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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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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NC파크 구조물 낙하로 머리 다친 관중, 끝내 숨져

정책이슈

야구장 나들이가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다. 3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남 창원시 소재의 창원NC파크 야구장 내 구조물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쳐 치료받던 20대 관중이 끝내 숨졌다. 해당 관중은 지난 29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가 벌이는 국내 프로야구(KBO) 정규시즌 관람 차 야구장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문제의 사고는 29일 오후 5시 17분께 창원NC파크 3루 매점 인근에서 발생했다. 매점 벽에 설치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매점 앞에 줄 서 있던 관중 3명이 다쳤다. 그 중 구조물에 맞아 머리 등을 크게 다친 A씨는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돼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오다가 이틀만인 31일 오전 11시 15분께 끝내 숨졌다.A씨의 친동생인 10대 B씨는 같은 사고로 쇄골이 골절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나머지 한명은 다리에 타박상을 입은 거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현장 감식을 진행하는 한편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 등에 대해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경찰에 따르면 떨어진 구조물은 약 길이 2.6m, 폭 40㎝로 무게는 60㎏가량인 거로 조사됐다. 구조물은 알루미늄으로 된 외장 마감 자재인 '루버'인 거로 알려졌다. 당초 구조물이 설치된 곳은 매점 위 구단 사무실 창문 외벽 약 17.5m 높이다. 평소에는 고정된 상태였으나 사고 당일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졌다. 매점 천장에 한 번 부딪힌 뒤 3∼4m 아래로 추락했다 앞서 창원NC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 측은 "안타깝게 다친 분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고, 구단이 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향후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 기관과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해 철저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한국야구위원회는 해당 사고로 지난 30일 예정된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경기를 추후로 연기했다. 창원 NC파크 경기장 안전 점검을 진행하기 위해 4월 1일부터 3연전으로 펼쳐지는 NC 다이노스와 SSG 랜더스 경기를 무관중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사고 당일에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는 응원단을 철수했으며, 이외의 구장에서는 30일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았다.

2025.03.31 15:12

2분 소요
통폐합 대신 자립을 선택한 마을 日 히가시카와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전문가 칼럼

우리보다 인구감소와 저출생‧고령화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 중 으뜸은 일본이다. 빈집과 지방소멸 역시 일본은 꽤나 오래전부터 정책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최근 대구 경북 통합으로 다시 점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자체 통합은 광역도시간의 통합이지만 일본은 1997년 헤이세이(平成) 대합병부터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기초 지자체 통폐합을 지금까지 추진해 오고 있다. 헤이세이 대합병은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지자체 통폐합 사업이다. 통폐합으로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도시의 재편에 성공한 도시들도 있겠지만 인구규모가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에 통합되어 사실상 사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경우도 많다. 오늘 소개할 히가시카와정(東川町)은 일본 북해도(홋카이도) 중앙에 위치한 인구 8800명 규모의 마을로 헤이세이 대합병의 거센바람에서 통합 대신 자립을 선택하고 오히려 살아남은 지역이다. 이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5만 이상)’, ‘읍(인구 2만 이상)’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아주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2003년 마츠오카 정장(町長)은 인구 7500명의 히가시카와정을 통합 대신 자립시키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으며 2015년에는 40년 만에 인구 8000명을 회복시키는데 성공한다. 30년간 매년 50명씩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육아세대가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매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90여명에 이른다. 히가시카와는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상수도가 없는 마을이다. 사실 상수도가 없어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멋진 원수공원이 있다”로 없는 것 대신 있는 것을 보도록 강조했다. 다이세쓰산의 해빙수가 오랫동안 땅속에 스며들어 만들어진 깨끗한 천연지하수를 바로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이주를 결정한 요인을 물어보면 “깨끗한 물 때문”이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풍부한 지하수는 쌀농사에도 영향을 주어 맛있는 쌀과 술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대도시의 삶에 지친 근로자들이 소박하지만 쾌적한 이 마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기 이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인구 8000명이면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정도에 불과하다. 마을 중앙에는 도서관과 커뮤니티 공간(Center Pure)으로 활용하고 있는 센터가 있는데 폐교(초등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건물 외관이나 내부 디자인 모두 대도시의 것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쾌적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운동장은 매년 개최되는 사진고시엔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일본어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학습공간도 있었다. 교육을 마친 외국인들은 일본에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매년 학생수가 늘고 있다. 센터 입구에는 여러개의 목조의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마을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의자를 선물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었다. 지역 대학원 세미나에서 제안되었던 아이디어로 시작된 너의 의자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기쁨을 지역 사람 모두가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3년간 자신이 사용할 책상과 의자를 선물하는데 의자는 졸업 후 기념으로 학생이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중학교 3년 동안 자신의 목재 의자를 관리하는 방법을 따로 가르친다고 하니, 아이 당사자에게 이만큼 기념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의자프로젝트는 양질의 홋카이도 목자재를 사용하고 뛰어난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사히카와 가구(일본 5대 가구)가 생산품의 30%를 히가시카와에서 제작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의자 프로젝트’는 지역의 가구산업과 젊은 가구 장인을 육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온 마을이 함께하는 것이다. 작아서 가능한 것들이 오히려 마을의 강점이 마을에는 4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3개는 학생이 30~40명에 불과하다. 인구감소로 학교가 통폐합되는 과정에 380여명을 수용하는 학교를 새롭게 신축했는데 이 학교는 아주 특별하다. 이 학교는 단층이며 복도는 270m로 길다. 교실에는 벽이 없다. 12ha에 달하는 넓은 운동장에는 인공잔디 축구장, 천연잔디 야구장, 다목적 잔디광장, 체험형 논, 체험공원, 과수원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돌봄교실도 바로 인근에 있으며 유명 예술인의 조각작품도 설치돼 있다. 문무과학성으로부터 교육과정 특례교로 인정받아 국제교육을 주축으로 하는 교과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쌀이나 야채를 기르고 수확하여 급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학교 공간이지만 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마을 자랑거리들을 살펴보면, 인구가 많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 마을의 재정자립도는 얼마나 될까, 세수확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주민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행정서비스의 수준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비결은 따로 있었다. 물론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교부금도 있었지만 히가시카와는 여기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인구감소로 소멸위기를 겪었던 이 마을이 통합대신 자립을 선택하면서 마을 주민들도 정치인도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력을 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장은 기업들이 지역행정과 주민들의 삶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투자가 아니라, 기부였고, 오히려 작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2024.09.02 13:44

4분 소요
“이대호 은퇴한 롯데, 자금 확보”…롯데지주 190억 규모 지원

유통

롯데지주가 자회사 롯데자이언츠에 190억 규모의 자금지원에 나서며,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프로야구 구단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롯데지주는 이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고 구단의 미래 역량 확보를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 이를 위해 롯데지주는 27일 이사회에서 롯데자이언츠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190억원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이번 증자는 주주균등배정 방식으로 롯데지주가 보통주 196만4839주를 주당 9670원에 취득한다. 이에 따라 롯데자이언츠는 부채비율 개선과 이자비용 절감 효과는 물론 향후 투자 및 시즌 운영 자금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롯데자이언츠는 확보한 자금으로 선수 계약 및 영입 등 선수단 관리에 집중하며 경기력 향상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첫 행보로 지난 26일 팀의 간판 선발 투수인 박세웅 선수와 FA에 준하는 다년 계약(5년 총액 90억원)을 구단 최초로 체결했고 취약 포지션에 대한 외부 영입도 검토하며 전력 강화를 꾀한다. 야구장, 과학 장비 등 구단 인프라 투자도 강화한다. 롯데자이언츠는 2019년부터 2군 구장 상동야구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데이터 야구를 위한 첨단 장비를 도입하고 실내 배팅장 신축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시즌 종료 후에는 상동야구장 인조잔디 교체와 사직야구장과 동일한 흙 포설 등 그라운드 정비를 포함해 1군 경기장과 동일한 환경을 조성해 2군 선수의 1군 적응력 향상을 도모할 방침이다. 롯데지주 측은 "이번 자금지원 후에도 롯데자이언츠와 소통과 협력을 확대하며 차기 시즌을 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edaily.co.kr

2022.10.27 16:21

1분 소요
직원과 회사가 함께 박수치는 동료가 최고 인재다 [유웅환 반도체 열전]

전문가 칼럼

누구나 살다보면 두 가지 유형의 시험대 앞에 서게 된다. 우선 점수나 등급을 매기는 평가 유형이 있다. 이는 개인의 능력을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다는 취지는 좋을지 모르나, 한 인간의 개성을 박탈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타인으로부터의 신뢰와 믿음에 기반한 평판이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인간관계 내에서 형성되어 집단적인 인정을 낳는다. 평판은 개인 간의 단결과 협력을 장려하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이점이 있다. ━ 실리콘밸리에선 인재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 얼핏 보면 실리콘밸리의 평가는 냉정해 보인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전 과정이 평가의 대상이고 그 결과가 곧바로 봉급, 보너스, 승진 등의 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성과를 앞세우는 것 이면에 놓인 실상을 보면, 인재를 중심에 두는 철학을 가지고 한 사람에 대한 가치 평가를 우선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평가 시스템은 업무 수행 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업무 수행 평가는 상시적이다. 매니저가 직원 개개인에게 레벨 세팅, 멘토링, 모니터링, 피드백을 해주는 전 과정도 평가의 일환이다. 최종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의 모든 과정은 직원의 능력 향상 및 문제점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 과정은 직원 개개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평가의 취지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직원의 성장에 중심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물이 창출하는 이익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직원과 회사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 평가의 중심은 단연 직원이다. 우선 직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리더의 멘토링, 모니터링, 피드백을 통해서 직원들은 현재 나의 자질, 역량, 업무 진행 정도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다음으로 평가는 직원들이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의 기능을 한다. 평가를 통해 나의 위치를 점검함으로써 스스로가 꿈꾸던 위치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평가가 곧 개인 역량 개발을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끝으로 평가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피평가자는 타인으로부터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으로써 칭찬, 격려, 응원,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평가는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과 박수를 보내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 ‘피어 리뷰’에서 ‘360도 피드백’까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잘 반영한 평가 시스템의 대표적인 경우는 ‘동료 평가’로 번역할 수 있는 피어 리뷰(peer review)이다. 이는 학계에서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구자가 논문을 투고하면 같은 분야에 속해 있는 익명의 연구자들이 심사를 일임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피평가자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줄 수 있어 연구의 개선 및 발전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리콘밸리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내 동료들 간에 서로의 관심사, 연구 분야, 업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부서 간 이기주의가 심한 회사들은 동료 평가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극복할 수도 있다. 또한 피어 리뷰는 회사 전체의 입장에서도 이득을 준다. 예를 들어 한 엔지니어가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 자신도 모르던 에러가 피어 리뷰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 에러를 아무도 모른 채 제품이 출시되었다면 회사는 시장에서 막대한 불이익을 받았을 수도 있다. 피어 리뷰가 프로젝트에 국한돼 있는 것이라면, 인사 문제에 있어서는 피어인 동료들의 피드백(peer feedback)은 물론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피드백 역시 중요하다. 이를 이미지화 하면 ‘360도 피드백’이 된다. 한국의 인사고과와 성과급제도의 맹점은 그것이 주로 상부의 평가에 근거한다는 점에 있다. 만약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평가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평가와 상충된다면 그 직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동료들이 최고로 꼽는 인재와 회사가 최고로 꼽는 인재가 다르다면 그 회사는 경직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360도 피드백’이 중요해진다. 인텔에서 일할 때 부서원 중에 빌이라는 아주 똑똑한 연구원이 있었다. 그의 업무 능력은 뛰어났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는 시간을 잘 준수하지 않고 회사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잘 따르지 않는 직원이었다. 업무 시간에 나한테 보고도 없이 사라지고 특별한 사유 없이 자주 집에서 일하곤 했다. 이로 인해 함께 일하던 주변의 동료들이 상당히 일하기 힘든 상대라고 평가를 했다. 업무능력은 뛰어났지만 규칙을 따르지 않아 함께 일하기 힘든 상대라는 동료 평가를 반영해 ‘기대이하’(below expectation) 고과를 주었다. 빌은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다며 평가에 반발했지만, 그동안 기록해 두었던 위반 사례들을 제시하며 하위고과를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동료들의 솔직한 피드백도 전달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랜 시간의 면담으로 그동안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필자는 알아낼 수 있었다. 본인의 능력 대비 주어진 일이 너무 도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필자는 연구원이던 그에게 리더급 업무를 부여했고 빌은 그 과제를 상당히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성과를 인정해 그 다음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최우수’(outstanding)를 주었고 과장으로 승진을 했다. 지금도 그가 아주 잘하고 있고 차장으로 승진했다는 등의 소식을 가끔씩 듣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직원들이 박수칠 때 회사도 함께 박수칠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은 수직적인 평가와 수평적인 평가의 장점만을 취해 동료가 인정하는 사람과 상부에서 인정하는 사람이 동일하게 나올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러한 촘촘한 그물망과 같은 평가 시스템은 최고의 인재를 성장시켜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겠다는 회사 전체의 운영 철학에도 상응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회사에서든 인재가 그 중심에 있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2022.09.18 15:00

5분 소요
[현대차-韓 양궁의 37년 동행①] '금빛 화살' 질주 뒤엔 현대차그룹의 헌신이 있었다

CEO

한국 양궁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거머쥐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우울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 양궁 국가대표팀의 금빛 질주는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자, 지난 1985년 당시 비인기 종목이던 양궁을 현재까지 37년간 묵묵히 후원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의 결실이란 평가다. 재계 등에 따르면 이번 도쿄 올림픽의 한국 양궁의 성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재조명받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양궁 발전의 기반을 탄탄히 다졌고, 정의선 회장이 양궁의 스포츠 과학화와 도쿄 올림픽 맞춤 지원 등을 통해 양궁 국가대표팀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것. 실제 대한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그룹의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한 AI(인공지능), 비전 인식, 3D(3차원) 프린팅 등의 첨단 기술을 접목한 훈련 장비와 훈련 기법을 적용했다. 한국 양궁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췄지만, 이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그룹 내 연구개발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 이벤트 대회에 해외 전지 훈련장도 챙긴 정의선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인 고정밀 슈팅머신을 비롯해 점수를 자동으로 판독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점수 자동기록 장치,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 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측정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비 등이 대표적이다. 선수 훈련 영상 분석을 위한 자동 편집 장비인 딥러닝 비전 AI 코치와 3D 프린터로 선수의 손에 최적화해 제작한 맞춤형 그립도 양궁 국가대표팀에 제공됐다.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이번 도쿄 올림픽에 참석한 정의선 회장은 양궁 테스트 이벤트 대회, 미얀마 양곤 전지훈련장 등을 직접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해왔다. 현대차그룹 회장으로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을 챙긴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감안해 양궁 국가대표팀의 방역 상황도 철저히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2019년 도쿄대회 양궁 테스트 이벤트 대회 현장을 찾았다. 양궁 국가대표팀 응원과 함께,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과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양궁협회 관계자들과 일본 현지 시설을 꼼꼼하게 살핀 뒤 귀국해 진천선수촌에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동일한 시설을 건설하라고 주문했다. 도쿄 올림픽 양궁 대회에서 예상되는 음향, 방송 환경 등을 적용한 모의 대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초엔 미얀마 양곤 전지훈련장을 방문해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후 적응 훈련 등을 살폈다. 7월 말의 도쿄와 유사한 기후인 미얀마 양곤에서의 전지훈련을 지원하고, 훈련장을 직접 찾아 훈련 상황 등을 점검한 것.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양궁은 대회장과 유사한 환경에서의 훈련을 통해 실전 적응력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다. 코로나19 악재에 국제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자 양궁 국가대표팀의 실전 경험을 위한 세심한 지원도 이뤄졌다. 경기장 환경과 방송 중계 상황에 대한 적응을 위해 실제와 유사한 경기를 마련했고, 지난 5월과 6월 등 네 차례에 걸쳐 스포츠 전문 방송사 중계를 활용한 미디어 실전 훈련도 지원했다. 이 같은 세심한 배려 뒤에 정 회장이 있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 韓 양궁 기틀 닦은 정몽구 명예회장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은 올해 1월 열린 양궁협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13대 양궁협회장에 재선출됐다. 그만큼 양궁인과 양궁협회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지속적인 지원으로 양궁협회의 재정을 안정시킨 데다, 양궁의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 체계화, 양궁 저변 확대 등의 공로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2008년 양궁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지시한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 연구가 대표적이다. 양궁협회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3기, 13년에 걸친 중장기적 양궁 발전 계획을 세워 시행 중이다. 이를 토대로 양궁 꿈나무의 체계적인 육성뿐만 아니라 양궁 대중화 사업을 통한 저변 확대, 지도자·심판 자질 향상, 양궁 스포츠 외교력 강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이 지연, 학연 등의 파벌 없이 원칙에 입각해 투명하게 양궁협회를 운영해왔다는 점에 대한 긍정 평가가 많다.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갑작스런 선수 발탁이 없고, 철저한 경쟁을 통해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시스템 구축에 정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것이다. 코칭스태프도 공채로 선발된다. 정 회장의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은 한국 양궁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이었던 정 명예회장은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서향순 선수의 금빛 드라마를 지켜본 뒤 양궁 육성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했고, 현대정공 여자 양궁단, 현대제철에 남자 양궁단을 각각 창단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미국 출장 중이던 그가 심장 박동 수 측정기, 시력 테스트기 등을 직접 구입해 양궁협회에 선물한 일화도 유명하다. 연습량, 성적 등을 전산화해 분석하는 프로그램도 정 명예회장의 지시로 개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양궁 관계자들과 해외 활 제품과 국산 활 제품에 대한 품평회를 갖는 등 활 국산화에도 기여했다. 현재 양궁 연습에서 필수 코스 중 하나인 관중이 가득한 야구장에서의 활쏘기 연습도 정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에 토너먼트가 채택되자, 정 명예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끄러운 곳을 찾아가 훈련을 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 번의 실수로 메달을 놓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집중력 유지 훈련 도입을 권유한 것이다. 이 제안이 야구장 활쏘기 연습으로 발전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1.08.06 11:15

4분 소요
[경치 밖 뜻을 담는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빛의 기록에 여백의 정신을 담다

북 리뷰

수묵화 같은 풍경사진… 옛 문인의 문장·철학 속에서 느끼는 힐링 사진작가 주기중의 세 번째 작품집 은 “대한민국이 사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가 ‘국민 포인트’라 불리는 관광지에 놓여진 수많은 삼각대를 지적한 것처럼 ‘출사’를 다니는 사진 동호회 회원들은 전국 곳곳의 해돋이 명소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들이 사진 위주로 재편되면서 이른바 ‘사진발’을 잘 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스마트폰을 꺼내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연남동·을지로의 ‘셀카’ 포인트에서도 다들 비슷한 사진을 찍는다. 공항이나 야구장에 가면 아이돌, 스타 플레이어들을 찍기 위해 대포알 만한 대구경의 렌즈를 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기중 작가는 이 중에서도 풍경사진을 찍으려는 ‘출사족’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며 이렇게 분석한다. “급속한 서구화로 산수화의 전통이 단절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만큼은 ‘밈’이라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됐고, 이것이 풍경사진 열풍에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팍팍한 세상살이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쉬고 싶은 보상심리도 더해졌을 겁니다.” ━ 왜 한국에는 세계적 풍경사진 작가 없나? 하지만 이런 한국에서 왜 세계적인 풍경사진 작가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서구권에서 저명한 풍경사진 전문작가들이 나오는 걸까? 주 작가는 이를 정체성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서양의 철학은 동양과는 달리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연을 탐구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안셀 애덤스로 대표되는 미국 풍경사진의 전통은 서부 개척과 관련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 시대에 지질 조사를 위해 촬영했던 사진들이 ‘랜드스케이프’라 불리는 풍경사진의 원조가 됐습니다.” 서부 개척정신은 풍경사진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발휘됐다. 미국의 사진작가 밀턴 밀러가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홍콩과 중국으로 떠난 게 1861년이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사진기가 1837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나왔고, 1889년 이스트먼 코닥이 카메라 필름을 처음으로 대량 생산했다. 그러니 서구의 사진작가가 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중국이었던 셈이다.밀러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주로 고관이거나 부자였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1978년 밀러의 사진 등이 포함된 ‘중국의 얼굴 사진전’을 소개하면서 “밀러는 중국을 찍은 사진에 서구의 사상과 그림 기법을 적용했다”며 “19세기 화가 램브란트 그림에 쓰이는 빛이나 원근법 등은 중국의 그림 기법과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동양화에선 가까이에 있는 손과 멀리 놓인 손의 크기가 같게 그려지는 등 원근감이 무시됐다.그 이후 많은 서양인이 카메라를 들고 중국으로 몰려왔고, 그중에서는 중국의 자연을 담은 풍경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밀러처럼 인물사진을 촬영하면서 강한 라이트를 얼굴 정면에 비추거나, 보정을 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인물사진들은 때때로 검은색 점들로 표현됐기 때문인 것도 풍경사진이 많아진 이유가 됐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아마도 이런 사진의 역사 속에서 주기중은 ‘왜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풍경사진가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더욱 강하게 품었다. 누구나 풍경사진을 찍으려고 하면서도, 좀처럼 멋진 풍경사진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돌파할 해결책으로 작가는 산수화의 기법과 정신을 꼽는다. 실제로 책에 담긴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수묵 산수화와 풍경사진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사진이 많다. 구름 속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이나 설원 한편으로 걸쳐있는 숲은 물론이고 낚싯대를 바다에 힘껏 던지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사진이라기보다는 한폭의 동양화 같다.주기중의 세 번째 책 에서 사진 찍는 테크닉 소개는 극히 일부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풍경사진의 지향점을 산수화의 경지에 빗대어 설명한다. 0과 1, 두 숫자의 디지털 조합으로 포착한 빛의 기록인 사진에 여백조차 사유의 공간이 되는 산수화의 정신을 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대자연 앞에 선 사진가의 자세, 생각과 감정을 사진에 이입 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사진만큼 글도 오래 봐야 한다. 고려와 조선의 사상가는 물론 중국 육조 시대, 당과 송, 원과 청의 문인들 문장을 빼곡하게 소개하고 있어서다. ━ 산수화의 경지에 빗댄 풍경사진 지향점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느리지만, 책 속에서 마주치는 사진과 글을 보며 작가가 머리말에서 적은 ‘산수화의 정신은 힐링’이란 말을 새삼 다시 느낀다. 힘들고 지칠 때 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맘 편하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주기중 작가는 아주특별한사진교실, 서울시 50+재단에서 사진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언론 매체에 사진 컬럼을 기고한다. 중앙일보 사진부장, 영상에디터, 멀티미디어 팀장,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를 지냈다. 2016년 포란, 2018년 COSMOS로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 이 있다. 그동안 꾸준하게 사진작업을 하며 내공을 키운 흔적들이 에 담겨있다.-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2019.12.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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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몬스터

산업 일반

허리케인 플로렌스 같은 폭풍우에 지구온난화가 어떻게 터보엔진을 달아주었는지 과학자들이 조사에 나섰다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항구 도시 윌밍턴에 접근할 때 스티븐 패프는 지난 8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가졌다. 그는 플로렌스가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든 땅이 흡수해주기를 기대했다. 2016년 허리케인 매튜가 상륙했을 때 땅이 축축히 젖어 물렁해지면서 강풍에 나무가 쉽게 쓰러졌다.미국 국립기상국(NWS)에서 경보조정을 담당하는 기상학자인 패프는 사무실로 대피했다. 창문에 셔터가 설치됐고 회오리바람 대피소도 있었다. 그러나 시속 160㎞의 강풍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플로렌스가 뭍에 상륙하면서 속도를 크게 늦추더니 폭우를 쏟아부었다. 그는 책상에서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무실에 목공소 같은 냄새가 퍼져나갔다. 그는 “땅에 금방 물기가 차올랐다”고 말했다. “완충지대가 곧바로 쓸려나갔다. 홍수와는 거리가 멀었던 수위가 지금은 일부 지역에서 기록적인 수준까지 높아졌다. 그 정도로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앤서니 노리스는 인근 엘리자베스타운에서 폭우를 지켜봤다. 부소방대장으로서 웬만한 악천후는 거의 겪어봤던 그는 처음에는 플로렌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여느 폭풍우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도로가 하나 둘씩 잠기더니 마을이 고립되고 말았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 훗날 NWS에서 발표한 통계가 당시 상황을 말해준다. 윌밍턴의 강우량은 66㎝, 엘리자베스타운은 91㎝에 가까웠다. 약 반년치의 비가 쏟아진 셈이다. 한 주 사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8조 갤런이 넘는 비가 퍼부었다. 이번 폭풍우로 약 1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많은 지역에서 전력공급이 끊겼다. 최소 37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그렇게 많은 비를 퍼붓는 폭풍우는 드물지만 예전보다 더 빈도가 높아졌다. 지난 몇 주 사이만 해도 일반적인 통념을 거부한 대형 폭풍우가 여러 건 발생했다. 플로렌스가 노스캐롤라이나를 강타할 동안 열대요란(tropical disturbance)이 텍사스주에 비를 쏟아부었다. 피해지역은 훨씬 더 넓었지만 양은 플로렌스와 같았다. 그리고 태풍 망쿳이 동남아를 강타해 필리핀에서 최소 8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들 중 다수는 산사태가 주택과 대피소를 덮치면서 목숨을 잃었다.최근 이처럼 폭풍우가 잇따르면서 기후변화를 둘러싼 당파적 분열에 다시 불이 붙었다. 폭우를 동반한 대형 폭풍우가 증가세를 보인다. 미국기후평가의 데이터를 보면 1958~2012년 ‘호우현상(heavy precipitation events)’으로 인한 강우가 미국 각지에서 증가했지만 특히 동부에 피해가 집중됐다. 북동부의 강우량 증가율이 71%로 가장 높았고 중서부(37%)와 남동부(27%)가 그 뒤를 이었다. 더 강력한 폭풍우의 빈도가 증가하는 한편 속도도 느려지면서 홍수를 일으킨다. 지난해 허리케인 하비는 휴스턴 일부 지역에 127㎝ 가까운 비를 퍼부어 1250억 달러의 피해를 초래했다(그 직후 허리케인 어마와 마리아가 상륙해 플로리다주, 푸에르토리코, 카리브해 연안지역에 1000억 달러가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폭풍우가 텍사스 상공에 며칠 동안 머물면서 바람이 아니라 비가 가장 큰 피해를 초래했다. 플로렌스도 같은 수순을 따랐다. 대서양을 횡단할 때는 최고 단계인 5등급이었지만 육지에 상륙하면서 속도가 뚝 떨어졌다.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 있는 ‘전국폭풍우영향감소 프로그램’의 스콧 위버 소장은 “상륙 직후 속도가 시속 3.2㎞로 줄었다”며 “사람의 뜀박질보다 느린 속도”라고 말했다. NWS는 바람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린 점을 고려해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격하했지만 속도가 느린 탓에 더 오랜 시간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를 초래했다.대자연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필시 기후학자들이 몇 년 전부터 해오던 말과 같을 듯하다.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주를 이루는 온실가스 배출로 폭우를 동반한 대형 폭풍우가 갈수록 강해지리라는 내용이다. 방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50년 또는 100년 뒤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그들의 ‘기후모델’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후모델은 폭풍우의 움직임과 주위 환경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통합한다. 예컨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극지의 대륙빙하가 얼마나 녹았는지, 대양이 얼마나 많은 열을 품고 있는지 등이다. 이들 모델은 엄청나게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물리학 이론은 비교적 간단 명료하다. 공기가 따뜻할수록 습기가 많아 비를 더 많이 뿌린다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이들 데이터를 토대로 미래의 기후 예측을 내놓는다. 주말에 비가 내릴지 예측하는 기상예보와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통계를 기반으로 답을 내놓는다. 같은 식으로 플로렌스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확률로 표현된 먼 미래에 관한 추정으로 대중이나 정치인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예컨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00년에는 미국의 평균 기온이 1.7~6.7℃ 상승하리라고 내다본다. 이런 예측은 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케빈 리드는 플로렌스가 미국 동해안에 상륙할 때 이런 수수께끼를 풀려 애쓰고 있었다. 스토니브룩대학의 기후학자인 리드는 로렌스버클리연구소의 마이클 웨너 등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다가오는 그 폭풍우의 강도에 기후변화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로 했다.리드 교수가 그런 연구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기후모델의 토대를 이루는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진 덕분이다. 최근까지 기후모델과 기상모델은 전문 분야가 완전히 달랐다. 기상 모델은 한 주 정도 앞을 내다볼 수 있었지만 1년 또는 50년 뒤를 예측하는 능력은 떨어졌다. 기후모델의 문제는 정반대였다. 멀리 내다볼 순 있었지만 허리케인 같은 특정 기상이변에 초점을 맞출 만큼 정밀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근년 들어 이 같은 갭을 메울 수 있었다. 리드 교수는 한 기후 모델을 수정해 플로렌스의 예측에 이용했다.플로렌스가 아직 대서양 상공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를 향해 동진하던 지난 9월 10일 리드 연구 팀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을 찾아가 미국동부표준시(EDT)로 정확히 오후 8시에 플로렌스가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묘사하는 데이터를 다수 입수했다. 위성·기상관측기구·등대·선박에서 수집한 기온·습도·기압·풍속 등에 관한 수천 건의 측정치다.리드 교수는 컴퓨터 전문용어로 ‘초기조건(initial conditions)’으로 불리는 이들 데이터를 자신의 기후 모델에 입력한 뒤 프로그램을 돌려 향후 7일 사이 플로렌스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해냈다. 그 결과는 기상예보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치했다. 플로렌스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엘리자베스 타운과 윌밍턴 인근의 해안에 상륙한 뒤 속도가 떨어지면서 50㎝ 이상의 비를 퍼부으리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델을 다시 돌렸다. 이번에는 다른 초기조건을 이용했다. 산업화 이전 시대 기후가 어땠는지를 시뮬레이션하는 데이터였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하는 ‘검은 악마 같은 가공공장들’이 잉글랜드를 숯검댕으로 가득 채우며 산업혁명에 시동을 걸어 그 뒤로 아주 많은 기후 문제를 유발하기 전인 1850년경이었다. 그해 밀라드 필모어가 미국 대통령이었고 미국 인구는 2300만 명이었으며 대기 중 온실가스는 약 284ppm에 달했다(현재는 407ppm).이번에는 기후모델이 아주 다른 예측을 내놓았다. 폭풍우가 상당히 비슷한 경로로 진행했지만 강우량은 훨씬 적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최대 피해 지역에서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타운의 강우량이 89㎝가 아니라 44.5㎝에 그친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많은 양이지만 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지난 수년간 우리가 산업활동으로 배출한 온실가스와 현대의 허리케인의 관계를 계산한 과학자는 리드 교수가 처음은 아니다. 다른 열대성 폭풍우를 대상으로 실시된 같은 유형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기후변화의 특정한 변화를 규명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후학에서 ‘귀속(attribution, 현재 나타나는 현상을 그 동기로 설명하는 과정)’으로 불리는 신흥 분야다. 질병과 관련된 위험 요인을 연구하는 역학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가령 납중독이 인지능력 또는 대기오염이 폐암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그러나 기후 귀속 연구에선 특정 기상 현상의 위험을 평가한다.일부 추산으로 유럽에서 3만5000명이 사망한 2003년의 폭염 이후 기후학자들이 기후귀속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사망자 중에는 냉방장치 없이 아파트에서 지내던 고령자가 많았다. 과학자들은 그해 폭염 발생 확률이 산업화 이전 시대의 2배에 달한 원인이 기후변화임을 알아냈다. 허리케인 하비 연구에서도 휴스턴 대도시권의 강수량이 기후변화 때문에 4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그 과학자들이 실시한 실험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이 연구는 어떤 연구결과든 과학계에서 인정받으려면 거쳐야 하는 ‘전문가 평가’를 아직 통과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에 확신을 갖지만 아직 이런 확신을 엄밀하게 정량화할 수 없었다. 관측이 아니라 모델에 의존한 연구는 또한 본질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예컨대 리드 교수가 기후모델을 위한 초기조건을 설정할 때 일정 정도의 ‘조정’을 거쳐 모델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했다. 기후학자들은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를 꺼린다. 기후 회의론자들이 ‘데이터 조정’ 같은 표현을 물고 늘어지며 정당한 기후 리서치에 의혹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플로렌스가 허리케인으로 발달한 시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없는 세상에서 그 폭풍우가 발생했을지에 관한 더 근본적인 의문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플로렌스 연구에서 배울 점은 있다. 기후 변화는 세상을 호우로 인한 홍수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리드 교수 연구팀의 다음 과제는 그들의 모델이 플로렌스의 실제 진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검토해 같은 종류의 미래 연구를 위해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지 강구하는 것이다.리드 교수와 기타 ‘귀속’ 기후모델은 기후변화가 기상이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도 있다. 어쩌면 바람과 강우 같은 요소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할지 모르지만 이 모델들은 폭풍 해일과 해수면 상승 같은 중요한 기후 변수들을 반영하지 못한다. 지난 100년 사이 극지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10~20㎝ 상승했으며 21세기 말까지 30~12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수십 년 사이 미국 동부가 특히 취약하다. 지반 침하(맞다, 말그대로 땅이 가라앉는다)로 인해 같은 기간 동안 미국 동해안 쪽 해수면은 10~23㎝ 더 상승할 수 있다.이런 변화는 분명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듯하다. 대서양에서 허리케인이 접근하면서 동해안과 하구로 바닷물을 몰아와 일시적으로 해수면을 극단적으로 상승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플로렌스가 상륙할 때 폭풍 해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해수면이 무려 610㎝나 상승했다. 2012년 슈퍼 폭풍우 샌디가 강타했을 때 뉴욕시에 지역 최고 기록인 335㎝의 폭풍 해일이 밀어닥쳐 수백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해 아직도 복구를 끝내지 못했다. 21세기 말까지 내다볼 때 폭풍 해일로부터 미국 동부해안을 보호하려면 메인주에서 마이애미까지 488㎝ 높이의 방파제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말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의 건설은 그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해안을 따라 콘도를 세우고 마이애미와 뉴욕 그리고 하구에 연한 주거 지역에 고층건물을 계속 올리는 것도 문제다. 허리케인이 그렇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한 가지 큰 이유가 바로 부동산 개발이다. 매사추세츠공대의 기후학자 케리 이매뉴얼은 미국의 정책이 “분명히 허리케인 피해를 크게 키워놓았다”고 말했다. “해안 개발과 이주를 적극 지원해 위험한 지역으로 이사 가는 사람과 피해에 노출되는 인프라가 더 많아졌다.”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허리케인 피해는 “앞으로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편 과학자들은 기상이변에 관한 이론(기후모델)의 예측과 자신들의 현실세계에 대한 관측 간에 더 확실한 연관성을 밝혀내려 힘쓴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열의 대부분을 바다가 흡수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측정 결과 1971~2010년 사이 축적된 열의 90%를 바다가 품고 있다. IPCC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그 열의 대부분이 바다의 표수층에 머물러 10년에 0.1℃씩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다 표수층의 에너지가 폭풍우를 일으키는 최대 원동력이다.대양이 열을 더 많이 흡수할수록 폭풍우는 더 강력해진다. 이매뉴얼 교수는 “모델 분석 결과를 보면 약한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는 줄어드는 반면 강한 허리케인은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학 지구연구소의 기후학자 애덤 소벨 교수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이런 폭풍우를 불러온다고 본다. “기후가 변하는 건 분명하니 허리케인에 특정한 변화가 생기리라 예상한다. 그런 변화의 징후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앞으로 수십 년 사이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는 확실치 않다. 날씨는 과학자들이 고안할 수 있는 어떤 모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가 잡다한 변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일일이 걸러내야 한다. 예컨대 난류가 태평양을 순환하는 엘니뇨는 강우량과 기상패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마존 우림의 운명, 캐나다와 시베리아 북방림, 서아프리카와 인도의 계절풍, 대서양을 북상해 유럽으로 난류를 실어 나르는 멕시코 만류 등 기후 시스템의 이 모든 자연 현상들은 상호 연관됐으며 이 중 어느 한쪽에 변화가 생겨도 다른 변수들과 미래 폭풍우의 발생 패턴이 영향을 받는다.또 다른 문제는 1950년대 이전 기상기록의 신뢰도가 낮고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이매뉴엘 교수는 “너무 적고 결함이 많으며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당시에 관해 알려진 기상 정보는 오류와 누락 투성이인 선박 기록이 대부분이다. 유용한 역사적 데이터가 부족해 과학자들이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컨대 NOAA의 기상학자인 개브리얼 베키와 토마스 넛슨은 최근 수십 년 사이 대다수 과학자들의 믿음과 달리 허리케인 횟수가 감소하기보다 증가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기상현상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 연구에 거북함을 드러내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매뉴얼 교수는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학의 확률 언어로 계속 논의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그는 “50년 전에도 허리케인 하비와 같은 폭우가 가능했겠지만 확률은 훨씬 떨어진다”고 말했다.귀속 연구의 최대 장점은 대중적 홍보 가치일지 모른다. 리드 교수와 웨너 연구원은 분명 과학자들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대다수 과학자는 권위 있는 전문가 평가 학술지에 실리기 전에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관해 논하기를 꺼린다. 대외 홍보는 연구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될 확률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 리드 교수는 그와 반대로 폭풍우가 상륙한 한 주 내내 언론 매체와 많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우리는 이것이 대중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현실과 동떨어진 위협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귀속 연구는 기후변화가 우리 눈 앞에 다가와 있으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플로렌스 연구의 목표는 과학적 분석뿐이 아니었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그런 기준에 비춰볼 때 그 연구는 성공한 셈이다. - 프레드 구털, 니나 고들루스키, M.L. 네스텔 뉴스위크 기자

2018.10.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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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 홈런이 쏟아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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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는 기술 쓰지 않고 무조건 강속구 던지고 타자는 삼진 두려워 하지 않고 매번 전력을 다해 배트 휘두르는 경향 때문인 듯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2017 정규 시즌이 막을 내렸다. 특히 올해는 정규 시즌 4860게임에서 6105개의 홈런이 터져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한 시즌 6000 홈런을 돌파했다(종전의 한 시즌 최다 기록을 약 10% 넘어섰다).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돌이켜 보자면 지난 9월 22일 LA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는 39호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으로 벨린저는 내셔널리그 신인 홈런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최다는 1930년 왈리 버그, 1956년 프랭크 로빈슨이 기록한 38개였다(그의 아버지 클레이 벨린저는 뉴욕 양키스와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3시즌을 뛰면서 홈런 12개를 날렸다). 사흘 뒤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는 49호, 50호 홈런을 잇따라 쏘아올리며 1987년 마크 맥과이어가 갖고 있던 메이저리그 신인 최다 홈런 49개를 넘어 신기록을 세웠다(그는 52 홈런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마이애미 말린스의 장칼로 스탠튼은 9월 28일 58호, 59호 아치를 연거푸 그렸다. 역사적인 시즌 60 홈런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스탠튼의 시즌 59 홈런은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 순위에서 공동 9위에 오른 기록으로 한 시즌에 그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역사상 5명밖에 없다. 그중 스테로이드 약물을 사용해 홈런을 쳤다고 알려진 3명(배리 본즈, 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을 제외하면 로저 마리스(61개)와 베이브 루스(60개)만이 한 시즌에 스탠튼보다 많은 홈런을 때렸다. 8월 10일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신인 리스 호스킨스가 빅리그 출전 첫 34게임 동안 홈런 18개를 쳐내는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호스킨의 기록이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올해는 홈런이 너무도 흔한 해였다.홈런왕들은 과거엔 홈 베이스로 점잔 빼며 걸어 들어오거나 아니면 베이스를 속보로 통과했다. 그들은 ‘장타의 제왕(The Sultan of Swat, 베이브 루스)’이나 ‘해머링 행크(Hammerin’ Hank, 행크 애런)’ 같은 눈길 끄는 별명으로 통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쿠터’면 족한 듯하다. 6월 6일 신시내티 레즈의 2루수 라이언 ‘스쿠터’ 게넷(키 178㎝)은 1게임에서 홈런 4개를 터뜨려 메이저 리그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그에 비하면 1950년대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필 ‘스쿠터’ 리주토는 13년 동안 활동하면서 홈런 4개 이상을 친 적이 4시즌에 불과했다. 아무튼 올해 미국 국민 스포츠인 야구의 장타 능력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발사하는 장거리 미사일이 무색할 정도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 매디슨 범가너는 올해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 개막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려 1876년 시작된 리그 사상 개막전에서 멀티 홈런(홈런 2개 이상)을 친 최초의 투수가 됐다. 그의 기록이 올 시즌 홈런 풍년의 조짐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올해 그토록 홈런이 많이 쏟아진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홈런의 전설(Long Ball: The L egend and Lore of the Home Run)’의 공동저자 마크 스튜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삼진이 더는 치욕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 있게 전력을 다해 배트를 휘두르기가 훨씬 쉬워졌다.”그러면서 삼진당할 가능성도 훨씬 커졌다. 지금까지 리그 141 시즌 중 한 시즌 삼진이 가장 많이 나온 23개 시즌이 2004년부터 몰려 있다. 신인 MVP에 오를 가능성이 큰 뉴욕 양키스의 저지는 올 시즌 리그 최고 기록인 208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일동 기립!”을 외치는 검은 예복의 팬들은 그런 기록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처럼 기대하던 선수가 계속 삼진을 당해도 팬들은 풀이 죽지 않는다. 다음 게임에서 그가 홈런을 언제든 여러 방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장타자로 유명했던 레지 잭슨은 월드시리즈 한 게임에서 홈런 3개를 친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였다. 하지만 야구 팬들은 그가 21년간 뛰면서 무려 2597개의 삼진을 당해 이 부문의 역대 1위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잭슨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팬들은 형편없는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지 않는다”는 게 그가 남긴 명언이다.‘홈런의 전설’을 쓴 스튜어트는 모든 홈런이 투구로 시작한다고 믿는다. 결국 타자가 갈수록 크고 강해지면서 투수도 홈런 홍수의 공모자가 됐다. 스튜어트는 “투구는 일본 무술 주지츠와 매우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주지츠에선 자신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상대방이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야구에선 그처럼 타자의 허를 찌르기 위해 투수가 공을 던지는 속도를 예측 불가하게 조절하거나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를 던지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요즘 투수는 그런 투구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냥 전력을 다해 던진다.”복싱의 용어로 풀자면 요즘은 아무도 ‘잽’을 날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투수와 타자 둘 다 힘으로만 대결할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거의 동시에 끝난 야구의 ‘데드볼 시대’(점수가 잘 나지 않고 홈런도 별로 없던 시절)엔 타자가 방어적이었다. 당시엔 삼진당하는 것만큼 큰 치욕이 없었다. 또 19세기엔 홈런 펜스가 있는 메이저리그 구장이 거의 없었고, 외야수가 한 번 튄 공을 잡으면 타자가 아웃되는 게 규칙이었다. 내셔널리그에서 6차례나 홈런왕에 오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외야수 개비 크라바스는 1915년 월드시리즈에서 만루에서 타석에 나섰다. 감독이 그에게 번트 사인을 보냈다. 크라바스는 번트를 댔고 결국 더블플레이(병살타)가 됐다. 한 세기 뒤인 지금은 그런 지시가 내려지고 선수가 그 사인에 따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야구장은 골프 연습장처럼 변했다. 스튜어트는 “요즘은 야구가 마치 로켓 탄도 과학인 것처럼 타자 코치가 타구 각도와 발사 속도, 비거리를 논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의 정각 발사와 고각 발사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사실 그런 변화는 베이브 루스가 부추겼다. 야구의 다른 많은 측면에서도 그의 영향이 컸다. 스튜어트는 “있는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두른 첫 선수가 루스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가 헛스윙을 하면 몸의 균형을 잃어 넘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그의 개성이고 재능이었다. 팬들은 그럴 때도 그가 홈런을 쳤을 때처럼 떠들썩하게 환호성을 올렸다.”물론 팬들은 형편없는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환호성을 올리지도 않는다.- 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

2017.10.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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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가 성장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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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휘청거렸던 국내 관광업계가 조금씩 회복세에 들어섰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가 크지만 일본인 관광객 회복, 동남아인 관광객 급증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면서다. 중국만 바라보던 한국 관광업계가 프로그램 다양화, 관광객 다국화로 ‘균형 관광’으로 전환할 골든타임이다. 장면 하나. “남아공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한국전쟁과 민주주의 과정을 배웠다. 남아공도 내전과 민주화 과정을 겪은 나라라 한국에 오면 이곳 비무장지대(DMZ)를 꼭 둘러보고 싶었다.”지난 4월 중순 경기도 파주 제3땅굴 견학 현장에서 만난 루엘 미앙.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그는 고향에 있는 할머니와 부모, 남동생 등 6명의 가족을 초청해 여행 중이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상품을 찾다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천한 프로그램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루엘 미앙 등 비 중화권 관광객 32명은 외국인 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의 ‘DMZ 반나절 투어’ 상품을 이용해 임진각과 도라산역 등을 둘러보았다. 임진각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대형 관광버스 10여 대가 주차해 있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10여명의 페루 관광객은 녹슨 철마와 철로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장면 둘.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사왓디 카(환영합니다).” 6월 초 찾은 명동 거리는 중국어 대신 일본어와 태국어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지 3개월 남짓 되면서 ‘중국인 쇼핑특구’ 명동의 전체 관광객 수는 줄었지만 대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이 거리를 누볐다. 명동 입구 화장품 매장의 매니저는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본 지가 꽤 됐다. 대신 한국 여행사에 직접 예약한 싼커(중국인 개별관광객)와 동남아인 관광객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홍대와 강남, 삼청동 등에도 풍경은 비슷하다. ━ 유커 빈자리 채우는 동남아인 관광객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724만 명. 이 가운데 중국인이 절반에 가까운(46.8%) 807만 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리고 올해 3월부터 여행상품 판매를 금지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은 3월에만 무려 39.4%(2016년 3월 대비)나 급감했다. 급기야 4월엔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동기대비 70% 가까이 줄었다.하지만 1~4월 집계만 보면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4월간 한국을 찾은 관광객 수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5.7% 감소했다. 유커가 107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27.2% 줄었지만 일본(14.6%)·대만(23.5%)·홍콩(10.5%) 등 다른 국가의 관광객이 증가하며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지난해 관광 통계에서도 동남아인 관광객의 급증은 뚜렷하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동남아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율(12%)은 중국인 관광객(48%)의 1/3에도 못 미치지만 인도네시아·태국 등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한국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특히 대만·인도네시아 관광객은 전년(2015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 중국의 ‘사드 몽니’가 한국 관광시장의 국적 다양화를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동남아인 관광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2~4월 강원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24.8%는 태국, 25.4%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것으로 집계됐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인 춘천 남이섬은 지난해 말레이시아·태국 관광객이 각각 14만 명, 인도네시아·베트남 관광객이 각각 10만 명씩 찾았다. 부산시에 따르면 3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일본·대만·태국·베트남·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 유커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제주도 역시 관광객 국적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 4월 말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관광 설명회에서 현지 주요 5개 여행사와 제주 인센티브 관광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연중 100여 회에 걸쳐 베트남 기업 인센티브 관광객 5000여 명을 제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하지만 절반에 육박했던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가 국내 관광업계에 주는 타격은 엄청나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제한 조치가 국내 소비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한국 여행상품 판매 금지 조치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적 피해 규모는 5조6000억 원에서 최대 15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의 총 여행경비는 1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고, 이 중 쇼핑 경비는 12조8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국내 면세점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 12조2700억원 중 70%인 8조6000억원이 중국인 관광객의 지갑에서 나왔다. 롯데면세점은 5월 한 달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0% 감소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명동과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 들어선 중저가 호텔 업계에도 울상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승승장구했던 화장품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명동의 의류 매장 주인은 “중국인 관광객과 동남아인 관광객들 사이엔 구매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관광객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를 쓰고 가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이 때문에 관광업계 안팎에서는 중국인 단체여행객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질 좋은 관광을 추구하는 중국인 VIP 관광객 비중을 늘리고, 동남아·일본·중동 등 관광객 국적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그동안 미뤄왔던 국내 관광업계 체질 개선의 ‘골든타임’이라는 지적이다. 이임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20~30대 신세대 중심의 싼커(개별관광객) 맞춤형 여행콘텐트 개발을 통해 중국인 여행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또 중국 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고급화 차별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형동 건양대 교수(관광학)는 “정치적인 이슈로 예상보다 중국인 관광객 이탈 시기가 조금 이르게 왔을 뿐이지 이전부터 특정 국가 관광객에 편중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고 전했다.우선 방한 관광객의 국적 다양화다. 특히 시장규모와 성장률이 큰 동남아 시장에서 적극적인 유치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남아는 한류를 기반으로 한 젊은 여성 관광객의 신규 유입 수요가 탄탄한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3국을 대상으로 항공사와 한국 기업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공사 측은 “지난해 동남아 지역의 방한 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동남아인 관광객 비율을 2020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그러나 통역·식당·숙박 등 개선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에서 언어 소통과 음식 만족도에서 동남아인 관광객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평균치 이하 만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무슬림 관광객은 98만 명으로 2015년 대비 33%나 증가했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 필수인 할랄 인증 음식점과 기도실이 거의 없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쇼핑뿐 아니라 크루즈, 의료관광 등 다양한 상품 마련도 시급하다. 6월 6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방한 기간 중 주로 참여하는 활동 중 가장 많은 것은 ‘쇼핑’이 75.7%, ‘식도락 관광’이 51.0%(복수응답 가능)로 많았다. 이 수치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제대로 된 관광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관광업계 전문가들은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특성을 살려 크루즈 관광상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한 크루즈 관광객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46.6%의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2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5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국내 크루즈시장 체질개선 시급’ 보고서를 보면 아시아 크루즈 관광객은 지난해 325만 명으로 전년 대비 49.8%나 성장했다. 세계 크루즈시장의 2016년 성장률이 4.4%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성장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적 크루즈선사가 없어 중국과 일본, 유럽 선사들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상황이다. 국적 크루즈선사 육성과 우리나라를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사 유치를 통해 일본·러시아와 연계한 환동해·북극권 크루즈 노선을 구축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으로 꼽힌다. ━ ‘쇼핑’외 체험관광 등 프로그램 다양화 절실 중국·러시아 환자가 급감하면서 타격을 입은 의료관광도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 서울 강남이나 명동에선 성형수술 후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던 유커 등 외국인 환자의 모습을 최근엔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 환자는 루블화 가치 하락 등으로, 중국 환자는 사드 영향과 성형 사고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의료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강남구 병 의원은 동남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리적 요인과 한류, 경제 성장 등의 영향으로 의료관광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중국의 ‘관광 보복’은 일본과 대만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2012년 9월 일본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였던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자 중국 정부는 일본 관광을 금지시켰다. 항공기와 호텔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2012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34% 급감했다. 대만 역시 중국의 ‘관광보복’을 받은 나라다.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된 이후 양국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이 단행한 대만 관광 제한 조치였다. 중국의 제재 이후 4개월 연속 대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30%씩 줄자 관광업계 종사자 2만 명이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관광보복’일·대만도 다양화가 해법 일본과 대만의 대책 역시 ‘관광객 국적 다양화’였다. 일본은 비자를 완화하고 면세점을 확대했다. 중국에 한했던 투자처도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시키면서 관광객의 범주를 늘렸다. 다양한 콘텐트를 개발하고, 외국인 면세 절차를 줄여 면세 품목을 늘린 결과 한국인 관광객도 늘어났다. 그 결과 2014년에는 중국 관광객이 83% 증가해 240만 명을 넘어섰고,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은 개별관광객 유치에 집중했다. 15일로 제한된 중국인 개별관광객 대만 체류 기간을 30일로 늘리고, 동남아 국가 등에 무비자 입국을 확대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 대만은 지금도 중국으로부터 경제·무역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신남향(新南向)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한국 정부도 동남아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주도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과 김해공항에서 환승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단체 관광객에게 비자 없이 5일 동안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도 체류할 수 있도록 9월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까다로운 비자발급 절차와 현지 관광객의 긴 여행기간(6~8일)을 감안하면 가장 큰 신규 수요 창출이 기대된다.지역의 매력 있는 산업단지를 활용한 ‘산업관광’도 주목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기업체의 생산 현장이나 홍보시설을 비롯해 재래·전통산업, 과거 산업유산 등을 활용한 관광콘텐트다. 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 충족 등 배움과 재미가 있는 볼거리나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기업체나 지역에는 브랜드나 지역산업에 대한 홍보를 통해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는 기회로 기대된다. 부산 기업 고려제강이 1963년에 건립해 2008년까지 운영하던 공장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부산 수영구의 ‘에프1963’, 미래 우주항공 산업을 상징하는 전남 고흥군의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서울 성동구 ‘수제화 거리’, 전북 순창군 ‘장류 체험’ 등이 포함됐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성룡 기자

2017.07.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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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온라인 ‘프리롤 광고’] 억지로 광고 보고 데이터는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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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동영상 광고 시장 급팽창... 시민단체 “광고 관련 데이터 비용 보전해줘야” 주장 문재인 정부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 자문위원회(이하 국정기획위)는 6월 7일 미래창조과학부에 “이번 주말(6월 11일)까지 휴대전화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 공약에 대한 이행방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국정기획위는 전날 “미래부가 통신비 인하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며 업무보고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동통신사·소비자단체 등 통신요금 관련 이해당사자를 직접 만나면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대통령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늘 용두사미에 그쳤던 ‘가계 통신비 인하’ 문제를 놓고 새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압박이 여의치 않을 경우 ‘통신비 원가 공개’라는 이동통신사의 아킬레스건까지 건드릴 심산이다. 공공시설에서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와이파이 확충 방안도 가계의 통신비 부담을 간접적으로 덜 수 있는 조치다. 데이터 사용량이 증가하면 가입자의 통신비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부의 ‘무선데이터 트래픽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데이터 사용량은 28만7162TB(테라바이트, 1TB는 1000기가바이트)로 2년 전인 2015년 3월(13만 8121TB)의 곱절 이상으로 늘었다. 4세대(G) 롱텀에볼루션(LTE)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의 월별 1인당 평균 데이터 사용량도 3월 기준 6.083GB(기가바이트)로 집계 이래 처음 6GB를 넘어섰다.새 정부가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일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곳’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IPTV 등에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스포츠 중계를 비롯한 동영상을 보기 전에 5~15초 동안 강제로 시청해야 하는 ‘프리롤(Pre-roll) 광고’다. 대개 유튜브·네이버·카카오 등이 이용자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동영상 앞에 붙여 수익을 올리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용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데이터가 소모되는 애물단지나 마찬가지다. ━ 인터넷 광고 규제하는 법·제도 없어 프리롤 광고 시장의 몸집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동영상 콘텐트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 The Top, OTT)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어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6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서 지난해 OTT 시장 매출 규모를 4884억원으로 추산했다. 2015년의 3178억원보다 53.7% 늘었다. 이 중 광고 매출은 2657억원으로 전체의 54.4%를 차지했다. 월정액 매출은 776억원으로 15.9%, 주문형비디오(VOD) 등 유료 콘텐트 구매 매출은 499억원으로 10.2% 순이었다. 보고서를 만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곽동균 박사는 “OTT 시장의 광고 매출 중 대부분은 프리롤 광고로 올린 것으로 본다”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어 프리롤 광고 매출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문제는 프리롤 광고 시장이 커지면서 동영상·주문형비디오(VOD·다시보기) 광고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포털이나 IPTV의 동영상에 붙는 광고와 관련된 법이나 제도는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으로 어떤 사업자가 동영상 콘텐트 재생 전에 1분짜리 광고를 10개 붙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방송 광고는 총량 규제가 있지만 인터넷 광고는 그렇지 않다.물론 현실에서는 대개 5~15초짜리 광고 1개가 암묵적인 한계다. 월정액 가입자에게는 광고를 붙이지 않는 사업자도 있다. KT의 ‘올레TV모바일’, LG유플러스의 ‘유플러스 비디오 포털’, ‘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과 달리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에서는 월정액 가입자도 프리롤 광고를 봐야 한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통신망 관리와 투자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다만 월정액 가입자가 VOD에 따로 비용을 지불한 경우에는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고 말했다.이렇게 사업자들은 이용자의 반발을 감안해 과도하게 광고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남는다. 프리롤 광고가 동영상 콘텐트를 공짜로 즐기는 대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데이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5~15초가 지나면 광고를 건너뛸 수 있는 ‘스킵(skip) 버튼’이 나오지만 이것을 제때 누르지 않으면 더 오래 광고를 봐야 한다. 녹색소비자연대는 모바일 동영상 광고 때문에 드는 1인당 데이터 비용이 연간 16만1002원이라고 주장했다. DMC미디어의 ‘2016 인터넷 동영상 시청행태 분석’ 내용을 기반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누리꾼은 하루에 15초 고화질 광고(7.3MB) 4편을 시청했다. 여기에 5만원대 데이터 요금 기준 1MB당 비용 6.25원을 곱해 연간 데이터 비용(6만 6613원)을 산출했다. 이 금액에 광고 시청에 따른 기회비용 9만4389원을 더했다. 광고 시청에 따른 기회비용은 2015년 근로자 평균 임금(1초당 4.31원)에 연간 모바일 광고 시청 시간(15초x4편x365일)을 곱해서 계산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정보통신기술(ICT)소비자정책연구원 이혜리 부장은 “사업자들은 프리롤 광고로 소비자의 시간과 비용에 무임승차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라며 “광고를 볼 때 데이터가 얼마나 들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소비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고를 보는 소비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사업자들은 누가 얼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를 두고 동상이몽이다. 이동통신 사업자, 콘텐트를 포털에 제공하는 스마트미디어렙, 네이버와 유튜브 등 플랫폼 사업자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다. 스마트미디어렙은 포털에 10%의 광고 수익을 배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동통신사는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트 사업자가 책임질 문제라고 주장한다. 플랫폼 사업자는 콘텐트 사업자와 이동통신사도 함께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광고는 끊김 없는데 동영상은 먹통일 때도 프리롤 광고와 관련 이용자가 더욱 억울할 때도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프리롤 광고를 봤는데 정작 원하는 동영상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팬인 직장인 A씨는 퇴근길에 휴대전화로 경기 생중계를 자주 본다. 그는 경기 동영상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과 응원 댓글 등도 검색할 수 있는 네이버로 대부분의 경기를 본다. 경기 동영상을 보려고 적어도 5초 동안 광고를 봐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한다. 그나마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하고 있어 광고 동영상을 볼 때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그의 불만은 따로 있다. 광고는 끊기지 않고 잘 나오지만 막상 경기 동영상은 자주 끊기거나 먹통일 때가 잦아서다. 심지어 서너 번 시도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돼 짜증 섞인 퇴근길이 되기 일쑤다.이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만들어진 광고와 달리 야구 중계 등은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이어서 (동영상 재생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강의 다리처럼 주변이 트인 곳에서는 수많은 기지국·중계기의 영향을 한꺼번에 받기 때문에 간섭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지하철 객실이나 야구장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트래픽 과부하가 일어난다. 다만 그럴 경우에도 프리롤 광고는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트를 어떤 채널로 내보내느냐에 따라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며 “돈을 받는 프리롤 광고를 좀 더 안정적인 채널로 내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녹색소비자연대는 프리롤 광고와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프리롤 광고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후속 조치가 없어 논의가 흐지부지 됐었다. 국회에서 관련 상임위원회가 구성되면 의원들에게 적극 타진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와 협의해 이용자 보호에 필수적 사안이 무엇인지 협의할 계획이다.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를 일컫는다. OTT는 전파나 케이블이 아닌 범용 인터넷망으로 영상 콘텐트를 제공한다. ‘Top’은 TV에 연결되는 셋톱박스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셋톱박스의 유무를 떠나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2017.06.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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