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은행 금융업무'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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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의 vs 겸업주의 논쟁 [전성인의 퍼스펙티브]](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2/08/16/ecnf6d1e0bd-d5fb-44b2-afe7-5db11dae0d7c.353x220.0.jpg)
지난 8월 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했다.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별다른 내용은 없다. 다행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금융위의 불장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여주기 식 행정보다는 그래도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부분에 대한 보완을 추가한 점도 평가해줄 만하다. 물론 문제점이 전혀 없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서 은행의 업무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 말이다. 가히 ‘김주현표 불장난’이다. (이것이 원래부터 김 위원장의 소신이었는지, 아니면 정치권 윗선의 찍어누르기나 은행권 로비의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일단 김 위원장이 총대를 멨으니 이 글에서는 ‘김주현표’라고 표현한다) ━ 커머셜 뱅킹, 유니버설 뱅킹 논쟁 오래 전부터 지속 이 불장난은 업무보고에서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라는 멋있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마치 무슨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업주의(소위 커머셜 뱅킹) 대 겸업주의(유니버설 뱅킹) 논쟁은 해묵은 논쟁이다. 은행이 좁게 정의된 은행업만 할 것인지, 은행업은 아니지만 다른 금융업권 업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심지어는 전혀 금융업이 아닌 다른 비금융업(즉 소위 산업자본) 업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하는 논쟁이다. 업무 범위를 좁게 정하자는 것이 전업주의이고, 넓게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겸업주의이다. 겸업주의의 경우 비은행 금융업까지만으로 넓힐 것인지, 아니면 산업자본 업무까지 허용할 것인지 그 범위도 논란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업주의 대 겸업주의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때는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하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였다. 은행 차원에서 비은행 금융업무를 이것저것 하게 해 달라는 소위 ‘인-하우스(in-house) 겸업’ 주장이 그 핵심이다. 감히 산업자본 업무도 하게 해 달라는 말은 입도 뻥끗 못했고.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장의 논거는 범위의 경제였다. 함께 하면 효율성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논거는 이해상충이었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이쪽 손실을 저쪽에 떠넘기거나 하여 특정 이해당사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달한 사회적 합의는 ‘인-하우스 겸업은 불허하고, 그 대신 다른 금융업무는 동일한 금융지주회사 체제 내에서 별도의 자회사 형태로 수행하고, 산업자본 업무는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2000년대 초 금융지주회사 탄생의 핵심 논거가 되었다. 물론 현실에서 약간의 예외도 있었다. 은행이 전통적인 예·적금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보험도 팔고(방카슈랑스), 금융투자상품도 팔았다(라임·옵티머스를 상기하라). 그 대신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방화벽(소위 ‘chinese wall’)을 쌓고, 설명의무 등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전제가 추가되었다. 다만 라임·옵티머스 사건에서 보듯이 아직도 이해상충의 문제점은 현실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니버설 뱅킹은 이해상충 문제 외에 은행의 재무적 건전성에도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의 연결 재무제표 상에서 엄격하게 그 위험이 통제되지 않는 자산의 범위와 규모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회사 민영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금융지주회사가 지배하던 카드사와 종금사 등을 은행의 자회사로 억지로 편입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재무 건전성 악화였다. 우리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은 은행업권의 평균 비율 이하로 하락해서 2015년 가을에 있었던 케이뱅크 예비인가 심사에서 사실상 대주주 적격성을 충족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의 대상이 되는 카드사와 종금사 등 금융 계열사 편입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는데, 만일 은행의 연결 재무제표에 일반 산업자본 활동이 가미될 경우 그 위험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규제 체제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전업주의 원칙은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등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특히 은행의 업무는 원칙적으로 예금, 대출 업무와 환업무 등 고유업무(은행법 제27조)와 그에 부수하는 업무(은행법 제27조의2)로 제한된다. 은행이 겸영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제한된 범위의 금융(관련)업무여야 한다(은행법 제28조). 금융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등은 산업자본 회사의 주식 소유 또는 지배가 금지되고(금융지주회사법 제6조의3 및 동법 제19조),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관련 자회사등을 지배하는 것 이외에 스스로 다른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금융지주회사법 제15조). 한편 모든 동일계열 금융기관은 산업자본 회사 주식을 20% 이상 보유하거나, 5% 이상 보유하면서 사실상 지배할 수 없다(금산법 제24조). ━ 유니버설 뱅킹 도입 위해선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 필요 이런 규제체계 하에서 유니버설 뱅킹을 도입하려면 은행법을 개정하거나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산업자본 업무가 은행업의 부수 업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아마도 겸영 업무라고 강변하면서 도입하려고 할 것 같다. 이 경우 은행법 제28조를 개정하여 현재 금융(관련)업무 중에서만 겸영 업무를 선정하도록 한 제한을 없애려고 할지 모른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은행이나 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등의 주식 보유 제한을 풀어서 은행이 산업자본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뜬금없이 취임 일성부터 금산분리 완화를 외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금 은행이 수익률이 악화되어 소위 ‘다른 먹거리’를 찾기 위한 비상 수단을 써야 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체제 내의 대형은행들은 대략 분기에 1조원씩 이익을 내고 있다. 이익이 오히려 너무 많이 나서 뒷말이 무성한 상태다. 그렇다고 은행이 여타 금융업도 아닌 산업자본 업무를 반드시 겸영해야 할 무슨 설득력 있는 논거를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처음에 은행의 업무영역 확대 주장이 빅테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편파적 사랑에 불만을 느낀 ‘은행권의 소원수리’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업무영역 확대는 은행뿐만 아니라 카카오가 지배하는 인터넷전문은행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겸업 주장은 현재 전자금융업자의 탈을 쓰고 사실상의 은행업을 노리고 있는 네이버에게 완벽한 규제 면제 논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자금융업자들은 “은행도 산업자본 업무를 겸영하는데 우리가 은행업을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주장하면서 은행업에 대한 무혈입성을 노릴 수 있다. 이제 김주현표 불장난이 얼마나 번질 지는 국회 정무위에 달렸다. 국회가 소방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 필자는 현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
2022.08.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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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을 기초로 한 신원증명이 가능해졌다. 앞으로는 신원 관련 정보를 자신의 스마트폰 앱에 보관하고 증명이 필요할 경우 직접 정보를 선택해 대상기관에 제출할 수 있다. 5일 한국은행은 한은과 은행, 비은행 금융사 등이 모인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가 지난달 24일 '금융회사 분산ID 서비스 운용 및 공유체계 표준'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분산ID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신원증명체계다. 신원정보를 타인이나 다른 기관 등에 넘기지 않고도 증명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앞으로 정보 주체는 주민등록정보, 거주지 등 신원 관련 정보를 스마트폰 앱 등에 보관하고 있다가 본인 인증이 필요한 경우 해당 정보만 선택해서 제출할 수 있다. 재직증명서·자격증명 등 별도의 실물서류 제출도 간편해졌다. 다수의 금융사가 함께 제공하는 공동서비스기 때문에 한번 발급받으면 여러 금융사에서 본인확인을 할 때 제출할 수 있다. 최근까지는 분산ID에 기반한 서비스가 논의되고 있었지만 이를 금융업무에 가져다 쓸 수 있는 서비스 표준은 미비한 상황이었다. 이에 협의회는 금융권 공동의 분산ID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각 금융사가 참조 가능한 분산ID 서비스 모델 및 시스템·데이터 구성요건, 신원정보 발급·제출 절차 등을 표준화했다. 협의회는 이에 금융사 분산ID 서비스 활용 모델을 ▲신원확인 ▲본인인증 ▲자격증명 ▲제증명서 등 4가지로 구분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분산ID 서비스 운용 및 공유체계 표준 제정을 통해 금융권 분산ID 서비스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것"이라며 "금융사의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한편 서비스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2022.01.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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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금융지주가 2015년 1월 1일 해체된다. 산은지주와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에 합병돼 사라지고 KDB생명 등 나머지 계열사는 산업은행 자회사로 들어간다. 앞서 한국씨티금융지주도 2014년 10월 31일 한국씨티은행과 합병했다. 지주회사와 은행은 한국씨티은행으로 존속시키고 지주회사를 소멸시켰다. 씨티은행 측은 “은행이 지주회사 자산의 97%를 차지하고 있어 지주회사 체제가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며 “업무와 의사결정의 중복을 막고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지주회사를 해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11월 1일에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이 합병됐다. 합병으로 11월 19일 우리금융은 상장 폐지되고 우리은행으로 신규 상장했다.현재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11곳과 증권·보험회사가 주력회사인 지주회사 2곳 등 총 13곳이다. 지주회사란 다른 회사를 지배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2000년 도입된 금융지주회사 제도는 국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는 2001년 4월 설립된 우리금융지주다. 우리금융지주 출범 이후 금융당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금융회사로 성장시키겠다며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독려했다. 이후 신한금융(2001년), 하나금융(2005년), KB금융(2008년) 등이 생겨났다.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와 금융업 대형화 등을 위해 만들어진 금융지주회사는 이후 애초 목적과 달리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일어났다.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 등 수뇌부의 권력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대표적인 곳이 KB금융이다. KB금융은 2008년 초대 회장인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부터 2대 회장인 어윤대 전 회장, 3대 임영록 전 회장까지 모두 당시 수뇌부와 갈등을 빚었다. 황영기 전 회장은 강정원 전 은행장과 2008년 초대 회장직을 놓고 대립한 뒤 사외이사, 은행 부행장 등의 선임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어윤대 전 회장 역시 임기 후반에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두고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과 갈등을 빚었다.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로 이건호 전 행장과의 다툼이 있었다. 결국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동반 퇴진했다. ━ 은행 편중된 구조에 파워게임 공적 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초대 회장인 윤병철 전 회장은 이덕훈 당시 행장과 KB금융처럼 전산시스템 도입을 놓고 대립했다. 2대 회장이었던 관료 출신인 박병원 전 회장도 박해춘 전 행장과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마찰을 빚었다. 뒤를 이은 이팔성 전 회장은 은행장 권한을 축소하는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려다 이종휘 전 행장과 현 이순우 행장의 반발을 샀다. 신한금융 역시 마찬가지다. 라응찬 전 회장을 따르는 이백순 전 행장이 차기 지주회장으로 거론되던 신상훈 전 지주사장을 배임혐의로 고소하는 ‘신한사태’가 벌어졌다. ‘신한사태’는 아직까지 법정공방 중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지주회사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회장과 은행장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들은 자기 자리에서 파워게임을 하다 보니 결국 집안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실제로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자산비중은 은행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6월 말 기준으로 금융지주회사 총자산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3%다.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지주회사에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은행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최근에는 국회가 금융지주회사 내 계열사 간 정보 공유를 크게 제한하도록 법을 변경했다.그동안 같은 금융지주회사에 속한 은행·증권·보험·카드사는 따로 동의를 받지 않고도 고객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초 3개 신용카드회사의 고객정보 1억 건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내부 경영관리에 필요한 경우에만 정보공유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주인 없는 금융지주회사 체제도 문제로 지목된다. 현재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동일인 주식 소유 한도를 10%로 제한하고 있다. 산업자본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은행과 지주회사에 ‘지배주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투자자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없다 보니 정부가 각종 규제와 감독수단을 통해 지주회사 경영에 간섭하고 인사에 개입하는 등 관치금융이 일상화됐다. KB금융이 관치금융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지주회장과 은행장이 임명될 때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출신 배경이 다른 경영진 선출로 내부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직 내부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영진이 금융과 리스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기보다는 자리보전과 단기 실적에 연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이렇다 보니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금융지주회사가 비용절감과 경영효율화를 위해 지주회사에서 은행으로 되돌아가는 추세다. SC금융지주도 곧 한국씨티금융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금융지주회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은행이 직접 증권·보험사를 소유하는 것도 여러 제한이 있는 만큼 금융지주회사 형태로 묶여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은행과 증권·보험사가 자신의 사업영역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전체 금융산업의 앞날을 내다보고 영업전략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선진국 금융회사처럼 견고한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려면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는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선진국처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능력 있는 CEO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국내 금융지주회사는 미국을 본 떠 도입됐지만 운영 방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은행과 증권업을 분리해오다 1999년부터 모든 업종의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는 금융 지주사의 설립을 허용했다. 일본도 1997년 은행과 증권, 보험 지주회사에 대한 설립·감독 규정을 두기 시작했다. 영국은 이보다 앞선 1986년 ‘금융 빅뱅’을 통해 각 금융회사 간의 경계를 허물고 초대형 ‘메가 뱅크’를 육성해왔다. 이들 금융지주회사들의 사업구조는 어느 한 부문에 쏠리지 않고 지역별, 업종별로 다원화돼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HSBC는 2013년 전체 영업이익(646억 달러) 가운데 비이자 수익 비중이 45%에 달한다. ━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형식에 그쳐 웰스파고도 비이자 수익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절반 이상이 넘는다. 국내 지주회사는 이런 수익 비중이 3% 안팎으로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주회사들이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저축은행 인수, 해외 진출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선 내부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지배구조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적절한 역할과 업무 분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외 금융지주사 자회사에는 일반적으로 이사회가 없다. 지주회사를 이끄는 회장의 권한도 막강하다. 지주회사 임원들이 자회사 CEO를 겸직하는 구조여서 회장이 자회사 CEO의 인사권을 갖는다. 회장과 행장을 각각의 추천위원회에서 뽑는 우리 사정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사회 구성 역시 차이를 보인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에는 주로 관료 출신과 금융회사 임원, 경영·경제학과 교수 등이 맡는다. 반면 해외 지주회사는 다양한 이력의 사외이사들이 포진한다. 미국 1위 은행인 웰스파고은행은 휴대전화나 철강, 사회적기업 등 타 업계 현직 CEO들이 사외이사를 맡는다.이와 과련, 금융위원회는 2014년 11월 말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입법예고 했다. 12월 24일에는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모범규준을 확정, 시행에 들어갔다. 적용 대상은 은행지주 등 551개 금융회사 가운데 자산 2조원 이상인 118개사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향후 금융회사는 CEO, 부사장 등 집행임원을 선임할 때 추천경로, 추천경력, 추천사유 등을 공시해야 한다. CEO 자격 제한 요건은 애초 입법예고안보다는 완화됐다. 원래는 CEO 자격 요건을 ‘금융업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자’로 정했지만, 이번 최종 모범규준에는 ‘금융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금융회사의 공익성 및 건전 경영에 노력 할 수 있는 자’로 변경됐다. 금융위 측은 “경력에는 전에 근무했던 회사, 혹은 보직에서 업무성과 등이 기록되기 때문에 고위 임원의 자질을 미리 판단할 수 있고 판단 결과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개선작업의 또 다른 필수과제는 승계 프로그램과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내부 경력을 갖춘 인물들을 중심으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CEO 유고시 바로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장 KB금융만 해도 복수의 외부 컨설팅 회사를 통해 후보 리스트를 작성하며 내부 구성원들 보다는 사외이사들의 입김이 선출 과정에서 영향력을 갖는다.국내 금융지주회사들도 뒤늦게 제도를 만들고 있다. 신한금융은 회장추천위원회가 주력 계열사의 CEO를 대상으로 회장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나금융도 경영발전보상위원회 등을 통해 매년 회장이 제안한 예비 CEO 후보군에 대한 평가와 승계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지주 대부분이 CEO 승계 프로그램은 갖췄으나 형식적으로만 운영될 뿐이며 외풍에 취약하다.모범규준과 함께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 참석해 “정부가 은행의 주인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금융산업이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반면, 민간이 주도하는 국가의 금융산업은 상당히 선진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기준에 맞춰 은행법상 동일인 주식소유한도를 대기업 구분없이 10%로 높이고, 단계적으로 금융전문성을 확보한 금융그룹은 20%까지, 은행지주회사는 34%까지 한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총회에서 동일인이 최소한의 의사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희 기자 bob282@joongang.co.kr ━ LIG손보 품에 안은 KB금융 - ‘경영진 교체·M&A’ KB사태 마무리 KB금융지주가 내분 사태를 뒤로 하고 손해보험업계 4위 LIG손해보험을 품에 안았다. 숙원 사업이던 손해보험업 진출을 지주사 출범 5년 만에 이룬 것이다. 이로써 KB금융은 은행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한편, 비은행 부문 영업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또 국내 금융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돼, 오랜 기간 놓쳤던 금융업 맏형 자리도 되찾게 됐다. 무엇보다도 지주사-은행 간 갈등을 청산하고, 재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KB사태는 물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를 갈무리 했다는 선언적 의미도 담고 있다.이번 KB금융의 LIG손보 인수는 사실 이미 낙점됐던 사안이다. KB금융은 2014년 6월에 LIG손보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이어 8월 11일에는 금융위원회에 자회사 편입 신청을 넣은 상태였다. KB금융은 재무상태가 좋고, 인수 의지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마땅한 경쟁 상대도 없었다.그러나 금융위는 임영록 전 회장·이건호 전 행장의 갈등을 감지하고 “경영이 불안한 회사에는 인수를 허가할 수 없다”고 불허 입장을 내비쳤다. 지배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한 경영 정상화가 이행되지 않으면 어떤 인허가도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모두 등 떠밀리듯 불명예 퇴진하고, 11월 윤종규 회장 겸 행장을 비롯한 새 경영진이 들어서자 금융위는 12월 24일 편입 승인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안겼다. 외환은행부터 우리은행·ING생명·우리투자증권까지 인수·합병 (M&A)에 번번이 실패한 KB금융으로서는 드디어 트라우마에서 탈출하는 순간이다.시장에서는 이번 LIG손보 인수가 윤 회장 ‘원톱 체제’로 이후 첫 번째 대형 이벤트라는 점에서 KB금융 정상화의 첫 단추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전 경영진들의 갈등에 대한 사회적 이슈도 많이 사그라졌고, 지배구조개선과 건전경영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황영기-강정원, 어윤대-임영록 때처럼 ‘문제경영진 해임→이사회 정리→지배구조 개선 논의→새 경영진 취임→신사업 추진’의 수순을 자연스럽게 밟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골칫거리였던 이사회도 모두 퇴진한 상태다. 윤 회장은 LIG손보 인수가 확정된 뒤 곧바로 “자회사 편입 승인이 우리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직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금융위도 KB금융에 지배구조개선 계획을 3월까지 충실히 이행하라고 독려했을 뿐 특별한 이슈 없이 정례회의를 마쳤다.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과정 없이 또다시 사안을 덮고 넘어가는 금융당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특히 금융당국이 8월만 해도 KB금융은 LIG손보를 인수할 자격이 없다고 못 박았는데, 경영진이 바뀌었다고 인수를 승인해주는 것은 자기모순과 더불어 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기관경고를 당한 바 있는 KB금융에 인수 승인을 내준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며 “자격이 없음에도, 사외이사 퇴진 문제를 연계해 허가를 내주는 것은 금융당국의 재량권을 벗어나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맥락·배경이야 어찌 됐든 KB금융은 LIG손보를 인수함으로써 손보업계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수 2000만명, 전국 영업점 1000개인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KB카드도 분사 이후 고객 수·매출고가 수직상승하며 단박에 업계 2위 자리를 꿰찬바 있다. LIG손보 자체로도 자산 규모 22조원에 한해 2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다. KB금융 관계자는 “보험 영업과 KB캐피탈과의 자동차보험 상품 공동 개발, 국민은행 지점망을 통한 상품 판매 등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2015년에는 3000억~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 김유경 기자
2014.12.27 10:16
9분 소요경기 침체와 저금리 속에서 새로운 수익원 개발에 고심하던 국내 은행권이 씨티은행과도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들은 대개 종합자산관리와 투자은행 사업을 대안으로 선택한 모습이다. 투신 ·보험사 등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M&A가 활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씨티은행은 1991년에 국내 첫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인 ‘씨티 골드’를 시작했다. PB의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다. 2001년에는 공전의 히트작인 주가지수연동예금과 국내 은행에서 판 첫 펀드 상품인 ‘씨티 가란트 펀드’도 내놨다. 개별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펀드로 자산을 구성하는 ‘펀드 오브 펀드’도 씨티은행의 작품이다. 씨티은행의 강점 가운데 하나인 종합자산관리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금융지주회사의 원형으로 불리는 씨티뱅크가 이런 위력을 새로 인수하는 한미은행의 전국 225개 지점망을 통해 그대로 확산시킨다면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국내 은행권의 경우 금융 네트워크는 물론 리스크 관리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이를 축적한 데이터베이스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씨티은행에 한 발 뒤져 있다는 평가다. 우리 ·신한 ·하나은행의 경우 은행-증권사-투신사-보험사 등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다지만 씨티와 맞서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PB 영업 근간인 자산운용업 강화에 사활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동안 한국 시장을 장악해온 국내 은행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 씨티은행의 공세에도 맞설 대안을 하나둘 마련하고 있다. 먼저 종합자산관리 능력의 강화다. 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데다 저금리 기조까지 이어지면서 정기예금 등 은행 고유의 상품만으론 고객을 끌어들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은행들이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확장하고 있는 PB 영업에서도 종합자산관리 능력이 필수 요소다. 더구나 종합자산관리 사업의 중요한 기반인 자산운용 분야는 앞으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할 시장으로 점쳐지고 있다. 투신사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이 주식과 채권에 들어 있다”며 “국내에서는 현재 뭉칫돈이 대부분 은행의 단기상품에 들어 있지만 앞으로 투자상품 수요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금리와 고령화 추세가 진전되면서 투자상품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분석에서다. 자산운용 영업을 둘러싼 규제도 하나둘씩 풀리고 있다. 3월 1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간접투자 자산운용업법 시행령’이 발효됐다. 투신사 또는 자산운용사들은 이제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돈으로 주식 ·채권 뿐 아니라 금 ·원유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도 투자할 수 있다. 여기에 은행이 특정 고객에게서 현금 ·주식 ·부동산 등을 한 묶음으로 수탁해 운용하는 종합자산관리 신탁제도의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기존 특정금전신탁이 현금만 받는 것과 달리 다양한 자산을 복합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종합자산관리 신탁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은행의 PB 영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양한 맞춤형 상품이 나오는 계기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황금시장을 장악하기에는 국내 은행권의 자산운용 인프라와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3월 2일 월례 조례에서 “씨티은행이 복합 금융상품을 앞세워 원스톱 금융 서비스로 국내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도 “씨티와 비교해 우리 측이 가장 취약한 분야는 자산운용 분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산운용 부문 강화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한국투자증권 또는 대한투자증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은행 계열의 국민투신(수탁액 10조원대)은 한투 또는 대투 중 한 곳과 합병하면 단숨에 투신업계 수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 국민은행 측은 단독 인수가 힘에 부치지 않느냐는 안팎의 지적에 대해서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인수전이 서서히 달아오르면서 단독 인수도 가능하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단독 인수 후 외국계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와 상품개발 또는 판매망 등에서 제휴를 맺을 수도 있다는 것. 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자산이 200조원이 넘는데 자산 20조원 수준인 한투나 대투 정도는 충분히 인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은행 부문 M&A 바람 거세 국내 금융권에 ‘CEO 전쟁’을 불러일으킨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도 한투 또는 대투 인수전에 적극 뛰어들 방침이다. 국민투신과 마찬가지로 우리투신도 두 곳 중 한 곳을 인수하면 단숨에 투신업계 1?위권에 오르게 된다. 현재 한투나 대투에 인사 의사를 밝힌 곳은 국민은행을 비롯해 하나 ·우리은행 등과 미래에셋 ·동원지주 그리고 AIG ·UBS ·메트라이프 ·피델리티 등으로 알려졌다. 정부 측에서는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의 실사가 끝나 늦어도 4월까지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하고 이들 가운데 우선협상대상자를 5월 중 선정해 올 상반기 안에 본계약을 맺는다는 방침이다. 김정태 행장과 황영기 회장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국내 비은행부문의 인수 ·합병(M&A) 바람은 한동안 거셀 전망이다. 황영기 회장은 시장점유율이 낮은 우리증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LG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내년에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하나은행 측도 자사주를 일부 팔아 자금을 마련해서 증권사 인수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이 이런 방식으로 전력을 보강하면 하나은행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은 한때 대신증권이나 대우증권을 합병해 덩치를 키우려고 했다가 수포로 돌아간 뒤 증권사 인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생명보험사도 은행권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지주회사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순히 방카슈랑스 전용 보험사를 두기보다는 별도의 보험사를 두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은 이미 한일생명을 사들여 KB생명으로 재출범할 계획이다. 이동환 신한지주 기획재무팀 부장은 “신한지주는 물론 우리금융과 국민 ·하나은행이 모두 합병이란 짐을 짊어지고 있다”며 “누가 빨리 화학적 결합을 이루고, 시너지효과를 내느냐가 관건이 됐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또 “씨티 측도 자산 40조원의 한미은행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카드사 등을 인수해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국내 은행권과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은행들은 종합자산관리 부문 강화와 관련, PB 영업도 앞다퉈 확장하고 있다. 증권사 등과도 피말리는 경쟁을 벌여온 국내 은행으로선 이제 ‘씨티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지금도 ‘서울 강남의 부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씨티은행 고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씨티은행의 PB 부문은 강하다. 국내 은행들이 지난해에야 PB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과 달리 씨티은행은 이미 91년에 ‘씨티골드’라는 브랜드로 PB 영업을 시작했다. 국내 은행들은 PB 인력 확보와 육성에 혈안이다. 씨티은행이 부자의 기준을 조금 낮춰 PB 사업의 영역을 확대할 경우 국민 ·우리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하나 ·신한 측은 갈 길이 바빠졌다.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PB 사업을 개척한 하나은행의 김승유 은행장은 “우리 고객들은 은행에 대한 애착이 깊은 데다 우수한 인력과 네트워크도 확보하고 있어 이탈 가능성이 작다”며 애써 느긋한 표정이다. 김 행장은 “오히려 씨티의 글로벌서비스를 활용하려는 기업 고객의 이탈이 더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PB직원들의 성과급 체제를 강화하고 점포를 올해 10여 개 정도 더 늘리는 등 대책 마련도 서두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사이버 교육과 외부 연수 등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전문 PB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국민은행은 스위스계 은행과 제휴해서 PB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고 상품 제휴 등도 맺을 방침이다. 또 지난 2월 23일 올 들어 네 번째로 서울 목동에 PB 전용 센터를 개점한 데 이어 전문 영업점을 계속 늘려나갈 방침이다. 5년 전부터 PB영업을 육성해온 우리은행은 고객 분석과 각종 위험관리 ·인센티브제 정착 등의 작업을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현재 서울 강남에만 있는 PB 전용점을 강북에도 세우고, PB 기능을 갖춘 영업점도 43개에서 70개로 대폭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해외파 영입해 투자은행 사업도 업그레이드 국내 은행권이 씨티은행에 대항하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은 투자은행 사업의 강화다. 우선 국민은행의 경우 과거 자본시장본부와 국제금융본부 등에 흩어져 있던 투자금융 ·국제금융팀 ·자산유통화팀 ·증권대행팀 투자금융본부로 모으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투자은행 업무를 다뤄본 경험과 노하우가 성공의 열쇠인 만큼 현재 공석 중인 본부장에 외국 금융기관 출신의 투자금융 전문가를 영입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투자금융업무 전담 부서인 종합금융단에 파생상품 운용을 위한 스와프 트레이더를 영입했다. 또 국내 시장에만 한정했던 투자금융 업무를 해외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해외 금융기관과 손잡고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치중하면서 메릴린치 등과 공동으로 해외 자금 유치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SK ·롯데 등 국내 대기업의 주거래은행이면서 여전히 기업금융의 강자로 꼽히는 우리은행은 이를 토대로 기업들에 필요한 각종 투자은행 업무에 주력할 전망이다. 삼성증권 재직시에도 이 분야 진출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황 회장이 우리금융의 지휘권을 잡았기 때문에 바람몰이에 나설지 관심사다. 모건스탠리 ·UBS ·리먼브러더스 등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과의 경쟁에서 비교적 선전해온 하나은행은 투자은행 분문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방효진 하나은행 투자은행사업본부장은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 등으로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파생상품을 비롯한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신한지주 산하 조흥은행 역시 지난 3월 5일 HSBC 부대표 출신의 최인준 씨를 종합금융본부장으로 데려와 투자영업 부문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외환시장 전면 개방하면 씨티 파괴력 막강할 듯 국내 은행들은 이렇게 종합자산관리와 투자은행업을 두 축으로 수익 기반을 강화하면서 씨티은행의 본격 진출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전반적으로는 씨티 측이 한미은행을 완전히 ‘접수’하지 않은데다 한국시장 공략 전략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라 짧지만 아직 힘을 키울 시간이 남아있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기획담당 임원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준비할 시간이 있다”라며 “씨티의 공세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의 한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좀더 멀리 보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리스크 관리가 약한 국내 은행의 약점을 파고들어 사각지대에 있는 20?0대 틈새 고객까지 장악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또 씨티의 진정한 힘은 2007~2008년 무렵 외환시장의 빗장이 모두 열린 뒤 경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내 은행들이 중국 등으로 진출하려 애쓰는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2004.04.13 17:15
7분 소요올 금융산업의 키워드는 자발적 합종연횡과 금융서비스의 종합화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을 떨어내기 위한 소극적 의미의 구조조정이 막을 내리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 구조조정이 본격화 한다는 의미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도 구조조정이 숨가쁘게 진행 됐지만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은행들은 정상화 됐고, 국민은행·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하나은행 등은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대형은행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실질적인 구조조정은 올 해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덩치는 커졌지만 내실은 여전히 취약해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 중심 ‘종합 금융그룹’ 확산=국내 은행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형화에 그치지 않고 겸업화·복합화함으로써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하고 있다. 즉 은행이 예금과 대출 등 전통적 은행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중심으로 증권·보험·투신운용·신용카드·소비자금융·자산관리 등 모든 금융회사를 확보해 종합 금융업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서비스의 종합화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덩치를 키워온 은행들이 주도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지난해 굿모닝증권과 조흥은행을 끌어들인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조흥은행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최종 인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신한은행은 금융지주회사(소속 자회사의 지분만 소유·관리하고 경영은 개별 자회사가 맡는 경영체제)를 내세워 은행·증권·캐피털·투신운용·신용카드 등 주요 금융업무를 모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이 급증하고 있는 소비자금융에도 프랑스 BNP파리바그룹과의 합작을 통해 진출할 예정이다. 우리은행도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금융서비스의 종합화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3월 국내 처음으로 은행 내 증권영업소를 개설해 한 곳에서 은행과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증권 부문과의 접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행 부문은 이미 옛 한일·상업·광주·경남은행 등 4개 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제2금융 업무로는 증권 외에 투신운용·종금·신용카드 등은 물론 전문자산관리회사와 금융정보시스템 회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권에서는 금융의 종합화 과정에서 은행 이외의 취약한 부문을 보완하기 위해 증권·보험 등 비은행 금융회사를 경쟁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알리안츠그룹과 제휴해 보험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10% 미만인 증권·투자신탁운용 등 비은행 부문을 30%로 늘려 2년 뒤에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금융지주회사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2003년은 자발적 합병 원년=지난해까지의 금융산업 재편이 부실을 떨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올 해부터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병과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통합을 제외하면 지난해까지 성사된 은행 구조조정은 모두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으로 재편된 4개 대형은행은 금융업계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주요 은행들의 대형화·겸업화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 은행과 경쟁력이 약화된 지방은행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덩치를 키워온 것이다. 외환·한미·제일은행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은행들도 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자발적인 금융회사간 합종연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당장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금융지주에 밀려나게 된 우리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이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민간 이양이 올 해부터 본격화하는 것도 은행권의 덩치 불리기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이중 최대 매물은 우리금융지주로 정부는 올 해 말까지 정부 보유지분을 50% 이하로 줄일 계획이며, 조흥은행의 정부지분 매각도 올 1분기 중 가닥이 잡히고 국민은행의 정부 지분도 추가로 매각된다. 은행 구조조정에는 이미 경제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유시왕 매각심사위원회 위원은 “인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돈을 많이 주는 곳에 파는 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흥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거 뒤 즉각 확정된 것도 경제논리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절 조흥은행의 매각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왔지만 금융산업 재편의 거센 물결 앞에 시장원리가 더욱 존중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자발적 재편을 가속화함으로써 제2금융권의 재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중에서도 그동안 재편이 제대로 안 된 증권업계의 구조조정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거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의 종합화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는 대형 은행에 인수될 가능성도 높다. ▶내부 구조 여전히 취약한 은행=국내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던 은행들이 4개 대형 은행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내부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났지만 부실화된 은행들끼리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우량은행간 합병으로 출발한 국민은행도 올 해부터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소매금융에 강한 은행끼리의 합병으로 시너지를 내왔으나 올 해부터는 가계대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기업 부문의 부실은 상당 부분 정리되면서 은행 영업의 중심도 소비자 금융에서 다시 기업금융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소규모 자영업자인 소호(SOHO)와 중소기업 가운데 우량한 곳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 새로운 경쟁에서 어느 은행이 앞서나갈지는 신용조사 능력이나 기업대출 노하우가 우수한 은행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은행 도약에 눈 돌릴 때=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경쟁에 취약한 것은 더욱 큰 문제다. 국민은행이 처음으로 1백대 은행에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국내 은행은 여전히 규모가 작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은행이 덩치는 커졌지만 대출을 주요 업무로 다루는 상업은행(커머셜 뱅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인수업무·유가증권 투자·인수합병(M&A) 업무를 하는 투자은행(인베스트먼트 뱅크)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이나 해서는 금융산업이 낙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은행들이 모두 부실화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부동산 담보대출에 치중한 탓이다. 따라서 국내 금융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자은행으로 성장해야 한다. 국내 금융업계에는 아직 투자은행이 없다보니 국제 금융거래 서비스는 주로 외국계 투자은행에 의존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금융회사의 안방 공략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골드만삭스·알리안츠·JP모건·ING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국내 금융회사의 지분을 확보했다.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진출은 국내 금융산업의 재편을 가속화시키고 금융상품의 발달을 촉진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외국자본을 국내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촉진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자체적 경쟁력이 필요한 때다.
2003.01.17 00:00
5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