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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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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FDA 승인 지연…제약·바이오업계 미국 진출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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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 4개 이상의 제약·바이오 회사가 FDA 관문을 두드리면서 글로벌 신약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코로나19로 현장실사가 불가능해 심사가 줄줄이 지연되면서다. 지난 2월 제약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GC녹십자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의 FDA 승인 여부였다. GC녹십자는 지난해 2월 미국 식품의약처(FDA)에 혈액 제제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에 대한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FDA의 검토 완료 목표일은 지난 2월 25일이었다. 만일 허가 결정이 나면 국산 혈액제제 중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한 사례여서 업계의 관심이 쏠릴 이슈였다. 혈액제제는 GC녹십자 매출의 36%를 차지하는 주력 사업이라, 10조원에 달하는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할 경우 실적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GC녹십자는 지난 28일 미국 품목 허가가 연기됐다고 밝혔다. FDA가 오창 혈액제제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적인 현장실사가 필요하다는 최종보완요구서(CRL)를 보내면서다. 이로써 GC녹십자의 미국 혈액제제 시장 진출 시기는 당분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GC녹십자가 미국 혈액제제 시장에 도전한 건 2015년부터다. 2015년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5%로 허가를 신청했으나 2016년과 2018년 두 번에 걸쳐 FDA로부터 제조공정 자료 보완을 지적받으며 쓴맛을 봤다. 이후 시장성이 더 큰 10% 제품을 먼저 출시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지난해 11월 비대면 평가 방식으로 실사를 진행했지만, FDA 측이 현장실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허가심사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증권업계는 2022년 상반기 중 현장실사를 진행할 경우 2023년 중으로 미국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임윤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CRL은 현장 실사 외에 기타 중대한 결함(deficiency)에 대한 보완 요구는 없어, 실사 완료 후 빠른 허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연구원은 녹십자가 올 상반기에 품목허가 신청서를 재신청하면 연내 현장실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문제는 FDA의 해외 현장실사가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FDA는 지난달부터 해외 실사를 재개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를 연기한다고 지난 1월 홈페이지에 밝혔다. FDA는 코로나19 감염이 퍼지기 시작한 2020년 초부터 실사 작업 중단을 반복하고 있다. ━ 코로나19 이후 2년 간 국내 FDA 승인 단 2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FDA에서 이뤄진 해외실사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신약 심사 지연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FDA는 코로나19 여파로 52건의 신약 신청이 지연됐다고 보고했다. 올해 안에 실사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지난해 신약 심사가 대거 지연되면서 심사일정은 더 밀릴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FDA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FDA 승인을 받은 국산 의약품은 2020년과 2021년 연속 단 한 건씩에 불과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합성신약부터 바이오시밀러까지 9개 의약품이 FDA 허가를 받은 것과 대조된다. 올해 GC녹십자뿐 아니라 한미약품, 유한양행, 메지온 등이 줄줄이 FDA 승인을 노리고 있어 계속되는 심사 지연에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속형 호중구감소증 체료제인 '롤론티스'의 허가 심사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한미약품 미국 파트너사인 스펙트럼은 2019년 10월 롤론티스의 허가신청을 완료했으나 이듬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롤론티스 생산을 담당하는 한미약품의 평택 공장에 대한 실사가 미뤄졌다. 현장 실사는 지난해 5월 이뤄졌지만, 미국 현지 CMO 기업인 아지토모토에 일부 결함이 발견되면서 보완사항을 전달받았다. 한미약품과 스펙트럼은 보완사항을 개선해 올해 허가심사에 재도전할 예정이다. 유한양행은 올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레이저티닙'의 FDA 신약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레이저티닙의 글로벌 파트너사인 얀센이 FDA 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얀센은 현재 자사의 아미반타맙과 레이저티닙의 병용요법 임상시험 3상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 메지온의 폰탄 치료제 '유데나필'의 허가심사 결과도 3월 하순에 예정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FDA의 해외실사가 연기되면서 올해 바이오주의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FDA 승인과 미국 출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FDA 승인은 '코로나 수혜주'가 한번 휩쓸고 지나간 바이오 섹터에 분위기 전환을 할 중요한 이벤트이자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만큼 실사가 재개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2.03.03 08:00

3분 소요
[단독] 삼바, 에피스 지분인수로 바이오젠과 중재 정지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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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는 미국 파트너사인 바이오젠테라퓨틱스와 1년여간 진행해왔던 ‘중재’의 합의 결과였던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바이오젠과의) 중재는 모든 변론절차를 마친 후 최종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으나, 당사와 바이오젠과의 지분매입 거래가 진행되면서 쌍방 합의로 정지된 상태”라고 밝혔다. 관련기사삼바-바이오젠 중재 절차 마무리…에피스 지분거래는 합의 조건?JV청산 나선 삼바…지분은 싸게 샀지만, '혈맹' 종료는 걱정삼바, 바이오에피스 지분 전량 매입한다…“유증해 3조원 마련”바이오젠 인수 '부인’한 삼바…‘바이오시밀러 외도’ 결론은 미지수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12월 17일부터 ICC에서 바이오젠 공동 설립 회사인 바이오젠과 중재를 벌여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바이오젠과 당사가 체결한 합작계약에는 쌍방의 독자적인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막기 위한 경쟁금지 조항이 설정돼 있었는데, 바이오젠이 이 조항의 적용을 벗어날 수 있는 예외조건이 충족됐음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의 중재신청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며 체결한 합작 협약(Joint venture agreement)에는 ‘비경쟁(Non Competition)’ 항목이 존재하는데, 해당 항목에는 두 회사가 직간접적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을 개발, 제조, 상용화, 유통, 판매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오젠은 해당 중재를 신청한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아닌 다른 회사와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진행한 바 있다. 바이오젠은 지난 4월 중국 바이오기업인 ‘바이오테라 솔루션’으로부터 ‘악템라’ 바이오시밀러 기술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아닌 다른 파트너사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전개한 것. 바이오젠이 제기한 중재는 지난해 12월 본격적인 변론 절차에 돌입했다. 변론 절차가 마무리된 시점인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인수한다고 밝혔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지분 인수가 사실상 ‘합의’ 수순이라는 것을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 간의 중재는 별도의 판정이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시장의 예상보다 싼 가격에 인수한 점을 감안할 때 중재에서 사실상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승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전량인 ‘50%-1주’(1034만1852주)를 총 23억 달러(약 2조7700억원)에 매입키로 했는데, 이는 통상 대규모 지분 거래에 따르는 프리미엄 등이 제외된 가격이다. 특히 시장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장가치 등을 감안한 기업가치 평가(10조원 이상)에 비하면 절반 이하 수준의 가격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뚜렷이 공개되지 않았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의 동기가 밝혀지며 시장 일각에서 제기됐던 ‘바이오젠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성에 대한 의심을 갖고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염가에 팔았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지분 인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이뤄졌지만 이번 딜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도 상존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최종적으로 취득함으로써 바이오젠과의 합작계약이 종료되는 경우 바이오젠은 독자적인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며 “이로 인해 시장의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2.02.16 16:22

2분 소요
사업매각 3년 만에 다시 ‘신약개발 선언’, 달라진 CJ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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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CJ헬스케어를 매각한 CJ그룹은 최근 천랩 인수를 통해 '신약개발'에 다시 진출했다. 30년간 육성한 제약·바이오 기업을 매각한 지 3년 만에 이 분야 새로운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CJ헬스케어 매각이 CJ그룹의 오판이었단 해석까지 나온다. 재계에선 CJ그룹의 제약 산업 재진출이 철저한 계산 때문에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기간 사업 운영의 경험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실을 면밀히 파악해 다른 사업영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모델을 찾은 결과로 보고 있다. ━ 제약 아닌 ‘마이크로바이옴’에 집중… 변화한 CJ그룹의 전략 CJ그룹은 지난 2018년 그룹 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담당하던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매각했다. 1984년 CJ제일제당이 유풍제약을 인수하며 시작된 CJ헬스케어는 CJ그룹이 미래성장 동력으로 30년이 넘게 투자해온 회사다. 2014년 제일제당에서 독립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업공개(IPO)와 함께 그룹이 더 본격적인 육성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컸다. 기대와 달리 CJ그룹의 선택은 매각이었다. 이재현 회장 복귀 후 단행된 사업재편에서 제약 산업은 비주력 산업으로 분류됐고, 한국콜마에 팔렸다. 당시 경제계는 CJ그룹이 레드바이오(의약품 관련 바이오) 산업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CJ그룹은 레드바이오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모델이 바뀌었을 뿐이다. CJ헬스케어 매각 이듬해부터 변화된 사업모델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마이크로바이옴이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 군집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한 개체의 모든 유전 정보를 의미하는 유전체(Genome)의 합성어다. 인체 내 미생물 생태계를 다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 개발 기업인 ‘고바이오랩’에 전략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메디톡스에서 CJ제일제당 출신인 홍광희 상무를 레드바이오 BD 담당으로 영입했다. 사실상 레드바이오 분야 재진출을 선언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 유신영 상무(레드바이오 기술센터장)도 영입했다. 유 상무는 서울대 의학 박사 출신으로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 기반 연구개발 벤처 기업인 MD헬스케어에서 근무했다. 최근 인수한 천랩 역시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이 분야 글로벌 권위자인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2009년 설립한 회사다. 마이크로바이옴 정밀 분류 기술 및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으며, 병원 및 연구기관과 다수의 코호트 연구(비교대조군 방식 질병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보유 중인 마이크로바이옴 실물균주는 5600여 개로 국내 최대 규모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월부터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협력을 진행해왔다. 천랩을 인수하며 CJ제일제당은 ‘신약개발’을 선언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 재진출을 확실히 선언한 셈이다. CJ그룹의 이번 전략은 CJ헬스케어를 육성하던 당시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주목할 점은 목표하는 분야가 확실해졌단 점이다. 기존 CJ헬스케어는 제네릭(복제약)을 포함한 합성의약품, 백신, 단백질 치료제, 바이오시밀러까지 사실상 제약의 모든 분야를 시도했던 회사였다. 이젠 ‘마이크로 바이옴’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시장성을 갖췄다는 게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각이다. 신약 개발의 기초가 되는 점에서 제약 기술보다 원천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아직까지 건강기능식품 위주로만 이용되고 있는 기술 초기 단계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그린바이오(농수산물 분야 적용 바이오 기술)와 화이트바이오(산업생산공정 적용 바이오 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CJ제일제당 입장에선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CJ제일제당은 미생물 배양 기술과 설비 등을 가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CJ그룹의 레드바이오 전략이 사업 구조상으로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앞서 CJ헬스케어는 전통적인 제약사의 사업모델을 가졌다. 제네릭을 개발‧판매해 얻은 수익을 신약개발(R&D)에 쏟아붓는 방식이었다. 화학약품 위주의 제네릭 사업과 바이오의약품 위주의 신약 개발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한정하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성과가 식품 및 건강기능식(건기식)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프로바이오틱스’ 등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이 적용되는 건기식 시장은 매년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최근 건강사업을 독립조직(CIC)으로 구성했는데, 레드바이오 기술을 건기식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받는다. ━ 제약‧바이오 산업 바라보는 대기업 ‘시너지’에 주목 CJ그룹의 새로운 레드바이오 전략은 국내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에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많은 대기업이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을 도모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롯데제약이 2011년 롯데제과에 합병되며 시장에서 철수했고 2013년에는 한화(드림파마)가 제약사업에서 손을 뗐다. 기존 제약회사의 사업구조로 시장에 진입해 신약개발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게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CJ의 레드바이오 전략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다. 중요한 것은 전문 분야와 ‘본업과의 시너지’다. 최근 보툴리눔 톡신 기업인 ‘휴젤’ 인수전 참여를 검토했던 신세계도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사업과의 시너지를 주요 관심사로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2021.07.26 16:56

4분 소요
K바이오 미래 먹거리 마련 움직임 분주…영역 다각화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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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바이오시밀러·CMO 기업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로직스가 영역 확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SK 역시 자회사를 필두로 바이오 몸집 불리기에 나서며, K바이오가 미래 먹거리를 향한 확장세가 매섭다. 셀트리온은 지난 14일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CT-P59·성분명 레그단비맙)가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이번 임상 3상 결과를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글로벌 규제기관에 제출할 방침으로 향후 수출 모멘텀이 예상된다. 앞서 셀트리온은 렉키로나가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조건부 허가를 받으며 ‘국내 1호 코로나19 치료제’의 탄생을 알렸다. 지난 2002년 회사 설립 이후 19년 만에 첫 신약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셀트리온은 기존 바이오시밀러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을 비롯한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 발굴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렉키로나 임상 3상의 성과는 셀트리온이 진행 중인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현재 셀트리온은 다케다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부를 인수해 케미컬 의약품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현재 증설 중인 셀트리온 3공장을 케미컬 의약품 제조용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화할 가능성이 크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20일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문개발업체 익수다 테라퓨틱스에 지분투자도 결정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셀트리온의 바이오신약 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가 갖는 시장성은 여전히 충분하지만 경쟁 역시 치열한 상황이고,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갖추기 위해선 바이오신약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셀트리온 역시 사업보고서를 통해 “항체의약품 시장 내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바이오신약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초부터는 신약개발 사업을 위한 ‘글로벌 생명공학 연구센터’ 건립 작업을 본격화했다. 삼성바이오직스는 올해 들어 항체의약품 위주의 위탁생산개발에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백신으로의 바이오사업 다각화를 표명하는 등 신약 개발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의 완제의약품 생산을 맡기로 했고, mRNA 백신 원료의약품 생산 설비 증설을 준비하고 있다. 수익률이 더 높은 원액 사업까지 확장에 나선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에 집중하고 있는 항체의약품을 넘어 빠르게 부상하는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확장 및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바이오클러스터의 중심부에 미국 R&D 센터도 개소했다. 앞서 삼성그룹은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바이오’를 선택, 투자 우선순위로 CMO와 바이오시밀러를 뒀다. 이 계획에 따라 지난 2011년 CMO 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엔 바이오시밀러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설립됐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 대주주로 합류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3종의 유럽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승인된 ‘아두카누맙’의 CMO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맡을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모두 다른 회사 제품을 대량 위탁생산하고, 복제하는 것에서 사업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신약 개발보다는 상대적으로 바이오시밀러나 CMO 분야가 사업적으로 더 수월한 것으로 본다. 이를 기반으로 다진 후, 다시 신약 개발 등 새로운 분야로 영역 확장에 나서는 복안이라는 것. SK㈜는 CMO 통합법인인 SK팜테코를 통해 저분자의약품으로 CMO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3월엔 프랑스 유전자·세포 치료제(GCT) CMO인 이포스케시를 인수하며 바이오의약품 CMO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최근 SK㈜는 이포스케시가 약 5800만 유로(약 800억원)를 투자해 최첨단 시설을 갖춘 GCT 제2 생산공장 건설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제2공장은 기존 공장의 2배 규모이며, 미국과 유럽의 선진 GMP 기준(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에 맞춰 설계된다. 북미·유럽 시장 판매 의약품 생산을 위해서는 cGMP(미국), eu-EMP(유럽) 등의 인증이 필요하다. CMO 산업의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국내외 로컬 GMP 시설 확보가 필수적이다.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와 유럽이 각각 40%,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글로벌 제약사 또한 북미, 유럽 기업이기 때문이다. SK㈜는 GMP 시설을 직접 짓기보다 GMP 시설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생산 케파를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즉 SK팜테코는 북미, 유럽 지역의 로컬 GMP 시설을 토대로 CMO 사업을 영위하며 현지에서 글로벌 제약사 및 바이오 기업의 퍼스트 밴더로 성장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SK(주)는 항체 신약 이외에 AI 기반 신약 플랫폼 기술 보유 업체 투자를 통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말 표적 단백질 분해 치료제 기술을 보유한 미국 로이반트 자회사 프로테오반트에 2200억원대 대규모 투자를 했고, 최근엔 싱가포르 항체의약품 개발사 허밍버드바이오사이언스에 120억원대 2차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AI 신약 개발사 스탠다임에 5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도 했다. AI 신약 개발 기술은 기존 신약개발 사업의 비효율성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SK(주)의 이런 행보를 통해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 뒤를 잇는 혁신 신약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자회사 SK팜테코를 통해 글로벌 CMO 기업으로서 입지를 쌓고, 항체 신약 등에 기반한 바이오의약품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K바이오 기업의 영역 확대에 대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며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인하우스에 R&D 기능을 넣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자금력을 가지고 기술력을 가진 업체와 콜라보레이션 하거나 M&A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2021.06.17 09:19

4분 소요
[위기의 K바이오] 악재 수두룩하지만 희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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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 사태’와 잇단 임상 실패로 홍역… 정부 컨트롤타워 구성 눈앞, 벤처캐피털 투자 급증 한국의 바이오산업을 지칭하는 ‘K바이오’는 높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으면서 수년간 시장을 달궜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올 들어서다.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신라젠 등의 임상 실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논란 장기화까지 악재가 겹겹이 쌓였다.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 속에 바이오 기업 주가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성장통을 잘 극복하면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까.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 기업 투자는 여전히 늘고 있고 정부도 범부처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16조1091억원.’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제약·바이오주의 지난해 말 대비 올 상반기 시가총액 감소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헬스케어 테마 종목 73개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32조9186억원에서 올 상반기 116조8095억원으로 급감했다. 바이오주가 급락한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코오롱생명과학(-72.5%), 파미셀(-33.4%), 신라젠(-28.8%), 삼성바이오로직스(-18.5%) 등이 맥없이 떨어졌다. 이들 주가는 8월 들어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 바이오 기업 주가 급락 바이오주를 둘러싼 각종 악재가 쏟아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이 바이오 업계를 흔들었다. 국내 첫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에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세포가 포함된 사실이 지난 5월 밝혀지면서다. 수술 없이 무릎 관절에 주사를 놓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으로 여겨진 제품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7월 최종 취소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식약처의 처분을 잠정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8월 13일 이를 기각했다.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 역시 추락했다. 난항 논란 속에도 미국에서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인 3상까지 진행했던 면역 항암제 ‘펙사벡’이 현지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8월 2일(현지시간) 임상 중단 권고를 받은 후폭풍이 거셌다. 신라젠 주가는 이후 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 회사 문은상 대표가 직접 임상 과정과 계획을 설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펙사벡 여파로 임상 결과 발표를 앞둔 다른 바이오 기업에 대해서도 우려가 교차했다.이보다 앞선 6월에는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엘비도 고배를 마셨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표적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삼성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한때 코스피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고전하고 있다. 올 들어 회사 관계자 일부가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태한 대표는 가까스로 구속을 면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해 말 25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8월 14일 기준 19조원대로 빠졌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주로 개발하고 있어 코스닥 바이오 기업처럼 신약 리스크에 휘말릴 확률은 낮다. 그러나 분식회계 의혹 수사로 회사 전체가 뒤숭숭한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애브비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의 저가 공세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기술수출이나 해외 판매 허가 사례가 늘었는 데도 한국 바이오산업을 가리키는 ‘K바이오’의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 재무건전성·현금창출력 등도 재정비 필요 전문가들은 흐트러진 K바이오의 전열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능력을 두고 의구심이 증폭된 상황”이라며 “임상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사업화 성사 여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현금창출력 등을 고루 되짚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모 연구기관 소속 바이오 전문가는 “K바이오는 수년간 고속성장하면서 시간에 쫓겨 기술력에 세밀함을 더하는 데 소홀해진 관행이 있었다”며 “몇몇 사례로 한계가 드러났으니 차제에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다만 국내 바이오 기업을 둘러싼 우려는 과도하며, K바이오 전반의 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K바이오의 선봉장 격인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호재가 있다. 글로벌 대형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잇따를 예정이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지난 7월 미국에서 특허가 만료된 데 이어 내년 1월 유럽 특허도 끝난다. 연매출만 8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제품이다. 역시 시장성이 큰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스위스 노바티스, 내년)’와 희귀질환 치료제 ‘아일리아(미국 알렉시온, 2021년)’도 특허 만료를 앞뒀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삼천당제약 등이 이들 제품의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어 각각 임상을 진행했고 기술수출에 나서고 있어 분위기 반전 카드로 꼽힌다.K바이오가 규모의 경제에서 경쟁국 대비 우위를 점한 것도 경쟁 격화 추세에서 방어막이 될 전망이다. 주요 바이오 기업이 밀집한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지로 꼽힌다. 2030년 바이오클러스터로 확대 조성까지 예정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규모의 경제는 효율성으로 직결돼 언제든 위기를 기회로 바꿀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생산 설비가 부족한 해외 경쟁사들은 한국에 위탁생산(CMO)을 맡기고 있다. K바이오는 위탁생산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한편, 마케팅 강화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K바이오 위기의 진원지인 바이오 신약 분야에선 벤처캐피털(VC)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2017년 3788억원에서 지난해 8417억원으로 급증했다. 악재가 잇따른 올해도 투자는 늘었다. 올 상반기까지 5233억원을 기록했다.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액은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에서 K바이오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정부의 고강도 지원책도 호재다. 정부는 최근 사실상 첫 컨트롤타워 구성 초읽기에 들어갔다. 2021년부터 10년간 총 3조5000억원 규모로 추진하는 범부처 개념의 바이오신약 연구·개발(R&D) 통합 지원 프로젝트다. 올 들어 특히 신약 개발에서 한계를 보인 K바이오의 장기 성장을 국가적으로 지원한다는 청사진이다. ━ 정부, 바이오 신약 R&D 적극 지원 방침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7월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범부처 ‘국가신약개발연구사업’ 기획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어 8월 초순 계획안 수립을 확정했고, 국가재정법에 따른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비 타당성조사는 조만간 통과될 전망이다.사업 기획 총괄위원장을 맡은 정성철 이화여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등이 산발적으로 운영하던 바이오산업 지원 체계를 하나의 컨트롤타워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며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신약 R&D만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의약품은 크게 신약과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로 나뉜다.이보다 앞서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과학기술정보통신 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전신은 재단법인을 세우고 지금과 비슷한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을 운영한 바 있다. 7년간 기술이전액 7조3600억원(43건)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지만 범부처 사업이라는 타이틀과는 달리 부처별로 집중 지원한 세부 분야가 달라 ‘바이오산업에서 유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이 사업은 내년 9월 종료될 예정이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이어받을 신사업 기획 필요성이 제기됐다.정 교수는 “지금껏 신약 개발에서 기초 R&D는 과기정통부, 사업화 인프라 구축은 산업부, R&D 컨설팅은 복지부가 맡는 식으로 부처별 칸막이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범부처 컨트롤타워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지원하도록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이유는 국내 바이오시밀러 R&D와 생산이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기업 주도로 이뤄진다고 봐서다. 이보다 신약 개발에 몰두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정부는 기존 범부처 사업단의 투자심의위원회처럼 장점이 많은 조직은 그대로 흡수해 활용할 방침이다. 전체 인력 구성 방안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비임상·임상·사업화 등 분야별로 ‘전문성 강화’라는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다. 정부에서 연구비로 2조4000억원, 민간에서 1조1000억원을 각각 투입해 10년간 운영한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2상까지 감염성 질환과 치매를 제외한 전 질환이 지원 대상이다. 임상 최종 단계인 3상 지원 여부에 대해 정 교수는 “국내 시판 때는 문제가 없지만 수출 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가능성이 있어 3상 지원은 배제하기로 했다”며 “3상에서 중요한 개념이 상업성인데, 이런 민간의 영역을 국가가 지원하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정부는 지난 5월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충북 오송에서 직접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 K바이오 육성 의지를 보였다. 2025년까지 바이오헬스 전 분야의 연간 R&D 비용을 4조원 규모로 늘려 연 수출액 500억 달러를 이룬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다만 최근까지 K바이오에서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제2의 ‘인보사 사태’나 임상 실패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후속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업계 숙원이던 첨생법 3년 만에 국회 통과 마지막으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과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첨생법)’이라는 호재다. 8월 2일 업계 숙원이던 첨생법이 3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약 심사의 기간 단축과 절차 간소화로 기존 최장 15년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이 줄어들 전망이다.위기의 K바이오는 이런 호재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남은 것은 업계의 분투다. 특히 기업들은 최근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력 강화와 위기 탈출을 노려 주목된다. 예컨대 셀트리온은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를 피하주사(SC)제형으로 바꿔 새로 개발한 ‘램시마SC’로 해외 판매 허가를 앞뒀다. 램시마 자체는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만든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이지만, 램시마SC는 일종의 바이오베터(기존 신기자약을 업그레이드한 약)다. 병원에서 정맥주사로 2시간 투여했던 약 성분을 환자가 집에서 2분간 직접 투여할 수 있다. 이건혁 셀트리온 팀장은 “자가 주사법을 선호하는 환자 수요를 반영해 개발한 제품”이라며 “환자 편의성과 제품 확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연구원은 “SC제형과 같은 바이오베터가 K바이오 경쟁력 강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제품 차별화가 위기 극복의 중요한 열쇠”라고 덧붙였다. ━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인터뷰 | “신약 개발 중 임상 디자인에도 공 들여야” ‘K바이오 위기론’을 바이오 산업 현장에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바이오협회의 이승규(58·사진) 부회장은 “위기라면 위기지만, 더 냉정히 봐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의 말은 이렇다. “5년 전만 해도 K바이오는 어떻게든 라이선싱 아웃(기술수출)을 해내자는 게 목표였다. 요즘은 스타트업이 2000억원대 규모의 기술수출도 한다. 증시에서의 과대평가 문제는 따져봐야 하지만 산업 자체는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최근 위기론의 중심엔 신약 임상 3상 단계에서 고배를 마신 일부 기업이 있었다. 아쉬워도 아주 충격적인 결과까지는 아니라는 게 이 부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해외에서도 3상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는 경우는 전체의 약 62%뿐”이라며 “신약 개발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3상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이 부족한 K바이오는 15~20%의 확률만 기록해도 훌륭한 성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 성공 확률을 높이느냐다. 이 부회장은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 K바이오는 좋은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서 특허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물질만 좋다고 임상을 통과하는 건 아니다”라며 “해외 선진 기업들은 3상으로 갈수록 ‘임상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데 K바이오도 그런 면에 힘쓸 시점이 됐다”고 진단했다.예컨대 ▶개발한 신약에 최적화한 질환을 앓는 환자를 잘 선별해서 모집하거나 ▶해당 신약을 잘 다룰 수 있는 병원을 파악해 택하는 것 등을 임상 디자인이라고 한다. 신약 효능의 최대치가 나올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임상 디자인에 성공할수록 임상 통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임상수탁기관(CRO)을 신중하게 골라 선진국처럼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도 있다. 최적의 임상 환경을 구축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전문 인력의 도움이 필수여서다. 이 부회장은 “정부 지원과 벤처캐피털 투자 확대로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업계가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만 보완하면 승산은 있다”고 내다봤다.한국바이오협회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 외에도 한미약품을 비롯한 대형 제약사까지 350여 업체를 회원사로 뒀다. 이 부회장은 연세대 공대 석·박사, 일본 도쿄공대 연구원을 거쳐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13년간 운영했던 현장 전문가다. 2012년 협회에 합류해 정부 산하 스마트헬스정책자문단 자문위원과 바이오특별위원회 민간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9.08.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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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현금흐름할인법’] “미래 가치 왜곡” vs “근거 기반한 평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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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논란에도 등장…“복수의 평가법 활용” 주장도 나와 설립된 지 반년 갓 넘은 여행사가 최근 150억원에 팔렸다. 자본금 2억원에, 직원은 대표이사를 포함해 달랑 3명뿐이다. 거래가 성사된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매수자로부터 거래가격 타당성 평가를 의뢰받은 회계법인은 이 여행사 가치를 145억원~156억원 사이로 평가했다. 적절한 가격에 샀다는 이야기다. 초미니 여행사는 어떻게 이런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비결은 이른바 ‘DCF(Discounted Cash Flow, 현금흐름 할인법)’라는 가치평가방법에 있다. DCF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회사가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이를 현재가치로 평가해 기업가치를 매기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사 나노캠텍(디스플레이 소재기업)이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한 제천국제여행사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보따리상을 면세점에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을 한다. 관광객이나 보따리상이 구입하는 물건값에 비례해 면세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20% 안팎)가 영업수익(매출)인 셈이다. 그런데 협력사(중간 알선책)들에게 수수료를 분배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사가 얻는 최종 수수료 마진은 대부분 최대 5%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 대표가 경영하던 이 여행사 가치평가에 사용된 재무제표는 올해 1분기, 즉 딱 3개월치다. 이 기간의 수수료 매출은 14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3억원이다. 신생 여행사지만 롯데 면세점과 계약을 맺고 사업하는 것으로 보아 나름 ‘네트워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개월치 영업실적을 기초로 현재 사업상황, 미래 시장 전망 등을 종합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손익과 현금흐름을 추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예상 영구현금흐름을 더해 산출한 기업가치가 150억 수준이다. 회계법인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제천국제여행사는 앞으로 5년 동안 해마다 7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30억원 안팎의 영업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회사의 잉여현금흐름 추정치는 연 25억원 안팎이다. 실제 실적은 예상치와 얼마나 비슷하게 흘러갈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 설립 6개월 초미니 여행사의 미래 가치가 150억? 이렇게 사업구조가 간단한 여행사조차도 DCF 평가를 적용하려면 많은 추정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150억 가치평가가 적절하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DCF’는 증권시장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용어다. 이렇게 생경한 말이 최근 몇 달 새 언론 매체의 지면에 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증권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달아오르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의 중심에 DCF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 초까지만 증권시장 최대 이슈였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재편, 즉 현대모비스 분할 논란의 한가운데에도 DCF가 있었다.두 사안에서 DCF 평가법은 어떤 역할을 했길래 논란의 장본인이 됐을까? 우선 DCF에 대해 최대한 간단하게, 그리고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DCF에서 말하는 현금흐름이란 ‘잉여현금흐름(FCF, Free Cash Flow)’이다.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에서 투자금액을 뺀 수치다. 기존 사업 유지와 신성장 사업 확보에 필요한 투자분을 빼고도 남는 여유 현금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표(1)처럼 이자율이 10%인 상황에서 지금 1억원을 예금하면 1년 뒤 1억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1년 후 받게 될 1억1000만원의 현재가치는 1억원이 된다. 이를 두고 “1억1000만원을 이자율(10%)로 할인하면 현재가치 1억원을 산출된다”고 한다. 만약 어떤 회사가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100억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해보자. 1년 후 100억원과 2년 후 100억원의 현재가치는 다르다. 이자율 10%로 가정한다면 각각 91억원, 83억원이다. 3년 후 100억원은 75억원이다. DCF에서 잉여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할 때는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이라고 하는 것을 할인율로 사용하는데, 구하는 방법이 복잡하므로 생략한다.표(2)는 가상의 기업 A사의 DCF 평가방법 중 일부분이다. 미래 3년(2018년~2020년)을 추정기간으로 하고 가중평균자본비용(할인율) 10%를 적용했다.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비용을 빼면 ‘세후영업이익’이 산출된다. 영업현금흐름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후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해주면 된다. 감가상각비는 현금이 유출되지 않았지만 비용으로 처리된 항목이기 때문에 회계상의 세후영업이익에다 더해주면 현금기준영업이익(영업현금흐름)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잉여현금흐름(FCF)를 구하러 가야 하는 단계다. 영업현금흐름에서 투자액을 일단 빼야 한다. 그리고 순운전자본 증가액도 빼야 한다. 회사의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등이 전년 대비 늘어나면 그만큼 매출회수가 안 되거나 재고에 돈이 묶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순운전자본이 지난해보다 증가했다면 영업현금흐름에서 빼줘야 한다. 이렇게 해서 잉여현금흐름을 구한 후에는 10%로 할인해 현재가치를 구하면 된다.추정기간(2018년~2020년)이 끝난 후, 즉 2021년부터는 추정 마지막 해인 2020년보다 1% 성장(영구성장률)한 것을 기준으로 해마다 같은 금액의 잉여현금흐름이 창출된다고 보고, 영구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구한다. 그리고 ‘추정기간 현금흐름(현재가치)’와 ‘영구현금흐름(현재가치)’ 두 개를 더하면 이 회사의 영업가치가 산출된다. 회사가 보유한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투자지분 등 비영업자산을 더해주고 이자가 나가는 부채를 빼주는 식으로 추가 조정을 하면 최종 기업가치(수익가치)를 얻을 수 있다.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분식회계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은 2015년 말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DCF 가치평가에서부터 출발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말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에서 관계회사(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로 재분류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가 30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바뀌었다. 회계기준에 따르면 종속회사 신분이었던 때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의 취득금액을 장부에 기록했다. 그러나 관계회사로 신분이 바뀌게 됨에 따라 공정가치로 재평가한 금액을 장부에 기록해야 한다. 이 때 공정가치 평가에 활용된 방법이 DCF였다.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합작파트너인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진 지분 상당량의 양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단독지배가 아닌, 바이오젠과의 공동지배 형태가 되기 때문에 관계회사로 재분류하고, 공정가치 평가액을 장부에 반영했다는 것이 삼성 측 입장이다. 이와 달리 삼성이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측은, 매출 전망 등이 불확실한 일부 바이오시밀러의 시장성을 과대평가해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를 크게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DCF는 현금흐름 기준의 가치평가법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손익계산서의 영업이익이 커야 잉여현금흐름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시 2개 정도의 바이오시 밀러가 국내 판매 승인을 받은 상태였고, 유럽 지역에는 판매 신청을 해 놓은 상태에 불과한데도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를 5조2700억원(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91%는 4조8000억원)로 평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사실 바이오기업에 대한 가치평가 논란은 그동안 계속 이어졌다. 올해 초 에이치엘비생명과학과 라이프리버 간 합병에 대해 금융당국이 브레이크를 건 것이 대표적 사례다. 비상장사인 라이프리버의 수익가치를 평가하면서 회계법인은 DCF를 사용했다. DCF에서 현금흐름 추정기간은 거의 관행적으로 5년이다. 5년 이후에 대해서는 회사의 잉여현금흐름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영구현금흐름을 구한다.그런데 라이프리버의 경우 21년 간의 현금흐름을 추정반영했다. 회사 측은 그 이유에 대해, 신약은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들었다. 일반적인 성숙기업의 현금흐름분석기간(5년)을 적용할 경우 기업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회사 측은 “개발 기간과 제품 승인 후 특허 만료기간, 기술보증기금에서 평가한 파이프라인(신약제품군)별 수익창출가능기간 등을 고려해 21년 간의 현금흐름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에 대한 근거와 상세한 입증자료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결국 당시 합병을 철회했다. ━ 복잡한 변수에 대한 추정과 가정치 반영 DCF는 많은 복잡한 변수에 대한 추정과 가정치를 반영해야 하는 평가모델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큰 변동없이 사업을 해온 회사가 아니라 바이오나 IT기업이라면 1,2년 후 회사 실적을 추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신뢰할 만큼 정확하지도 않을 것이다. 최병철 회계사는 “미래 현금흐름 추정 때 회사가 작성한 사업계획이 반영되기 때문에 장밋빛 산업 전망이나 재무목표 등이 가치평가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있다”며 “DCF에서 할인율로 사용되는 가중평균자본비용이나 영구현금흐름 산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영구성장율 책정 등은 많은 추정이나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평가가 상당히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현대차그룹이 지난 5월 야심차게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DCF 평가에 대한 주주와 시장의 반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계획은 현대모비스에서 모듈 및 애프터서비스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합병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최종적으로는 존속 현대모비스가 그룹 최상단에 위치하는 지배회사가 되는 형태였다. 그런데 현대모비스 분할사업에 대한 가치평가액이 너무 낮아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손해를 보는 반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이득을 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분할안에서는 현대모비스 분할사업부문의 수익가치가 12조4260억원으로 평가됐다(자산가치까지 고려한 최종 기업가치는 9조3000억원).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를 포함해 시장 일각에서는 수익가치가 15조원 이상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주장이 대두했다. 여기에다 헤지펀드 엘리엇까지 가세하고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현대차그룹은 결국 임시주주총회를 취소하는 등 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그룹은 가치평가의 적정성과 함께 지배구조개편안이 결국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득했다. 주주가치환원방안까지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반발 분위기가 크게 사그라들지 않자 결국 1차안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차는 현재 2차안을 다시 준비 중이다. 2차안 마저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묘안짜기에 열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오래 사용해 평가자들이 익숙해 한편, 최근 들어 이렇게 DCF 평가에 따른 논란이 지속되자 시장 일각에서는 기업가치 평가 때 DCF 외에 복수의 평가방법을 사용해 평균치를 사용해서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DCF 자체가 학계뿐 아니라 현업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가장 흔히 사용하는 가치평가법으로서의 지위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널리 사용해 평가자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이런 ‘익숙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변화가 빠르거나 미래 추정이 쉽지 않은 IT나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복수의 전문기관으로부터 복수의 방법을 활용한 가치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2018.06.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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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약시장 상황] 중국, 세계 의약품 생산기지 되다

바이오

홍콩 바로 옆 선전의 베이산 공업지구에 위치한 베이징 지놈연구소(BGI)에서는 160여 대의 초고속 지놈분석기가 1년 365일 쉴 새 없이 가동 중이다. 미국 전체보다 많은 최신형 지놈분석기를 보유하고 있어 ‘세계 최대 지놈분석센터’라는 별칭을 얻게 된 BGI는 전 세계에서 유전자 분석 연구를 요청 받아 유전자 해독에 몰입하고 있다.글로벌 바이오·제약산업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에 미국, 영국, 일본이 아닌 중국이 유전자 해독 같은 기초연구에 열중하는 것일까?인건비 싸고 고급인력 풍부2000년대 이후 바이오·제약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생산성 하락’이다. 바이오·제약의 생산성은 신약 수와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으로 평가하는데,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승인한 신약은 1996년 53개를 최다로 매년 급감해 2008년 이후 20여 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신약 개발비용은 1990년대 3억 달러에서 2006년 13억 달러를 넘어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 역량이 감소하고 안전성 우려로 임상 규모가 확대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글로벌 제약사는 개발비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대행 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바이오·제약산업의 밸류체인은 기초연구-물질탐색-물질합성-전임상-임상-허가 등 6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약사는 이 가운데 전임상-임상단계를 아웃소싱하고 기초연구-물질탐색-물질합성 영역을 핵심 역량으로 내재화했다. 그러나 비용 증가와 생산성 하락 위기에 직면하자 인건비가 저렴하고 고급인력이 풍부한 아시아의 연구대행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대표적 연구대행 기업인 욱시파마테크는 70여 개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을 맺고 타깃 발굴부터 임상까지 거의 전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4년 2400만 달러였던 매출이 올해엔 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2005년 이후 글로벌 제약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지역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생산 및 연구기지로 적극 활용 중이다. 이미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GSK 등은 베이징 및 상하이에 대대적으로 신약 개발 및 대외협력센터를 설립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30개의 최신 의약품 제조공장도 중국에서 가동 중이다. 세계 최대 제약기업 화이자가 한국의 제조공장을 폐쇄하고 중국 공장을 강화한 예는 글로벌 제약사의 중국 활용전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기초연구 역량을 활용하고, 생산기지 선점을 통해 고속성장하고 있는 중국 및 아시아 제약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연구대행 기업의 활용과 더불어 바이오·제약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는 산학협력 강화다. 이 트렌드는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감소에서 비롯됐다.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게 된 대학은 기업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게 됐다.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대학의 뛰어난 연구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이자는 2010년 이후 뉴욕·캘리포니아·보스턴 지역의 유수 대학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각각 1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94건의 산학협력을 체결하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바이오 의약품에 뛰어든다2011년 6월 NIH(미국보건연구원)는 획기적 청사진을 발표해 산업계 및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콜린스 원장은 개발 중지된 약물을 공개하고 새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NIH는 사용하지 않는 구식 약물이나 개발 중지된 화합물을 선별해 용도변경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11년 4월 8000개의 기승인 의약품의 데이터를 공개했으며,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을 통해 중도 포기된 신약 후보물질을 차례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물질이 의약품으로 개발될 확률은 1만 분의 1 이하지만 약물 용도변경을 통해 신약이 개발될 확률은 무려 30%에 이른다. NIH는 이런 점에 착안,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의약품과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에 실패한 후보물질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용도변경을 추진해 신약을 단기간 내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기존에도 이와 비슷한 ‘리포지셔닝’ 방법이 추진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제약사와 협력해 신약 개발을 하는 사례는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생산성 향상이 바이오·제약산업의 본질적 문제라면 로슈-제넨테크, 화이자-와이어스 등 바이오기업의 M&A와 바이오시밀러 등 사업 다각화는 성장동력 확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2010년 8700억 달러에서 2020년 1조6000억 달러로 연평균 6%씩 성장할 전망이며 단백질·항체·백신 등 바이오의약품은 2010년 1400억 달러에서 2020년 3300억 달러로 연평균 8%씩 성장하면서 전체 의약품 시장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제약시장 내 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은 2010년 17%에서 2020년 21%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기존 의약품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작용을 줄이고, 맞춤형 치료 측면에서 탁월한 장점을 보이고 있어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성장이 가능하다.글로벌 제약기업은 특허 만료로 2015년까지 1000억~1500억 달러 규모의 매출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매출 감소 극복,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다. 바이오기업 제넨테크는 로슈에 무려 468억 달러에 인수됐으며 백신업계의 강자 와이어스는 화이자에 680억 달러에 넘어갔다. 2011년 사노피는 또 다른 최고의 바이오기업 젠자임을 201억 달러에 인수했다.이뿐만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복제약 같은 사업 다각화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의료개혁에 따른 저가 의료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는 자회사 및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복제약 분야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이 분야는 기존의 테바(이스라엘), 랜박시(인도)뿐만 아니라 한국 제약기업도 적극 육성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바이오·제약산업은 기술과 지식의 혁신에 의해 도약이 가능한 분야로 오래전부터 주목 받아왔다. 1975년 한 유전공학도와 펀드매니저가 설립한 제넨테크는 불과 20년 만에 세계 최고의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맞춤형 암백신을 개발한 덴드리온 등이 유망한 바이오기업으로 촉망 받고 있다.기술혁신뿐만 아니라 생산성 하락은 연구대행 기업 성장, 산학협력 활성화,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 등 제약산업 지도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 제약기업의 성장, 혁신 바이오의약품의 개발 및 상업화, 맞춤 의약품 등의 대두로 의약품·기기·서비스의 융복합이 제약산업의 커다란 화두로 등장할 것이다. 한국 제약산업도 규모의 경제 확보, 기술혁신의 강소기업, 그리고 내수시장 기반의 생존전략 등 전략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향후 10년을 준비할 시기다. 뛰어난 인재와 글로벌 수준의 기초 및 임상연구 역량을 보유한 한국이 바이오·제약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11.07.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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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산업] 위기 넘을 신약 만든다

바이오

한국 제약산업에 전운이 감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제약 선진국이 키운 다국적 제약기업이 저렴하고 효과가 뛰어난 신약으로 국내 소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보험약가가 낮아 견디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태면 제약산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 제약업계는 현재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몰락이냐, 부상이냐 기로에 놓인 한국 제약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취재했다. 신약 출시 경험이 있는 국내 9개 제약사 연구개발 현황을 조사·분석했다. 아울러 해외 다국적 제약회사의 아시아 진출 현황을 분석해 보고 세계시장의 흐름 속에서 한국 제약산업이 나갈 방향을 모색했다. “약을 무엇으로 만드냐”는 질문에 제약사는 “돈으로 만든다”고 답한다.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면서 끝없이 연구비를 쏟아부어야 겨우 신약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한다. 특출한 약효를 가진 물질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신약 개발은 평균 8년이 넘는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다. 화학적으로 약효가 드러난 뒤에도 3~5년 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효능이 좋아도 일부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발견되면 신약 개발은 실패한다. 엄청난 분량의 임상시험 자료 더미와 함께 출시 예정된 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거기서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약은 상품화될 수 없다. 긴 여정을 거친 약 중 극히 일부만이 약국에서 소비자와 만난다.복제약에 강한 한국 제약사에 기회제약협회 김선호 홍보실장은 신약 개발 산업을 석유 시추에 비유한다. “지면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그중 딱 한 개에서만 유정이 터지면 나머지 모든 탐사비용을 뽑아내는 것처럼 개발에 성공한 신약 하나가 나머지 무수히 실패한 실험의 R&D(연구개발) 비용을 모두 보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은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분야지만 그 열매는 달다. 일단 약으로 인정받은 상품은 비교적 간단한 공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특허권을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R&D에 성공한 일부에만 배타적으로 돌아간다.제약업계에 따르면 신약이 출시되기까지는 대략 10년 이상 소요되고 그동안 국내에서만 1000억원 내외의 연구개발비가 든다. 글로벌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에 나가 해당 국가 국민에 맞춰 임상시험을 따로 다시 해야 한다. 각국의 까다로운 규제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8000억~90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국 제약산업은 현재 큰 변화를 앞두고 잰걸음을 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의 공략도 막아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제약 선진국의 대형 제약사와 경쟁하다 밀려나면 국내시장마저 잃을 수 있지만 괜찮은 신약 몇 개가 세계적으로 히트 치면 글로벌 시장을 먹을 수도 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행한 2010년 3분기 누적 국내 주요 제약기업의 경영실적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 매출 순위 20대 제약사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1% 성장했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은 2.6%포인트 성장했다. 전체 처방약 시장은 소폭 증가했다. 백신 제품류와 관절염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 의약품) 제품 등에서 두각을 드러낸 일부 제약사가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더해 판매관리비는 전반적으로 3%가량 감소했다.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대 가며 약을 팔러 다닐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제약산업이 R&D를 중심으로 건전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제약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은 R&D에서 나온다.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상위 5대 제약사가 0.7%포인트씩 증가했다. 차상위 회사의 비율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큰 회사일수록 R&D 투자를 점점 늘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20대 제약사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009년 3분기 6.3%, 2010년 같은 기간 7.35%로 크게 늘었다. 제약사 규모별로 살펴보면 상위 5대 제약사가 14.5%, 차상위 10대 제약사가 12.9%, 차상위 20대 제약사가 13.1%의 성장률을 보였다. 규모가 큰 회사의 성장이 두드러져 역피라미드 모습의 산업구조가 가속되고 있다. 한국 제약사에 글로벌 제약산업 시장 전망은 밝다. 전체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보건의료기술이 발달한 데다 고령화가 이들 약 수요를 받쳐주고 있다. 이들 시장은 주로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이나 바이오시밀러가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제약사가 주로 노리는 것은 해외 블록버스터 신약의 특허 만료다. 올해는 리피토(동맥경화 치료제), 플라빅스(동맥경화 치료제), 자이프렉사(정신분열병 치료제), 세로켈(우울증 치료제) 등이, 2012년에는 아빌리파이(정신분열증 등 치료제), 싱귤레어(알레르기 치료제) 등 블록버스터 신약의 특허가 만료된다.이에 따라 많은 제네릭 의약품이 상용화될 예정이다. 이들 제품의 오리지널 제약기업의 매출 손실이, 제네릭 제품의 매출 상승이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제약사와 비교해 극히 영세한 한국 제약사가 경쟁을 시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한국 제약계는 이번 기회에 기술이 있어도 만들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약을 특허 만료와 동시에 출시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약 개발에 비해 R&D 비용이 저렴하고 시간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 분야 제약시장의 급성장이 예상된다.2009년 기준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약 8000억 달러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7%씩 꾸준히 성장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향후 세계 제약시장은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의약품을 뜻하는 ‘pharm’과 신흥시장을 의미하는 ‘emerging’이 결합된 용어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멕시코, 터키 등 의약품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가를 의미)이 견인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통적 최대 약 소비시장인 미국만 보면 전체 제약시장 규모(2009년 기준)는 약 3000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시장의 35% 비중이다. 블록버스터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료개혁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 공급이 가속화되고 있다. 메디프론디비티의 이창식 이사는 “이제 한국 제약사는 제네릭을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제네릭과 신약 개발, 쌍두마차로신약 개발 비용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신약 승인 건수는 줄어들고 있는 ‘Pharma Innovation Gap’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유럽 등 제약 선진국은 제네릭 의약품 활성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미국 내 오리지널 기반의 다국적 제약 기업보다 제네릭 제약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인도 등 파머징 마켓이 성장함에 따라 전문가들은 2014년 세계 제약산업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현재 세계 1위 제약사는 화이자다. 572억 달러 매출로, 2위 머크(390억 달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199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적 초대형 제약업체가 탄생했다. 2000년 와머-램버트를 인수해 세계 14위였던 화이자가 1위로 올라선 것이 좋은 예다. 세계 10대 제약사 매출 비중은 1990년 32.5%에서 2009년 45.1%까지 확대됐다. 키움증권의 제약업계 분석에 따르면 최근에도 바이오제약 기업이나 제네릭 의약품 전문기업의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상위 10대 제약기업의 매출 비중이 이제 절반 가까이로 확대된 상태다.그러나 제네릭이 전부는 아니다. 근래 제약사를 살펴보면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 생산에 집중한 나라의 제약산업은 붕괴됐다. 글로벌 제약사의 위력적 신약 공급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제네릭과 신약 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 일본은 이미 제약 선진국으로 진입한 상태로 경쟁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한국 제약업계는 연구인력 면에서 강점을 지녀 지금이 세계 톱 클래스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 제약업계는 제네릭으로 글로벌 제약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글로벌 신약으로 북미시장에서 치고 나가겠다는 복안이다.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진출 전략은 대웅제약의 인도 진출에서 엿볼 수 있다. 대웅제약은 2009년 국내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인도 하이데바라드에 의약연구소를 설립했다. 2006년 8월부터 인도로 연구원을 지속적으로 파견하며 준비한 결과다. 국내 제약사의 해외 연구소는 해당국 임상시험을 위해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한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 해당국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의약품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어 한국 제약사로서는 놓쳐서는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인도 연구소에서 의약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자체적 허가 서류 작성까지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인도는 영어권이며 R&D 인력 풀이 풍부한 편이어서 수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앞다퉈 진출하는 나라다. 인도에서 풍부한 임상시험을 마친 의약품은 2~3년이 지난 뒤 미국 FDA의 허가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기도 하다. 한국의 제약산업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면서 수입 원료로 완제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는 제약 기초기술을 확립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1970년대 들어 원료 의약품을 합성, 수입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다. 1980년대에는 안전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KGMP시설 투자가 확대돼 한국 제약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한국의 신약 개발사업은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특허를 보호 받게 되자 각 제약사가 신약 개발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7년 SK케미칼이 항암제 선플라주를 내놓아 국내 신약 1호를 기록했다. 2003년에는 LG생명과학이 팩티브로 미국 FDA의 신약 허가를 받아 한국 제약의 글로벌 시장 진입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한국은 세계 10대 신약 개발국으로 부상했다. 현재 국내 신약 15개, 개량 신약 10개, 천연물 신약 4개가 허가를 받아 국내 시판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한 국내 제약사는 14개사다. SK케미칼이 1999년과 2007년 한 개씩 허가 받아 2관왕을 기록했고, 나머지 13개사는 한 개씩을 내놨다. 식약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신약, 개량 신약, 천연물 신약을 포함해 700여 개 신약 후보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국내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약제로 본허가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신약 개발 신청이 미미했던 과거에 비하면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열기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해외 연구소 통해 글로벌 신약 기대정부도 앞장서 신약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대표적 사업이 ‘콜럼버스프로젝트’와 ‘범부처전주기신약 개발사업단’이다. 콜럼버스프로젝트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국내 보건의료산업의 북미시장 진출 특화 전략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외 보건의료산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기업이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제품의 우수성과 경쟁력, 시장성을 심사해 올 3월 지원대상 업체를 선정했다. 41개 업체 중 제약 분야 기업은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 21곳. 선정된 기업은 북미에서 R&D를 진행할 때 임상시험 등을 지원 받고, 모의실사나 교육 등을 실시하며 현지 인허가 컨설팅 도움도 받는다. 선정되지 못한 기업이라도 해외 수출입 정보, 인허가·특허 전문가 교육 참여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범부처전주기신약 개발사업단은 7월 8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식 출범했다. 그동안 신약 개발과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초기 연구단계에서,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임상 진행과 허가 과정에서, 지식경제부는 이를 통한 산업 발전에서 각각 분절된 역할을 맡아 했다. 이번 사업단 출범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단계별로 주관부서가 달라 연결되지 못한 점을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올해 예산은 정부 부처 세 곳이 50억원씩 예산을 투입한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 하태길 사무관은 “올해는 출범 초기이고 하반기에만 진행되기 때문에 예산이 많지 않다”며 “내년부터 본격적 투자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단에는 향후 9년간 총 1조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제약산업은 R&D 투자 비중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IT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해 집중적 R&D 투자를 흡수해 발달한 것과 달리 제약산업은 과거부터 꾸준히 R&D만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한 산업이다. 영국 기업혁신기술부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산업별 R&D투자에서 제약 및 바이오 산업은 연간 126조원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성실한 연구인력뿐이라는 국내 제약업계는 큰 기대를 안고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2011.07.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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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이식 1인자, 인공관절로 ‘점프’ 선언

산업 일반

무릎뼈가 으스러져 수술해야 할 상황이다. 이를 대신할 재료는 크게 세 가지다. 인공 뼈, 자신의 엉덩이뼈, 다른 사람의 무릎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코리아본뱅크는 동종이식재, 말하자면 건강한 다른 사람의 뼈를 필요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소독해 이식하기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이 회사의 역할이다. 뼈뿐만 아니라 인대, 피부도 다룬다. 심영복(47) 대표는 “인공 뼈는 동화가 잘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또 멀쩡한 다른 부위에 상처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며 동종이식(同種移植)의 당위성을 설명했다.“국내의 관련 의료 수술 가운데 동종이식 비율은 50% 정도입니다. 이런 산업을 생체재료공학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시장 규모가 1500억원 정도 됩니다.”국가대표 럭비 선수 출신 CEO코리아본뱅크의 시장점유율은 60%에 이른다. 전국 400여 개의 크고 작은 병원이 ‘고객’이다. 최근에는 이식 받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이식재에 이식해 환자의 조직으로 만들어주는 자가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심 대표는 “2010년 하반기에 2주일이면 시술할 수 있는 치료제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1997년 설립 이후 생체재료를 제공하는 조직은행으로 성장해 온 코리아본뱅크는 올해부터 단백질 재조합과 인공관절 사업을 확대해 ‘글로벌 생체조직공학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심 대표는 머지않아 월 300억원 매출을 가져다줄 ‘효자상품’이라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약병을 소개했다. ‘rhBMP2’라고 불리는 약품이다.“골격 재생을 촉진하는 재조합 골 형성 단백질입니다. 뼈를 빨리 붙게 하는 첨단 의약품이지요. 최근 관심이 높아진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제품은 1병당 5000달러나 하는 고가인데도 세계 시장 규모가 8000억원 정도입니다. 시장성이 대단히 큰 것이지요.”코리아본뱅크는 이 제품을 최대 월 5000개까지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를 갖췄다. 2010년 6월께 국내 허가를 받으면 바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체 임직원 100여 명 가운데 5분의 1이 연구인력이고, 연구개발(R&D) 비용으로 매출의 15%를 투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이 회사에서 rhBMP2와 함께 또 다른 효자 노릇을 할 제품이 인공관절이다. 코리아본뱅크는 2009년 2월 다국적 인공관절 개발·생산 업체인 엔도텍을 인수했다. 서울 가산동 본사 바로 앞에 826㎡ 규모의 인공관절 R&D센터도 세웠다.심 대표는 “엔도텍의 창업자는 세계 최초로 연골을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모바일 베어링 개념의 인공 무릎관절을 개발했다”며 티타늄을 이용한 가벼운 인공관절을 선보였다. 세라믹 코팅을 한 이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수명이 세 배 이상 길다. 그는 이어 미국인에게 맞는 미국형은 현재 생산 중이며 조만간 아시아형을 개발해 7월께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 회사의 월 매출은 20억원가량. 창업 당시 월 2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1000배 성장한 셈이다. 수출 규모도 500만 달러에 이른다. 심 대표는 “2010년 신제품이 대거 출시되면 매출이 10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했다.국가대표 럭비 선수 출신으로 운동만 알았던 심 대표가 바이오 벤처의 선두주자가 되기까지 고비가 없었을 리 없다. 운동을 그만두고 아는 사람의 권유로 제약회사인 종근당에 입사한 것이 의료산업과 인연이 됐다. 그 후 직접 의료 관련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회사를 접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미국 의료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동종이식에 관한 발표를 듣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의료보험 미적용이 회사 성장의 걸림돌하지만 회사를 창업하자마자 외환위기를 만났다. 원화 가치 폭락으로 하릴없이 2개월 동안 재료 수입을 중단해야 했다. 연구개발도 녹록지 않았다. 국내에 생소한 분야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CE 등 인증 기준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2005년 rhBMP2 개발을 시작할 때는 연구소를 세 번이나 다시 세웠다고 한다.동종이식을 국내에 들여온 심 대표가 10년 넘게 같은 사업군으로 회사를 이끌어 온 것은 특유의 영업 마인드와 5~10년 후를 바라보는 통찰력 덕분이었다. 심 대표는 종근당 시절 영업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바이오 분야라고 해서 연구에만 매달리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요즘 가장 자주 하는 수술 중 하나가 무릎인대, 어깨, 발목 수술입니다. ‘스포츠 인저리(sport injury)’라고 하지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0~1만 달러일 때는 교통사고가 많았고 1만~2만 달러인 지금은 레저 사고가 많습니다. 앞으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을 예상해 인공관절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관련 제품을 국산화하고 수출해 다국적 의료기업들과 경쟁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미국은 본뱅크 회사가 200개가 넘고 90% 이상 동종이식이 이뤄진다. 이와 비교해 국내 의료제품은 95%가 수입품이다. 회사 규모는 10분의 1이지만 기술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심 대표는 “2012년에 5대 다국적 의료기업에 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다만 의료보험 미적용이 회사 성장의 걸림돌이다. 코리아본뱅크의 전체 제품 중 10% 정도만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장기이식에 대한 거부 반응도 하나의 걸림돌이다. 기증 문화가 많이 퍼졌음에도 수요가 항상 공급을 앞서는 게 현실이다.

2010.01.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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