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도'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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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국민 2,662명으로 강대국 인식 조사-응답자의 81%, 일본에 부정적-한국도 1년 새 호감도 급감 중
지난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자국민 2,662명을 대상으로 한 강대국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 자료)중국인들이 미국보다 일본에 대해 더 나쁜 인상을 가졌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예상대로 러시아에 대한 호감도는 가장 높은 것으로 들어났다.이번 조사는 각 국가에 대한 인상을 1~5점으로 평가하도록 했는데, 1은 매우 나쁨, 2는 약간 나쁨, 3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 4는 약간 좋음, 5는 매우 좋음이다. 한국은 2.1로 '약간 나쁨'과 '좋지도 않음 사이'의 결과다.이번 조사는 한국, 미국, 일본, 인도, 러시아, 영국, 유럽연합,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8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고, 그 중 일본이 1.68로 가장 인상이 나쁜 나라로 선정되었다.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강하게 견제하고 있는 미국도 1.85로 일본의 뒤를 이었으며, 국경 분쟁 중인 인도는 2.01을 기록했다. 반면, 예상대로 러시아는 3.66으로 중국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가 됐고, 아세안은 2.75, 유럽연합은 2.61로 나름대로 양호한 호감도를 얻었다.한국은 지난해 2.6에서 올해 2.1로 급감했는데 1년 새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미국의 경우 2.19에서 1.85로 하락했지만, 한국의 경우, 하락 폭이 훨씬 컸다.또한, 이번 조사는 특이하게 미국 국민과 정부에 대한 호감도를 나누어 물었는데, 미국 국민에 대해 비호감을 표현한 중국인은 17.4%에 그쳤지만, 미국 정부를 싫다고 답한 중국인은 81.4%로, 미국 정부에 대한 높은 반감을 드러냈다.가장 위협적인 안보 문제로는 ‘대만에 대한 국제사회 개입’이 3.04로 중·미 관계 긴장(3.0)과 세계 금융위기 혹은 경제위기(2.95)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24.10.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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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 여론조사에서 북한·이란과 함께 비호감도 가장 높게 나와…호감국가는 캐나다·영국·일본 순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미국 전역의 성인 1035명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를 얼마나 호의적으로 보는지 조사한 결과를 지난 2월 20일 발표했다. 이 연례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21개국 중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북한과 이란이다. 북한에 호감을 느낀다는 미국인의 비율은 11%에 불과해 가장 낮았고, 북한이 비호감 국가라는 응답 비율은 86%로 이란과 함께 공동 1위였다. 특히 북한에 비호의적이라는 응답 중에서도 ‘대단히 비호감’이라는 응답률이 58%로 ‘대체로 비호감’(28%)보다 훨씬 높았다. 이란의 경우에는 ‘대단히 비호감’이 39%, ‘대체로 비호감’이 47%였다.그 외 ‘대단히 비호감’ 카테고리(호감도 20% 아래, 비호감도 70% 이상)에 든 다른 나라는 이란·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였다.갤럽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란·이라크가 호감도 순위의 맨 아래에 위치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국정연설에서 대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그들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2002년 미국인의 북한 호감도는 23∼31%로 지금보다 높았지만 ‘악의 축’ 규정 후 호감도가 떨어져 2003년 이래 순위의 맨 아래나 그 부근에서 맴돌았다고 갤럽은 설명했다.이번 조사는 유엔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월 1∼5일 실시됐다. 갤럽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런 사건이 있기 전에도 북한에 대한 인식은 아주 부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해선 미국인의 58%가 ‘대단히 비호감적’, 28%가 ‘대체로 비호감적’, 11%가 ‘호감’이라고 응답했다. 따라서 그런 최근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인의 호감도가 더 낮아질 여지는 없을 듯하다.”그 위의 ‘대체로 비호감 국가’ 범주(호감도 24∼31%, 비호감도 65∼70%)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호감 24%·비호감 68%), 러시아(호감 28%·비호감 70%), 사우디아라비아(호감 31%·비호감 65%)가 포함됐다.갤럽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나라의 비호감도가 높은 이유는 ‘외교·문화 관계에서 역사적 갈등’과 ‘테러리즘·핵위협’ 관련성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규제 행정명령(법원에 의해 일시 중단됐다)에서 입국금지 대상에 오른 예멘·소말리아·수단·리비아 등 7개국 중 다수 국가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는 호감도가 92%에 이르고 비호감도는 8%에 그친 이웃 캐나다가 꼽혔다. ‘최고 호감 국가’에는 캐나다와 함께 영국(호감 91%·비호감 7%), 일본(호감 85%·비호감 14%), 프랑스(호감 83%·비호감 15%), 독일(호감 82%·비호감 16%) 등 가까운 동맹국이 이름을 올렸다.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인의 외국에 대한 태도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변화가 거의 없다. 그런 예외 중 하나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동참을 거부한 뒤 미국인의 미움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호감도가 크게 높아졌다.한편 멕시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급에도 여전히 미국인의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64%는 멕시코를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프란슈 라티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7.03.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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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브랜드 제품에 대한 중국인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영향력 있는 인터넷 매체 ‘환추왕(環球網)’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에서 도요타와 혼다가 각각 1, 2위에 꼽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도요타는 지난해 리콜 대상에서 중국을 제외해 비난을 받았다. 혼다는 부품공장의 파업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반면 가장 호감도가 높은 브랜드로는 BMW가 꼽혔다. BMW 자체의 품질 우수성도 있지만, 중국 소비자를 중시하는 마케팅 전략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BMW는 지난해 ‘M3 타이거 에디션’ 모델을 개발, 판매하는 행사를 했다. 이 제품은 2010년이 호랑이해인 것을 기념해 BMW가 250대 한정으로 특별 제작한 모델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렌지색 스티치가 들어간 가죽 시트와 헤드레스트에 금색 호랑이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으로 오직 중국에서만 판매됐다.이에 질세라 명품 자동차로 일컬어지는 람보르기니도 중국시장 한정 판매 제품을 내놓았다. 2010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된 이 자동차의 모델명은 ‘무르시엘라고 LP670-4 수퍼 벨로체 차이나 리미티드 에디션’. 10대 한정 판매되며 회색 컬러의 보디와 스트라이프, SV 로고, 오렌지 컬러로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이다. 푸조 역시 이 자리에서 중국시장 전용으로 개발한 세단 ‘408’을 공개했다. 넓은 내부공간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반영했다. 이외에도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 벤틀리도 앞다퉈 차이나 에디션 모델을 출시했다.명품업계도 가세했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말 상하이에 새 매장을 내고 ‘상샤(上下)’라는 중국 브랜드 제품을 출시했다. 상샤 제품은 중국 전통 수공예 예술가와 협력 방식으로 생산된다. 기존 서구풍 디자인이 아닌 명나라풍 자단목 가구, 자기 식기, 의류, 장식품, 보석류 등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독특한 중국풍 디자인과 희소가치 덕에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서구 명품업체들이 기존 전통 디자인까지 과감히 포기하고 오로지 중국 소비자만을 위한 특화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리바이스는 중국 신세대층을 겨냥한 새 브랜드 데니즌(Denizen)을 출시했다. 리바이스는 중국인의 체형을 감안해 보다 날씬하게 보이는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클로에(Chloe)는 마르시(Marcie)와 엘시(Elsie) 브랜드의 2011 춘하 신상품을 선보이면서 “붉은색 중국풍”을 강조했다. 구찌 역시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한 라인업을 출시하면서 메인 색상으로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을 선택했다.디지털 전자회사 역시 13억 중국인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2009년 모토로라는 CDMA와 GSM을 동시에 지원하는 듀얼 스탠바이 방식의 모토(MOTO) E11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설계에서부터 기능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중국인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으로 출시 이틀 만에 3000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행서·초서 등 한자 필기 인식률을 97%까지 끌어올려 호평을 받았다.삼성 역시 중국시장에 특화된 갤럭시S를 내놓았다. 기존 갤럭시S의 하드웨어 기본사양은 유지하면서 중국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이동통신 기술방식을 운영하는 사업자별 요구를 맞춤형으로 반영해 출시한 것이다.중국에 처음으로 직영 매장을 개설한 애플은 매장 직원의 유니폼 색깔을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통일했다. 유니폼 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설계, 중국을 위해 제조(在加州設計, 爲中國製造)’라는 문구도 새겼다. ‘중국 소비자는 항상 옳다(中國消費者總是對的)’라는 글귀도 중국인을 으쓱하게 만들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애플도 중국 소비자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는 모양새다.KFC는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중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베이징 닭고기버거와 유탸오(油條), 죽 등은 모두 중국인의 입맛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외국 기업들이 이렇게 중국 소비자를 위해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는 것은 중국 소비시장이 지닌 어마어마한 폭발력 때문이다. 맥킨지는 중국의 소비시장 규모는 미·일에 이어 현재 3위 수준에서 2016년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소비시장의 성장은 세계적 브랜드를 중국시장으로 집중시킬 뿐 아니라 이들이 중국만을 겨냥한 상품을 출시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신제품 중국에서 먼저 선보인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소비시장이 대폭 위축된 것에 비해 중국의 소비지출은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다. 중국 소비재 판매 총액은 2009년 12조5000만 위안에서 2010년에는 15조5000만 위안으로 18.4% 증가했다. 증권사 크레디리요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10년 안에 연간 1010억 달러(약 114조원) 규모로 확대돼 세계 최대 큰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자동차와 TV 소비량 세계 1위, 컴퓨터 소비량 세계 2위 등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상품의 세계 최대 소비대국으로 변모 중이다. 구매 파워가 확대되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제품을 제조하는 이른바 ‘고객 맞춤형 특화상품’이 자연스럽게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서양인 위주의 디자인이 이제는 중국인의 기호와 체형, 소비 패턴과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제 해외 기업과 중국의 관계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중국 제조)’에서 ‘메이드 위드 차이나(Made with China·중국 기업과 함께 제조)’로, 다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중국을 위한 제조)’로 변해가고 있다.이제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중국인의 소비 행태와 사고방식을 파악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중국 문화와 전통 관습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하고 발 빠르게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기동성도 요구된다.‘현대속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중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성공비결도 중국 소비자의 정서와 눈높이를 고려한 차별화된 전략 때문이다. 중국시장을 선진국 시장에서 한물간 구형 제품을 내다 파는 시장으로 간주하지 않고 진출 초기부터 과감하게 최신형 제품을 발 빠르게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다른 메이커의 식상한 구형 모델 출시에 불매운동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소비자가 환영의 박수를 보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11에서 한 글로벌 기업 임원은 “우리는 신제품을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최소한 반년은 빨리 중국시장에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중원축록(中原逐鹿·서로 경쟁해 어떤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의 중국시장은 이제 고객감동까지 고려해야 승산이 있다.
2011.04.11 11:29
4분 소요미 민주당 대선 선두주자 힐러리 최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 50% 넘어서자 큰 고민 악감정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데이비드 보시는 공화당의 댄 버튼 하원의원이 이끄는 정부개혁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열심히 일했다. 버튼은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에게 적대감을 갖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클린턴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발생한 부동산 금융 스캔들인 화이트워터 사건과 부정 선거자금 조달 사건도 폭넓게 조사했다. 그러나 그 모든 조사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클린턴 부부가 백악관을 떠난 지 6년 넘게 지난 지금 버튼은 공화당 안에서도 거의 잊힌 인물이 됐지만 2008년 대선에 뛰어든 힐러리는 민주당 주자 중 선두를 달린다. 그러나 보시의 ‘추적’은 계속된다. 최근 몇 달간 클린턴 부부를 다시 조사해 온 그는 이번엔 험한 내용의 다큐멘터리(올가을 개봉 예정)를 제작 중이다. 주요 목표 관객 중에는 클린턴 시대의 각종 추문을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대 유권자도 포함된다. 현재 18세인 사람은 “트래블 게이트(백악관 여행국 직원 부당 해고 사건)가 터졌을 당시 겨우 네 살이었다”고 보시는 말했다. 이 젊은 유권자층이 힐러리의 추문(새로운 내용이든, 해묵은 내용이든)을 매우 궁금해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관한 정보를 원하는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힐러리의 전력을 상습적으로 파헤치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다. 자신의 표현처럼 클린턴 부부의 ‘죄악’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쓴 저자이자 우파 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의 편집인 R 에미트 타이렐 2세는 2선 상원의원인 힐러리의 뒤를 맹렬히 파헤치는 “조사팀이 여럿 있다”며 “그들은 현장에서 활동 중이며 내게 늘 전화가 걸려 온다”고 밝혔다. 힐러리는 자신의 추문을 새로 파헤치려는 시도를 우려할지 모르지만 내색하진 않는다. 큰 기대를 모은 힐러리 전기 두 권이 지난주 출판되자 그녀의 선거 진영은 “낡은 소식”이라거나 “재탕으로 돈이나 벌려는 수작”으로 일축했다. 사실 그 전기는 힐러리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과 상원의원 경력을 때론 가혹하게 자세히 설명하지만 클린턴 부부와 그들의 결혼생활에 관해 딱히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없다. 클린턴 부부는 오랫동안 제기된 그 모든 혐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힐러리는 보기에 따라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뒷조사를 많이 받은 여성이다. 그러나 백악관 시절 타블로이드지의 단골 소잿거리를 뛰어넘어 미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뉴욕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탄력성과 모든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힐러리의 능력 때문에 그녀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더욱 열 받는다. 그러나 구문(舊聞)조차 아직 파괴력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 힐러리의 약점을 캐는 사람들은 그녀가 비밀이 많고, 매사를 장악하려 들며, 과민증상이 있다고 여긴다. 이 같은 모습은 그녀가 90년대 숱한 공격을 받으면서 대응한 방식에서 나왔다. 지난주 갤럽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가 전 퍼스트 레이디에게 호감을 못 느낀다고 대답했다(호감을 느낀다는 대답은 46%). 이처럼 높은 비호감도는 현직 대통령이 아닌 상태에서 출마한 후보치곤 유례없을 정도로 높다. 존 케리나 앨 고어 역시 대선 출마 당시 어느 시점에서도 갤럽 조사에서 그 정도로 높은 비호감도를 보이진 않았다. 힐러리 진영은 최근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에선 비호감도가 갤럽 조사만큼 높지 않다고 항변했다. 동시에 선거운동을 계속할수록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민주당 유권자들이 힐러리에게 느끼는 실제적 문제는 그토록 많은 유권자가 힐러리를 싫어하는 상황에선 절대 그녀가 일반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리란 불길한 예감이다. 힐러리의 운명은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에 그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녀를 싫어하는 이유가 뭔가 하는 문제다. 힐러리와 남편 클린턴은 30년에 걸친 정치 인생에서 둘 다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일종의 ‘오판’ 속에 전국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쉽게 말해 미국이 새로운 부류의 강력하고 야망 있는 정치적 배우자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클린턴은 힐러리가 당선되면 “한 명의 대통령을 뽑고도 두 명을 얻는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힐러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그녀가 “쿠키를 굽고 차를 마시며 집에 머물러도 될 때” 정치 경력을 추구했다고 자랑한 후로는 특히 그랬다. 힐러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워싱턴에 뿌리를 내린 그녀를 만화에 나오는 악당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녀가 남성을 파괴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남편에게 램프를 집어던지고, 전 퍼스트 레이디 엘리노어 루스벨트와 영적 교감을 나누며,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섹스 장난감으로 장식했다는 소문도 있다. 보수파가 지어낸 이런 타락상에 관한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과연 중상자들의 상상처럼 그녀는 동성애가 판치는 백악관 문화를 비밀리에 조장한 레즈비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동업으로 법률회사를 운영하다 대통령 부보좌관으로 영입한 빈센트 포스터와 동침하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곤 자살처럼 보이도록 만든 기만적인 간부(姦婦)였을까?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힐러리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는 라디오 토크쇼의 큰 화젯거리였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유명 라디오쇼 호스트인 돈 아이머스는 ‘퍼스트 레이디가 창녀인 이유(That’s Why the First Lady is a Tramp)’라는 패러디 곡을 소개해 크게 히트시켰다. 게다가 1996년 대선 당시 한 직접우편물 발송회사는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에 3만 명의 이름이 적힌 ‘힐러리 혐오자 명단’을 판매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힐러리 반대층은 결코 그녀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들이 공격할수록 힐러리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2000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당시 힐러리의 상대인 공화당의 릭 라지오 하원의원은 ‘저는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출마합니다(I am running against Hillary Clinton)’라는 문구로만 된 선거자금 모금 편지를 발송했다. 힐러리에 대한 악감정을 적절히 활용한 그 방식은 현명한 전략인 듯했다. 힐러리의 정책적 입장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성향의 뉴욕 유권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초기 여론조사에서 그녀의 비호감도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힐러리는 뉴욕주의 62개 카운티를 오랫동안 발로 뛰어다니며 수시로 “험담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결과 뉴욕 사람들, 특히 특정 지지 정당이 없는 여성들이 기꺼이 관심을 딴 데로 돌렸다. 결국 힐러리는 55%의 득표율로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제 힐러리 진영은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 때 써먹은 전략이 전국적으로 통하도록 손질 중이다. 힐러리 진영의 전략가인 마크 펜은 유권자가 백악관 시절 굳어진 그녀의 이미지 외에 더 많은 모습을 알게 되면 부정적 시각도 자연히 줄어든다고 확신한다. 펜은 “사람들에게 늘 그녀의 출생지를 아느냐고 묻지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힐러리 진영은 두 차례에 걸친 상원의원 선거전에서 주효한 전략을 활용해 예비선거가 일찍 치러지는 주요 주에서 여성팀을 조직했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맨 먼저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첫날부터 최고 통수권자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다음 상원에서 이뤄낸 업적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화제를 유권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돌린다. 예컨대 유권자가 자폐증 자녀를 뒀다면 이 문제와 관련해 힐러리가 상원에서 보여준 지도력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힐러리의 문제는 개인적 매력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는 기성 후보를 불신하는 무당파 유권자층에서 크게 뒤졌다. 무당파 유권자층은 캘리포니아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처럼 예비선거가 일찍 실시되고 일반 유권자도 투표에 참여하는 주에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햄프셔주에서도 힐러리는 고전이 예상된다. 지지 성향과 무관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가 참신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통에 선두주자가 자주 패한 곳이다. 그곳에선 힐러리의 경쟁 상대인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나 루디 줄리아니만큼 인기를 얻을지 모른다. 힐러리의 강점을 의심하는 민주당의 한 고문은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확신시키려 애쓰지만 비호감도가 50%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을 설득하기란 어렵다.” 공화당 후보들이 공격의 초점을 다시 클린턴 부부의 과거사에 맞추는 상황에서 그런 설득은 더욱 힘들지 모른다. 최근 몇 주간 매케인과 줄리아니, 미트 롬니 등 공화당 후보들은 저마다 힐러리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그녀를 공격하는 일만큼 공화당 지지 기반을 흥분시키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남부 침례교 윤리 및 종교적 자유 협회’ 회장으로 공화당 진영에는 사회적으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한 리처드 랜드조차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은 오히려 사회적 보수파를 결집함으로써 설령 특정 후보가 자신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지 않아도 그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클린턴 2기부터 부시 행정부 전체까지 12년 동안 미국은 분열을 거듭해 왔지만 이제 힐러리가 마침내 ‘통합자’가 될지 모른다. 본인의 뜻과는 반대로 오히려 공화당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통합자 말이다.
2007.06.19 11:01
6분 소요뛰어난 전략으로 도움 줄 수 있지만 성추문으로 얼룩진 과거가 부담으로 작용할수도 “저런 음식이 참 좋아. 먹으면 안 되는데도 좋단 말야.” 3월 4일 일요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한때 자유세계 지도자였던 그는 전세기를 타고 뉴욕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클린턴은 스낵이라면 사족을 못 썼지만 2004년 심장수술을 받은 뒤부터 멀리해왔다. 하지만 프리토스와 그라놀라 바 몇 봉지가 눈에 보이자 고민했다. 비행기 탑승자 중 그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뉴욕주 주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인 맬컴 스미스도 예외가 아니다. 스미스는 클린턴과 동승한 사실만이 기쁠 뿐이었다. 나중에 그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감정이 북받치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스낵을 나눠 먹었다.” 클린턴과 스미스는 ‘피의 일요일’ 기념식 참석차 앨라배마주 셀마로 가던 중이었다. 1965년 3월 4일 민권운동 행진을 하던 600명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밑에서 주 경찰관 등의 공격을 받았다. 클린턴에게 이번 행사는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행사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끔찍이 배려한다고 해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클린턴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클린턴은 그날 오후 시가지를 행진한 뒤 ‘투표권 명예의 전당(The Voting Rights Hall of Fame)’에 헌액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클린턴이 아닌 힐러리가 검증받는 날이었다. 기념식 참석차 미리 현지에 와 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의 최대 라이벌인 버락 오바마와 유권자들의 주목을 누가 더 많이 끄느냐는 경쟁을 벌였다. 언론은 묵직한 저음에 마치 설교자 같은 말투로 킹 목사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오바마뿐만 아니라 자신의 남편에 맞서서 힐러리가 어떻게 선거운동을 꾸려갈지 궁금해했다. 클린턴은 지난해 초 킹 목사 부인의 장례식에서 뜻하지 않게 힐러리보다 더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힐러리가 남편보다 먼저 셀마에 도착해 연설을 했다. 그렇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예전과 다름없이 ‘정치’ 활동을 벌였다. 며칠 전 스미스 의원은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힐러리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흑인 표를 얻으려 길고도 힘든 싸움에 대비했다. 따라서 자신의 지역구인 뉴욕주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정치인 중 한 명인 스미스 같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은 전혀 원치 않았다. 스미스가 셀마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날 클린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측근은 스미스에게 클린턴의 비행기에 동승해 셀마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2시간 동안의 비행 중 스미스는 클린턴으로부터 남부 특유의 정겨운 대우를 받았다. 클린턴은 그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카리스마와 개성이 넘친다고 하더라”고 치켜세웠다. 그러자 스미스는 자신이 8월생인 데다 별자리가 사자여서 그렇게들 말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클린턴은 자신도 별자리가 사자라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에 스미스는 깜짝 놀랐다. “속으로 ‘내게도 다소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힐러리의 별자리는 전갈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두 달 뒤 스미스는 오바마 대신 그녀를 지지했다. 스미스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전직 대통령과의 동승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 못한다고 했다. “그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록되리라 본다. 만일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꺼번에 두 명의 대통령을 얻는 셈이다.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과연 미국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힐러리 진영에서 볼 때 ‘클린턴 요인’은 복잡하다. 일부 사람은 클린턴을 비교적 평화롭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번영의 시기에 대통령을 지낸 빈틈없는 정치인이자 명석한 사상가이며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한 정치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를 “뺀질이 윌리”라 여긴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 위험에 탐닉하는 성향으로 중심을 잃고 집권 2기의 상당 기간 나라가 표류하도록 만든 자기절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힐러리는 독자적으로 대통령에 출마한다. 투표용지에도 그녀의 이름만 나온다. 만일 당선된다면 남편이 아니라 그녀가 최고 결정권자가 된다. 그러나 힐러리가 주인이 된 백악관에서 전직 대통령인 남편은 무슨 역할을 할까? 그리고 클린턴의 단점이 또다시 그의 장점을 압도하지 않을까? 전직 대통령이 지금까지 아내의 선거운동에서 맡은 역할을 뉴스위크가 취재해본 결과는 이렇다. 우선 클린턴 부부는 전직 대통령이 아내의 출마에 초래할 위험과 희망을 잘 이해한다. 또 힐러리 진영은 어떤 다른 대통령 후보도 지금까지 갖지 못한 자산(다시 말해 두 번씩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배우자)을 잘 관리하려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클린턴이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출마한 지도 10년 이상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시간이 걸려도 부드럽게 설득하는 정치의 산증인이다. 대통령 재직시 그는 미국 내 최대 흑인 교파 중 하나이자 세계 기독교계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한 오순절파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 교회의 최고 유력자인 길버트 얼 패터슨 주교가 지난 3월 사망했다. 그러자 클린턴은 두 시간도 안 돼 전화로 조의를 표한 뒤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했다. 힐러리도 찰스 블레이크 신임 주교에게 전화를 걸어 신임 주교 부임을 축하하며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 교회의 지지는 클린턴 부부가 예비선거에서 흑인 표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해 보인다. 오바마도 패터슨 주교가 사망한 직후 그의 미망인과 블레이크 신임 주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장례식장에 아내 미셸을 대신 보냈다. 블레이크 주교는 클린턴 부부 중 어느 쪽으로부터도 “정치적인 말은 한마디도” 못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치적 싸움은 조문 기간 내내 벌어졌고, 전직 대통령은 누가 봐도 아내의 공공연한 무기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아내의 선거운동에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전략적인 조언도 아내와 선거진영의 몇몇 절친한 측근에게만 해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재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에이즈·기후변화·아동비만 등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클린턴은 지금이 힐러리가 나설 때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이 같은 저자세는 클린턴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흥미진진한 ‘일일 연속극’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일부 민주당원에게 위안이 된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그가 또다시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점을 거론하면서 염려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2월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데이비드 게펜은 뉴욕 타임스의 모린 도드 기자에게 클린턴의 “무모한” 행동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클린턴의 친구 중 한 명은 얼마 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여성들에 관한 그런 소문을 믿지 않는다”며 “그가 그러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뉴스위크의 한 기자가 당신은 15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지만 그런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15년 전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엔 실제로 철이 들지 않았으니까.” 힐러리는 성인이 된 이후 클린턴의 배우자 신분에서 오는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맞추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클린턴은 항상 정치적 스승이었다. 두 사람의 첫 데이트에서 젊은 힐러리 로덤은 미래 남편이 될 사람이 노사분규로 폐쇄된 한 미술관에 함께 들어가도록 해준 언변에 경탄했다. 클린턴은 1974년 아칸소주 검찰총장 선거유세를 통해 힐러리를 아칸소주 정계에 입문시켰다. 그녀는 늘 남편의 정치적 성공 방정식을 따랐다. 민주당의 논리를 지키면서도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직 후보로서의 힐러리의 삶은 남편으로부터의 독립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그녀는 1999년 7월 어느 화창한 날 이미 정계은퇴 의사를 밝힌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의 농장에서 상원 출사표를 던졌다. 여전히 대통령이자 민주당 지도자인 남편은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인디언 보호구역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편은 백악관에서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아내가 상원의원이 되자 클린턴은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국내 정치는 결코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002년과 2004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정권을 잡기엔 너무 유약하다는 논리로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는 순간을 분노 속에 지켜봤다. 반격하는 방법을 기억하는 당을 그는 간절히 원했다. 클린턴에겐 힐러리가 바로 그런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는 아내가 상원 재선 운동을 준비하는 동안 모르는 척했다. 더 큰 싸움을 앞둔 연습경기로 여기는 듯했다. 힐러리의 대선 선거운동에 관해 물으면 “아내의 출마 여부를 모른다”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는 2005년 CNN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안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눈앞에 선거를 두고 다음 선거를 논하지 마라. 그러다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 출마조차 못한다.” 그러나 사석에선 그토록 조심하진 않았다. 2006년 여름 한 전 보좌관과 대화하며 힐러리 상원의원의 민주당 예비선거 결과를 전망했다(뉴스위크가 이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클린턴의 측근과 지지자 다수가 그랬듯 그 보좌관도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클린턴은 “다크 호스가 나타날 거야”라고 예언했다. ‘새 얼굴’이 등장해 염증을 느낀 민주당원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언론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에 빗대 이 미지(未知)의 도전자가 하워드 딘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된다고 예측했다. 반짝 출현했다가 사람들이 열광하고 결국 실망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당이 믿음직한 힐러리에게로 다시 돌아선다는 예측이었다. “결국 꾸준함이 이기는 법”이라고 클린턴은 말했다. 그 새 얼굴이 바로 버락 오바마임이 드러났다. 오바마는 지난해 가을 순회 출판기념회에서 2008년 대선 출마 구상을 흘리기 시작했다. 힐러리 진영의 일부는 그의 잠재적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겨우 2년차 상원의원인 데다 책 좀 팔아먹으려는 심산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남들보다 먼저 오바마를 실제적 위협으로 여겼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민주당원 여러 명은 전했다. 이제 클린턴이 개입할 시점이었다. 힐러리의 입후보 선언 며칠 후 뉴욕 수퍼마켓 재벌이자 민주당 자금조달 책임자인 존 캣시마티디스는 힐러리 선거진영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 토요일에 시간이 비는데 선거자금 모금행사를 주선하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캣시마티디스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놀랐다. 클린턴을 주빈으로 하는 각종 모임을 “약 30차례”나 열었지만 그때는 보통 2주 전에 미리 통보받아 사람들을 끌어모을 시간이 넉넉했다. 이번에 그에게 주어진 말미는 단 나흘이었다. 바짝 긴장한 캣시마티디스는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다이얼을 돌렸다(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 판이었다). 마침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자택에 50~60명의 손님을 끌어모았고, 한 사람당 최대 2300달러를 힐러리 상원의원의 예비선거 운동에 기부했다. 검정 정장과 밝은 청색 타이 차림으로 분위기를 띄우던 클린턴이 마침내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라크, 경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힐러리 상원의원의 장점을 언급했다. “클린턴은 대리 선거운동원이 됐다”고 캣시마티디스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기만 해도 좋아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힐러리 선거진영이 오바마의 위협에 맞서 황급히 클린턴 전 대통령을 영입한 듯한 인상이었다. “초조하지 않았다면 클린턴을 그렇게 깊숙이 끌어들이지 않았으리라 본다”고 힐러리의 한 고문은 말했다. 그는 힐러리의 약점에 관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뒤 “클린턴을 많이 내세울수록 그들의 걱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힐러리 선거진영은 클린턴 영입에 오바마가 변수로 작용했다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누가 상대가 되든 간에 클린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힐러리 상원의원의 하워드 울프슨 대변인은 밝혔다. 클린턴 부부는 장기간에 걸친 선거운동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오래전부터 터득했다고 선거운동 보좌관들은 덧붙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내심 오바마의 위협에 놀랐다고 몇몇 민주당원은 전했다. 한 지지자는 “클린턴은 바보가 아니다”며 전국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얻은 높은 비호감도를 지적했다(지난 4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 상원의원의 호감도는 54%, 비호감도는 42%, 클린턴 전 대통령의 호감도는 60%, 비호감도는 38%였다. 참고로 지난 2월의 갤럽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호감도는 44%, 비호감도는 55%였다). 선거자금 모금석상에서 클린턴은 오바마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대신 힐러리의 폭넓은 경험(그리고 후보 물망에 오른 다른 민주당 의원들의 경험도 가끔씩)을 치켜세우고, 오바마와의 명백한 차이점은 들먹이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좀 더 노골적으로 간접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 3월 맨해튼에서 열린 모금행사(뉴욕 포스트가 처음 보도)에선 뉴욕 타임스가 오바마의 이라크전에 관한 입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라디오 방송국 WABC에서 진행자로 일하는 커티스 슬리와가 이 행사에 초대됐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뉴욕 타임스가 힐러리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그날의 요점이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의 이라크 관련 입장을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클린턴 부부는 손을 더럽히는 일은 주로 대통령 시절의 광범위한 보좌관 진영에 맡긴다. ‘피의 일요일’ 기념식 전날 밤 존 루이스 하원의원은 “클린턴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 무리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한 호텔 로비에서 손님들을 붙잡고 설득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원 내 흑인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 회원인 루이스는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들이 클린턴 선거진영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듯하다”고 뉴스위크에 전했다. 뉴스위크는 클린턴 진영의 이탈자 여러 명과 접촉했다. 그들에 따르면 클린턴 부부가 자신들의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직접 무슨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클린턴 진영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한 민주당 상원의원은 “클린턴 진영에서 뛰쳐나왔다면 버락 편임이 분명하다는 암시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클린턴 진영은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자극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 2002년 힐러리가 이라크전에 찬성표를 던진 결정을 물으면 된다. 지난해 텍사스주에서 진보파 옹호단체인 ‘민주주의동맹’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이라크 전쟁의 함정을 2002년엔 알지 못했다는 말을 믿어도 좋으냐는 질문에 클린턴은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르윈스키 스캔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클린턴이 논쟁 중 삿대질을 하면 논리에서 밀린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지난 4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라디오방송 기자가 이라크전에 대해 질문했을 때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기자가 주제를 바꾸려 하자 클린턴은 단호하게 내뱉었다. “질문을 했으니 끝까지 대답을 들으시오.” 두 번 다 나중에 질문자에게 다가가 좋게 끝을 맺었다. 조만간 클린턴은 자신의 과거 행동을 변론하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클린턴 집권 시절이 떳떳하지 못하고 부정직한 10년이었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원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이 국내 문제에 정신이 팔려 알카에다를 간과했다는 생각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미트 롬니는 선거유세 도중 칼럼니스트인 찰스 크라우태머의 말을 빌려 클린턴 시절을 “역사의 휴가”라고 불렀다. 공화당 전략가들은 클린턴의 과거 행적을 지적하며 테러 문제를 힐러리의 약점으로 몰아붙일 만한다고 생각한다. “클린턴이 테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거의 모든 사람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한 공화당 후보의 측근은 말했다. 그는 잠재적인 선거운동 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클린턴 선거진영은 부시와 클린턴의 외교정책 업적을 다루는 토론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시 진영에 불리한 싸움”이라고 힐러리의 울프슨 대변인은 밝혔다. 실제로 부시 치하에서 격동의 시절을 보낸 뒤이기 때문에 클린턴의 과거를 들춰낼수록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힐러리 보좌관들은 확신한다. 그러나 미래는 어떨까. ‘대통령 부군 빌 클린턴’은 무엇을 할까. 힐러리가 바랐던 거의 모든 일을 할 듯하다. 로절린 카터가 그랬듯 각료회의와 국가안보 브리핑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헌법상 정해진 역할이 없으니 직책 없는 실력자가 되기 쉽다. 6년여간 딕 체니 부통령이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전례를 감안하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가족·권력·정치가 뒤섞이면 아주 복잡해진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부시 일가만 봐도 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주연 자리를 아들에게 양보하는 일이 겉보기보다 더 어려웠으리라고 친구들은 전한다. “추측하건대 클린턴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정말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부시 일가의 한 친구는 말했다(민감한 문제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부시 일가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아버지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완전히 물러나기가 어려웠다. 클린턴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아버지 부시는 생각한다. 힐러리가 당선되면 빌에겐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미래가 올 테니까.” 클린턴은 뒷전으로 물러나도 걱정 없다고 공언한다. 5월 18일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행사에서 “모든 일을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거의 마음을 정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골프나 치러 다녀야겠다.” 힐러리는 남편이 자신의 정부에서 ‘세계 대사’ 역할을 하리라고 밝혔다. 힐러리의 보좌관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묻자 클린턴이 재단 업무를 계속하며 에이즈·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다루고, 부시 이후의 세계에서 미국 우방들과의 관계 회복을 촉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워싱턴의 한 만찬장에서 클린턴의 한 주요 후원자가 ‘세계 대사’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해석했다. “그렇게 되면 워싱턴을 떠나게 된다”는 말이었다. 대통령 힐러리가 배우자의 구속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서로 너무 떨어져 있어도 정치적 위험이 커진다. 클린턴 부부의 관계에 다시 관심이 쏠릴지 모른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힐러리 상원의원을 말하면서 갈수록 체념한다는 인상을 준다. 공화당 측이 이미 클린턴 부부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잔뜩 모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야당 조사 조직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전직 공화당 중견 운동원 두 명은 공화당이 힐러리나 클린턴의 뒷조사에 자금을 댄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고 뉴스위크에 전했다(힐러리 상원의원이 아직 민주당 후보 지명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어쨌든 이런 문제를 둘러싼 심판이 이미 열려(클린턴의 르윈스키 추문을 둘러싼 상원 청문회)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가 그의 사생활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결이 당시 이미 내려졌다. 하지만 과거 힐러리의 말마따나 “우익이 꾸미는 커다란 음모”의 흔적은 더러 있다. 댄 버튼 하원의원이 이끄는 하원정부개혁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데이비드 보시는 힐러리를 다룬 탐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그 위원회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여러 건을 조사했다. “클린턴 부부가 지내온 삶의 모든 측면에 걸쳐 자료를 찾는 중”이라고 보시는 말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클린턴 부부는 민사소송 세 건을 윌리엄스&코널리에 맡겼다. 아주 오래전부터 애용해오던 법률회사다(클린턴의 개인 법률고문 데이비드 켄달은 윌리엄스&코널리가 맡은 소송에 대해 절대 논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힐러리의 선거본부는 오는 6월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다. 다음달 두 권의 전기 발간이 계기다. 한 권은 칼 번스타인 기자, 또 한 권은 탐사보도 기자 제프 거스와 돈 반 내타가 썼다. 힐러리 선거진영은 그 책의 출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는다고 공언한다.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울프슨은 클린턴 부부 중 누구를 겨냥한 비난과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자신과 남편이 백악관을 떠난 이후 보다 성숙해졌으며, 자신이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미래의 인물이란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런 점(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점)에서 그녀의 남편은 자산이자 부담이다. 셀마에서 긴 하루를 보낸 후 전용기에 오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정크푸드로 관심을 돌렸다. 그러곤 스낵 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도리토스 과자 맛을 좀 봐야겠어. 이 친구들이 대체 뭘 먹는지 말야.”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새로운 손님이 동승했다. 역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더글러스 파머 뉴저지주 트렌튼 시장이다. 비행기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화제는 그날 힐러리가 한 연설로 넘어갔다. 클린턴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려는 듯 10분 동안 주의 깊게 경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1시까지 아내와 함께 연설문을 손질했어. 아내에게 느끼고 노래하라고 충고했지.” 그 후 며칠 동안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설이 남부 억양을 흉내 냈다고 비아냥댔다. 노래는 타고나지 않으면 완벽하게 흉내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훌륭한 스승을 뒀어도 말이다. With DAREN BRISCOE, KAREN BRESLAU, SARAH CHILDRESS, MARK HOSENBALL, ELEANOR CLIFT, HOLLY BAILEY, JONATHAN ALTER and ANDREW ROMANO
2007.05.29 16:48
13분 소요90 Minutes Later, a New Race 지난 9월 30일 밤 미국 마이애미대 체육관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 간의 첫 TV 토론에선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편의 희비극이 펼쳐졌다. 부시 진영은 ‘임시 거처’에서 대통령이 케리 상원의원에 맞서 힘든 토론을 펼치는 장면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부시의 정치적 스승 칼 로브는 부시가 대 테러 전쟁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며 늘어나는 이라크전 사상자들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나타냈다며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로브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케리를 공격하는 일은 ‘상대 후보의 결점을 파헤치는 임무’를 맡은 참모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은 토론 중간에도 분주히 케리를 공격하는 보도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종종 대통령이 토론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 건드렸다. 토론이 15분 남았을 때 갑자기 불편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부시의 한 참모는 “옆방에서 케리 진영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는 얘기를 듣고 심기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랬을 법도 하다. 실제로 케리 진영에선 흥분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확신에 찬 케리는 꼿꼿이 선 채 편안하게 말해 오히려 대통령처럼 보였다. 반면 양분된 화면 반대쪽의 부시는 초조해하고 쓴웃음을 짓는 장면이 여러번 포착됐다. 케리가 이라크전 자금 지원에 반대표를 던진 자신의 행동을 (연습해온 대로) 성공적으로 변호하자 케리 진영 사람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그리곤 9·11 테러 때문에 이라크전을 일으켰다는 부시의 말을 케리가 말 그대로 해석해 인용했을 때는 환성을 질렀다. 케리는 “우릴 공격한 것은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이처럼 예정에 없었던 말을 케리가 내뱉자 매우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격분한 부시는 더듬거리며 “물론 우릴 공격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부시의 보좌관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고, 케리측은 승리를 선언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토론이 항상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 두번의 대통령 후보 토론과 한번의 부통령 후보 토론이 남아 있다. 뉴스위크의 새 여론조사에 따르면 랠프 네이더가 가세한 3자 대결 구도에서 케리에게 49% 대 43%로 앞서 있던 부시는 현재 45% 대 47%로 케리에게 선두를 넘겨줬다. 비교의 게임인 선거 정치에서 전날 숙면을 취한 케리와 그렇지 못한 부시가 처음으로 토론장에 나란히 등장한 모습은 케리에게 이롭게 작용했다. 지난달 케리의 호감·비호감도는 48% 대 44%였지만 지금은 52% 대 40%로 벌어졌다(반면 부시는 52% 대 44%에서 49% 대 46%로 좁혀졌다). 이번 TV 토론을 지켜본 6천3백만명의 유권자 중 61%는 케리가 우세했다고 평가했고 부시가 이겼다고 대답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대다수는 케리가 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더 자기 확신에 차 있다고 대답했다. 부시에게 더욱 불길한 징조는 케리가 대중 앞에서 더 강력한 지도자(47% 대 44%)로 비쳤으며 더 호감가는 인물로까지(47% 대 41%) 부각됐다는 점이다. 부시측은 사석에서 선거전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리의 순간은 종종 덧없이 사라지지만 지난해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케리는 또 다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엔 전투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대통령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승리를 지나치게 확신한 부시 진영은 토론 전날에도 사우스 비치의 한 바에 모여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감에 찬 대통령은 무엇보다 성격상의 강점 때문에 마땅히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적어도 토론 당일밤만은 케리가 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쳐졌다. 부시는 자유가 지구에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참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TV 토론에선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외교정책과 관련한 케리의 이력에도 허점은 있었고, 부시는 그 중 일부를 제기했다. 그는 케리가 현 정부의 실책으로 지적하는 이라크전에 과연 새로운 연합군으로 가담할 나라가 있을지 물었다. 또 부시는 케리에게 진정코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서기 전에 ‘전세계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부시는 대체로 케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케리로 하여금 자신은 결코 이라크전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음껏 주장할 수 있게 했다(케리가 이토록 확고한 반전 입장을 갖게 된 것은 몇주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케리는 여전히 자신이 미군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 영토를 보호하는데 더 적합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케리는 최근까지도 자신의 대통령 후보 자질에 의구심을 보이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지난달 그는 외교정책에 관한 두차례의 멋진 연설을 통해 불과 한달 전 자신이 했던 실언, 즉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대통령의 무력행사를 승인하는 상원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한 말을 해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마이애미에서 케리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무기 사찰단을 통해 그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술 더떠 케리는 8백70억달러에 이르는 이라크전 전비 지출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원칙있는 항의의 표시였다고 주장했다. 케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당 언론 고문 댄 페인은 “민주당은 반전 후보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이애미 토론에서 케리가 거둔 승리는 이라크전 관련 소식과 개인적 수완 이상의 요소들이 작용했다. 케리측은 기대감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케리가 1대1 토론에서 승리할 것이란 확신을 떨칠 수 없었다. 케리는 온갖 친구와 보좌관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버릇을 자제하고 토론 준비 인력을 토론 브리핑 담당자인 론 클라인, 존 새소 수행 보좌관, 연설문 작성자 밥 슈럼(왕년의 대학 토론 대회 우승 경력자) 등이 이끄는 소수 인물로 제한했다. 그들은 위스콘신주 농촌의 한 가건물에 모여 토론을 연습했다. 무엇이든 열심인 케리는 최근 몇주 동안 네차례의 야간 모의 토론을 거치면서 자신의 토론 장면을 녹화하고 스톱워치로 시간까지 체크했다. 그는 두꺼운 브리핑 책을 들고 다니며 치밀하게 대비했다. 케리는 실질적 내용보다 간결함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의 토론이 끝날 때마다 그는 자신의 토론 내용을 분석하며 답변을 연마했다. 케리 진영은 그에게 간결한 토론의 중요성을 충분히 주입시켰다고 확신한 나머지 다변가인 그의 이미지를 역이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후보가 제한시간을 못 지킬 때 켜지는 경고등에 케리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 그러나 엄격한 시간제한을 어겨 경고등 세례를 받은 것은 케리가 아니라 오히려 부시였다. 부시 진영의 태도는 상대적으로 태연했다. 그것은 스포트라이트가 케리에게만 비쳐질 것이고 따라서 부시는 첫 토론 주제인 국방과 외교 문제에서 편안한 ‘홈경기’를 펼치게 될 것이란 오판 때문이었다. 토론 전 대통령의 일정은 플로리다주의 허리케인 희생자 가족 방문 등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부시는 또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하는 여유까지 부렸다(그것은 그가 그 스포츠를 좋아하는데다 참모들도 부시의 자신감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념만으론 토론에 임하거나 토론 후의 엄청난 비판을 헤쳐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급한 성격의 부시는 계속 자세를 바꾸고, 물을 마셔댔다. 때론 너무 흥분한 채 메모를 하는 바람에 종이를 긁적이는 소리가 사진기자들에게 들릴 정도였다. 또 부시는 주요 쟁점에 대해 브리핑받았지만 상대를 치밀하게 공격하기보다 자기 주장을 펼쳤다. 공화당측은 후에 이것은 그가 자신의 다정한 성격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코칭’받은 결과라며 투덜댔다. 부시는 케리가 말을 자주 바꾸는 후보란 점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일 수는 있어도 언론 입장에선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부시 진영이 줄곧 주장해온 까다로운 각종 토론 규칙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쪽은 오히려 케리였다. 부시는 케리를 직접 공격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졌기 때문이다. 또 부시는 방송사들이 규정을 무시하고 한 후보가 말할 때 다른 후보의 반응을 보여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케리의 말을 들을 때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황실에 모인 공화당원들은 두 후보의 접전을 실감나게 전하려는 언론의 생리를 과소평가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젠 기자들이 케리가 일관되게 이라크전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까 우려했다. 선거전의 향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클리블랜드에서 열릴 부통령 후보간 TV 토론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릴 부시-케리의 2차 토론에서 양측은 19년에 걸친 케리의 상원 표결 경력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케리는 간혹 클린턴처럼 중도 노선을 견지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매사추세츠 특유의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였다. 케리의 한 핵심 측근은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이 상원에서 오랫동안 이런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케리가 자신의 ‘진보 딱지’에 잘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주 케리와 동행한 빌 넬슨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은 “내가 했던대로 하면 된다. 환경을 보호하고, 균형 예산을 맞추며,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표를 던진 게 과연 지나칠 정도로 진보적인 행동인가 등의 질문 공세를 계속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진영은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부시측의 켄 멜먼 선거본부장은 케리가 “세금 인상 전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부시측은 이미 그가 가한 공격을 강화하는 한편 그가 놓쳤던 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거기엔 군사적 결정도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의 케리를 비난하는 새로운 광고도 포함돼 있다. 부시 자신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릴 ‘마을회관’ 스타일의 TV 토론에서 그 문제를 다시 꺼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케리측 참모들은 부시 진영의 공식적 차원을 뛰어넘는, 더 강력하고 더 개인적인 공격을 예상한다. 그들은 2000년 대선 당시 부시의 지자자들이 존 매케인 후보에게 저지른 행동을 익히 안다. 케리의 한 측근은 “부시측은 다소 비열한 방법으로 케리 후보를 공격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마이애미에서 1차 TV 토론이 끝난 이른 밤 케리 진영 사람들에겐 그런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케리의 측근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셰라턴 밸 하버 호텔의 바에서 기분좋게 보드카를 마시며 지난해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서 거둔 역전승 등 지금까지의 전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의 토론 책임자인 클라인이 도착했을 때는 수차례의 박수가 이어졌다. 역시 이번 승리에 기여한 메리 베스 케이힐 선거본부장은 입이 찢어질듯이 웃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클라인은 웃으며 “연습, 연습, 또 연습”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연한 모습을 보인 것도 주효했다. 대통령이 더 철저한 대비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맹세한 부시 진영도 분명 그 메시지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부시팀은 포시즌스 호텔에 머물고 있었지만 바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잠자리에 들고 말았으니까. With T. TRENT GEGAX, SUSANNAH MEADOWS and DANIEL KLAIDMAN
2004.10.12 15:21
7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