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에 ‘진짜 일본은 없었다’ [장근영 팝콘 심리학]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의 차이...두 시선 속 적절한 균형 찾기
마침내 2020 도쿄 올림픽이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사태에 휩쓸려 전례 없는 1년의 연기 끝에, 이름은 2020이지만 2021년에 개최된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반드시 개최했어야 하는 행사였다. IOC나 주최국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역시 여러 건의 아름다운 스포츠맨십 사례들을 보여주며 비대면으로 지켜본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보여준 도쿄 올림픽 예고편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일본 문화의 저력을 만방에 자랑하는 멋진 쇼였다. 도쿄의 랜드마크인 시부야 역부터 주요 명소들이 일본의 유명 운동선수들의 모습과 함께 짧게 소개되며 그 사이로 ‘캡틴 츠바사’와 ‘팩맨’ ‘도라에몽’ ‘헬로키티’를 거쳐 ‘수퍼마리오’로 변신한 총리가 등장하는 그 짧은 예고편은 지금까지 일본이 전 세계 대중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기대와 다른 객관적 자아
이것을 보며 정체성의 두 측면인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가 떠오른다. 여기서 주관적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같은 것들이 모두 주관적 자아에 해당한다. 자기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했다면 주관적 자아가 적절히 형성된다.
문제는 객관적 자아다. 원칙적으로 객관적 자아는 ‘남들이 보는 나’다. 객관적 자아는 자의식과도 연결된다. 자의식이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을 깨달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들의 생각을 내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의 생각을 추측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객관적 자아가 형성되려면 우선 남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남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남들은 나와는 달리 뭘 더 좋아하고 뭘 더 싫어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생겨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G.H.Mead)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남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걸 남들은 모를 수 있고, 남들이 아는 걸 나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시기가 대략 생후 3년 차부터다. 이때부터 우리는 남들이 나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와는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도대체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남의 마음을 알면 그 마음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혹은 그 마음에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적절히 거짓말을 하는 법,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도 여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가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내 정체성, 정확히는 객관적 자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알았다고 여기는 남의 마음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객관적 자아는 실제보다 과대평가돼 있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 역시 내 예상만큼 높지 않은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 현실과 자의식간의 격차 덕분에 자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1979년 심리학자 알로이(Alloy)와 아브람슨(Abramson)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중요성, 타인의 시선 등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일종의 자가당착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깨닫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약간의 자가당착은 내 자부심을 지켜준다.
하지만 이 격차가 지나치게 크면 민폐를 끼치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현실감각을 잃고서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격차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한다. 예를 들어, 소위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며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귀하게 새겨들으리라 믿으며 각종 참견과 사생활 침해를 저지른다. 사실 그 남들 대부분은 그를 일종의 자연재해로 여기며, 그저 더 심한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주변에서 멀어져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라도. 주관적 자아와 객관적 자아의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이를 적절한 범위에서 조절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조직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장점과 약점이 고객이나 시장에서 보는 장단점과 어긋난다면, 그 조직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격차는 필연적이지만 조절이 필요한 까닭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만화와 게임으로 쌓아 올린 문화적 영향력은 이제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캐릭터는 디즈니가 아니라 ‘포켓몬’과 ‘헬로키티’였다. 이번에 도쿄올림픽에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국가원수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정말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만화 [귀멸의 칼날] 작가였다. 유럽에서 온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숙소에서 ‘나루토’ ‘드래곤볼’ ‘원피스’ 캐릭터 포즈를 취하며 이들 캐릭터의 본고장 방문을 자축했다. 그러니 나는 일본의 주류 혹은 기성세대가 자국의 대중문화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 중 자국의 행적을 정당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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