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수십 년간 TV 화면을 장악해 온 에이스침대의 강력한 슬로건이다. 그 옆에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외치며 묵묵히 추격해 온 시몬스침대. 국내 침대 시장의 1~2위를 지켜온 이 두 브랜드 사이에는 소비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한 창업자의 두 아들이 각각 이끄는 '형제 기업'이라는 점 이외에도, 두 브랜드는 한국 광고사에 길이 남을 브랜드 혁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한 뿌리에서 갈라진 침대 왕국국내 침대 산업의 산 증인인 故 안유수 회장은 1963년 에이스침대를 설립해 한국 침대 산업을 개척했다. 그의 사업이 번창하자 장남 안성호 대표에게는 에이스침대를, 차남 안정호 대표에게는 미국 시몬스로부터 상표권을 취득한 시몬스침대를 맡겼다. 이로써 한국의 침대 시장에는 독특한 '형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에이스침대의 광고 캠페인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한국 광고사의 금자탑을 세웠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침대=과학'이라는 프레이밍은 소비자들의 침대에 대한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침대를 단순한 저관여 가구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고관여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1990년대 초, 10여개 가구 회사들이 침대 시장에 진입하며 위기를 맞은 에이스침대는 전문성 강화라는 활로를 모색했다. '침대는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 침대를 가구 고르듯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침대와 가구는 다르다'라는 고민 속에서, 결국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독보적인 카피가 탄생하게 됐다. 배우 박상원이 출연한 이 캠페인은 에이스침대를 수십 년간 독보적 1위 침대 기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광고 메시지에 걸맞은 품질 혁신이었다. 에이스침대는 미국 씰리침대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도약한 뒤, 자체 기술력 확보와 프리미엄 판매장 '에이스 스퀘어' 도입으로 '과학적 수면 약속'을 실천하며 고급스런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반면 시몬스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슬로건으로 감각적 경험을 강조했다. 볼링공을 침대에 떨어뜨려도 볼링핀이 흔들리지 않는 시각적 증명은 '포켓 스프링' 기술의 우수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두 브랜드는 각각 '이성의 브랜드'와 '감성의 브랜드'로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구축하며 서로 다른 소비자층을 매혹시켰다.특히 시몬스는 "우리의 경쟁상대는 에이스가 아닌 애플"이라고 강조하며 2019년부터 '침대 없는 침대 광고'를 선보이기도 했다. 2022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침대는커녕 침대 모서리조차 보여주지 않는 파격적인 OSV(Oddly Satisfying Video: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영상) 방식의 광고로 코로나19 시대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정서적 위로를 선사했다.이 광고는 유튜브에서 공개 2주 만에 누적 조회수 1400만회를 돌파하면서 장안의 화제를 몰고왔다.30년 브랜드 경쟁, 韓 브랜딩 역사를 쓰다2023년, 시몬스는 매출 3138억원을 기록하며 에이스침대(3064억원)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시몬스가 한국 법인을 설립한 1992년 이후 30년 만에 달성한 대역전이었다.
역전의 원동력은 과감한 프리미엄 전략과 브랜드 경험의 혁신에 있었다. 매스 시장에 집중한 에이스와 달리, 시몬스는 300만원 이상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과 1000만원 이상 초프리미엄 시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또한 2019년, 시몬스는 대리점 납품 방식의 'B2B'에서 소비자 직접 거래 방식의 'D2C' 체제로 전환하며 소비자 경험을 혁신했다. 특급호텔 시장에서도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달성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결과적으로 에이스와 시몬스 간 형제 브랜드의 30년 경쟁은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 브랜딩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첫째, 에이스의 '침대는 과학입니다'와 시몬스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은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대표적인 브랜드 자산이 됐다. 이 두 문장은 제품 카테고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효과적으로 바꾸며 한국 광고사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게 됐다.둘째, 두 브랜드 모두 광고에서 약속한 바를 제품으로 충실히 이행했다. 에이스는 실제로 과학적 접근의 침대를 개발했고, 시몬스는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제공했다. 이러한 일관성은 고객 신뢰를 구축하는 브랜딩의 기본 원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셋째, 시몬스의 '침대 없는 침대 광고'와 에이스의 변함없는 정체성은 브랜딩에서 혁신과 전통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에이스가 일관된 메시지로 신뢰를 쌓는 동안, 시몬스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새로운 세대와의 접점을 넓혀갔다.한 창업자의 두 아들이 이끄는 형제 브랜드의 선의의 경쟁은 한국 침대 시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침대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편안함과 휴식이라는 가치를 창조하는 회사"라는 안정호 대표의 말은 제품이 아닌 가치를 판매한다는 마케팅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다.전통과 혁신, 이성과 감성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형제 브랜드는 결국 브랜딩의 두 축을 완벽하게 보여주며 한국 브랜딩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