할 대상이 경기장이다. 조직위원회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위해 33개의 경기장을 포함해 진행 공간 등 모두 43개의 장소를 확보했는데, 내년에 이를 다시 확보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내년에 다른 이용이 이미 예약돼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연기하거나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임대 재협상을 해야 한다.선수촌도 문제다. 새로 건설한 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선수촌으로 사용한 뒤 개보수를 거쳐 분양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연기로 사달이 나게 생겼다. 부동산 인도시기를 1년 뒤로 늦출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위원회가 보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도 활동이 1년간 연장되면서 자칫 ‘돈 먹는 하마’가 될 처지다. 인건비는 물론 사무실 임대료도 1년 치가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조직위원회는 IOC와 각국 올림픽위원회에서 도쿄를 찾은 VIP와 직원들을 위해 가계약한 경기장 주변의 숙소 4만6000개의 취소도 문제다. 조직위원회는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일반인은 대회 기간 중 예약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연기로 이 많은 물량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으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약금을 둘러싼 분쟁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올해 여름 도쿄와 주변 지역에는 이들 숙박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급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미 500만 장을 판매한 입장권도 문제다. 환불과정도 만만치 않으며, 이를 1년 뒤에 쓸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확보해둔 임대버스 2000대의 계약을 모두 취소하고 내년에 이 정도 물량을 다시 모아 계약하는 일도 골칫거리다. 1만명 이상의 경비 인력, 11만명의 자원봉사자를 일단 해산하고 내년에 다시 모으거나, 활동 시기를 내년으로 조정하는 일도 과중한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 2차 대전 당시엔 ‘정치 선전장’되기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한번 정한 올림픽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건을 겪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올림픽 연기는 근대 올림픽 도입 뒤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취소나 반쪽 개최, 선수 학살 등 비극은 왕왕 있어왔다.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은 올림픽 반납과 취소의 전력이 있다. 과거 침략전쟁을 벌이느라 1940년 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한 전력이 새삼스럽게 지적된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여름 올림픽은 1964년 이후 두 번째로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그런데 사실은 도쿄 올림픽 유치는 이번에 세 번째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다음인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을 확보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여름 올림픽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군국주의 일본은 1937년 침략전쟁인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을 일으키면서 각의에서 올림픽 개최권 반납을 스스로 결정했다. 한 나라가 유치했던 올림픽을 자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을 이유로 스스로 포기하고 반납한 사례는 1940년 도쿄 올림픽이 유일하다.이렇게 일본이 반납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로 넘어갔다. 하지만 소련이 1939년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19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을 벌어지면서 올림픽은 아예 취소됐다. 인류의 제전인 근대올림픽을 전쟁으로 중지한 것은 1916년 베를린 여름 올림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전쟁이 끝난 1936년 베를린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렸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이를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제시 오언스(1913~1980년) 선수가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고 4관왕에 오르면서 히틀러의 인종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1940년 도쿄 또는 핼싱키 올림픽에 이어 1944년으로 예정됐던 런던 올림픽도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끝내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은 종전 뒤인 1948년 런던이 여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비로소 재개됐다.일본이 올림픽을 포기하고 벌인 중·일전쟁은 끔찍한 살육극으로 이어졌다. 종전 뒤인 1947년 중화민국 행정원 배상위원회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군인 365만405명, 민간인 913만4569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산하 군역사연구부에서 출간한 는 항일전쟁 기간 중 3500만명의 중국인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기록했다. 동아시아를 넘어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올림픽 참가마저 갈라놓은 냉전시대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44만6500명의 군인이 숨졌다. 종전 뒤엔 소련군에 의해 60만명의 일본군 포로가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잡혀가 노역에 종사했으며, 이 가운에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침략전쟁 과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잃기도 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여름 올림픽에서 마술경기의 일종인 장애물경주에서 금메달을 딴 니시 다케이치(1902~1945년 3월 22일) 선수다. 니시 선수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이오지마 전투(1945년 2월 19일~3월 26일)에서 전차 제26연대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인류애에 입각한 평화와 화합의 제전을 버리고 국가주의를 내세운 침략전쟁을 벌인 대가였다.올림픽은 정치 문제를 내건 보이콧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27개국이 보이콧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당시 뉴질랜드가 반인륜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의 분리거주) 정책 때문에 국제적인 제재를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경기를 치렀는데, IOC가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하지 않자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 등이 대회를 보이콧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92개국 6084명이 참가했으며 29개국이 대회를 보이콧했다.몬트리올 올림픽 보이콧 사건은 그 다음에 열린 1980년 모스크바 여름 올림픽에 비하면 약과였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19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 참가에 그친 반쪽 올림픽이었다. 소련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보이콧을 주도했다. 그 결과 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한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했다. 한국도 포함됐다. 13개국이 참가는 했지만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앞세우고 입장했으며 3개국은 국가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 2월까지 이어지면서 소련을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입한 이 전쟁으로 소련은 재정문제에 봉착했으며 고전적 공산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웠던 소련을 몰락으로 이끄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공교롭게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다음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다. 이번엔 소련이 보복에 나서 보이콧에 나섰다. 하지만 동조 국가는 소련과 북한,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등 14개국에 불과했다.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140개국 6829명이 참가했다.1972년 뮌헨 올림픽은 72개국 71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다. 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인 ‘검은 9월단’ 무장대원 11명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하다 선수 전원을 살해한 뮌헨 참사가 벌어졌다. 인질극이 시작되면서 일시 중단됐던 경기는 사건이 종료되면서 재개돼 폐막식까지 마쳤다. 이 사건으로 올림픽기가 사상 처음으로 조기로 게양됐으며 이스라엘 국가도 조기로 게양됐다. 이스라엘의 대외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는 테러 관련자를 보복 살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펼쳐 20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 분노 작전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의 모티브가 됐다.뮌헨 참사를 겪은 뒤 올림픽의 보안과 경비가 강화됐으며 안전 올림픽이 강조됐다. 몬트리올, 모스크바,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보이콧을 겪은 뒤 국제사회는 올림픽 보이콧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않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동서 양 진영이 참가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보이콧은 사라지고 올림픽은 더 이상 정치로 얼룩지지 않았다. 인류는 올림픽의 비극으로부터 그나마 교훈을 얻었던 셈이다. ━ 연애·결혼·정치권력 얻은 고대 올림픽 우승자들 하지만 고대 올림픽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힘이 좌우하는 우락부락한 행사였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각각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했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하지만 현실은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고대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가 낮아졌다.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상금과 격려금으로 평생 먹을 재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올림픽 우승자가 인기를 얻어 연애와 결혼은 물론 정치에서도 힘을 얻는 게 일반적이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감안해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는 이유다. 하긴 아마추어 선수하고 해도 돈과 거리가 먼 수도승은 아니지만 말이다.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 아래에서 경기를 치렀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도 종교 때문이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으면서 이교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을 폐지했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졌다.‘그래도 종교행사였던 만큼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다반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돈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다양한 측면에서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다.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를 계기로 더욱 성숙한 대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일본 때문에 전쟁 피해를 입었던 이웃나라들이 ‘침략의 상징’으로 여기는 욱일기를 자국민의 응원도구로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황당한 일부터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인류가 코로나19라는 재앙 앞에 힘을 합쳐 대응하면서 그 정도 교훈은 얻어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 정신인 평화와 화합을 제대로 이루려면 말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3.29 09:48
8분 소요![[2017 해외 진출 가이드 | 일본] ‘일점(一点) 호화 소비’ 깐깐해진 日 소비자](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2/24/ecn2949993309_0bgLTp3q_01.353x220.0.jpg)
대규모 부양책·구조개혁에서 수출 길 찾아야... 70대 진입한 단카이 세대 관련 산업에 주목 일본은 기회와 위기가 상존하는 수출시장이다. 뿌리 깊은 자국 제품 선호 심리와 시한폭탄 같은 한·일 관계는 언제 수출 기업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베 신조 내각이 인프라 확충과 내수 부양책에 시동을 걸었고,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로 경기 회복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과 엔고 등 대외 경제 여건도 수출에 우호적이다. 비록 평균 연령 46.5세에 접어든 초고령 사회지만 여전히 내수 기반은 튼튼하다.한국은 지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본 수출에 이점이 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부산에서 배로 2시간 30분이면 국내총생산(GDP) 4조1200억 달러(약 4851조원) 규모의 거대 시장에 닿을 수 있다. 중국·대만 등 수출 경합국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가 저렴하고 오랜 기간의 무역 거래 덕에 산·학·관 등 분야에서 협력 관계가 조성돼 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소비자들이라지만 한국 제품에 친숙하며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일본 경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이다. 아베 신조 내각은 지난해 6월 ‘일본 재흥(再興) 전략 JAPAN is BACK’이라는 성장 전략을 세웠다. 4차 산업혁명과 건강·환경 등 10개 분야에 올해에만 28조1000억 엔(약 290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2012년 말 집권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주목할 점은 내수 경기 부양이다. 단순 인프라 투자와 함께 사회·경제 구조개혁에도 대규모 재정을 집행한다. 노인과 여성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1억 명 총 활약 사회’를 실현하는 데 3조 5000억 엔을 쏟아 붓는다.세부적으로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고, 탁아소에 지원책을 펼쳐 국가가 육아를 일부 책임진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배우자를 둔 전업 주부를 일터로 유도하기 위해 세금 공제 혜택도 축소할 계획이다. 노인의 연령도 현행 65세에서 70대 중반으로 늘려 명예퇴직 시점도 늦춘다. 더불어 야근을 막기 위한 근로 인터벌 제도 등도 도입한다. ━ 낙수 효과 버리고 소득 주도 성장 일본 정부는 낮은 임금 구조와 야근·주말 출근 등 과도한 업무량이 생산성 후퇴와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가계의 소득을 늘리고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에 기댄 낙수형 경제 성장에서 벗어나 소득 주도형 성장 체제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남녀의 근로·육아 분배와 65세 정년이라는 굳어진 관행을 깨겠다는 것이다.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의 시대 ‘인구감소-내수위축-기업경기 부진’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차원에서다. 더불어 기업에도 임금 인상과 설비 투자, 인수·합병(M&A), 기술 혁신에 350조 엔 규모의 유보금을 사용해 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다만, 일본의 가계 소득이 늘고 소비시장이 개선됐다는 판단은 아직 섣부르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 도쿄증시1부에 상장된 기업 이익은 2013년 1분기 20조5000억 엔에서 2016년 1분기 33조6000억 엔으로 63.9% 급증했다. 그러나 가계의 실질임금 지수는 2010년 100에서 2015년 99.2로, 소비수준지수 역시 같은 기간 100에서 95.3으로 뒷걸음질쳤다. 일본 정부의 구조개혁이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내수가 다시 살아나는 시기를 신중히 가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일본은 산업 측면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사물인터넷(IoT)의 촉진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 간병·육아 등 앞으로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서 인공지능(AI)·로봇 기술 등을 도입해 보육·간병 담당자의 노동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더불어 IoT 비즈니스를 확대한다. 노후한 생산 설비를 스마트 팩토리 등 첨단 설비로 교체하는 한편 와이파이 환경 정비를 통한 온라인 인프라 강화에 나선다. 또 외국인 관광객 4000만 명 시대에 대비해 방일 관광객 카드 결제망 확충 등 시스템 선진화에 나선다.일본 가계의 소득·여가시간 증가와 함께 IoT에 기반한 물류 시스템이 구축되면 일본 내수 시장에 수출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기업은 온라인 분야에 강점이 있어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일본의 온라인 마켓은 이제 성장기에 들어섰다. 일본의 B2C 전자상거래 시장은 2010년 7조8000억 엔에서, 2015년 13조8000억 엔으로 성장했다. 2021년에는 25조6000억 엔 규모로 2배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소비재 수출보다는 한국의 IT 기술 경쟁력을 앞세우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다. 보안 및 디지털 시스템 구축, 웹디자인 등 IT 기술 수출을 염두에 둘만 하다. 김정철 무역협회 도쿄 지부 부장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 일본의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응답이 우세했다”며 “과거 삼성전자 등 가전제품 수출이 많았던 데 비해 최근 추세는 IT·의료 관련 기업의 일본 진출이 활발하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한편, 1947~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가 70대에 접어든 점은 일본 소비시장의 변화를 예고한다. 약 806만 명에 달하는 이들 세대는 1970~80년대 경제 호황기를 누린데다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를 많이 받는 연공서열제의 혜택을 입어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일본의 소비시장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여행·레저 관련 소비가 증가한 것도 단카이 세대가 은퇴 러시를 펼친 영향이다. 퇴직금만 50조~80조 엔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세대가 고령층으로 접어들면서 간병 등 실버 산업이 더욱 커질 수 있다. ━ 도쿄올림픽 특수 반사 이익 기대 경제적으로 부유한 단카이 세대가 지난 10년간 중심 소비 계층으로 성장했고, 장기 불황에서 비롯된 ‘일점(一点) 호화 소비’ 성향도 최근 일본 소비시장의 특징이다. 일점 호화 소비란 일반 소비재는 저렴한 것을, 가방·의류 등 가치재는 비싼 것을 구매하는 성향을 말한다. 노무라연구소의 ‘2015년 소비자 1만 명 앙케이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렴한 소비를 중시한다는 응답은 2006년 32%에서 24%로 감소했다. 이에 비해 프리미엄 소비는 같은 기간 19%에서 22%로 늘었다. 또 가격보다는 제품의 편리성을 중시한다는 응답도 36%에서 43%로 크게 늘었다.이세경 코트라 도쿄무역관 과장은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제품에 대한 요구 사항이 적어지고, 다소 고가라도 개의치 않는 경향이 높다. 맞벌이, 고소득 가정일수록 이런 성향은 강하다”고 설명했다.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로 방일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도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수출 기회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개최로 8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2015년 25조 엔인 외국인 관광객 소비액은 2020년 29조 엔, 2030년 37조 엔으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올림픽에 발맞춰 항만·항공 등 물류 시스템의 현대화도 예고하고 있다. 대형 크루즈 선박 수용, 물류 네트워크 강화, 항만 정비, 공항 기능 강화, 리니어 중앙 신칸센 전선 개통을 앞당긴다.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따른 건설 자재 수출 등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도쿄올림픽 개최로 2018년부터 초박형TV를 중심으로 완제품과 메모리반도체 등 부품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대만 기업 홍하이가 샤프를, 중국 하이얼이 산요전기 가전부분을 인수함에 따라 TV 시장의 구조조정이 진행된 점은 국내 기업에는 호재다.당분간 엔화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엔화 강세는 한국 수출 기업에는 호재다. 엔화 값이 오르면 일본 기업들이 비싼 엔화를 무기로 해외 조달을 확대할 수 있어서다. 이에 완성차 제조사들은 물론 미쓰비시·도시바 등 대기업들은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해외 조달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일본 기업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해외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가 심했다. 기업 실적 악화로 해외 조달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과거 엔화 강세 때마다 부품 등 중간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일 수출은 호조를 보였다. 대일 수출액이 1985년 45억 달러에서 88년 120억 달러로, 90년 126억 달러에서 95년 170억 달러로 불어난 것도 엔고 덕분이었다. 미즈호은행은 올 상반기 엔·달러 환율을 달러당 92~102엔으로,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일본종합연구소는 94~105엔으로 점치고 있다.다만 한국의 일본 주력 수출품인 전자부품과 석유화학 제품 등은 저유가와 미국·중국·대만 등과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전자직접회로의 경우 한국의 수출 점유율은 7.7%로 대만(48.2%)과 미국(18.9%)에 크게 뒤처지며, 중국(6.9%)의 격렬한 추격에 쫓기고 있다. 김 부장은 “일본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고 장기 거래로 계약이 쉽게 끊기지 않겠지만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일본의 수입 규제 동향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농수산물에 국한됐던 수입 규제가 여타 산업으로 퍼지지 않을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수산물의 경우 일본은 자국 어업 및 가공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쿼터제도를 두고 있다. 김·오징어 등 17개 품목에 금액과 수량 제한을 두고 있어 수출에 애로가 발생하고 있다. 농기자재 업계의 경우 고질적인 담합 구조로 유명하다. 일본의 농자재 업계는 정부의 지원금을 중심으로 업체 간 담합 구조가 공고하게 형성돼 있다. 제품의 질·가격과는 별도로 거래 관계가 고착돼 있다는 지적이다. 가죽류 제품의 경우도 관세할당제를 운영하고 있어 수입 가죽품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특히 한국이 블루오션으로 생각하는 의약품의 경우도 수입업체를 상대로 한 중복 검사 등으로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일경 코트라 일본지역본부 과장은 “보수적인 일본 시장을 뚫으려면 납품 업체와의 네트워킹 강화, 다각적인 가격 경쟁력 확보, 인지도 축적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일본 수출 유망 품목은 | 사물인터넷 연관 산업, 실버산업에 기회 많아 올해 일본 수출 유망 분야로는 사물인터넷(IoT), 자동차 부품, 실버, 미용, 식품, 재생에너지, 의료 등이 꼽힌다. 일본은 지난해 4차 산업혁명의 4대 분야로 IoT·빅데이터·인공지능(AI)·로봇을 꼽았다.2020년까지 30조 엔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IoT는 33%, 핀테크는 76%의 급성장이 예상된다. 한국이 일본보다 경쟁력이 앞선 분야로 시스템·보안 등 솔루션 개발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은 IoT를 금융시스템과 산업 현장을 넘어 의료·간병 등 일반 생활 분야로 확대하는 ‘연결 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연결 경제를 필두로 한 IoT 비즈니스는 센서와 단말기·클라우드·빅데이터·AI 등 분야로 이어져 있어 관련 제품 판매도 늘어날 관측이다. 일본이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이 분야를 육성하고 있어 현지 파트너 등을 통한 시장 진입이 필요해 보인다.자동차 부품은 도요타·닛산·미쓰비시·스즈키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내수 판매는 더딘 데 비해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현지에서 조달해 생산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을 취하고 있다. 이에 동남아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함으로써 조달 실적을 늘려 일본 기업에 직접 수출할 기회를 확보할 수도 있다.2025년 107조6000억 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실버산업도 수출 기회가 많아 보인다. 1940~50년대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고령화로 건강 음료 등 간병 관련 식품과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또 일본은 아직 임플란트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구강 의료와 치과 위생용 제품의 판매 확대도 기대된다. 또 남성용 화장품과 친환경·편리성·기능성 화장품 등 미용산업도 유망하다. 일본의 미용 수요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방일 관광객 증가로 한국 제품의 높은 경쟁력을 시험해 볼 수 있다.식품의 경우도 외식보다는 간편 조리를 추구하는 추세에 맞춰 건강식을 중심으로 한 가공 식품의 수출 확대 가능성도 열려있다. 특히 미용에 좋은 먹는 코코넛·아보카드 오일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 일본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영향으로 가스터빈과 열교환기 등 전력관련 장비와 부품 수출 기회도 넓어질 수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발맞춰 항암제 등 바이오시밀러(복제약) 분야와 의료 장비 수출도 노려볼 수 있다.
2017.01.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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